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화 〉 172.도화선(1)
* * *
조용히 병실 밖으로 나온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표정으로 지나가는 여직원을 불러 세웠다.
“그...저기요.”
“...지금은 바쁘니까 나중에...”
“아, 넵.”
피곤에 찌든 여직원의 얼굴이 너무 심각한 분위기라 나는 차마 붙잡지 못하고 여직원을 떠나보냈다. 역시 기밀관리본부도 알고 있구나. 하긴 내가 봤을 정도면 기밀관리본부에서 모를 리가 없었다. 나는 개임이지만 여긴 기관인걸. 그런 걸 전문으로 파악하는 사람도 존재할 테니.
변이자가 번화가에서 난동이라. 어그로 끌리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이번 건은 쉽게 지나가지 못할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사실 지금까지 걸리지 않았던 게 이상했지. 저렇게 막 나가는 사람 한두 명만 있어도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이었는데. 신들의 도움을 받았다곤 했지만, 내가 지금까지 만난 신들을 보면 세계 단위로 인식개변 같은 걸 하는 건 아니겠고. 게다가 지금 신들은 아마...
그래도 나는 괜찮다. 내가 길거리 한복판에서 머리로 저글링을 하지 않고서야 변이자인 게 들키지는 않을 테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변이자라 부르기 어렵기는 하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일단 라쿤 박사님부터 만나봐야겠다. 일단 집에 돌아가야지.”
나는 라쿤 박사님의 집무실로 향했다. 내가 집무실을 향해 걸어가는 도중에도, 수많은 직원들이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복도를 지나다니는 모습이 보여서, 나는 약간의 불안감을 안고 라쿤 박사님의 집무실의 문을 조심스레 두드렸다.
“들어오게!”
나는 집무실의 문을 열고 조심스레 들어왔다. 라쿤박사는 등을 보인 채 열심히 패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저, 라쿤 박사님?”
“자네로군! 미안하지만! 일단! 돌아가서! 쉬고 있게! 그리고! 자네! 이웃! 두 사람! 에게도! 조심! 하라고! 전해! 주게! 그! 엘프! 아이! 에게도!”
“아...네. 수고하세요...”
나는 병실로 돌아와 조용히 짐을 챙겼다. 원래 인사도 하고 나가려고 했지만, 지금 상황으로 보아 내 인사를 받아줄 여유가 있는 사람은 없어보였다. 다행히도 챙겨온 게 많지는 않아서, 짐을 챙기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나는 조용히 병실을 정리하고 기밀관리본부를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야, 너 그거 봤냐?”
“...몰카 같은 거 아니야?”
“아니, 진짜래...”
길거리를 걷는 도중에도 이번 사건으로 수군대는 사람들이 생긴 모양이었다. 파급력이 생각이상으로 너무 크다. 그냥 사람이 난동을 부린 거라면 이렇게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지도 않았을 테지만, 하필이면 변이자, 게다가 아예 얼굴이 개처럼 변해버린 변이자라는 점이 너무 치명타였다.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봤다면 차라리 몰래카메라나 분장 핑계를 대보기라도 하지, 사람이 저렇게 많은데서 난동을 피워버리면 아무리 정부 기관이 철저하게 기밀에 부치려고 해도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언젠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갑자기...아니 갑자기 오는 게 당연한가. 지금까지 저런 미친놈이 나오지 않은 게 이상한 일이니까. 변이자 숫자가 천명 가까이 되는데, 그 중에 저런 막나가는 놈이 없으리라곤 할 수 없다.
애초에, 변이자가 된다는 것 자체가 멘탈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 일이다. 하루아침에 자기 몸이 다른 사람처럼 변해있으면 누가 충격을 안 받아? 나처럼 비교적 심각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지만, 아닌 사람들도 충분히 많을 테니까. 특히 수인으로 변이한 사람들은 그 심적 충격이 어마어마하겠지.
사회적으로는 아예 경제활동이 제한되어 버린다. 그나마 코로나가 퍼져서 사람들간의 접촉이 덜한 상황이 변이자들 한 테는 다행인 일이라고 해야 되나. 재택근무 비중이 그럭저럭 높아졌으니 회사에 나가서 언제든지 들킬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일해야 할 위험부담이 줄었으니까.
나는 버스정류장의 의자에 앉아서 계속해서 그 사건에 대한 반응을 검색했다. 다행인건지, 아직 퍼진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건지,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반응이었다. 하긴 누가 그렇게 쉽게 믿을까. 지금 상황도 대놓고 속이려면 충분히 속일 수 있는 사건인데.
그렇게 생각하면 해프닝중 하나로 지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사실 작은 신문사에서 낸 정도라면 이렇게 크게 번지지도 않았을 텐데, 하필이면 한국의 대형 언론사가 내보낸 기사였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아니, 보통 이런 대형 언론사면 정부에서 지침을 내려주는 거 아니야?
하긴 기레기들 집합소인 언론사가 말을 쳐 들을 리가 없지. 보나마나 건수 잡았다고 터트린 거 같은데. 이거 일이 틀어지면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이거 위험한 거 아니야?”
내 어깨에 턱을 괴고 내 폰을 같이 보던 세연이가 심각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 말에 100%동의하는 바다. 정말 위험했다. 그게 나한테까지 영향을 주느냐면 애매하지만. 외형이 지나치게 화려하긴 하지만 난 일단 머리만 안 떨구면 인간으로 보이잖아.
“그러니까...”
변이자들 존재는 완전히 준비가 끝난 상태에서 발표하지 않으면 어떤 후폭풍이 불지 아무도 모르는데. 괜히 필사적으로 정부에서 숨기는 것이 아니다. 두 번째 밀레니엄 시대에 들어서도 인종차별은 줄기는커녕 더 심해지고 있는 세상인데 종족이 다르면 참 좋은 취급 받겠다. 그치? 인체실험 한답시고 끌려가지나 않으면 다행인데.
[이번 정류장은 XX역앞 사거리입니다. 다음 역은~]
아, 환승해야 되네, 나는 버스에서 내려 정류장 칸막이에 기대어 섰다. 아직 직장인들의 퇴근 시간이라기엔 애매한 시간대임에도 사람들이 꽤 많았다. 버스 자리 없으려나. 나는 나를 힐끔쳐다보는 사람들을 무시하며 주머니 속에 들어간 폰을 만지작 거렸다.
으 추워라. 요 근래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단 말이야.
이제 한국에는 여름과 겨울만 있다고 해도 아무도 반박하지 못하겠네. 이번 년 날씨는 겨어어어어어어울봄여어어어어어어어름가겨어어어어어어어울같은 느낌이었다. 가을 날씨가 채 3일도 못간 것 같아.
나는 주변의 노골적인, 혹은 흘끔대는 시선을 느끼며, 다시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휴대폰의 화면을 킨 찰나였다. 나는 손에서 느껴지는 진동과 함께 화면에 떠오른 문자를 확인했다.
[변이자 여러분들에게 알립니다.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되도록 외출을 삼가주시고, 부득이하게 외출을 해야 하는 경우 기밀관리본부에 먼저 신고 후에 움직여주시길 바랍니다.]
..,기밀관리본부에서도 고생이 많은 모양이었다.
생각해보니까 그 난동의 당사자한테도 이 메일 가는 건가? 그 사람 지금 경찰에 잡혀있지 않나? 그리고 지금 그 사람 손에 폰이 있을까? 갑자기 오싹해지네. 나는 소름이 돋아 몸을 떨었다.
내 뇌피셜이지만, 상황이 한층 더 꼬일 수도 있는 거잖아. 아마 지금쯤 언론사에도 공문이 내려오든 뒤로 경고를 날리든 했겠지만 말을 안쳐듣고 더 날뛴다면? 그리고 이번 사태가 여러모로 잘 탈것 같은 장작의 냄새가 나는 걸 사이버렉카들이 캐치하면 어떻게 될까?
개내들은 극소수를 제외하면 뒷수습을 할 능력도, 책임감도 없는 놈들인데 진짜 물리는 순간 답도 없는데. 자기들 조회수 빨겠다고 아무렇지 않게 구라 섞어서 오피셜인 것 마냥 올려대는 인간이 수두룩한데 이번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지도 모른다.
가장 큰 문제는 이건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변이자가 한국에만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전세계적으로 흩어져서 살고 있고 각국 정부들은 필사적으로 변이자에 대한 걸 숨기려고
하는데, 한국이 첫 빠따로 터져버리면 굉장히 귀찮은 일이 될게 뻔히 보였다.
나야 괜찮지만, 리온, 아니 나리는 위험했다. 나나 한솔이는 서양인에 가까운 외모라서 외국인이라 하면 납득하겠지만, 리온은 쉬이 숨길 수 없는 귀가 문제였다. 아직 어려서 길이가 엄청 긴 건 아니지만, 충분히 눈에 띌 정도의 길이는 된다.
...놀러 나가기로 약속했는데 이러면 좀...미뤄야겠는데. 나는 잔뜩 실망할 리온의 얼굴을 떠올리며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유진아, 버스 왔어.”
“뭐? 어어...”
나는 세연이의 귀띔에 집으로 가는 버스에 겨우 올라탔다.
“이번! 사태는! 위험하군!”
라쿤 박사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지금 사태가 정리된 보고서를 훑었다. 생각 이상으로 골치 아픈 상황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그 난동 부리는 장면을 찍은 사람이 생각 이상으로 많다는 점이었다.
요컨대, 목격자가 너무 많아 수습에 애를 먹고 있었다.
당장 그 시간에 그 곳에 있었던 사람만 200명이 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난동을 폰으로 찍었을지,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했는지는 파악이 불가능했다.
일각에선 이 참에 변이자의 존재를 공개하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라쿤 박사는 그 의견을 망설임 없이 기각했다. 변이자의 존재는 한국이 공개하고 싶다고 해서 공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비밀조약으로 변이자의 존재를 비밀에 붙이기로 약속했기에, 한국이 독단으로 발표하면 엄청난 불이익이 갈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기밀관리본부의 힘이 닿지 않는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런 사건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거의 7년 전의 일이었죠.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너무 다릅니다. 개인적으로 이슈에 대해서 의견을 피력하는 인플루언서들이 많이 늘어나 평소라면 조용히 지나갈 일도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리곤 합니다.”
“끄응...”
은하의 말에 라쿤 박사는 앓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 주저 앉았다. 한없이 외통수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언론을 막으면 막은 대로 문제가 생기고, 관련 영상이나 자료를 올라오는 족족 다 날려버린들 목격자들의 폰에 남은 정보는 지울 수가 없다.
결국 수습을 하려해도 수면 아래 잠들어 있는 폭탄을 해체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폰을 강제로 회수하거나 바이러스를 보내서 폰을 망가트리거나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라쿤박사는 환장할 지경이었다.
“영상이나! 모든! 사진이! 올라올! 수! 있는! 사이트에! 공문을! 보내게! 우리는! 지금부터! 비상대책본부를! 수립할 걸세!”
라쿤 박사는 히스테릭하게 소리 지르며, 망설임 없이 폰의 주소록에서 전화번호를 찾아내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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