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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210화 (210/352)

〈 210화 〉 187.신화에는 끝이 존재하는 법(4)

* * *

아레스는 이유모를 불안함을 느꼈다. 은색으로 빛나는 창과 둥그런 방패. 그의 기억 속에 강렬히 각인된 무구였다.

‘그 년이 저 놈에게 무기를 넘겨줬을 리가...’

아레스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곧바로 지워냈다. 지금은 일기토 중이었다. 상대가 아무리 자신보다 실력이 모자라더라도, 진지하게 임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오래전에도 방심한 탓에 인간에게 부상을 입는 수모를 겪지 않았던가.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포모르는 창을 집고 나서 고통이 잦아들었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이상한 일이었다. 딱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은빛의 창이었지만, 정말로 보통 무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포모르는 오래전 파르사드와의 대련에서 배웠던 단창술을 더듬어가며 자세를 바로 잡았다.

“창술을 배운 적이 있는 모양이군.”

“...스승님께 배웠다.”

포모르는 방패로 상체를 가린 채, 창을 방패 위에 걸쳤다. 정면으로 돌격하는 적을 요격하기 위한 자세였다. 아레스는 그의 행동을 보며 앞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인간 대 인간의 싸움이라면 방패를 든 적을 상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겠지만, 아레스는 신이었다.

아레스가 검을 전력으로 휘두르면 방패 째로 인간을 반으로 쪼개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아레스는 포모르를 향해 검을 들어올렸다. 사형집행인이 내리는 냉혹한 선고처럼, 아레스의 검이 포모르의 방패 위에 떨어져 내렸다.

포모르는 아레스의 검이 떨어지기 시작하자마자 망패를 비스듬하게 들었다. 공격을 흘려내기 위함이었다. 아레스의 검과 포모르의 방패가 부딪히며 불똥이 튀겼다. 포모르는 공격을 흘려내려고 했지만, 아레스가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꽤 버티는군!”

‘생각보다 공격이 가볍군.’

포모르는 생각보다 적은 충격이 팔에 전해지자 의아해 했다. 그리고 이내 방패에 무언가 특별한 마술이 걸려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까 전에 검을 여러 번 맞대어 본 포모르였기에 내릴 수 있는 결론이었다.

방패가 아레스의 검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음이 확실해 지자, 포모르 전보다 더 공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번, 두 번, 세 번. 포모르의 찌르기가 연거푸 아레스의 온 몸을 노리고 쏟아졌다.

한 부위를 노골적으로 노리는 것보다, 어디를 노리는지 모르게 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포모르의 공세에 아레스는 몸을 틀어 피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마치 창이 피해가는 듯 한 움직임에 군중은 감탄사를 흘렸다.

날카로움이 군중에게 느껴질 정도로 신속하고 연속적인 찌르기를 하나하나 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아레스는 창을 피하면서도 포모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강맹한 공격에 포모르는 잠시 주춤했지만, 망설임 없이 창을 다시 내질렀다.

그렇게 10여분을 싸웠을까, 아레스는 점점 마음의 여유가 사라져가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아레스는 상대를 언제든지 끝장낼 수 있는 인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포모르는 그와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일찍이 겪지 못한 일이었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인간이 신을 넘어설 수 있을 리가 없다. 오래전 트로이 전쟁에서 디오메데스에게 입은 상처는 그의 역린이었다. 지나치게 흥분한 그의 움직임이 더 거칠게 변하기 시작했다.

포모르는 아레스의 이변을 알아차리고 더욱 더 방어에 집중했다. 전장을 가득 채운 파열음이 둘의 귀청을 울렸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 따위는 아레스에게도, 포모르에게도 없었다.

아레스는 점점 힘이 고갈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저 창과 방패를 든 후에 더 힘이 빠르게 고갈되어 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아레스는 그런 생각을 떨쳐냈다.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당장 이 놈을 요절내고 만신전 안으로 들어가 얼마 남지 않은 정기를 흡수해야 했다.

음식을 통한 열량과 수분 보급으로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는 인간과 달리, 신의 몸은 끔찍할 정도로 연비가 좋지 않았다. 넥타르와 암브로시아, 그리고 이 세계의 정기를 한계까지 흡수해도 만신전을 벗어나면 채 1시간을 버티질 못하니, 아레스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었다.

‘점점 움직임이 둔해지고 있군.’

포모르는 전보다는 약간이나마 느려진 아레스의 움직임을 보며 생각했다. 방패가 상상 이상의 튼튼함으로 아레스의 검격을 막아 내주고 있었기에, 포모르는 좀 더 적극적으로 창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추가된 찌르기가 아닌 휘두르기에 아레스는 몸을 틀어 공격을 흘려냈다. 그리고 포모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목표는 팔이었다.

그때였다. 포모르는 방패로 공격을 막는 대신, 방패를 휘둘러 아레스의 가슴팍을 강타했다. 첫 유효타였다. 아레스는 가슴을 후려갈기는 방패에 뒤로 밀려났다. 곧 이어 포모르의 창이 아레스의 옆구리에 상처를 냈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는 들어갈 법한 자상이었다.

“으아악!”

아레스의 우렁찬 비명에, 군중은 전부 귀를 막았다. 낙원 끝에서 끝까지 들릴 것 같은 비명이었기에, 바로 앞에서 비명을 들은 포모르는 뒤로 몇 걸음 물러날 정도였다. 고막을 터트릴 듯한 소리에 포모르는 무기를 놓칠뻔했지만,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무기를 붙잡았다.

귀에서 느껴지는 고통과 함께, 포모르는 귓가가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고막이 터져버렸다는 것을 포모르는 깨달았다. 포모르는 어이가 없어 옆구리에서 피를 흘리며 식은땀을 흘리는 아레스를 쳐다보았다.

“네놈...!”

아레스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 포모르는 그의 말에 코웃음 치며, 입을 열었다.

“신이라는 존재도 별것 없군. 한낱 인간의 창에 상처를 입다니 말이야.”

완벽한 도발이었다. 아레스는 이성을 잃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완전히 눈이 돌아간 그가 맹렬하게 달려오는 모습을 보며 포모르는 마지막 승부수를 띄우기로 했다. 고막이 터진 탓에, 시간을 오래 끌면 불리했다. 이성을 완전히 놓아버린 지금이 최고의 기회였다.

포모르는 뒤로 물러나는 대신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흥분하며 달려오는 아레스의 빈틈을 노리기 위해서였다.

한걸음, 두걸음, 세걸음.

포모르는 거침없이 창을 투척했다. 그의 미간을 향해서였다. 당연하게도 아레스는 검으로 창날을 쳐서 튕겨냈다. 이성을 잃었음에도 소름끼칠 정도로 정교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게 바로 포모르가 노리는 바였다.

신이라도 동시에 두방향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쉽게 막아내지는 못할테니까. 그것도 이성을 잃어 눈에 뵈는 게 없는 상황에서는 말이다.

포모르는 곧바로 허리춤의 검을 꺼내 방패를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검의 궤적을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곤 몸을 숙이며 검으로 아레스의 명치를 향해 찔러 들어갔다.

푹.

아레스의 명치에 검이 박혔다. 테테가 던져주었던 그 검이었다.

승자가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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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굴은 반칙이지! 니들이 그러고도 신이냐!”

“인질을 잡은 년이 할 소리는 아니로다!”

그렇게 말하니까 할 말이 없네. 하지만 내가 아르테미스 내려놓으면 번개 날릴 거잖아. 맞지? 난 번개 맞고 아프로 머리가 되기는 싫다고. 진짜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내가 놓아준다고 날 놓아줄 것 같지도 않고. 그리스 신들 아니랄까봐 어딜 쳐다보는 거야? 확실히 남자라면 눈이 안갈 수 없을 정도로 크긴 하지만.

“어쨋든 아르테미스의 신병을 원한다면 물러나! 그리고 이왕이면 그냥 너네 세계로 돌아가!”

여기서 전쟁이니 뭐니 하지 말고 너네 세계 가서 그냥 얌전하게 죽으면 안 될까? 내가 생각하고도 말이 안 되는 생각이긴 하지만.

그나저나 어떡한다? 너무 어그로가 많이 끌린 것 같은데. 내가 아르테미스를 인질로 잡은 탓에 그리스 신들의 어그로가 죄다 나에게 쏠린 모양이었다.

다행히도 아르테미스 방패를 써서 더 화살이나 번개가 날아오는 빈도는 적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공격은 위협적이었다. 용아저씨! 용아저씨 어디 갔어! 아까 저 금발 양아치 아저씨랑 싸우고 있었잖아!

“쥐새끼마냥 잘 피해 다니는군.”

어쩌지? 이대로 시간을 계속 끌어야 하나? 근데 내가 시간을 끈다고 해서 우리한테 승산이 있긴 한 건가? 결국 저 신들을 쓰러트리지 못하면 내가 시간을 끌어도 의미가 없는 거잖아.

“제우스, 갑자기 도망치더니 이곳에서 뭘 하고 있는 건가?”

오, 용아저씨 왔다. 가까이서 보니 엄청 크네. 내가 발톱 하나 정도 크기라니. 진짜 무지막지한 크기였다. 용이니까 당연한 건가. 한번 타보고...싶다...

“에포나, 혹시 용으로 변신 할 수 있을까?”

“못 해!”

씁, 아쉽네. 용 한번 타보고 싶었는데.

“마하...아니, 유진이었던가. 유진이여, 내가 엄호해 줄 테니, 저 두 신을 끝장내 버리자꾸나.”

공투인가. 내가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은데. 하늘에 떠 있는 놈을 내가 무슨 수로 공격하지. 용아저씨는 내 대답을 듣지 않고 다시 하늘을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평원이 흙먼지로 가득해졌다.

“에포나, 날 수 있지?”

“응!”

“그럼 우리도 날아갈 준비를 하자.”

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에포나는 마치 말이 앞발을 들어 올리듯이 오토바이 앞바퀴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하늘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빨라! 빠르다고!

“에포나! 그만 올라가!”

성층권 뚫을 일 있냐! 넌 우주선이 아니야! X로호가 아니라고!

그래도 아폴론이랑 같은 고도까지 올라온 건 다행이었다. 용아저씨는 제우스를 상대하려는 것 같으니, 나는 저 금발 양아치 하나만 어떻게든 하면 된다는 거지. 나는 아르테미스의 새하얀 발목을 붙잡았다.

살결 엄청 부드럽네.

“아폴론! 넌 내가 상대해주마!”

“건방진 년! 감히 인간의 몸에 빌붙어 사는 신 주제에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 구나! 네가 의술의, 궁술의, 예언의, 예술의, 이성의, 태양의 신 아폴론에게 대적하려 하느냐!”

거 수식어 많아서 좋겠수다.

“에포나, 돌진! 목표는 저 쓸데없이 수식어만 많은 금발 양아치다!”

“헤으응~!”

원딜을 잡을 때는 일단 접근해야 하는 법! 나는 오토바이를 몰고 곧장 아폴론에게 달려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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