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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219화 (219/352)

〈 219화 〉 후일담:이사를 했으면 집들이는 국룰이지?(3)

* * *

자, 청소도 끝났고, 음식도 충분히 준비했고. 부모님은 하루 묵어간다 하셨으니 방 하나 비워뒀고.

준비는 다 된 건가?

나는 평소보다 여성스러운 복장을 입은 채 가슴아래에 팔짱을 끼곤 만족스럽게 거실을 둘러 보았다. 집이 커서 다행이야. 내가 애당초 생각한 인원 수 보다 더 많은 손님이 오기로 했기 때문에 예상한 것 보다 준비가 오래 걸렸지만, 급하게 공수해온 테이블에 먹음직스러운 요리를 상다리 부러지도록 차려놨으니 모자라지는 않을 거다.

불고기, 양념갈비, 제육볶음, 잡채, 김치전, 파전, 알리올리오 파스타에 마라탕에 집에서 만들긴 힘들어서 사온 족발과 파인애플 소스로 드레싱한 싱싱한 야채로 가득한 샐러드에 속을 따뜻하게 뎁힐 수 있는 야채수프에 부드러운 빵과 스테이크까지.이만하면 웬만한 뷔페 부럽지 않은 라인업이었다.

다 만들고 주문하고 치우는 데만 4시간이 걸렸지만, 주방이 넓었기 때문에 그나마 요리하기에는 편했다.

유라랑 리온이 거들어 주기도 했고. 한솔이와 세연이는 테이블 세팅을 도맡아 했다. 내가 아무리 손이 모자라도 저 요리 지지리도 못하는 흡혈귀한테 요리를 맡길 순 없지.

진짜 주방은 넓고 봐야 한다니까? 요리하는 입장에서 주방이 좁으면 진짜 짜증난다고. 재료 놓을 곳은 없지, 좁은 공간에 식기며 요리도구며 다 놓아야 하니 난잡하지...

으, 가슴이 좀 끼는 것 같은데. 한솔이랑 유라가 골라준 의상은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를 감안한 새하얀 스웨터에 검은색 스키니 진이었다. 부모님을 모셔올 때를 감안해서 잠깐 외출할 수 있도록 맞춘 복장이었다.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까 호텔에서 볼법한 화려한 식탁 같네요.”

폰을 들고 테이블을 찍고 있던 한솔이가 내게 말을 건넸다. SNS에 올리는 건가. 솔직히 상다리 부러지도록 테이블을 차린 건 좋은데 메뉴가 한국음식들이라 SNS에 올릴법한 화려함 보다 구수한 느낌이 강할 텐데.

뭐,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닌가.

난 귀찮아서 SNS도 안하니까. 솔직히 해야 할 필요성도 못 느끼겠고. 방송 홍보니 팬들과의 소통이니 하지만 그건 방송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 안 그래도 SNS에 글 한번 잘못 올렸다가 난리 난 유명인이 한 둘이 아닌데 구태여 위험을 감수할 필요도 없다.

실수 안 할 자신도 없고.

그나저나 언제 오시려나. 나는 폰 화면을 켜고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4시. 슬슬 부모님이 도착하실 시간이었다. 때마침 손에 진동이 느껴졌다. 화면을 쳐다보니, 화면 상단에 문자 메시지가 나타났다.

[유진아, 우리 거의 다 왔단다.]

[네, 그럼 나와서 기다릴게요.]

다행히도 잘 찾아오신 모양이네. 나는 거실 소파에 올려둔 코트를 입고 나갈 채비를 했다.

“엄마 어디가?”

“부모님 데리러. 따라올래?”

리온은 내 말에 잠시 고민하는 듯 눈가를 찡그렸다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뭘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귀여우니 됐다. 나는 리온에게 귀를 가리는 털모자를 씌워주었다.

변이자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긴 했지만, 쓸데없는 관심은 끌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여전히 리온의 종족을 가급적이면 숨기려 했다. 리온도 과도한 관심은 부담스러워 했기에 딱히 반항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자, 가자. 한솔아! 유라야! 나 부모님 좀 모시고 올게!”

리온에게 어린이용 코트를 입혀준 나는 리온의 얼굴에 마스크를 씌워주고는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우리 집 앞이었다. 마중 나가는 거니 그렇게 멀리 나갈 필요는 없었다.

“엥. 눈 오네.”

가랑눈인가? 아직 11월인데 첫 눈이라니, 세상이 한번 맛이 가더니 시간 개념을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와, 눈이다아...”

리온은 눈을 반짝이며 허공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하얀 눈이 리온의 손바닥에 떨어지자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리온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나중에 스키장이라도 가서 썰매라도 태워줄까.

리온이 신나게 썰매를 타는 모습을 상상하니 나는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리온이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구경하는 모습을 얼마나 지켜보았을까, 저 멀리서 자동차 엔진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눈을 돌려 자동차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보니 벌써 10년 가까이 몰은 아버지의 차였다. 이젠 낡아서 시동도 자주 꺼지신다는 데 차 쓸 일도 별로 없다고 새 차를 사지도 않으셨었지...나중에 새차나 하나 뽑아드려야지.

“여기에요~!”

나는 차를 놓칠세라 손을 흔들며 부모님을 불렀다. 느릿한 속도로 움직이던 차는 곧 나와 리온 앞에 멈췄다. 나는 창문이 깨질세라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창문이 내려가고 어머니는 반가움 반, 놀라움 반 섞인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유진아, 그 머리색은 뭐니?”

“아,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내 전생이 어쩌고저쩌고 할 필요는 없지. 쓸데없이 복잡한 이야기기도 하고, 이걸 설명하려면 한편의 대서사시를 일일이 읊어야 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냥 변이자라서 대충 이렇게 됐다고 하자.

아들이 하루아침에 딸이 됐는데 머리색 바뀐 정도야 쉽게 납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잘 지내는 것처럼 보여서 다행이구나. 그 애는...”

어머니의 시선이 내 등짝에 들러붙어서 얼굴만 내밀고 있는 리온의 얼굴로 향했다. 웬 금발머리 외국인 소녀가 있어서 놀라신 모양이었다.

“아, 리온 인사해. 할머니 할아버지야.”

“어, 안녕하세요...”

“할머니...”

“할아버지...”

묵묵히 우리를 쳐다보고 계시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넋 나간 얼굴로 중얼거리셨다. 갑자기 손녀딸이 생기면 그럴만 하지. 사실 나도 이 나이에 양딸이지만 딸이 생길 줄은 생각도 못했으니까.

차라리 나이 차 많이 나는 동생이라고 하는 게 더 납득하기 쉽지.

“그, 그렇구나...반갑단다. 나는 네 할머...니란다.”

어머니는 어떻게든 납득을 하신 모양이었다. 어색한 미소로 리온을 맞아준 어머니는 차에서 내려 리온의 손을 잡고 주저앉아 눈높이를 맞추셨다.

“잠깐 리온이랑 같이 있으실래요? 제가 아버지랑 주차장에 다녀올게요.”

“그러렴.”

그래도 난리가 나진 않아서 다행이야. 리온이 엘프 답게 사랑스러운 외모라서 어머니도 단번에 납득하신 것 같았다. 나는 리온에게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말을 거시는 어머니를 잠시 바라보다 아버지를 저택안쪽에 있는 주차창으로 안내했다.

아버지는 차를 주차한 뒤에 운전석에서 나와 어색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셨다.

“...아직도 안 믿기는 구나.”

많이 혼란스러우신 모양이었다.

그래, 그럴 만도 하지. 못본 사이에 아들이 딸이 되어서 나타나면 누구라도 당황스럽지. 평소에 무뚝뚝하신 아버지라도 내가 변한 건 큰 충격이셨던 모양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시선을 어색하게 흘려 넘기며, 할 말을 골랐다.

“잘 지내셨어요?”

“나야 언제나 똑같단다. 작업을 끝내고, 새로운 작업을 하고...반복이지. 네가 서울로 올라가기 전과 달라진 건 없단다. 너는...많이 변했구나.”

목공 일에 진심이신 아버지다운 말씀이었다. 어릴 적엔 맨날 작업만 하시는 아버지한테 불만을 가지기도 했었는데. 그땐 정말 어렸지...

“갑자기 여자가 됐으니까요...너무 달라졌죠?”

“그래도 내 아들인건 알겠구나.”

“그래요?”

“말투랑 행동거지가 네가 변하기 전과 똑같으니 자세히 보면 티가 난단다.”

그런가...난 잘 모르겠는데.

“일단 날이 차니 들어가요. 운전하느라 힘드셨을 테니 소파에 앉아서 쉬세요.”

나는 아버지와 함께 거실로 들어섰다. 거실에는 리온과 어머니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생각보다 금방 친해지셨네. 내가 두 사람에게 다가서자, 내가 온 것을 눈치 챈 어머니와 리온이 나를 쳐다보았다.

“어머, 이야기는 끝났니? 이걸 다 만들었다니, 대단하구나.”

리온이 어머니에게 말해준 모양이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귀여움 받는 리온을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어머니에게 시선을 돌렸다.

“뭐, 집들이니까 요리는 해야죠. 근데 리온이랑 금방 친해지셨네요?”

“내가 너 같은 사고뭉치도 키워봤는데 이렇게 착한 아이랑 친해지는 건 일도 아니란다.”

“아, 엄마!”

“내가 틀린 말 했니? 리온...이라고 했지? 너는 절대 네 엄마 닮으면 안 된다. 알았지?”

리온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와 어머니를 번갈아 쳐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소린지 몰라서 그냥 끄덕인 것 같은데.

“어유, 귀여워라.”

리온의 귀여운 외모는 어머니를 완전히 사로잡은 모양이었다. 나는 리온을 오구오구하며 귀여워하시는 어머니를 내버려 두고 휴대폰을 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슬슬 올 때인데.

나는 몸치장을 끝내고 다시 나온 유라와 한솔이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는 것을 보고는 곧 도착할 예정이었던 손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라쿤 박사님? 어디쯤이세요?”

[거의! 다! 왔네! 곧 도착하니! 걱정 말게!]

“넵. 그럼 마중 나갈게요~”

[알겠네!]

“엄마, 저 다른 손님 분들 마중하러 나가볼게요.”

“그래 다녀오렴.”

나는 현관문을 열고 다시 집 앞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마리아랑 시아한테도 연락을 해야...?

에포난가? 아니지, 에포나는 지금 정원에 있을 텐데. 나는 다그닥 거리는 말발굽 소리에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에반데.”

나는 중세 느낌이 물씬 풍기는 화려한 마차를 보며 생각했다.

에포나가 다 크면 저런 모습이다 싶은 말 두 마리가 모는 것을 보니 유령마가 모는 마차인 것 같았다.

...사람 눈에 안 보이는 거 맞지?

그렇지?

역시 신들 답게 쓸데없이 화려한 등장이었다.

당장 뉴스기사에 실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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