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7화 〉 후일담:이사를 했다면 집들이는 국룰이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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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라는 것은 귀찮고 복잡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 설레는 일이다.
짐을 다 싸고 이삿짐과 함께 새집에 와서 다시 가구를 설치하고,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인테리어를 하고...할 게 정말 많단 말이지. 그 과정은 많이 귀찮고 고통스럽기도 하다. 집을 비우는 것도 이래저래 복잡하기도 하거니와, 이래저래 처리할 것도 많으니까.
그래도 새집에서 살게 된다는 기대감, 더 좋은 집에서 살게 되었다는 기쁨은 그 고통을 상쇄시켜준다. 그게 존나 좋은 집이라면 더!
봐! 무려 2층집에서 평수는 줜나게 넒어서 드라마 남주인공이 살 것 같은 분위기에 무려 정원도 있어! 이제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에포나랑 뺑이칠 수 있다고! 담장도 있어서 내부 상황이 잘 안보이는 것도 플러스다.
방도 많으니 이젠 같은 방에서 옹기종기 모여 자는 게 아니라 따로 방을 잡을 수도 있었다. 이제 방이 좀 덜 부산스러워 지겠네.
“엄마, 나 정원가서 에포나랑 놀아도 돼?”
“엉. 너무 어지럽히진 말고.”
나는 눈을 반짝이는 리온을 에포나 위에 태워서 정원으로 보내버렸다. 어차피 이삿짐은 나랑 유라랑 한솔이만으로도 가능하고. 이제는 내가 딱히 듀라한이라는 것을 숨길 필요도 없었다.
물론 대놓고 머리를 들고 다니는 건 라쿤박사님 말마따나 사람들을 놀라게 할 수 있으니까. 웬만하면 머리는 목 위에 붙이고 돌아다녀야 했다. 솔직히 알고 있어도 존나 소름 돋잖아.
당장 일주일전 기자회견 때 내가 머리 들었다 내린 게 아직도 인터넷에서 진짜다 아니다 하면서 투기장이 열려가지고 이곳저곳에서 줄창 싸우고 있더라고. 내 얼굴도 이미 퍼질대로 퍼져서 온갖 곳에서 가십거리가 되고 있으니, 눈에 띌만한 짓은 자제할 생각이었다.
어떤 사건도 결국 잊혀 지듯이, 내가 얌전히만 있다면 결국 나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들 테니까.
...그렇겠지?
...맞지?
이 여신 같은, 아니 전생에 여신이었으니까 여신맞나, 어쨌든 이 외모가 너무 눈에 띄어서 그렇게 쉽게 사그라질 것 같지는 않지만. 당장 마스크 벗고 번화가 한 바퀴 돌고 오면 평생 받을 관심 다 받을 수 있을걸?
사진 찍혀서 사람들 입방에 오르는 것은 덤이다. 하지만 나는 근본이 방구석 여포라,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조용히 잊힐 생각이었다. 조용히 이 집에서 늙어죽을 때까지 살...잠깐 내 수명은 어떻게 되는 거지.
사람들이 순순히 받아들이기에 듀라한은 너무 충격적인 존재이긴 한 것 같았다. 하긴 기존 생명체의 정의를 싸그리 무시하는 사례인데 이슈메이커가 취급을 받는 게 당연하지. 라쿤 박사도 뭔가 불안한 눈으로 날 쳐다보기도 했었고.
사고 안친다니까요? 내가 뭔가 트러블메이커 취급을 받고 있는 것 같지만 내가 휘말리는 입장이었지 내가 사고치는 입장은 아니라고! 이젠 신화니 가지세계니 뭐니 하는 소리
빨리 새로 가구나 들어왔으면.
“이런 집에서 살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근데 괜찮아요? 저희까지 같이 살게 해주지 않아도 괜찮은데...”
“내가 지금 보호자 신분인데 너를 어떻게 따로 떼어놔. 방은 몇 층으로 할래? 1층에 4개, 2층에 3개라니까 방이나 골라. 한솔아 너도. 아, 2층에는 방송실 따로 만들 생각이니까 방 하나는 남겨두고. 방음설비야 나 설치해 놨지만, 혹시 모르니까 1층이 더 조용하기는 할 거야.”
“저는 1층에 저쪽 방으로 할게요.”
“나도 1층~방송실은 나도 2층이 좋은데.”
“방송실 넒으니까 같이 써도 될 것 같은데.”
나 혼자 쓰기엔 너무 넒고. 다용도실로 설계된 곳이라 이 집에서 가장 넒은 방이니 두 명이서 같이 쓴다고 해도 나쁘지 않았다. 서로 방송시간이 별로 안 겹치기도 하고. 합방하기에도 나쁘지 않고, 방음용 칸막이만 설치해서 방만 가르면 되고. 문이 양쪽에 두 개 있는 기묘한 구조니까 서로 걸릴 일도 없을 거고.
그럼 한솔이 1층, 유라 1층. 리온은 정원이랑 연결된 방을 좋아했으니 정원으로 나가는 베란다가 있는 1층 방. 에포나는...개 방을 따로 배정할 필요가 있나? 어차피 개는 나나 리온이나 유라방 들어가서 잘 텐데. 그냥 에포나용 방석을 방에 하나씩 깔아둬도 되겠네...
“유진아, 나는?”
“...방이 필요해?”
너는 햄버거만 있으면 어디든 좋은게 아니었어? 옛날 집에서도 그냥 내 방에서 같이 살았잖아. 생활권이 거의 천장이기는 했지만.
그럼 1층에 세연이용 방을 하나 주도록 하자. 의미가 있나 싶지만.
“그럼 1층 구석 쪽에 방 써.”
“아싸!”
세연이는 아주 신난 얼굴로 1층 구석의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모습을 훈훈하게 지켜보다, 대문과 거실 창을 전부 열어젖혔다. 청소도 해야 하고, 가구들 들어오려면 거실 쪽 베란다 문 쪽으로 들어오는 게 더 편하니까.
기존에 있던 가구는 경찰들이 조사한다고 이짓저짓 다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버릴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저승사자취급이긴 하지만 죽은 사람들이 쓰던 거 쓰기에는 좀 찝찝하기도 해고.
듣자하니 정원에 시체가 묻혀있었다던데. 그 터가 공동묘지이었던 곳을 사서 밀어버리고 집을 지은 것도 있고(이게 이 집이 안 팔린 이유였다나), 그 강도가 사람을 죽이고 묻은 것도 있다고 한다. 아마 그 많은 귀신들 중에 한명이었겠지.
다들 성불했으니 딱히 걸리는 건 없었다.
“가구는 좀 있다가 도착할 거고... 일단 정한 방에 들어가서 짐만 좀 옮겨놓고 밥이라도 먹을까. 중국집 이 근처에 괜찮은 곳 있나...”
역시 이사하면 중국집이지.
“중국집에서 시킬 건데 메뉴 원하는 거 말해봐.”
“나는 짬뽕으로 할게.”
“저는 자장면이요! 곱빼기로!”
리온은...나는 거실에서 정원쪽 유리문을 열고 리온을 불렀다.
“리온! 밥 시킬 건데 자장면이랑 짬뽕이랑 뭐 먹을래?”
“자장면 먹을래요!”
그럼 자장면 셋에 짬뽕 하나. 탕수육 대자면 되겠지. 나는 배달 어플로 근처의 중국집 중에 가장 평가가 좋은 중국집에 배달을 시켰다.
30분에서 한 시간 사이면 올 테니, 먹고 치운 다음 2시간 뒤에 오기로 한 가구들만 배치하고 정리만 하면 오늘 할 일은 끝이었다. 기자회견이랑 이런 저런 일들로 방송도 일주일 쉬었으니 일주일 후면 복귀방송을 하게 되겠네.
여기가 외딴 곳이라 인터넷 회선이 별로 안 좋아서 새로 까는 것도 있고, 부스 설치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니라서 시공까지 생각하면 일주일 정도는 더 쉬어야지.
물론 기자회견으로 난리난 여론 때문도 있었다.
내 팬 중에 하나가 몇 달 전에 제로투 춘거 가지고 내가 동일인물이라는 추측을 한게 관심을 너무 받은 바람에, 관심이 식을 때까지 쉬려는 것도 있었다.
인터넷상의 분위기는 아직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내가 기자회견에 나타난 그 듀라한이라는 추측이 거의 확실시 되는 분위기였기에, 방송을 켜는 게 좀 무서운 것도 있었다.
방송키면 아주 난리가 나겠구만.
물론 나는 얼굴을 공개한 채로 방송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방송은 좀 편하게 하고 싶다고. 어차피 공인 취급이라 의미가 있나 싶긴 하지만. 주변에 같이 합방하는 사람들이 죄다 버튜버니 이래저래 나도 버튜버 판떼기를 계속 달고 싶었다.
안 그래도 기자회견 이후에 내 마망이 놀라서 연락을 때렸다고. 엄마 말고 버튜버쪽 말이다. 직접만난 건 아니지만, 전화를 해본 적이 있으니 내 목소리를 알고 있어서 금방 눈치 챈 것 같았다.
본인도 변이자라고 충격 고백을 날리긴 했지만. 며칠 전에 지금 생각해두고 있는 계획 때문에 만나기도 했다. 고양이 귀 귀엽더라. 얼굴도 예쁘고.
변이자만 아니었으면 버튜버가 아니라 그냥 스트리머를 했을 것 같은데. 이미 버튜버가 되었으니 뭐...
그렇게 생각하며 거실 바닥에 앉아 쉴 때였다. 나는 갑작스레 손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화면을 쳐다보았다. 아. 라쿤박사님이다.
“여보세요?”
[오! 자네! 이사는! 잘! 하고! 있나!]
“아, 네. 무난하게 하고 있죠~”
[다행이군! 그럼! 집들이는! 언제! 하는가!]
“...집들이요?”
[그렇네! 설마! 집들이를! 하지! 않을! 생각인가!]
아, 집들이가 있었지. 한번 하긴 해야지. 이사했으면 집들이를 하는 게 국룰이라고. 아무튼 그렇다. 그럼 이번 주 주말 즈음에 잡아놓고 초대하면 되겠구나.
평소에 도움도 많이 주시고 결정적으로 이 집을 구하는 데에 큰 지분이 있는 라쿤박사님이랑, 은하랑, 부모님이랑, 또 누가 있을까...시아랑, 그 언니분이랑...마리아랑...
초대할 사람이 좀 많겠군.
‘사람’만 초대할 건 아니지만.
“이번 주 토요일에 하려고 하는데, 시간 괜찮으세요?”
[괜찮다네! 바쁘긴! 하지만! 하루쯤은! 시간을! 낼! 수! 있네!]
“그럼 토요일에 오후 6시쯤에 저희 집에 오시면 될 것 같아요. 주소는 아시죠?”
[안다네!]
“그럼 토요일에 뵈요~”
[알겠네! 수고하게!]
...할일이 늘어났네.
그럼 지금부터 집들이를 위한 사전 조사부터 해볼까.
나는 폰을 들고 이곳저곳에 연락을 날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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