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듀라한이 되어버렸다-208화 (208/352)

〈 208화 〉 185.신화에는 끝이 존재하는 법(2)

* * *

아침 해가 낙원을 뒤덮기 시작한 아침, 포모르는 철저하게 보호받고 있는 만신전의 정문 쪽으로 인파를 헤치며 당당하게 걸어갔다. 당당한 걸음으로 만신전으로 다가오는 포모르의 모습에 외벽 위에서 대기하던 위병들은 그에게 활을 겨누었다.

“멈춰라! 여기는 네놈 같은 천한 놈이 올 곳이 아니다! 이곳은 신들의 거처이자 이 세계의 중심! 만신전이다!”

“반란군에게 둘러싸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주제에 입은 잘 놀리는군.”

“더러운 불신자 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입을 놀리느냐!”

포모르가 신랄하게 받아치자 위병대장은 잔뜩 불거진 얼굴로 소리쳤다. 포모르는 그의 말에 코웃음 쳤다. 겁먹어서 틀어박힌 주제에 입만 살았군. 포모르의 뒤에서 대치하고 있던 반란군들은 그런 위병대장의 모습에 비웃음으로 응수했다.

“불신자? 그 불신자한테 몰려서 애새끼마냥 틀어박힌 놈이 할 소리냐?”

“니들은 신 믿어서 이 꼬라지가 됐냐?”

삽시간에 만신전이 그들을 비웃는 소리로 가득 찼다. 반란군의 대다수는 신들에게 가족을 잃었거나 위병들의 횡포에 시달린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을 보는 시선이 결코 고울 리가 없었다.

그들은 웃고 있었지만, 눈동자만은 강렬한 증오를 담아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위병대장은 수많은 적의가 담긴 시선이 쏟아지자 금세 창백한 얼굴로 외벽 아래로 내려갔다.

쓸모없는 놈이군. 포모르는 그렇게 생각하며, 정문을 10걸음 정도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갑작스레 멈춰선 그의 행동에, 겁먹은 위병들의 시선이 전부 그에게 꽃혔다. 포모르는 숨을 몰아쉬고, 단번에 고함을 질렀다.

“아레스! 나와라! 나 포모르가 전쟁의 신 아레스에게 일기토를 신청하겠다!”

그의 외침이 끝나자마자 적지 않은 파장이 양측에 불어 닥쳤다. 위병들은 이젠 아예 미친놈을 바라보듯이 그를 보고 있었고, 반란군들은 놀라움과 두려움, 경외를 담은 시선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신이란 어떤 존재인가. 사람은 닿기만 해도 감전되어 죽어버리는 천둥을 손에 쥐고 휘두르며, 앞날을 예언하기도 하고, 하늘을 날며, 손짓 몇 번 만으로 말라붙은 땅을 다시 살려내기까지 하는 엄청난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니던가.

반란군들은 기세등등하게 만신전 앞까지 도달하긴 했지만, 숫자로 밀어붙이려 했지 개인의 일기토로 신을 제압하려 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신 앞에서 인간은 반딧불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 세상의 상식이자 절대적인 법칙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건방진 놈! 인간 따위가 감히 이 몸에게 일기토를 신청해? 네 놈이 아주 죽고 싶은 모양이로구나!”

우렁찬 목소리가 만신전 안 쪽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인간의 목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포효에 가까운 고함에 반란군은 저도 모르게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포모르는 조용히 두 다리로 그의 온 몸을 밀어내려 하는 고함을 버텨냈다.

고함이 허공으로 사라지고, 뒤이어 들리는 발소리는 모두의 귀에 선명하게 들려왔다. 저벅저벅 걸어오는 발소리는 분명 평범한 걸음소리였지만, 이해 못할 박력에 모두가 식은땀을 흘리며 발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할 수밖에 없었다.

“왔군...”

“하지만 이 몸에게 일기토를 신청한 기개는 칭찬해주마! 네 놈의 그 용기에 대한 경의로 친히 싸워주도록 하지!”

아레스는 가벼운 경장 하나만 걸친 채 근처에서 떨고 있던 위병의 검을 뺏어들었다. 그가 문을 박차고 나오자, 반란군들은 자연스럽게 거리를 벌려 포모르와 아레스가 싸울 만한 자리를 만들었다.

“네놈! 이름이 뭐냐!”

“...포모르, 제국의 마지막 후예이며 신들에게 모든 것을 잃은 자다!”

포모르는 기억을 잃어버렸어도 어렴풋이 떠올리던 모든 것을 잃어버린 날을 떠올렸다. 그저 잊어버린 척 묻어두고 있던 기억들이었다. 신을 눈앞에서 맞닥트리자, 그의 기억이 선명하게 살아났다.

포모르는 검집에서 검을 꺼내 아레스를 향해 겨누었다. 그의 눈에는 이글이글 거리는 살기와 분노가 가득했다. 아레스는 포모르의 시선에 코웃음 치며 먼저 오라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포모르는 모처럼 건네준 선공을 놓치지 않기로 했다.

포모르는 그를 향해 사냥감을 덮치는 늑대처럼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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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어요. 앞으로도 계속 해야 하니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랍니다.”

...익숙해질 수 있을까. 나는 내가 흙으로 돌려보낸 신의 비명으로 잠시 멈춘 전장을 바라보았다. 나한테 꽂히는 시선으로 얼굴이 꿰뚫릴 것 같았다. 전장의 신들과, 저승사자들과, 용과 금발의 신이 나를 아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그냥 하던 일 하면 안 될까...?

나 그렇게 쳐다봐도 아무것도 안 나와. 난 그냥 듀라한일 뿐이라고.

“마하, 인기인이네요.”

“주인님 인기 많아?”

“무서운데...유진아, 저 사, 아니 신들 다 너를 쳐다보고 있어...”

“아니...그런 건 아닌데.”

내가 뭘 했다고 신들 표정이 왜 저리 사색인데. 내가 사신이라도 된 것 같잖아. 듀라한이니까 사신은 맞긴 한데. 나는 아까의 광경도 잊고 멍한 표정으로 전장을 바라보았다. 두려움에 젖은 눈빛. 신이 나에게 향할만한 것은 아니었다.

“저, 전생신이 아직까지 남아있었다고?”

“저, 저년을 부르지 마! 우리한테 흙을 뿌릴지도 몰라!”

사람을 무슨 x드모트처럼...그렇게 이 능력이 두려운 걸까. 신들 정도면 나 정도는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는 거 아니야? 살아있는 신을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신들은 맨손으로 바위를 쪼개고, 진흙을 적당히 집어서 던지면 사람도 만들고 그런 존재잖아.

나 같은 일개 인간을 신들이 두려워 할 이유가 있을까. 물론 내 능력이 즉사기에 가깝다는 것 하나는 알겠지만.

“마하, 그대도 알겠지만 살아있는 신들에게 네 능력은 가장 두려운 힘이에요. 신은 육체를 빼앗기면 세계에 쉬이 관여할 수 없게 되니까.”

“편법?”

“쥐새끼마냥 숨어있는 것 말이에요. 마하, 우리는 역할을 끝내고 세상을 위해 육체를 땅의 양분으로 삼기로 했어요. 그게 우리가 마지막 회의에서 낸 결론이었죠. 이 세상은 우리만을 위한 것도 아니고, 우리는 역할을 다 했으니 육체를 이 땅을 위한 양분으로 남겨두고 이곳에서 인류를 지켜보기로 했어요.”

헤카테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수천 년 전의 비사를 내뱉었다. 무슨 소리인지 대충은 알겠는데, 아무튼 지금 나를 쳐다보면서 기겁하는 신들이 죽기 싫어서 도망친 신들이라는 걸까.

결국 목숨은 신이나 인간이나 공평하다는 거네.

“저들은 죽는 걸 원하지 않았거든요. 그러니 마하, 너를 보고 두려워하는 거예요.”

죽는 걸 원하는 건 신들이나 인간이나 마찬가지구나. 나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전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럼 나는 계속 이걸 반복하면 되는 건가?

“마하, 이 주머니를 가져가.”

헤카테는 나에게 작은 주머니 하나를 건넸다. 판타지 영화에서나 볼법한 작은 주머니는 야구공 하나만 넣어도 꽉 찰 정도로 작았다. 이게 뭘까.

“그 안에 이 땅의 흙을 넣어놓았으니 그걸 사용해요. 보기에는 작아 보이지만 운동장 하나 정도는 만들 흙이 들어있으니 모자람 없이 사용할 수 있을 거예요.”

이게 그 마법의 주머니 같은 건가.

“아까는 왜 안주고 지금 줘요?”

“채워 넣는 도중이었으니까요.”

아 그럼 어쩔 수 없지. 나는 주머니를 받아들고 어디에 넣을지 고민하다가. 대충 허리춤에 매달았다. 머리카락으로 고정시켜 놓았으니 빠지진 않겠지.

“마하, 이제부터 당신의 존재가 알려졌으니, 저들은 당신을 노릴 거예요. 당신만 죽는다면 일이 좀 더 수월해 지니까요. 그러니 마하, 절대 죽으면 안 돼요. 보세요.”

헤카테는 손으로 허공을 가리키곤 손을 펼쳤다. 별안간 거대한 마법진이 나타나 허공을 수놓기 시작했다. 내 눈을 잠시 멀게 할 정도의 새하얀 불빛이 마법진을 향해 날아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눈을 감고 팔로 얼굴을 가렸지만, 충격은 없었다.

마법진이 저 새하얀 불빛­아마도 천둥을 막은 모양이었다.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시야로 날아온 방향을 보니, 금발 머리 아저씨가 내가 죽지 않은 게 아쉬운지 혀를 차고 있었다. 저 새끼 저거 제우슨가. 눈빛이 나를 품평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인데.

생리적인 거부감에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절대 살아서 잡히면 안 돼! 잡히면 절대 좋은 꼴은 못 볼게 확실했다. 그거야 제우스는...

“마하, 저승사자들이 당신을 호위할 테니, 전장으로 나가세요. 저승사자들은 신을 죽일 방법이 없어요. 당신만이 살아있는 신을 죽일 수 있으니 당신의 도움이 없으면 이 전쟁을 이길 수 없어요.”

저 전장에? 나를?

무섭다.

두렵다.

하지만 해야만 한다.

내 목숨만 걸린 게 아니니까. 나는 빌라에 있을 유라랑 한솔이, 라쿤 박사님, 부모님들과 많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결국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려면, 여기서 겁먹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가야만 한다.

“세연아.”

내가 세연이를 부르자, 세연이는 내게 다가와 언제든지 칼을 꺼낼 수 있게 얼굴을 앞으로 내밀었다.

“...울어라, 지옥참마도!”

“구웨에에엑...!”

나는 지옥참마도를 쥐고 피와 비명, 불빛이 난무하는 전장에 뛰어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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