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화 〉 175.도화선(4)
* * *
혹시 집 상태에 비해서 싼 집에 귀신이 있는 건 일종의 국룰인가?
지금 살고 있는 집도 그렇고, 이상하리만큼 싼 집은 뭔가 싼 이유가 있다는 거니까. 집에서 누가 사고로 죽었다거나, 목을 매달았다거나, 살인사건이 있었다거나 대충 그런 이유로 집값이 싸졌다고 하면 납득이 되잖아.
뭐 아니면 집 자체에 뭔가 하자가 있을 수도 있고.
일단 이 주택은 전자 쪽에 속하는 것 같지만. 나는 주택을 향해 걸어가며 세연이에게 부탁했다.
“먼저 가서 좀 사연을 듣던 아니면 대충 기선제압 하던지 해봐.”
“돌아가는 길에 햄버거 세트 하나 사줄거지?”
어디보자, 아까 X거킹이 있었으니까 거기서 사주면 되겠구만.
“1+1으로 하나 더 얹어줄게.”
“콜!”
나는 세연이가 먼저 저택으로 날아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저거 1+1이라고 하니까 눈 빛내면서 날아가는거 보소. 우리도 슬슬 가야지. 나는 리온의 손을 잡고 주택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직원인 것 같은 정장을 입은 남성에게 다가갔다. 생각보다 많이 젊...네? 공인중개사 중에 이렇게 젊은 사람이 있었나?
매번 아저씨 아줌마들만 봐서 젊은 사람은 처음 보네. 이렇게 말하니까 내가 존나 늙어 보이네. 나 아직 청춘이야! 어차피 외형이 중학생~고등학생 수준이라 외형가지고 늙었다고 생각하진 않겠지만.
“혹시 이유진양 맞으십니까?”
“아, 네.”
“...아, 저는 어제 연락드렸던 한성운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곤 그 남자는 내 마스크 위의 얼굴을 넋 놓고 쳐다보다 정신을 차리고 손을 내밀었다. 나는 손을 잡고 가볍게 악수했다. 손이 좀 많이 차가우시네. 아이스 팩이라도 만지다 오셧나. 그의 안내를 받아 주택 마당으로 이동했다.
주택 마당은 사람이 살지 않음에도 꽤 잘 정돈되어 있었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지 멋대로 자라서 미관을 해치는 나무나, 정원에 무성한 잡초가 없는 걸 보니 평소에도 어느 정도 관리가 잘 되어있는 것 같았다.
벽 쪽에 기대어 있는 흙 묻은 삽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뭐, 잡초 뽑는데 쓴게 아닐까.
“보시다시피 정원은 주기적으로 사람을 불러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 집 산다 치면 관리는 내가 해야 하는 건가. 뭐 내가 직접 정원을 가꾸지는 않겠지만, 나에게는 훌륭한 세연에몽이 있다고. 양심이 있냐고? 뭣하면 햄버거 하나 더 추가 해주면 되잖아. 애초에 용돈도 나름 주고 있으니 괜찮은 거 아닐까.
개가 용돈을 받아도 딱히 쓸데가 없다는 게 문제기는 하지만. 가챠겜을 하는데 무과금으로만 돌리고 있고. 본인 말마따나 ‘한번 돈쓰면 돈 맛에 길들여져서 낭비하게 되니까 안 돼’라며 무과금을 고집하더라. 나한테 가끔 도네를 날리긴 하지만 그래봐야 합쳐서 5만원도 안 쓰는데.
죽어서까지 생전의 아끼는 버릇을 고집할 필요는 없는데. 보고 있자니 좀 안타깝다고 해야 되나. 그런 느낌이 들 때가 간혹 있다.
“이제 내부를 봐도 될까요?”
“네. 이쪽으로 오시죠.”
“나 정원에 있어도 돼?”
리온은 정원이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애가 큰 사고를 칠 것 같지는 않으니 내버려둬도 되나?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서 데리고 들어가는 게 맞나? 내가 너무 과보호 하는 건가?
잠시 고민 하던 나는 어느 샌가 나비를 손가락 위에 올려놓고 구경하는 리온을 보고 그냥 정원에서 놀게 내버려 두기로 했다.
재도 엘프니까 자연이랑 좀 더 접촉하고 싶어할 것 같기도 하고, 주택 안에 귀신이 있는 걸 확인했으니 혹시 리온에게 해코지 할 수 있으니까 떼어놓고 있는게 맞을 것 같았다.
담장까지 있는데 뭔 일이 생길 것 같지도 않고.
“그럼 여기서 놀고 있어. 사고치지 말고. 알았지?”
“응!”
나는 한...성운? 맞나? 하여튼 부동산 직원의 안내를 받아 집안에 들어섰다.
아, 눈 마주쳤다.
집안은 어플에서 공개한 사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느 정도 보정을 했을 것을 감안하면 보정사기를 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근데 여긴 뭔 일이 있었기에 귀신이 이렇게...많아?
나를 향해 쏟아지는 무수히 많은 시선에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무서운 건 아닌데, 저는 시선공포증이 있쒀요...언제든지 강제로 쫒아낼 수 있겠지만. 귀신들도 딱히 나에게 달려들지 않고 눈치만 보는 걸 보니, 직감적으로 내가 어떤 존재인지 느낀 것 같았다. 몇몇 귀신들은 내가 아니라 내 앞의 남자를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네. 뭐지?
“...ㅇ...ㅜ...ㅣ...ㅎ...ㅓ...ㅁ...ㅎ...ㅐ...”
“...저기요? 손님분?”
“아, 네.”
“뭔가 거슬리시는 점이라도 있으십니까?”
“아, 아니요. 그냥 둘러보고 있었어요. 좋은 집이네요.”
부담스럽게 쳐다보지 마라. 내 얼굴 뚫리겠다. 나는 시선을 피하며 집을 구경하는 척을 했다. 재는 왜 피투성이야. 아니, 잘 보니까 어째 얼굴이 피투성이인 애들이 뭐 이렇게 많아? 나 놀래 키려고 준비한 건가?
미안하지만 나는 그런 거에 놀랄 정도로 쫄보가 아니란다. 네가 눈앞에서 골목길 하나 터트려 본 나를 놀리겠다고? 1억만큼 가소롭네.
“네. 정말 좋은 집이죠? 지은 지 10년이나 지났지만, 리모델링을 하면서 전체적으로 다 손보아서 보러 오신 분들이 좋아 하시더라고요.”
아 그래요? 근데 왜 이 집 아직까지 안 팔렸대? 보니까 몇 년 동안 계속 안 팔렸던 것 같은데, 뭔가 이유가 있을 법 한데. 귀신들 때문인가? 세연이도 예전에 저러고 있었던 거 생각하면 정말 귀신 때문 일 수도 있겠네.
아니면 뭐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지. 나는 거실 한켠에 놓인 장도리를 보며 생각했다.
“1층에 방이 몇 개에요?”
“4개입니다. 2층에는 3개가 있구요.”
무지막지하게 많구만. 솔직히 3LDK면 떡을 치는 수준인데. 지금처럼 방이 하나 밖에 없어서 다 같이 뭉쳐서 자는 것보다는 낫긴 하겠지만. 하나는 세연이 방, 하나는 에포나 방, 하나는 내방, 하나는 리온 방...역시 방은 많을수록 좋지. 에포나가 다른 방에 갈지는 모르겠지만.
개 맨날 잘 때 내 옆에 붙어서 안자면 칭얼거린단 말이야. 그리고 일어나면 내 얼굴은 침범벅이 되어 있지. 결코 각방!
직원의 안내를 받아 방을 살펴보니, 전체적으로 목재로 만든 것만 같은 분위기의 인테리어였다. 밖의 정원과 바로 이어지는 베란다가 있는걸 보니 목가적인 풍경 같은 걸 노리고 한 것 같은데, 확실히 나쁘지 않네. 아직까지는 나름 합격점이었다.
사실 가장 큰 요인은 주변에 비교적 민가가 적고, 뭔가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집 가격이 많이 싸다는 점이었다.
이 정도 크기 집이 8억이면 말 다한 거지. 내 전 재산에 조금 더 보태면 살 수 있는 정도였다고. 그런데 이런 집을 이렇게 싸게 팔면 손해 아닌가? 건축비에 리모델링 가격만 들었다 쳐도 매매가의 두 배는 들었을 것 같은데?
정작 내부에 큰 문제가 있어보이지도 않고. 직원 따라 방을 쭉 둘러봤지만 딱히 하자가 있어보이지도 않았고, 혹시 미끼 매물이나 사기가 아닌가 싶단 말이야. 한두 달 전에 부동산 관련 사기치다 걸린 게 뉴스에 뜨기도 했고.
나는 신탁회사 끼고 거래할게 아니라서 상관없나...근린생활시설 같은 걸로 등록되어 있을 것 같지는 않고. 솔직히 지금까지 본 바로는 매물이 너무 훌륭해서 웬만하면 구입하고 싶긴 한데 왜 싼지 아직도 모르겠네.
“아무리 봐도 8억에 매매할만한 집은 아닌 것 같은데요...혹시 무슨 이유가 있나요?”
“에이, 별일이라뇨. 그냥 이곳이 도심이랑 거리도 좀 있고, 교통편도 자차 없이는 힘들어서 그렇습니다.”
아니, 그런 걸로 가격이 뚝 떨어질 것 같지는 않은데. 자차 있으면 못해도 1시간이면 서울 갈 수 있는 거 아냐? 그 정도면 충분한 거 아닌가? 그게 먼 거야? 역시 뭔가 숨기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 정도로 가격이 이렇게 낮기는 힘들 텐데요.”
누굴 호구로 아나. 여기 귀신이 바글바글한 것만 봐도 그런 이유로 집값이 싼 게 아니라는 건 뻔한데. 나는 천장에 다슬기마냥 다닥다닥 붙어있는 귀신들을 슬쩍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이거 카메라로 찍어서 귀신 나오면 호러영화 한편 완성이군.
...아니, 이미 호러영화 그 자체네. 나는 눈앞의 직원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음...어디서 말 하시면 안 됩니다? 이곳이 아무래도 도심에서 멀어진 곳에 있다 보니 땅값이 싼 것도 있고, 이 주변이 원래 개발될 예정이었는데, 이 주변이 불미스러운 사고로 개발이 중단되어버려서...개발 계획이 전면 백지화 된 거죠.”
그래서 이 주변에 집이라곤 이거 하나만 있는 건가. 다행히도 근처에 버스 정류장 자체는 있긴 하지만.
“그래도 주거지로는 나쁘지 않을 겁니다. 아시다시피 자차로 15분 거리면 X스트코도 있고요.”
“확실히 나름 괜찮은 곳이긴 하죠...그걸 감안해도 구매할 사람은 많았을 텐데,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거죠?”
“설마요.”
아닌데. 무조건 뭔가 있는데. 고작 그런 이유로 싼 거라면 저 벌떼같이 많은 귀신들은 뭔데. 나한테 쫄아서 들러붙지는 않는 것 같지만...나는 어쩐지 식은땀을 흘리는 직원을 째려보았다.
“사실대로 말 하시죠? 어설프게 속일 생각이라면 경찰 신고합니다?”
“...에라이, 호구 하나 등쳐먹을 수 있을 줄 알았더니만.”
“유진아, 조...”
본색을 드러냈네. 나는 내 머리를 향해 휘둘러지는 장도리를 보며 생각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