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화 〉 174.도화선(3)
* * *
당연한 일이지만, 좋은 집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입지가 좋아야 하고, 자차가 없다면 교통편도 좋아야 하고, 집 자체도 좋아야 한다. 인프라는 덤이고.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요소인 의식주에 괜히 집이 들어가는 게 아니지.
괜히 공인중개사고 뭐고 다 찾아다니면서 집을 구경하러 다니는 게 아니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 괜찮은 집을 찾지 못했다. 몇 개 괜찮아 보이는 집에 연락을 하기는 했는데 아직 답장은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집을 찾으러 돌아다녀야 하는데 영 불안해서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라쿤 박사님한테 이야기 하긴 했지만, 세상에 미친놈은 많고 리온은 아직 어리다보니 어디로 튀어나갈지도 모른다.
만약에 내가 혼자 집 보러 나갔는데 몰래 밖으로 나간다면? 그러다 사람들 눈에 띄어서 사진이라도 찍힌다면? 안 그래도 수인이니 뭐니로 핫한 와중에 새로운 떡밥거리가 던져지는 것이었다. 게다가 엘프는 다른 의미로 더 눈에 띄잖아.
내가 그런 꼴은 두 눈 뜨고 못 보지.
“엄마, 나가면 안 돼?”
“안 돼.”
“답답한데...”
나라고 그러고 싶겠니. 그 미친놈이 문제지.
세상 참 흉흉하단 말이야. 아니, 원래부터 흉흉했는데 그냥 모르고 있던 것뿐인가. 나는 내 무릎을 베고 낮잠을 자는 에포나의 갈기를 빗으로 쓸어내렸다. 에포나는 갈기를 빗어주는 것이 기분이 좋은 듯,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다.
“*이리온~”
뭐하는 거지? 나는 창을 살짝 열고 나무를 향해 손을 뻗는 리온을 보곤 조심스럽게 머리카락을 언제든지 리온을 붙잡을 수 있도록 늘어트렸다. 리온은 엘프어로 몇 번이고 무언가를 부르다가, 손에 내려앉은 참새를 보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엘프야. 참새 정도는 길들일 수 있는 건...
리온은 나에게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손에 쥔 것을 내밀었다. 조그만 눈동자가 촉촉한 모습이 아주 구슬프다. 나는 공포에 질린 건지 그냥 그런 건지 부르르 떠는 참새와 리온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어...만져보라는 건가?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참새를 내 손에 올려놓았다. 왜 안도망가지. 다친 것 같지는 않은데.
“치킨 해줘!”
아니야 그건 아니야! 참새는 치킨이 아니야! 같은 조류긴 하지만 저건 치킨이 아니라 참새라고! 새라고 다 같은 치킨이 아니란 말이야! 이 새를 봐! 이렇게 작고 귀여운 새를 먹을 생각을 하다니! 지금 저 당장이라도 삐약삐약댈 것 같은 조그마한 부리와 동그란 눈동자를 보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니?
“리온, 새라고 전부 치킨이 아니야! 치킨은 닭으로 만드는 거고, 참새로는 못 만들어! 빨리 다시 돌려보내 주고 와!”
나는 리온에게 다시 참새를 맡겼다. 후, 깜짝 놀라서 머리가 떨어질 뻔했잖아. 나는 리온이 다시 창밖으로 날려 보내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골 때리네 진짜...난데없는 소란에 에포나도 잠이 깬 듯, 머리를 내 다리에 비비다가 고개를 들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깼니?”
“응. 배고파...”
“당근 씻어서 올려놨으니까 먹으러 가.”
나는 에포나를 거실로 보내고, 천장에 거꾸로 들러붙은 채 폰을 만지고 있던 세연이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아야! 왜 잡아당겨?”
“세탁기 시간 다 됐어.”
“벌써?”
세연이는 책상에 폰을 대충 내팽개쳐 두고는 벽을 넘어 사라졌다. 그럼 나도 잠깐 일 좀 해볼까. 오늘은 쉬는 날이었지만 방송인이라고 휴일에 쉰다고 생각하면...경기도 오산이야...내가 말해놓고도 자괴감 드네.
왜 남이 치는 아재개그는 재밌는데 내가 치는 아재개그는 노잼인 걸까. 이게 인싸와 아싸의 차이인가? 실없는 생각을 하며 머리카락으로 컴퓨터의 전원을 누른 나는 의자에 앉아 머리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여론 체크도 좀 하고, 요즘 유행하는 게임이 있는지도 좀 찾아보고, 밈 같은 것도 좀 둘러보면 되겠지. 방송인한테 밈 파악은 중요하다. 써먹을 수도 있고, 그게 문제의 소지가 있는 밈인지 먼저 파악해서 잘라내야 되니까. 세상에 미친놈들이 한 둘이 아니라서 분탕 치러 오는 놈들 막으려면 철저해야지.
시공은 새 패치가...있을 리가 없나...반년에 한번만 있어도 감지덕지한 상황이니까 어쩔 수 없지.
마우스를 바쁘게 놀리며 이것저것 체크를 하고 있으려니, 리온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엄마, 전화 왔어!”
“...뭐?”
라쿤박사님인가? 나는 리온에게서 휴대폰을 건네받아 귀에 갖다 댔다.
“여보세요?”
[혹시 이유진양 맞으신가요?]
낯선 목소리였지만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군지는 알 것 같았다. 여러 어플을 뒤져가며 찾아낸 집 중에 생각보다 괜찮은 곳이었나. 여기보다 좀 더 교외로 나가야 하지만 나름 교통도 괜찮고, 15분정도 차타고 나가면 대형마트도 있다.
아파트가 아니라 주택이라는 점도 나름 괜찮은 포인트였다. 내 고향집은 옛날식 마당 있는 집이라 아파트나 빌라가 좀 답답한 느낌이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주방이었다. 가성비 위주로 고른 곳이라 주방 자체가 많이 작았다. 온갖 가재도구와 접시와 그릇을 놓으면 빈자리가 거의 없어 요리할 때 불편함이 장난 아니었다.
좀만 복잡한 요리 할라치면 주방이 꽉꽉 미어차서 번거로워 죽겠다니까. 물론 내가 고른 집이니 악으로 깡으로 버티고 있긴 하지만 돈 있으면 사는 게 답이지. 마당이 있으면 에포나나 리온이 뛰어놀기 좋기도 하고.
“아, 네.”
[이틀 전에 문의 드리셔서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내일 집보러 오실 수 있으신가요?]
“내일이요?”
내일 일정이...방송 있긴 한데 휴방 앞으로 당기고 다녀올까. 좀 미안하긴 하지만 이사 갈 집 알아보고 왔다고 하면 다들 납득해 줄 거다. 내가 방송에서 이래저래 불편한 게 많다고 불만을 토로한 적도 있고, 이사 가고 싶다고 이야기 한 적도 있으니까...
[네. 혹시 안 되시면...]
“아, 아니요. 내일 갈게요. 혹시 주소 불러주실 수 있나요?”
[네, 주소는...]
나는 공인중개사 직원이 불러준 주소를 컴퓨터 메모장에 적고 저장했다. 폰으로 보내서 미리 교통편 좀 알아봐야 겠다.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뵙죠.”
[네. 수고하세요.]
사진으로 보기엔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괜찮은 인테리어가 돋보였지만, 실물과 큰 차이가 없어야 할 텐데. 묘하게 가격이 쌌단 말이야. 겉보기엔 하자도 없어 보이는데. 정작 가보면 사진 보정 빨로 괜찮아보이게 만든다는 소리를 한두 번 본게 아니라서 좀 걱정되기는 했다.
일단 일정이 잡혔으니 해야 할 일이 생겼네. 나는 스위치를 가지고 노는 리온을 슬쩍 확인하곤 전화번호부에서 라쿤 박사님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무슨! 일인가!]
“제가 요즘 이사할 집을 보고 있는데, 내일 방문이 가능하냐고 연락이 와서요. 미리 알려드리려고 연락했어요.”
[내일! 말인가! 알겠네! 그런데! 말일세! 리온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생각해보니 그러네. 내가 나가면 리온이랑 에포나 둘이서만 남는구나. 한솔이는 흡혈귀인 탓인지 리온이 꺼려해서 맡기기 좀 그렇고, 유라는 내일 시험보고 친구들이랑 논다고 했으니 집에 없어서 무리고, 그렇다고 에포나랑 둘이서 집에 남겨놓자니 그것도 불안하고...
“혹시 기밀관리본부에서 잠시 맡아줄 수 있나요?”
[미안하지만! 여유가! 없네! 지금도! 인력이! 부족해!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직원이! 수두룩! 하다네!]
이번 사태가 정말 심각하기는 하구나. 못해도 이백 명은 되어 보이던데 그 인원 전체가 야근을 할 정도면 진짜 빡세게 일하고 있단 뜻인데.
“으...그럼 제가 데리고 나가는 수밖에 없는데요. 솔직히 집에 놔두고 가는 게 더 불안해서요.”
내가 있으면 돌발 상황이 터져도 어떻게든 수습할 수라도 있지만, 내가 없는 사이에 리온이 몰래 집 밖으로 나간다면? 에포나가 사고를 친다면? 내가 없으면 무슨 일이 생길지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서 온갖 가정이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게다가 리온은 아직 휴대폰이 없었다. 원래 사러갔어야 하는데, 사건이 터져버려서...이번에 나가는 김에 폰을 사주고 개통해야 겠다. 최소한 위치를 알 만한 방법도 필요하고, 애가 심심해 하지 않게 이래저래 놀거리도 제공할 수 있고.
[그럼! 데려가게! 혼자! 내버려두는 건! 더! 위험하니!]
“역시 그렇죠? 감사해요.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녀오겠습니다...”
[아니네! 집 문제는! 우리가! 해결! 해주기엔! 힘든! 일이니! 말일세!]
“그럼 나중에 뵈어요. 수고 하세요~”
[그럼! 자네도! 수고하게!]
나는 전화를 끊고는, 침대에 누워 스위치를 만지작거리는 리온에게 말을 걸었다.
“리온. 내일 같이 나갈까?”
“정말?”
순식간에 스위치에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나에게 돌린 리온이 눈을 반짝였다. 밖에 나간다는 사실이 정말 기쁜 건지, 기대감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는 모습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입가에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대신에 말 잘 들어야 한다? 알았지?”
“알았어! 말 잘 들을게!”
“주인님! 나는?”
깜짝이야. 넌 언제 들어왔니.
“아쉽지만 너는 혼자서 집 지키고 있으렴...가는 곳이 말을 데리고 갈 수 없는 곳이거든.”
“싫어!”
“대신에 당근 5개 줄 테니까 먹으면서 집에서 놀고 있어. 알았지?”
“다음엔 산책 꼭 나가는 거지?”
“그럼.”
집 보러왔는데 말 데리고 오면 집주인 얼굴이 볼만하겠네.
“여긴가...”
나는 버스정류장에서 멀찍이 보이는 집을 보며 중얼거렸다. 옆에는 새 휴대폰을 받아 신난 리온이 내 손을 꼭 쥔 채로 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있다 집에 가면 필수 어플 몇 개는 깔아줘야 겠네.
“리온, 폰 집어넣고 가자. 저기가 오늘 우리가 갈 집이야.”
“집?”
그래. 지금처럼 좁아터진 빌라가 아니라 못해도 50평은 넘어 보이는 집이야. 마당 포함하면 훨씬 크겠지. 저런 집이 어떻게 싼지 모르겠...
“유진아, 뭔가 저 집에서 불길한 일이 있었나봐...”
말하지 마. 나도 알아. 나는 창에서 우리를 쳐다보는 기분 나쁜 귀신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있는 집이구만.
오히려 좋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