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7화 〉 184.신화에는 끝이 존재하는 법(1)
* * *
“에포나, 잘 할 수 있지?”
“응!”
나는 투레질을 하는 에포나의 갈기를 빗으로 빗어주었다.
핏줄에 전투마의 피가 흐르기라도 하는지, 에포나는 두 번째 출진에 정말 흥분한 기색이었다. 평소랑 다르게 몸집이 배는 커져서 들이받기만 해도 승용차 한 대 정도는 엎어버릴 만한 사이즈라, 이대로 부딪히기만 해도 웬만한 녀석은 쓰러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는 한명이라도 쓰러트리면 다행이겠지만. 상대가 보통 인간도 아니고 신이잖아. 신이 겨우 몸통 박치기에 당할 리가 없지.
대형 트럭이라면 모를까.
으, 떨려라.
이제 곧 전쟁터로 가야한다니...나 같은 쫄보가 잘 할 수 있을까? 모두가 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과연 내가 정말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어깨가 군장이라도 얹은 것처럼 무거웠다.
“유진씨. 걱정 마세요. 저희가 더 유리한 싸움이에요.”
“...그래...그렇겠지.”
나는 마리아의 위로를 대충 넘기며, 점점 벌어지기 시작하는 공간을 쳐다보았다. 이제 저기로 들어가면 전쟁터로 가는 건가...리온은 괜찮겠지? 아직 인 세상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는 애기도 하고, 글도 아직 띄엄띄엄 읽기도 하고...
한번 걱정하니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구나. 기밀관리본부에서 여직원들이 돌봐준다고 했으니 지금은 리온 보다는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신경 써야 했다. 지금 목숨이 위험한 것은 나니까.
내가 실패하면 이 세상도 같이 박살난다. 그거 하나만은 확실했다. 신화 속 신들 인성이 개차반인 것은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 그나마 멀쩡하단 소리 듣는 모리안도 내 몸을 빼앗고 멋대로 개조해서 쓰려고 했으니까.
당장 가지세계 쪽에 있다는 그리스 신들만 해도 헤스티아나 데메테르랑 아테네 빼면 죄다 한 성깔 하는 신들이 많다. 특히 그중에서도 제우스는 바람 잘 피우기로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 제우스가 금태양 모습으로 나타나도 나는 납득할거다.
개보다 금태양 이미지가 어울리는 신이 없어.
“그럼 이제 출발할게요.”
“알았어.”
나는 에포나를 타고 균열 속으로 뛰어들었다.
균열을 넘어온 나에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온통 금이 가있는 하늘이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깨져서 떨어질 것 같은 커다란 균열이 경계를 메워가고 있었다.
“싸움의 여파가 이렇게 빨리...생각보다 시간이 촉발할지도 모르겠네요! 따라오세요!”
마리아는 그렇게 말하곤 검은색 날개를 펼친 채로 날아올랐다. 우리는 하늘을 비행하며 날아가는 마리아를 쫒아갔다. 다행히도 전쟁의 여파인지 블록마냥 꼬여있던 땅이 제대로 작동하지는 않아서, 마리아를 쫒아가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다.
우리가 전쟁터에 도착한 것은 5분 정도 달린 후였다. 우리는 높은 곳에서 한창 전투가 진행 중인 전쟁터를 내려다보며, 전장의 상황을 가늠했다.
“다행히도 크게 밀리지는 않고 있군요.”
“주인님! 저기에 신들이 엄청 많아!”
그럼 다행이긴 하지만...내가 도움이 될까?
지금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데. 서로가 서로의 목을 노리고 무기를 휘두르고, 현대에서는 영화나 게임에서나 볼 수 있는 전장의 풍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몸을 떨리게 했다.
하늘에서 번개가 사람들을 구워버리고, 화살에 꿰뚫리고, 불에 탄다. 보통의 전쟁과는 다른 온갖 속성공격의 향연이 나를 더 떨리게 만들었다. 영화나 게임에서는 그저 멋질 뿐인 기술이지만, 살인 기술로 내 눈앞에서 사용되는 모습은 그만큼 충격적이었으니까.
맞으면 어떻게 될까?
즉사할까? 아니면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천천히 죽어갈까? 나는 불에 타다 간신히 몸을 굴려 불을 끈 남자가 다른 동료들의 부축을 받고 후방으로 이탈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유진씨?”
“...어? 어어...”
“정신차려요. 전쟁터에서 머하니 있는 것만큼 위험한 행동이 없어요.”
나도 알아.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있기가 힘든 걸.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 비명소리, 고함소리가 정신없이 뒤섞이는 전장은 영화에서나 볼법한 광경이라, 현실감이 없으면서도 이따금씩 쓰러지는 사람을 볼 때 마다 나를 강제로 현실로 불러오는 것 같았다.
쓸데없이 눈이 좋아져서, 쓰러지는 저승사자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조차 보인단 말이야.
그리고 하늘에서 계속 터지는 천둥소리와 검은 용이 브레스를 뿜는 장면은 보는 것조차 살이 떨릴 지경이었다.
나는 결국 눈을 감았다. 계속 보고 있어봤자 좋을 게 없었다. 나는 내 일을 하자. 그래도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저승사자들이 전선을 보충하며 계속해서 막아내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해?”
“전장의 최후미로 이동할 거에요. 자, 따라와요.”
나는 마리아의 안내를 받아 경계를 크게 돌아서 전장의 최후미에 도착했다. 최후미에는 아마도 신으로 보이는 여성이 마법진을 띄우고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나는 에포나에서 내려 마리아와 함께 그 여신에게 다가갔다.
“...왔군요.”
“헤카테. 이쪽은 마...아니 이유진이야.”
“반가워요 마하. 저는 헤카테에요. 들어봤을지는 모르겠네요. 저는 그리 유명한 신은 아니라 서요.”
“마법의 여신, 맞죠?”
“절 알고 있다니. 신기하네요. 해부해보고 싶어요. 전생능력을 가진 신의 신체는 한 번도 해부해 본 적이 없어서요.”
“네?”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실례. 본심이 나와버리고 말았네요. 농담으로 생각해 주세요.”
“주인님, 저 사람 이상해...”
본심으로 그런 소리 하지마...에포나, 그리고 그런 건 대놓고 말하면 안 돼. 나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같이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생각보다 익숙한 이름이었다. 이래저래 게임이나 만화 같은 데서 자주 나오는 이름이기도 하고. 저번에 왔을 때 경계에서 이름을 들어본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그리스 신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다른 그리스 신들은 가지세계로 다 넘어갔다고 들었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겠네요. 저는 별로 살아있는 데에 관심이 없어요. 제약도 많고, 경계에서 느긋하게 마법 연구나 하는 쪽이 취향이라...그래서 같이 넘어가지 않고 이곳에서 조용히 경계를 유지보수하며 살고 있었네요.”
나에게 설명을 하는 와중에도 헤카테의 손은 앞에 떠오른 마법진을 계속해서 건드리고 있었다. 붉은색으로 빛나는 마법진은 불길해 보였지만, 동시에 아름다워 보였다. 화려하고 반짝반짝거리는 게 정말 마법 같았으니까.
“뭐가 그리 좋다고 사는 것에 집착하는지...이해할 수가 없네요. 저렇게 모든 걸 잡아먹으며 살아있는 것은 추하네요. 보세요. 지금도 가지세계에서 정기를 끌어와 보충하고 있어요. 저 연결을 끊고 싶지만, 힘들겠네요.”
따지고 보면 전 동료들이었을 텐데, 헤카테의 말은 신랄하기 그지없었다. 어차피 적이 된 상황이라 별 상관없는 걸까. 아니면 저 차가운 목소리처럼 관심있는 것 외엔 아무래도 좋아서 그런걸까?
“마하, 당신이 해줘야 할 일이 있어요.”
“...나?”
마하라고 해서 나 말고 다른 신 부른 줄 알았잖아. 마하라고 불리니까 뭔가 어색했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부르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이름이 아닌 별명으로 불리는 느낌이었다.
“그래요. 당신이에요.”
“...어...무슨 일을 해야...되나요?”
“헤카테, 유진양은 해야 할 일이 있어요.”
헤카테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 채기라도 한 건지, 마리아가 내 앞을 막고 헤카테의 말을 끊었다.
“걱정 마요. 그 해야 할 일이니까.”
헤카테가 마법진을 훑던 왼손을 움직여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누군지 모를 남성이 배에 검이 꽂힌 채로 쓰러져 있었다. 남성의 몸에서 나온 피가 주변을 피바다로 만들어 버린 것이 그로테스크 했다.
겉보기에는 인간과 큰 차이가 없어보였지만, 나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저게 살아있는 신이구나.
인간과는 다른 존재감이, 그리고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진다. 신이란 건 인간과는 정말 다른 종이라는 게 자연스럽게 납득이 된다. 저 신이 내 첫 번째 상대인가. 몸에서 흘러나와 주변을 잔뜩 적신 피가 꺼림칙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못한다고 뺄 수도 없었다.
“마하, 잊어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주변의 흙을 손으로 움켜쥐고, 몸에 골고루 뿌리면 됩니다.”
나는 헤카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남성의 앞까지 걸었다. 방해는 없었다. 지금 다른 신들은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으니까. 주변은 병장기 소리와 고함소리, 그리고 번개가 터지는 소리로 가득했다. 남성은 피를 그렇게 흘리고도 죽지 않았는지, 신음을 흘리며 팔을 휘적이고 있었다.
“...!*#^!$!*)!#....”
못 알아 들어서 다행이야. 나는 눈을 감고 땅의 흙을 손으로 퍼서 조용히 남성의 몸에 흩뿌렸다.
“!*@(#*(^!$*&!!!!!!!!”
나는 남성의 비명에 곧바로 귀를 틀어막았다. 남성의 몸이 점점 분해되고 있었다. 온 몸이 산채로 분해되고 있는 거...야? 끔찍한 광경에 난 얼어붙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런 걸...수백 번을 반복해야 한다고?
“...유진아, 괜찮아?”
세연이는 나보다도 더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내게 물어왔다. 나는 움직여지지 않는 고개를 억지로 움직여 고개를 끄덕였다.
“마하? 돌아오세요.”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헤카테를 쳐다보았다. 헤카테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다시 헤카테의 옆으로 돌아갔다. 이곳에 더 있긴 싫었으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