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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191화 (191/352)

〈 191화 〉 169.나와 나의 이야기(2)

* * *

“...의 폭풍에 온 것을 환영하네! 젊은 친구!”

“아니야!”

시발 깜짝이야. 지금 들려선 안 되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급하게 주변을 둘러보며 상황을 파악하려 노력했다. 온갖 지형과 건물들이 뒤섞인 공간이 내 눈에 들어왔다.

여긴 어디, 난 누구?

유명한 대사를 속으로 내뱉으며 나는 모든 것이 괴상하게 뒤틀린 공간을 살폈다. 뭔가 익숙한데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야. 나는 내 시야 구석에 자리 잡은 사원을 보며 생각했다. 굉장히 눈에 익은데.

이거 설마 X늘 사원?

뭔가 시공인가 시공이나 시공에서 본 것 같은 느낌의 이집트풍 사원은 쓸데없이 웅장했다. 관광지에 놀러 온 거면 마음 편하게 감탄하면서 봤을 텐데, 분명 나 빨간 머리카락을 입에 집어넣고 잠들었었,,,지?

그리고 깨어나니 온갖 지형이 뒤범벅 된 괴상한 곳에서 눈을 뜬 거고. 두뇌를 풀가동하면서 여기가 어딘가를 생각하면, 아마 내 무의식 비스무리한 곳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뜬금없이 시공이 튀어나올 리가 없지.

전후 상황을 생각하면, 아마 여긴 내 무의식 쯤 되는 공간이 아닐까. 다른 것도 아니고 X늘 사원 오브젝트가 대놓고 있는 공간이면 내 무의식 말곤 생각할 수가 없는데. 나 말고 다른 골수 레스토랑스가 존재하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고.

근데 왜 하필 X늘 사원이지? X주 받은 골짜기는 어디가고? 시공을 대표하는 맵은 당연히 X주받은 골짜기인데! 어째서! 하늘 사원이 있는거야! 내 무의식은 시공 알못이냐! 어떻게 그 줘까튼 맵을 무의식에 등장시킬 수가 있어!

내 무의식 깊은 곳까지 시공이 자리 잡았을 줄은 몰랐는데. 내 무의식 까지 시공이 점령했을 줄이야. 프로이트 박사님이 보시면 깜짝 놀라서 무덤에서 일어나시겠군.

혼란하다 혼란해. 일단 침착하자. 침착해야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어!

나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승리를 부르는 마법의 주문을 외치기로 했다.

“시공의! 폭풍은! 정말! 최고야!”

“이제 리그도 없는 게 까불어!”

뭐? 어떤 새끼냐? 어떤 새끼가 지금 우리 우주갓겜 시공이 리그가 없다는 소리를 지껄여? 당장 나와! 너를 듀라한으로 만들어버리기 전에!

“누구야? 당장 튀어나와서 딱 대! 내가 친히 머리와 몸통을 분리시켜 줄 테니까!”

“그럴 깡 없는 거 잘 알거든? 실버따리야!”

내가 실버따리인건 어떻게 알았지? 그건 내 시청자들도 모르는 사실인데? 내가 얼마나 철저하게 그 사실을 숨겼는데! 사실 작정하고 찾으면 다 아니까 모르는 사람은 시청자는 없을거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귀찮아서 랭크를 안 돌려서 실버인거지 각잡고 돌렸으면 플레는 찍었어, 이 히알못 새끼야!”

“이유진, 당신은 양심도 없습니까?”

“내 양심이 어때서! 내가 어? X밍만 들었다 하면 펜타킬도 찍는 사람이야! 나만한 딜러 있어? 있냐고!”

“그 X밍으로 11데스해서 팀원들한테 욕바가지로 처먹고 탈주하고 시공 지우고 며칠 후에 다시 깐 사람이 누구더라?”

“사람이 똥쌀 때도 있는 거지! 살다보면 한번쯤은 뭘 해도 안 될 때가 있는 거야!”

“응그니못~”

“아...아...”

나는 뒷목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화를 삼켰다. 참자, 참자...여기서 화내면 저 정체불명의 목소리한테 지는 거다...나는 필사적으로 화를 참으며 숨을 크게 들이켰다. 분노를 최대한 진정시키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하나, 둘, 셋, 넷...

“후...말을 말자. 쫄보 마냥 모습도 안 드러내고 말하는 새끼한테 휘둘리지 말자...”

방송에서 수많은 어그로들과 정신 나간 도네를 받아온 나다. 이 정도는 버틸 수 있어! 이런데서 조져지면 내 반년짜리 방송 경력이 운다고! 잊을만하면 몇 분마다 놀리는 도네가 올라오는 건 다반사에 보기만 해도 역해지는 도네가 한두 개가 아닌데!

프로그램으로 미리 걸러버려서 다행이지 방송 도중에 음성으로 읽혔으면 갑분싸 됐을 도네가 한두 개가 아니다. 그 개고생을 하고 머기업이 된 나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아니다...

“쫄보? 쪼오오오오오올보? 대학교 2학년 때 마음에 드는 선배한테 고백도 못하고 빌빌 거리다가 다른 선배랑 사귀는 거 보고 운 놈이 쫄보를 논해?”

“야!”

“어디보자, 또 뭐가 있지? 유라한테 모유수...”

“으아아아아아아아! 닥쳐! 닥치라고! 생각나게 하지마!”

“암컷타락보다 마망타락이 먼저라니, 너 꽤 치네?”

“끼야아아아아악!”

제발! 그만! 나는 연속해서 쏟아지는 흑역사 세례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그만해! 그만하라고! 내 라이프는 이미 제로야!

“제가 이렇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제발 그만해 주십쇼...”

“에이 뭐야, 시시하게.”

또각또각, 아무도 없는 공간에 선명한 발소리가 들렸다. 하이힐이라도 신었나. 나는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나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붉은 머리를 가진 여성이 있었다.

“어...혹시 육식주의자 여신님 동생 분 되십니까?”

“육식주의자라는거 혹시 모리안 언니? 너 좀 치네!”

언니랑은 완전히 딴판이로구만. 악랄함으로 따지면 언니도 한 수 접어줄 것 같지만. 나는 나를 악랄하게 놀려댄 여신을 보며 발끝에 힘을 주었다. 무방비하게 내게 걸어오는 여신을 보며 나는 숫자를 센다.

5, 4, 3, 2, 1..

나는 발끝에 힘을 주고 호각소리를 들은 육상선수 마냥 여신을 향해 튀어나갔다. 내 행동이 갑작스러웠던 탓인지, 여신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달려드는 내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무릎을 꿇은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거 언제 적 드립...컥!”

나이스 히트! 내 박치기가 정확히 여신의 이마를 강타하자, 여신은 이마를 부여잡곤 쓰러져 신음소리를 흘렸다. 타격감이 아주 찰지네. 역시 마빡을 때리는 것만큼 타격감이 좋은 게 없다니까.

“이런...무식한...년을...봤나...아야야...”

“어쩌라고. 그 무식한 년한테 몇 대 더 맞아보실?”

지금이라면 망설임 없이 폭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이마를 부여잡고 있는 여신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궁시렁 대는 여신의 바로 앞에 주저앉아 쨰려보았다.

“거, 그러니까 적당히 좀 하시지.”

“하지만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서 반가웠단 말이야!”

선 넘네...님은 반가워서 사람 흑역사를 막 들추고 그러십니까? 누가 신 아니랄까봐 인성 배배꼬인거 보소. 모리안 그 고기 여신이나 마리아도 뭔가 성격이 삐뚤어져 있다 싶었는데 이쪽도 한 인성 하는 모양이었다.

왜 신들 중엔 인격자에 민폐끼치지 않는 신이 별로 없는 거야.

“거 반갑고 나발이고 사람을 놀렸으면 처맞을 각오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 여신이 장난 좀 칠 수 있지 어? 그냥 장난 친 건데 그렇게 진지하게 화낼 건 없잖아!”

“혹시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을 알고 있어?”

“그게 왜?”

진짜 모르는 건 아니지? 나는 무심코 여신의 머리에 딱밤을 한 대 날렸다. 쌤통이다. 이 망할 여신아.

“아파! 언니한테도 맞은 적 없는데!”

“아프니까 딱밤이지. 한 대 더 맞아 볼래?”

“이게 여신한테 못하는 짓이 없어!”

“꼬우면 너도 무력행사 해보던가.”

여신은 분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지만, 나는 비웃음으로 응수하며 다시 한번 주먹을 들었다.

꼬이면 나랑 맞다이 까서 이겨보던가. 보니까 입으로 깝죽대는 거 말곤 뭐 싸울 줄은 하나도 모르는 것 같은데. 모습을 숨기고 그러면 모를까 대놓고 앞에 있으면 나한텐 좋은 먹잇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지.

“후...이번 대의 ‘나’는 왜 이렇게 난폭한 거야...”

이번대의 ‘나?’

뭐라고 해야 하나, 마리아나 다른 사람한테서 들었던 대로, 내 눈앞의 여신은 마하이자 내 전생이 맞는 모양이었다. 귀에 딱지가 얹도록 들어서 그리 놀랍지는 않지만.

내 전생이 여신이라니. 나라 말아먹은 것도 아닌데 왜 운수가 그 모양이었던 거야? 그냥 운이 더럽게 없었던 건가? 서러워서 살겠나. 누구는 가만히 있어도 복이 넝쿨째로 굴러 들어오드만.

“내가 난폭한 게 아니라 사람 인내심 테스트나 하는 님이 문제인 게 아닐까요?”

“내가 언제 그랬...다고요...”

역시 말 안 듣는 여신은 주먹으로 다스려야 말을 듣는 법이구나. 나는 이 눈앞의 시건방진 여신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했다. 눈앞의 여신은 마하, 내 전생 쯤 되는 여신이고 그 머리카락을 입에 집어넣은 것을 계기로 만나게 된 걸 텐데.

정말 주옥같군. 나도 내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내 눈앞에 있는 년도 만만치 않았다. 인성파탄의 끼가 보이는 여신이라니. 가장 가까이하면 안 되는 여신 일순위잖아.

“자, 일단 내가 할 질문이 3개가 있습니다. 대답 안하면 딱밤 한 대씩 추가입니다.”

“에반데...”

“대답.”

“질문이 뭔데?”

“그건 말이지...”

나는 아주 잠깐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여신과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첫번째 질문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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