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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187화 (187/352)

〈 187화 〉 165.전쟁에 상도덕 따위는 없다(4)

* * *

사람 몸이 반으로 잘려나가는 모습은 별로 현실감이 없었다.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달 까. 나에게 튄 피가 그 광경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임을 증명하고 있었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시선을 회피하며 상황을 파악하려 노력했다.

도대체 무슨 상황일까.

재는 왜 갑자기 통수를 쳐?

혹시 가지세계판 X루라도 되니? 상황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던 나는 내 위기에 깜짝 놀라 내게 달라붙은 세연이에게 말을 건넸다.

“재내들도 어지간히 콩가루인 것 같은데.”

“어...유진아, 이 틈에 도망가던지 나머지도 처리하는 게 낫지 않을까?”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무서운 소리를...나 선량한 소시민이라 사람 못 죽여. 죽이면 법적으로 살인죄로 기소되어서 형사처벌 받고 교도소 행이란 말이야. 나는 콩밥 먹고 싶지 않아!

아니지, 이세계인이니까 무국적자에 무호적자라서 법적으로 기소할 수 있긴 한가? 하나도 모르겠네. 나는 상대의 시선이 분산된 틈을 타 무기를 창으로 바꾸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나를 상대한 적도 뒤에 적을 두고 나만을 바라볼 수는 없었던 모양인지, 이세계인 일행의 홍일점은 배신자에게서 멀어지며 지팡이로 그를 겨누었다.

“*어떻게 이런 짓을!”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을 했다. 그것뿐이다.”

“*그게 지금의 배신과 무슨 연관이 있나! 이번 임무가 실패하면, 우리 세계는...!”

“*정말, 아테나 여신이 진실을 말해 주었다고 생각하나?”

...뜬금없는 진실의 폭로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심지어 아주 잠깐 나에게 시선이 머물렀다 돌아간 것을 보니, 나보고 들으라고 외치는 것 같기도 했다. 도대체 뭐지? 진짜로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겠어.

상대의 시선이 배신자한테 집중 되어있는 만큼 지금 뒤통수를 치면 제압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창날을 뭉툭하게 만들어 육척봉처럼 만들고는 언제든 상대를 후려칠 수 있도록 고쳐 잡았다.

...물론 일을 저지르기 전에 이야기는 좀 더 들어보는 걸로.

“*미쳤군! 어떻게 아테나님의 말을 의심하는가! 네가 그러고도 신의 사자라 할 수 있는가!”

샌님처럼 생긴 남성이 그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비난했다. 하지만 캬...아니, 배신자는 애초에 그렇게 말할 줄 알고 있었다는 듯, 그를 향해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어우, 확실히 잘생긴 얼굴로 저러니까 영화의 한 장면 같네.

뭔가 존나 사연 있어 보이잖아.

내가 진짜 여자였으면 반했을 것 같은 외모인데. 나는 마음만은 남자라서 잘생겼다는 생각만 들뿐, 가슴이 도큥도큥하지 않는다고. 나는 게이나 호모가 아닙니다.

“*신들이 대륙을 구원할 생각이 있었다면 진작에 구할 방법이 있었다. 신들은 그저 자기가 손에 넣은 권력을 손에서 놓기 싫어 연극을 하는 것에 불과하지. 과연 신들이 저 여신을 데려왔다고 해서 대륙을 구하는데 썼을 것 같나? 이건 그저 권력싸움에 불과할 뿐이다. 그들은 우리세계를 버리고 이 세계로 이주할 생각이다.”

“*어디서 그런 망발을!”

“*증거도 없는 헛소리를 믿을 생각은 없습니다.”

“*정말로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을 텐가? 이발디, 자네는 알텐데? 대륙 전체가 황폐화 된 것엔 신들이 일부러 방관했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임을.”

저 도끼를 든 덩치 큰 떡대가 이발디인가. 나는 이발디란 사내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의 얼굴은 마치 짚이는 것이 있는, 그러면서도 고뇌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신의 신도로서의 자신인가, 인간으로서의 자신인가 뭐 그런 건가.

근데 이것들 나 완전 신경 안 쓰고 있지 않아? 지금 나 튀어도 모를 것 같은데?

“*...신들의 탓이 없다곤 할 수 없겠지.”

“이발디!”

샌님과 홍일점이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그가 그런 말을 했다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하긴 갑자기 종교인이 신을 탓하는 말을 한다면 그럴 만도 한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믿어야 하네. 불신은 허락되지 않아. 애초에, 인간의 손으로 우리의 세계를 다시 살릴 수 있을 것 같은가? 우리 세계를 살릴 수 있는 건 신들 뿐이네!”

뭔가 저쪽 세계는 종교혁명이 씨게 마려운 세계인 것 같네.

“*우리의 사명을 방해한다면, 자네도 처리할 뿐이네!”

그는 그렇게 말을 던지곤, 언제라도 검을 휘두를 듯이 자세를 잡았다. 덩치 큰 남성이 다시 나를 돌아보기 전에, 나는 봉을 붙잡고 무작정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이발디의 거뭇거뭇한 머리숱에 내 봉이 닿기 전에, 그는 몸을 옆으로 틀며 내 봉을 어깨로 받아냈다.

“*윽...!”

머리로 받았으면 최소 기절이었겠지만, 어깨로 받는다고 그 충격이 어디 가는 건 아니라 이발디는 어깨를 움켜쥐곤 비틀거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뭘 봐. 지금까지 통수 안친 걸 다행으로 여기라고 이 탈모인아.

“*이발디씨!”

“*내가 맡을 테니 자네들은 그 배신자를 처리하게!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임무는 성공해야만 하네!”

말하는 것만 보면 내가 무슨 마왕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네. 나는 피해자고 너넨 가해자야! 지금 나랑 장난해? 어? 이발디는 부여잡고 있던 어깨를 강하게 당기더니, 우두둑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양손으로 도끼를 쥐었다. 아무래도 탈골 되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가 반격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봉을 다시 한 번 휘둘렀다. 이번에는 도끼 자루로 내 공격을 받아낸 이발디는 나를 향해 몸을 들이밀었다. 봉을 쓰지 못하게 하려는 건가. 나는 그의 돌진에 발길질로 응수했다.

그도 내 괴력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그는 몸을 옆으로 굴려 피해내곤 내 발목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조금 위험한 모험이지만,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도끼를 피하는 대신 오른발을 들어 내 왼 발목에 닿기 직전까지 다가온 도끼를 짓 밞았다. 신체능력 만큼이나 감각이 향상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곡예였다.

내 괴력을 버티지 못한 도끼 자루가 부러지며 도끼날이 옥상 바닥을 파고들었다. 무기를 잃어버린 그는 침착한 얼굴로 등에 매고 있던 가방에서 손도끼를 꺼내들었다. 아까보다는 확연히 작은 크기였지만, 오히려 저게 더 까다로웠다.

양손 도끼는 크고 묵직해서 휘두르는 궤적이 단순했지만, 토마호크 같은 크기의 손도끼라면 더 날렵해질 테니 내 입장에서는 전혀 좋은 일이 아니었다. 같은 실력이라면 리치가 긴 쪽이 유리하다지만, 나는 딱히 무술을 배운 사람이 아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싸움으로 저쪽은 칼밥 좀 먹은 사람이라는 건 문외한인 나라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세연아, 출동!”

“나?”

“출동! 들러붙어!”

정말? 이라는 표정으로 되돌아보지 말고 얼렁 붙어! 나는 세연이가 이발디의 등짝에 들러붙으며 기분 나쁜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보곤, 봉의 끝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날붙이를 사람한테 휘두르는 건 거부감이 있지만,

그런 건 내 생존이 걸린 상황에서 고려할만한 사항이 아니었다. 막말로 끌려가면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르는데 ‘저는 비폭력 주의자 듀라한이에요 호에엥’할 여유가 어디 있냐. 지금은 BE폭력주의자가 되어야할 시간이었다.

간디님도 이해해주실거야! 강력한 폭력은 평화를 불러온다! 나는 이발디인지 비발디인지 하는 놈이 다가오기 전에 전력으로 창을 목젖에 겨누고 집어던졌다. 당연하게도 이발디는 내 뻔 한 투창을 대놓고 맞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내 노림수는 이발디를 맞추는 게 아니었다.

“세연아! 집어넣어!”

“뭐? 아, 알았어!”

나는 세연이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간 지옥참마도를 보곤 의아해 하는 이발디가 나에게 들러붙기 전에 외쳤다.

“세연아! 고개를 내리고! 울어라! 지옥참마도!”

“이건 좀 아니...구웨에에엑!”

“으윽!”

세연이의 입에서 칼날부터 튀어나온 지옥 참마도가 이발디의 어깨를 관통하고 땅바닥에 박혔다. 어깨에서 피를 쏟아내며 이발디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의 안색이 급격하게 창백해지는 것을 보니 이세계인이라도 관통상에 버틸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이발디!”

“*그쪽을 신경 쓸 여유가 있나보군.”

“*닥쳐라, 배신자! 윽...!”

저쪽도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된 모양이었다. 샌님의 팔이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아, 속이 울렁거려...나는 다시 시선을 이발디에게로 돌렸다. 차라리 피만 쏟아내는 이쪽이 내 정신건강엔 좀 더 나았다.

“*세크헤트! 도망가거라! 다시 돌아가서 이 사실을 알려야만 한다!”

이발디의 처절한 외침이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주문을 외우는 세크헤트를 쳐다보았다. 배신자도 그 모습을 보고 급히 그녀를 잡으려고 했지만, 샌님은 피를 쏟아내면서도 필사적으로 그를 막아섰다.

“그렇게 놔둘 것 같나요?”

마리아? 나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쳐다보았다. 검은 까마귀 날개를 달고 있는 금태양녀가 홍일점의 목을 한손으로 붙잡고 날고 있었다. 화려한 등장이네. 나는 세연이의 입에 다시 지옥참마도를 집어넣게 하고 불러들였다.

상처부위를 틀어막던 칼이 사라지자, 이발디의 상처부위에서 더 많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이대로가면 과다출혈로 사망할 것 같은데. 어쩌지? 내가 했지만, 역시 내가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이젠 정신이 혼미해진 듯 고개를 숙인 그의 몸을 머리카락으로 묶고, 상처를 머리카락으로 틀어막았다.

내 머리카락으로 상처를 틀어막은 것이 유효했는지, 더 이상 상처부위에서 피가 나오지는 않았다. 새치로 틀어막아서 그냥 그렇게 보이는 건가.

“우...피...싫어...”

“나중에 햄버거 세트 5개 사 줄 테니까 참아.”

“...진짜지?”

“내가 거짓말 한 적은 없잖아.”

세연이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피투성이가 된 무기를 그냥 입에 집어넣으라는 건 미안하지만, 일단 무기가 없는 상태로 싸우긴 좀 그러니까. 언제든지 꺼낼 수 있게 해놔야지 안심이 돼.

“어머, 생각보다 선방하신 모양이네요.”

“어쩌다보니...? 그 날개는 뭐야?”

“‘모리안’들의 증표랍니다. 아마 유진씨도 조금 더 ‘깨어난다면’ 날개를 펼칠 수 있게 되시겠죠.”

“그건 좀. 집에 깃털 날리면 골치 아파.”

“하아...”

뭐 왜 뭐. 한숨 쉬지 말라고. 귀찮은 건 사실 이잖아. 하늘을 나는 경험 같은 건 좀 땡기기는 하지만. 마리아는 한손에는 세크헤트를 붙잡은 채로, 다른 손으로는 손짓을 하니 샌님이 마치 얼어버린 것처럼 굳어버렸다.

“5명이 끝인가요?”

“아마?”

“*그렇다.”

배신자의 즉답에, 마리아는 흥미로운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배신을 저질렀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무덤덤한 얼굴로 마리아를 올려다보았다.

“*...보아하니 처음부터 배신할 작정으로 온 것 같던데,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 이야기해줘야 겠어요.”

“*이발디의 품에 붉은 머리 여신에게 중요한 물건이 있다. 그걸 회수하라고 말해주고 싶군.”

붉은 머리? 나 말하는 거지? 그런데 그...저 피투성이 아저씨 몸을 뒤지라고?

그건 좀...

내가 이발디의 품을 뒤지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마리아는 한숨을 쉬곤 아까처럼 손을 흔들었다. 마리아가 손을 흔들자 이발디의 품에서 작은 상자가 빠져나왔다. 공중에 뜬 상자는 곧장 내 품으로 날아왔다.

상자를 받아든 나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고 내용물을 살폈다.

머리...카락?

내 새치와 똑같은, 붉은 머리카락이었다. 빗으로 머리를 빗을 때 눈으로 보곤 했던 것이라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내가 배신자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배신자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일단 이 녀석들을 전부 제압 한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지.”

이 피투성이 난투극 현장을 정리해야 한다는 것엔 전부 동의하는 일이라, 나와 마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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