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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173화 (173/352)

〈 173화 〉 153.당신의 뚝배기를 반으로 쪼개면 사랑이 오나요?(5)

* * *

“아아, 내 말 알아들어?”

“어? 아까는 이상한 말 했는데? 촌장님! 저 인간이 엘프어를 해요!”

엘프어? 그러고 보니 전에 들었던 언어랑은 좀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솔직히 지금 상황이 아직도 파악이 안 되는데. 진짜로 소원을 들어주는 게 말이 돼? 고작 기도 하나로? 진짜 어처구니없네.

“어...음...그냥 어쩌다 보니 알게 됐어.”

“수상해! 역시 수상해!”

“일단 물러나거라 리온. 귀하신 분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 다면, 무슨 용무로 귀한 발걸음을 하셨는지 이야기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 일단 이 저승사자 놈 찾으러 왔는데요...”

나는 적당히 둘러대며 눈치를 살폈다. 내가 갑작스레 엘프어를 할 수 있게 된 다음부터 엘프들의 분위기가 묘하게 달라졌다. 도대체 뭔데. 확실히 내가 갑자기 말문이 트인 건 놀라운 일이긴 하지만, 뭔가가 더 있는 것 같았다.

촌장이라는 인간 나이로 중년 쯤 되어 보이는 외모의 여성이 부담스럽게 시리 나한테 존댓말을 하는 것도 그렇고. 엘프가 판타지 소설처럼 수백 년 단위로 사는지 아님 영생을 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보다 나이가 많을 건 확실한데 존댓말하시면 동방예의지국에서 한 예절 하는 저는 부담스러운 뎁쇼.

나는 쭈구리처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계속해서 눈치를 살폈다. 분위기는 아까보단 많이 부드러워지기는 했는데, 여전히 촌장을 제외한 엘프들은 나를 경계심 섞인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고귀하신 분이 원하신다면 그렇게 해드려야죠. 시리아, 릴리, 저 분을 풀어주려무나.”

“하지만...!”

“어서 풀어주래두. 그리고 준비를 해두거라.”

이름을 불린 두 여성 엘프는 내키지 않는 다는 듯 한 표정으로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저승사자를 땅에 내려주었다. 저승사자는 두 엘프가 포박을 풀어주자 옷을 툭툭 털며 일어나 나에게 다가왔다.

“감사하지 말임다...”

“감사한줄 알면 다음엔 잡혀서 대롱대롱 매달리지 마.”

내가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엘프어 습득하지 않았으면 우리 다 좆되는 거였다고. 아오. 그래서 이제 뭐 해야 되지? 우리 목적은 영혼들 성불 시키는 거였고, 그래서 여길 왔는데 영혼 같은 영혼은 하나도 안 보이는데?

발품 팔아서 묘지 같은 장소라도 찾아야 하는 건가.

“일단 저희 집에 가시지 않겠습니까? 귀하신 분이 오셧으니 좋은 차를 내어드리겠습니다. 뒤에 두 분도 같이 오시지요.”

두 분? 나랑, 저승사자랑, 세연이? 세연이가 보인다고? 역시 엘프 촌장쯤 되면 영혼도 볼 수 있는 건가. 슬쩍 세연이를 보니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나도 좀 놀라긴 했어.

“...내가 보여?”

“후후, 제가 늙었어도 멀쩡히 존재하는 사람을 보지 못 할리가요.”

나랑 저승사자 말고 세연이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니, 좀 충격인데. 하긴 생각해보니까 저승사자를 잡아들인 시점에서 세연이를 볼 수 있는 게 당연한 건가. 저승사자도 똑같이 보통 사람 눈에는 안보이니까.

“어? 3명? 두 명 밖에 없는데?”

너도 촌장님처럼 수련을 더 쌓고 오거라. 이름 뭐였더라. 라이언?

“리온, 잠시 밖에서 놀고 있으려무나.”

“네!”

“그럼, 가실까요?”

나는 종종걸음으로 저 멀리 뛰어가는 리온을 지켜보다가 걷기 시작하는 촌장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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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의 잎으로 우려낸 차랍니다. 귀하신 분이 오셨으니 특별히 준비한 차니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군요.”

우리는 우리 앞에 놓여진 나무로 만들어진 고풍스러운 느낌의 잔을 쳐다보았다. 냄새가 정말 상쾌한 느낌인데. 민트? 약간 그런 느낌의 향인데.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잔을 조심스럽게 들고 보기만 해도 뜨거워 보이는 차를 홀짝였다.

“...오...”

맛은 향기를 따라간다더니, 상쾌한 향기만큼이나 상쾌한 맛이 입안에 퍼진다. 맛 자체는 차인지라 진하지는 않지만, 상큼한 맛과 함께 뜨거운 액체가 지나가고 나면, 박하라도 먹은 것처럼 시원한 느낌이 확 퍼지는 게, 차알못인 나라도 좋은 차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입에는 맞으셨습니까?”

“좋네요. 그리고 편하게 말하셔도 되요...”

아 존댓말 신경 쓰여. 동방예의지국 출신이라 나보다 나이 많으신 분이 나한테 존댓말하면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단 말이야. 나도 한 예의 하는데.

“후후, 늙은이는 이게 편해서 말입니다.”

귀부인처럼 우아하게 웃는 모습에서 연륜이 느껴져, 나는 어르신 앞에선 꼬마처럼 쭈뼛대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발치에서 엎드려 자고 있는 에포나의 털이 내 발끝을 간지럽힌다. 애는 들어오자마자 자네.

확실히 자기 딱 좋은 분위기기는 하지만.

“맛있어...어? 이거 나 왜 마실 수 있지?”

설마 못 마실 걸 줬겠나. 저승사자가 마실 수 있는 시점에서 너도 충분히 마실 수 있는 거 아니야? 나는 신기하다는 듯이 차를 홀짝이는 세연이를 슬쩍 쳐다보며 생각했다. 확실히 원래 현세라고 해야 되나, 원래는 내가 공양해주는 식으로 건네주거나 향 피워서 제사상 취급해주지 않으면 혼자서 뭘 맘대로 집어먹지 못하니까 당연한건가.

“일행분도 만족하셔서 다행입니다.”

“아, 그러네요...”

“혹, 실례가 되지 않는 다면 어떤 용건으로 오셨는지 말씀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어...”

야, 저승사자, 뭐라고 말해야 돼? 그냥 그대로 말해도 돼? 내가 곁눈질로 저승사자에게 눈치를 주자, 차 맛을 한창 음미하던 저승사자는 넌지시 속삭였다.

“그냥 그대로 말해도 됨다. 이미 알고 있을 것임다.”

그래? 그럼 다행이네.

“우리는 영혼을 수거하러 왔어요. 이곳에 처치 곤란한 영혼들이 모여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영혼들이라...그렇군요.”

엘프 촌장님은 내 말에 어딘가 짚이는 듯 한 얼굴로 순순히 납득하셨다. 그 납득이란 게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묘하게 올 것이 왔구나 하는 표정이랄까, 되게 신경 쓰이네. 뭔가 짚이는 일이라도 있으신 건가.

“...젠가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지만...생각보다...아니...오히려 좋은 일일지도...”

뭐라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촌장 아주머니는 금새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우리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일이 해결되는 동안 저희 마을에서 묵으시는 건 어떻습니까? 이곳은 아주 혼란스러운 장소라서 묵을 곳을 찾기가 힘들 겁니다.”

“그러면 감사하죠. 몇 시간 동안 이곳이 어떤 곳인지 확실히 알았으니까 거절할 수 가 없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후후, 손님용으로 쓸 방이 있으니 잠시 뒤에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방이 준비되는 동안 마을을 한번 구경하시지 않겠습니까?”

“아...네.”

“주인님! 나도 나갈래!”

밖으로 나간단 소리 들으니까 정신이 번쩍 들었나보네. 우리는 촌장을 따라 집 밖으로 빠져나왔다.

아까는 하도 인파에 둘러싸여 있어서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는데, 확실히 엘프 마을답게 커다란 나무를 통째로 파서 집을 만들거나, 처음 도착한 곳에서 보았던 커다란 버섯집같은 아기자기한 집들이 눈에 띄었다.

여기도 만만치 않게 동화풍이네. 다른 건 모르겠고, 일단 풍경 자체가 목가적으로 아름답다보니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야. 노후를 보내기 딱 좋은 곳이네. 고요하지만 사람 사는 냄새도 좀 나고 일단 공기부터 아주 맑으니까...

엘프들이 훌륭한 눈요깃거리가 되어준다는 것도 나름 큰 장점이었다. 인간과는 다른 기다란 귀와 연예인 뺨치는 아름다운 이목구비는 말할 것도 없고, 복장 자체는 가죽옷이나 뭘로 만들었는지 모를 녹색 천으로 된 옷을 입고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남자는 둘째치고 여자는 롱스커트에 팔꿈치까지 내려오는 소매를 가진 옷이 대부분이라 노출도가 높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현실감이 있다.

에르후마냥 입고 있었으면 엘프 이전에 뭔데 이 변태년들은 하고 생각했을 거라고. 변태같은 복장은 쩡에서 보니까 좋은 거야! 현실에서 입으면 공연음란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하지만 그런 노출도 적은 복장으로도 숨길 수 없는 몸매가 인상적이지. 쭉쭉 빵빵이라기 보다는 대부분 슬림한 몸매지만, 몸의 선이 시선을 잡아끈다고 해야 되나, 몸에 착 달라붙는 복장이라 몸의 라인이 잘 살아난다. 뭐지. 엘프라고 군살이 없는 건가? 요즘은 살집있는 엘프가 인기라고 들었는데, 아닌가봐...

“몸매 좀 봐...”

하긴 선이고 뭐고 등과 가슴이 구분이 안가는 너는 많이 부러운가 보구나. 너는 영원히 가지지 못하겠지! 저런 섹시한 라인을! 그래도 한숨 쉬지 마렴. 세상엔 너랑 똑같은 몸매로도 억 단위 수입을 올리는 여자도 있어...

“유진아, 방금 나 흉봤지?”

“몰?루”

“머리카락으로 물음표 만들지 마!”

쳇, 이거 몰래 갈고닦은 신기술인데.

나는 나에게 달려드는 세연이를 손으로 멀어내곤 우리를 보며 웃는 엘프들에게 살풋 웃어주었다.

“사이가 좋으시군요.”

“친구니까요.”

촌장 아주머니가 허허롭게 웃으며 말했다.

“촌장니임!”

아까 그 꼬마네. 꼬마는 쏜살같이 달려와 촌장에게 안겨들었다. 촌장은 리온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촌장이라 그런가, 평소에 잘 돌봐줬나 보네.

근데 애 말곤 어린애를 한번도 못 본 것 같은데, 뭐지?

뭐, 그냥 내가 못찾은 거겠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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