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화 〉 176.도화선(5)
* * *
사람이 머리를 장도리로 맞으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두개골이 부서지고 두개골 속의 뇌수가 얼마나 깨끗한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겠지. 나는 당연히 못 보겠지만.
근데 듀라한 머리랑 장도리랑 부딪히면 어떻게 될까? 지금까지 수많은 일을 겪었는데도 상처 하나 입어보지 못한 뚝배기가 장도리랑 부딪히면?
“시발...! 뭔놈의 대가리가...!”
나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손잡이가 부러져 날아가는 장도리와, 손아귀가 찢어져 손을 부여잡고 있는 자칭 부동산 직원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런 식으로 사람 끌어들여서 강도짓 하는 놈이었나.
뭔가 처음부터 좀 수상하다 싶더라니. 리온을 따로 떼어놓고 오길 잘했네. 재도 나한테 활부터 쏘던 꽤 와일드한 꼬맹이니까 아마 그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긴 한데 역시 애한테 이런 걸 보여주는 건 정서에 별로 좋지 않겠지?
나는 아무런 느낌도 없는 맞은 부위를 만지작거리다, 살짝 틀어진 고개를 바로잡았다. 좀 더 옆으로 쳤으면 아예 반쯤 목이랑 머리가 어긋났겠는데. 나는 머리를 바로잡고선 이제는 주저앉은 남성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혼신의 풀스윙을 아무렇지 않게 무시했기 때문일까, 강도는 찢어져 피를 철철 흘리는 손아귀를 움켜쥐고 뒷걸음질 쳤다.
워워, 그렇게 무서워하면 마음이 아픈데. 기껏해야 충격으로 머리가 목에서 조금 이탈했을 뿐이잖아. 요즘 공포영화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애교수준에 불과하다고. 남자가 깡이 없네 깡이.
“시발! 오지마! 오지 말라고!”
조금 놀려볼까. 나는 일부러 머리카락의 조임을 느슨하게 풀고 마치 목뼈가 부러진 것처럼 머리를 흔들었다. 강도는 한층 더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지만, 결국 벽에 등을 부딪치고 말았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느긋한 걸음으로 강도의 바로 앞까지 걸어갔다.
천천히 한 걸음씩 강도에게 다가선다. 때로는 몇 마디 말보다 단순한 침묵만큼 공포심을 자극하는 게 없는 법이다. 강도는 이제 창백해지다 못해 당장이라도 게거품을 물 것 같은 얼굴이었다. 생각보다 쫄보구만 이거.
아니, 당연한건가? 전력으로 장도리로 머리를 내리쳤는데 상처가 나기는커녕 자기 손아귀만 터져나가고,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자기한테 다가서는 사람이 무섭지 않을 리가 없지. 이거 완전히 호러영화의 한 장면이잖아.
그것도 귀신이 마치 복수라도 하러 온 것 같은 느낌이니까...내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내 사람 같지 않은 외모와 희고 붉은 머리카락이 합쳐지면 마치 옛날이야기 속에서나 나오는 귀신같은 분위기를 풍기니까.
이런 깡으로 잘도 강도질을 하려고 했네. 보통 강도질 하는 놈이면 깡은 좀 있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겨우 손아귀 찢어진 거 가지고 질질 짜는 놈이 강도라니, 굳이 내가 나서서 뭘 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강도에게 고정해두었던 시선을 돌려 천장을 바라보았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천장에서 느껴졌다. 나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서곤, 천장에서 나와 강도를 내려다보는 무수한 시선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내 눈치를 보고 있단 수많은 귀신들이 마치 폭포처럼 강도를 향해 쏟아졌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들곤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경찰이죠?”
“다친 곳은 없으세요?”
“예, 예...”
나는 정신이 완전히 나간채로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강도를 힐끗 쳐다보다, 내가 많이 놀랐을 거라 생각한 모양인지 나를 안심시키러온 여경의 말을 대충 받았다. 죽이진 않았는데, 거의 죽여 놨군. 저 정도면 정신적으로 완전히 죽은 게 아닐까.
용케 안 끌려갔다 싶네. 아무리 수많은 사람을 죽인 강도라도 일단 죽이지는 않겠다 이건가. 저 정도면 사실상 제정신으로 돌아오기는 쉽지 않을 것 같긴 하지만. 어쩌면 그냥 내 눈치를 봐서 적당히 괴롭힌 다음 풀어준 걸지도 모른다.
물론 그걸 로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귀신 서너명이 어깨에 들러붙어있는걸 보니 영원히 고통 받겠지. 꼴좋다.
왜, 원래 가장 무서운 복수는 죽이는 게 아니라 살아도 산 게 아니게 만드는 거래잖아. 죽어서 지옥에 가는 것보다 사는 것 자체를 지옥으로 만드는 것만큼 무서운 복수는 없으니까. 귀신들도 대부분 만족한 듯, 기꺼이 내 검을 맞고 성불했다.
저승 가서는 행복하게 살아.
“엄마? 경찰아저씨가 여기 왜 온거야?”
“그 아저씨가 나쁜 아저씨가 있어서 경찰언니가 잡으러 왔대.”
나는 흐트러진 리온의 옷차림을 가다듬어 주며 말했다. 여경의 시선을 가리고 교묘하게 모자를 고쳐 썼기에 아마 귀를 보진 못했겠지. 봤어도...뭐...그냥 애가 귀가 좀 크다고 대충 둘러대면 될 일이다.
아무리 지금 수인이니 뭐니 하면서 소란스럽다지만, 현실에 실제로 엘프가 존재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할 테니까. 경찰 한사람한테 보이는 거야 적당히 둘러대면 문제 없다.
혹시 몰라서 경찰에 전화건 직후에 라쿤 박사님께 연락을 드리기도 했고.
“아, 아이도 같이 있으셨군요.”
“네. 좀 수상한 느낌이 들어서 애를 떨어트려놨거든요...”
“그럴 땐 저희한테 먼저 연락을 해주서야...”
“상황이 너무 급박해서요. 너무 놀라서 일단 딸부터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다행이시네요...”
전화해도 무시하지 않았을까. 당장 몇 주 전에도 경찰이 신고한 거 다 무시해서 죽은 사람 나왔었잖아. 이번에야 강도 녀석이 아예 제압된 상태라 부른 거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그냥 속편하게 적당히 때려눕힌 다음에 기밀관리본부에 연락을 했을 거다.
“잠시 사정청취를 위해 서까지 동행해주실 수 있나요?”
“그전에 제 딸부터 집에 돌려보내도 될까요?”
“네.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
나는 여경을 따라 경찰차에 올라탔다. 조수석에 앉은 나는 뒷좌석에 리온이 자리를 잡은 것을 확인하고, 등받이에 몸을 뉘였다.
“자네는! 정말! 악운을! 타고! 났군! 어떻게! 만나도! 지명수배범을! 만나나!”
“아니, 저도 어이가 없다니까요? 괜찮은 집 보러 갔더니 강도가 직원으로 위장해서 기다리고 있질 않나, 그게 지명수배범이질 않나...덕분에 그 집 쓰기도 힘들 것 같아요. 들어보니까 집주인이 죽어서 주인 없는 땅이 되었다던데.”
무주 부동산이라니, 그렇게 좋은 집인데!
진짜 에바야. 뭐 듣기로는 주인 없는 땅이 되어버려서 국가 소유로 넘어간다는 것 같은데. 씁. 정말 아쉬운데. 그 정도 매물이 살수 없는 땅이 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아쉬웠다. 또 집 찾아다니려면 발품 오지게 팔아야 할 텐데, 귀찮아...
뭔가 방법이 없나?
방법이...없나?
“자네! 내! 말! 듣고! 있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나!”
“아, 죄송해요. 잠시 그 집에 대해서 생각하느라...”
“미련이! 남았나! 보군!”
“후, 가격은 아마 허위로 대충 적은 거겠지만, 상당히 좋은 집이었거든요. 근데 무주 부동산이라 국가 소유로 넘어간다고 하니 아쉽죠...”
“흠!...”
그만한 집을 구하기도 쉽지 않을 텐데. 세연이도 그 집이 좀 아쉬웠는지, 실망한 기색을 잔뜩 풍겼다. 정말 좋은 집이긴 했지. 그게 강도가 강도질 하려고 관리한 게 아니었다면 말이야...경찰에게서 얼핏 들었는데,
여러 번 강도질을 했음에도 아직까지 잡지 못했던 질 나쁜 지명수배범이었다고 한다. 수법이 악랄하고 증거를 철저하게 남기지 않아서 몇 년째 잡지 못했다던가. 추정되는 희생자만 두 자릿수라던데.
스릴러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강도 살인범이네. 뭐, 듀라한도 있고 여신도 있고 엘프도 있는 이 난장판인 세상에 그런 살인범이 있을 수도 있지. 애초에 현실은 창작보다 더 한일이 곧잘 일어나곤 하니까, 그저 재수가 없었을 뿐이다.
나에게도, 그 강도에게도.
완전히 실성해서 정신병원에 처박아 버린다던데, 영원히 사회에 나오진 못하겠지. 귀신 몇 마리가 완전히 들러붙어버린 걸 보기도 했고, 제정신을 차릴까 싶으면 개내들이 알아서 다시 정신을 조져놓겠지 뭐.
“라쿤 박사님. 그래서 그 수인 건은 어떻게 잘 해결됐나요?”
“그! 이야긴! 꺼내지도! 말게! 그! 변이자! 덕분에! 내가! 얼마나! 욕을! 먹었는지! 아나!”
아무래도 높으신 분들한테 불려가서 죽어라 까이신 모양이다. 사실 사건 자체는 불가항력이었을 텐데, 이 나라에서 변이자에 대한 관리를 맡는 총책임자이신만큼 이럴 땐 총알받이가 될 수밖에 없는 건가.
“수습 못하면 지금 완전 위험한 거 아니에요?”
“그래서! 벌써! 며칠째! 집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네!”
고생이 많으시네...아 나도 회사 다닐 때 비상 걸려서 며칠 야근한 거 생각나네. 야근 수당 1도 안 챙겨줘서 저엉말 좆같았는데. 망해버려서 쌤통이다 진짜. 들리는 소식으로는 사장 내외 빚더미에 앉아서 어디로 튀었다고 하던데.
“그래서! 자네에게! 맡기고! 싶은! 일이! 있네!”
“무슨 일이요?”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지금! 전 세계! 국가들이! 이번! 건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네! 결과에! 따라서! 우리도! 방침을! 변경! 할! 수도! 있네! 그때! 자네에게! 맡길! 일이! 있네!”
뭔 맡겨? 그리고 스케일이 너무 큰데요? 도대체 뭘 시킬 생각인데요? 듣기만 해도 잘못하면 X될 거 같은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느낌에, 나는 거절하기 위해 입을 열려고 했다.
“맡기만! 한다면! 그! 주택과! 그 일대! 땅을! 자네에게! 넘겨주겠네! 무산! 되어도! 말일세!”
부동산! 부동사아아아아안!
“이야기는 먼저 해주실 수 있죠?”
“그건! 말일세!...”
라쿤 박사님은 나에게 맡길 일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5분여간의 장황한 이야기를 다 들은 나는 난색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가!”
“그걸 저한테요? 다른 적임자도 있지 않아요?”
“자네보다! 크고! 임팩트! 있는! 변이자는! 없다네!”
아, 그러시군요. 근데 확실히 그렇긴 하네.
근데 그렇게 되면 나...
내 걱정을 눈치 챈 건지, 라쿤 박사님은 내 걱정을 부정하듯이 외쳤다.
“우리도! 자네가! 무얼! 고민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다네! 우리도! 별다른! 간섭은! 하지! 않을 걸세!”
“저한테 너무 좋은 조건 아닌가요?”
솔직히 라쿤 박사님이 정부산하기관의 총책임자가 아니었으면 빼박 사기라고 생각했을 법한 제안인데.
“우리가! 신뢰할! 수! 있고! 능력있는! 변이자는! 자네밖에! 없네! 그리고! 그 땅은! 어차피! 별로! 쓸모가! 없네!”
그렇게 말하니까 부정할 수 없네. 이래저래 나를 많이 챙겨줬으니, 내가 양심이 없어서 X루각을 재고 있는게 아니라면 라쿤박사의 말이 맞았다. 나만큼 여기 많이 드나들고 신세진 변이자가 나 말고 더 있나.
“그런데 만약에 예측이 빗나가면요?”
“그래도! 상관없네! 빗나간다면! 다행! 이니! 어떤가! 할! 텐가!”
“...까짓거 함 해보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