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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200화 (200/352)

〈 200화 〉 177.신들의 세상, 인간의 세상(1)

* * *

“...난리가 났군.”

포모르는 골목길의 그림자에 숨어, 실시간으로 난장판이 되어가고 있는 뒷골목을 쳐다보았다. 평소엔 보기 힘든 신전의 위병들이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몸을 수색하고, 분류하고 있었다.

목적은...여자인가.

누군지는 몰라도 참 악질인 신이로군. 포모르는 남녀를 분리하는 위병들을 지켜보며 혀를 찼다. 세상이 오늘 내일 하고 있는데 신들은 여색이나 탐하고 있다니. 포모르는 진심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차피 버릴 세상이라는 건가. 막 나가는군.

포모르는 위병들의 위치를 파악하며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아마 베니딕틴은 여관에 있을 테지. 그는 이곳의 지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기에, 베네딕틴이 따로 갈만한 곳을 알지 못했다. 그는 아직 이곳에 도착한지 채 보름도 되지 않은 것이다.

“어서 빨리 움직여라! 제우스님의 명령이다! 반항하는 자는 측결처형 하겠다!”

...그래서 사람을 모으는 건가. 포모르는 아직 이곳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제우스라는 신의 악명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잊을 만하면 나오는 이야기가 그 신에 대한 이야기이니,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으니까.

소문이 맞다면 위병에게 들키지 않게 움직여야 했다. 제우스의 위병은 신의 위세를 등에 업고 온갖 말썽을 일으키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나마 다른 신의 신도, 특히 올림푸스 신의 신도라면 정도가 심하지는 않았지만, 뒷골목의 인간들에게는 한없이 잔혹해지는 게 그들이었다. 무슨 짓을 해도 뒤탈이 없기 때문이었다. 뒷골목이라고 신도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 봤자 제우스에게 항의할 힘조차 없는 약소 신들에 불과했다.

위병들에겐 약소 신의 신도쯤이야 불신자들이랑 별 차이가 없었다. 그나마 대우하는 척은 해주지만, 어차피 그들을 함부로 대한다고 해서 약소신이 그들의 신에게 항의할 수 있을 리도 없었으니까.

제우스는 자신의 권위를 흔들려 하는 자들에겐 설사 자신의 아들이라도 가차 없었다.

포모르는 계속해서 위병들의 눈을 피해가며 여관의 뒷문에 도착했다. 테테가 3일차쯤에 포모르에게 알려준 곳이었다. 뭔가 일이 터지면 여관의 단골들은 뒷문을 통해 들어온다며 테테가이야기 했던 것을 떠올린 덕이었다.

조용히 들어선 여관은 그 어느 때보다 사람이 많았다. 평소에는 그래도 몇 자리 정도는 비어있었던 자리가 지금은 사람들로 꽉꽉 들어차 있었고, 그 많은 인원에도 불구하고 여관에는 소곤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평소의 활기찬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었다.

“...포모르? 이쪽이야.”

포모르는 자기를 부르는 앳된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테테는 2층의 계단에서 얼굴을 내밀고 손짓으로 그를 부르고 있었다. 포모르는 여관 식당에 없는 베네딕틴이 어디 있을지를 생각하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밞았다.

“어디 갔다 온 거야? 한동안 안보여서 무슨 일이라도 당한 거 아닌가 생각했다구.”

“...잠시 멀리 갔다 왔을 뿐이다.”

이세계에 다녀왔다고 곧이곧대로 말해줄 수는 없었기 때문에, 포모르는 대충 둘러대며 테테와 함께 복도를 걸었다. 복도에는 밞을 때마다 삐꺽거리는 나무판자 소리와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말고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테테는 그를 2층 복도 끝에 있는 방으로 이끌었다. 테테가 숙박하고 있는 방이었다. 테테는 그가 들어오자 문을 조심스레 닫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포모르는 방 한켠에 놓인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혹시 상황설명이 가능하다면 해줬으면 좋겠군.”

“설명할게 있나? 이따금씩 찾아오는 신들의 노리개를 뽑아가려고 온 거지.”

테테는 자주 있는 일이라는 듯,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포모르는 그녀의 말에 사태의 심각성을 재차 느끼곤 인상을 찌푸렸다.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닌가 보군.”

“내가 지금까지 본 것만 8번 정도는 된다구.”

“...그렇군. 너는 괜찮나?”

“뭐, 뭐뭐뭐뭐뭐가? 괘, 괘괘괜찮아.”

갑작스러운 포모르의 물음엔 테테는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닌걸 잘 알지만, 미남이 지긋이 시선을 맞추며 물어보니 그런 쪽으로 생각이 가는 것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 같은 하프 고블린은 고귀하신 신님의 취향에는 맞지 않는다구...”

지금 같은 상황에선 장점이지만, 하프 고블린이라는 종족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 좋게 보이지 않는다. 괴물 취급받았던 고블린과 인간의 하프. 존재만으로도 구설수를 불러일으키는 조합이었다.

그래도 뒷골목에서는 이런저런 필멸자들이 흘러들어오는지라 종족보다는 쓸모를 봤기에 테테의 취급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따금씩 마주치는 신의 신도들은 테테를 마치 오물 보듯이 내려다보곤 했다. 신의 신도라는 자들은 테테를 존재해서는 안 되는 괴물로만 생각했으니까.

잘못해서 눈에 거슬리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기에, 테테는 뒷골목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었다. 뒷골목이야 신도들도 말썽을 일으키기는 껄끄러워 그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볼 뿐이지만, 그들의 영역인 뒷골목 바깥은 신들의 세상이었다.

신들의 세상에서 하프 고블린이 설 곳은 없었다.

“...너무 풀죽지 마라. 너는 충분히 아름다운 여자니까.”

“뭐, 뭣?!”

...내가 잘못 말한 건가. 포모르는 언젠가 파르사드에게 들었던 ‘여성을 대하는 법’을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혹시 잘못 기억한 건가. 포모르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얼굴이 터져나갈 것처럼 붉어진 테테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괜찮나?”

“괘, 괘에에에엔찮지!”

테테는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필사적으로 진정시키며 대답했다. 도저히 포모르와 눈을 마주칠 수가 없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눈이 마주치면 겨우 진정시킨 심장이 다시 뛸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행이군. 그럼 이야기를 계속 하도록 하지. 혹시 베네딕틴이 있는 위치를 아나?”

“베네딕틴?”

“식당에선 매번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그 남자 말이다.”

“아~ 그. 그 사람? 옆옆 방에 있어.”

사람들을 몇 명 모아서 방에 들어가는 것까지 봤기에, 테테는 단번에 대답했다. 도대체 거기서 뭘 작당하려는 건지. 테테는 허황된 말을 늘어놓기만 하는 베네딕틴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인간이 신에게 대항할 수 있을 리가 없어. 테테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이를 가늠할 수조차 없이 긴 세월을 살아왔고, 압도적인 힘을 가진 신에게 저항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낙원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저 엎드려서, 재앙이 지나가길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인간은 자연재해와 맞서 싸울 수 없으니까. 신은 자연재해나 다름없었다.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자연재해. 그렇기에 막을 도리도 없다.

저항한다면 남는 것은 죽음뿐이다. 낙원의 신도들은 뒷골목의 주민들을 개만도 못하게 여겼으니까. 뒷골목의 주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숨죽이고 재앙이 지나가기를 비는 것 밖에 없었다.

“사람이라...동지들이라도 모은 건가.”

“뭐? 동지? 그 아저씨의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있다고?”

“...이 세계가 살기 위해선 신들에게서 벗어나야 한다. 결국 이 대륙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게 신들이니까. 그의 주장은 그리 틀리지 않아.”

적어도 포모르는 그렇게 생각했다. 신에게 의지한 세계의 말로가 멸망이라면, 더 이상 신을 믿을 필요가 없었으니까. 어차피 신들에게 필멸자들이란 쓰다 버릴 수 있는 장기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무슨 수로? 저들이 손짓 한번하면 우리는 죽은 목숨이라구.”

기분을 거슬리게 했다는 죄로 즉결 처형당한 사람을 몇 번 본적이 있었던 테테는 ‘신에게 저항한다’는 일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신들의 손짓 몇 번이면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하루살이 같은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글세. 저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지만 그들도 영원한 것은 아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신들이 이 세계를 버릴 예정이라는 건 알고 있나?”

“...뭐? 뭐라고?”

포모르의 폭탄 발언에 테테는 깜짝 놀라서 무심코 그에게 되물었다. 포모르는 다시 한 번 말을 반복하며, 테테에게 자신이 들은 것이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 시켜 주었다.

“...나 완전 처음 듣는 소린데. 진짜야?”

“...그렇다. 이건 상당히 높은 위치의 여신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이니, 충분히 신빙성 있는 이야기다.”

테테는 여전히 반신반의 하는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마치 ‘너도 그 아저씨한테 물든 거냐구?’라는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테테를 보며 포모르는 묵묵히 할 말을 이어갔다.

“못 믿겠다면, 네가 직접 그 여신에게 물어봐도 된다.”

“...내가? 여신님을? 나 같은 걸?”

“...메티스님이라면 누구든 반갑게 맞아주시겠지.”

적어도 그가 보기에는 그랬다. 애초에 신들에게 강한 반감을 가진 그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 것이 그녀였으니까. 그녀의 목적을 위해서 그랬던 것도 없잖아 있기는 하나, 그래도 다른 신들과는 필멸자를 대하는 태도가 달랐기에, 포모르는 테테를 메티스 여신에게 데려갈 생각이었다.

계획의 성공을 위해서는 더 많은 동료가 필요했으니까.

적어도 그가 보기에 테테는 충분히 능력 있는 인물이었다. 뒷골목 길에 대해 잘 알고 있기도 했고, 눈치도 빠르고 머리 회전도 꽤 빠른 편이다. 거기에 정보를 나르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으니, 그는 충분히 계획에 쓸 만한 인재라고 생각했다.

“일단 베네딕틴에게 가도록 하지. 전달할 이야기가 있다.”

“나도?”

포모르는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빠져나갔다.

테테는 잠시 허둥대다, 급하게 그의 뒤에 따라붙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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