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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174화 (174/352)

〈 174화 〉 154.당신의 뚝배기를 반으로 쪼개면 사랑이 올까요?(6)

* * *

엘프 마을은 생각보다 많이 넓었다. 대충 한 동 정도 크기는 되는 것 같았다. 못해도 수백은 되어 보이는 엘프들이 살기엔 어쩌면 작은 걸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그 타일 같은 땅을 생각하면 도대체 여긴 얼마나 많은 타일들이 붙어있는 거야.

못해도 수천 개가 붙어있다고 봐야 되나. 우리는 엘프들의 마을을 한 바퀴 돌며 최소 수백은 되어 보이는 엘프들과 마주쳤다. 대부분은 우리가 있건 말건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일을 하고 있었지만, 간혹 우리들에게 관심을 표하며 인사하는 엘프들도 존재했다.

그런데 뭔가 좀...위화감이...왜 하나같이 웃는 표정이 비슷하지? 반응도 비슷하고. 마치 NPC같은데. 일부를 제외하면 어딘가 로봇마냥 어색한 엘프들의 반응에 의문이 생겼지만, 나는 그 의문을 마음속에 묻어두었다.

일단 계속해서 촌장님이 마을을 소개중이기도 하고, 내 주변이 소란스러운 통에 거기부터 신경 써야 하니까. 리온 인가 하는 꼬맹이는 에포나의 등 위에 타서 좋아하고 있고, 세연이는 세연이대로 구경하기 바쁘고, 저승사자는 말없이 따라오고 있고. 나는 촌장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는 통에 생각할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결국 여유가 생긴 것은 촌장님이 제공한 저녁식사를 끝마친 다음이었다. 정체모를 고기를 넣어 만든 스튜가 인상적이긴 했는데...

“무슨 고기가 들어간 거예요?”

“이 근방에 서식하는 새의 고기랍니다.”

엘프들도 고기를 먹는 구나. 나는 내 맞은편에서 입가에 스튜를 묻혀가며 게걸스럽게 식사를 먹어치우는 리온을 슬쩍 쳐다보곤 다시 촌장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촌장님 앞에 놓인 그릇에는 스튜가 거의 그대로 남아있었다.

왜 안 드시지. 물어볼까 하다가 뭔가 사정이 있겠지 싶어서 묻지 않기로 했다. 사실 알게 된지 얼마 안 된 사람한테 물어보기엔 내가 좀 소심해서...

“식사는 입에 잘 맞으신가요?”

“...네. 그러네요.”

빈말은 아니고 진짜로.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될 음식이니 뭐니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충분히 맛있는 음식이었다. 처음 보는 것들이 많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다행이네요. 입맛에 맞지 않으실까 걱정했답니다.”

“하하...”

식사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끝마친 우리는 촌장님의 안내를 따라 우리가 묵을 집에 도착했다. 우리가 묵을 집은 커다란 나무의 속을 파서 만든, 운치 있는 외형의 집이었다.

“이 집입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제 집으로 와서 이야기하시면 됩니다.”

“아, 넵.”

“그럼, 좋은 밤 보내시길 바랍니다...”

촌장은 조용히 문을 닫고 사라졌다. 발소리가 점점 줄어들자, 나와 세연이, 에포나와 저승사자는 응접실에 모인 테이블 앞에 앉아 심문을 시작했다. 에포나는 하도 쏘다니던 통에 피곤했던 건지, 몸을 소형견 사이즈만큼 줄인 채로 내 무릎위에 올라 내 다리에 얼굴을 묻고 자기 시작했다. 좀 간지럽네.

나는 에포나의 부드러운 갈기를 쓰다듬으며, 저승사자를 쳐다보았다. 저승사자는 피곤한 듯 노곤한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기대어 앉아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냥 놔두면 축 늘어져서 뻗으시겠네.

“자, 저승사자씨, 우리가 알고 싶은 게 정~말 많거든? 그러니까 아는 거 다 불어봐. 물론 거부권은 없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서 알아야 할 게 너무 많았다. 여긴 도대체 뭐하는 곳이고, 저 엘프들은 뭐고, 왜 땅이 괴상하게 나뉘어져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찾아야할 영혼들은 어디에 있는지. 수수께끼투성이라 조금이라도 정보가 필요했다.

일단 이놈이 우릴 데리고 왔으니 뭔가 아는 게 있겠지. 없으면 지옥참마도르 배때기를 쑤셔버릴라.

“제가 알고 있는 선에서 전부 대답해 드리겠슴다.”

“여긴 도대체 뭐야? 보드 게임판도 아니고, 무슨 화장실 타일마냥 구역이 나눠져 있잖아?”

“여기는 말 그대로 경계 임다. 정확히 말하면 뿌리세계와 가지세계 사이의 경계임다. 이 경계는 가지세계와 뿌리세계가 서로 간섭하지 않기 위해 자연스럽게 생성된 장소임다. 이곳에는 멸망한 가지세계의 파편들이 흘러 들어옴다...”

대충 경계 사이에 가지세계의 잔해가지고 층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나? 거 참 번거로운 설정일세. 가지세계가 그냥 뿅하고 멸망해서 사라지는 건 아니구나. 일단 가지니까 뿌리세계와 어느 정도 연결이 남아있기는 하다 이건가?

생각보다 복잡한 이야기구나. 나는 경계라기에 그냥 둘 사이에 빈 공간이라는 있는 줄 알았지. 일종의 완충지대라고 봐야 하는 건가.

“결국 이 경계란 게 뿌리세계를 보호하기 위해 생겨난 거지?”

“그렇슴다.”

“그럼 이곳에 영혼들이 있다는 게, 부서진 세계가 이곳에 들러붙는 과정에서 같이 표류해 온 건가...땅이 무슨 화장실 타일마냥 나뉜 건 뭐야?”

저승사자는 내 질문에 잠시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 뜸을 들이고는, 턱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저도 이곳에 온 게 처음이라 그 부분은 잘 모름다. 본래는 저희 관할 구역이 아니고, 보통 신들이 맡은 영역이라 이곳에 올 일은 보통 없슴다...이번에는 신님들이 요청한 일이라 이곳에 오게 된 검다.”

잠깐, 신들이 맡은 영역이면 다른 신이 이곳에 있을 수도 있단 이야기 아닌가? 내 의문에 저승사자는 고개를 저었다.

“신들도 딱히 이곳에서 뭘 하지는 않는다고 들었슴다. 게다가 지금은 전쟁 중이라...이곳은 최후방쯤 되는 곳이라 남아있는 신들도 가지세계와 뿌리세계가 직접적으로 이어져있는 경계부근에서 저쪽에서 넘어오는 신들이 없나 감시하고 있을검다. 아마 마주칠 일은 없지 말임다.”

“다른 신?”

“그렇슴다. 아마 지금 남아있는 신님이...헤카테님인 걸로 알고 있슴다.”

주구장창 켈트쪽 신들만 튀어나오길래 켈트 쪽 신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리스 쪽도 있구나. 하긴 신들 라인업에 그리스 로마 신화 신들이 없으면 섭하지. 신화 중에 개내들 보다 메이저인 애들이 없는데.

그럼 12신도 볼 수 있는 건가? 오, 그건 좀 궁금한데.

“그럼 12신도 있는 건가?”

“있기는 함다. 근데 가지세계에 있슴다.”

뭐야, 적이야? 아프로티테 보고 싶었는데. 얼마나 예쁜지 궁금했단 말이야.

“이름이 웬만큼 알려진 그리스나 북유럽 신화쪽 신들은 거의 다 가지세계에 있는 걸로 아는데 말임다...그래서 저희 쪽이 힘싸움에서 많이 밀리지 말임다. 그나마 저희 쪽은 어쨌든 막는 쪽인데다 저쪽도 적극적으로 싸우는 신은 얼마 안 되서 버티고는 있슴다...자세한 건 바이브님한테 여쭤 보시는 게 좋슴다. 저는 말단이라 아는 정보가 많은 편은 아님다.”

“아니 충분히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은 데...일단 이 이야기는 나중에 마리아한테 더 물어볼게. 그럼 다음 질문인데 여기에 엘프 마을이 있는 이유는 뭐야?”

“모름다. 저도 마을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지 말임다.”

“왜? 세계의 일부가 떨어져서 이곳에 붙은 거니까 엘프 마을 째로 이곳에 붙은 거 아니야?”

“...자세한건 좀 더 살펴보아야 알 수 있지 말임다. 이 마을은 아마...”

그때였다.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는 에포나를 다른 의자 위에 올려두고 문을 열었다.

“누구세요~?”

“저 리온이에요! 촌장님이 이걸 전해달라고 하셔서...”

나는 리온이 가져온 물건을 받아들었다. 물건은 내 손바닥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상자였다. 사이즈가 딱 반지 상자인데. 반지라도 들어있나?

“저기...”

“응?”

“혹시 에포나는 자고 있나요?”

안 가고 내 뒤쪽을 힐끔힐끔 거리던게 그거 때문이었구나. 아까 에포나 등에 타서 꺅꺅 거리던게 어지간히 재밌었던 모양이었다. 하긴, 애 또래 애들이 한명도 안보인걸 보니 애 말곤 어린애가 없는 모양인데.

“응. 많이 피곤했나봐. 그런데 리온,”

“네?”

“너 말고 다른 애들은 없니? 마을에서 너 말곤 어린애들을 한 번도 못 본 것 같아서...”

“어...저도 잘 몰라요. 촌장님 말로는 엘프는 아이가 거의 태어나지 않아서 당연한 일이래요!”

어...진짠가? 내가 엘프에 대해 모르니 진짠지 아닌지 모르겠네.

“저...신님! 에포나 좀만 보고 가도 돼요?”

“시간이 늦었으니 내일 보는 게 좋지 않겠니?”

“하지만 촌장님이 내일부터 아주 바쁠거라고 하셔서...조금만요, 네?”

살작 물기어린 눈동자를 나를 올려다보는 모습에, 나는 한숨을 쉬며 문을 열어주었다. 리온은 문이 열리자마자 종종걸음으로 의자에서 잠을 자던 에포나를 찾아내더니, 눈을 반짝이며 갈기를 쓰다듬었다.

엄청 좋아하네...

“...이야기는 내일 마저 하자. 난 들어가서 잘래...세연아, 가자.”

“으, 응.”

애는 또 왜이래. 나는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리온을 쳐다보는 세연이를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작은 방이었지만 어차피 나 혼자 자니까...세연이는 어차피 잠 안자니까 상관없고.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살다 살다 진짜 엘프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

그 옷가게 깐프는 짭프입니다 짭프. 개는 아무리 봐도 엘프보단 에르후 같단 말이야.

“...나도.”

“하암...”

하도 많이 싸돌아다녀서 그런가. 아니면 엘프들이 죄다 우릴 쳐다봐서 그런가. 정신적으로 피곤했던 탓인지 저절로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잘 자...”

희미한 의식속으로 세연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의식은 곧 어둠속으로 떨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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