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화 〉 막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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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믿지 않는 자들은 있더라도, 신을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처음 보는군.
대륙이 황폐해 지면서 신을 원망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대놓고 신과 싸워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을 처음 본 포모르는 흥미로운 눈길로 남성을 쳐다보았다. 어쩌면, 이곳에서 만난 것도 인연이겠지.
“저 자는 매번 저런 말을 하는 건가?”
“뭐 그렇지. 질리지도 않고 맨날 저런다니까. 저번에 분명 잡아갔던 것 같은데 어느 샌가 다시 나타나서 저러고 있으니...이젠 저 헛소리 들어보겠다고 여길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그래서 나도 쫒아내지는 않고 있다네. 미친놈 하나 눈감아주는 걸로 손님을 더 끌어들일 수 있다면야 내 입장에선 나쁘지 않은 일이니까.”
“뭐야? 저 아저씨가 하는 말에 관심이 있는 거야? 저런 헛소리엔 신경도 쓰지 않는 게 좋다구. 재수 없게 신들한테 잘못 걸리면 전부 끝장이야 끝장.”
“그런 것 치고는 저런 말을 하는 자가 멀쩡하게 살아서 돌아다니는 군.”
“이런 낙원 구석탱이에 박혀있는 여관에 찾아올 위병이 어디 있겠나? 거기다 의외로 위쪽과 연줄이라도 있는 건지, 가끔 잡혀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나와도 며칠 만에 다시 감방에서 나온다더군.”
기묘한 이야기였다. 신을 쫒아내야 한다고 외치는 자가 아무리 신들의 눈길이 잘 닿지 않는 곳이라지만 당당하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포모르에게는 기묘하게 느껴졌다. 포모르는 그의 발언을 마냥 무시할 수 없었다.
그의 양아버지이자 스승, 그리고 주군이었던 파르사드가 말하지 않았던가. 신들과 진심으로 싸우려는 자는 한줌도 되지 않는다고. 그리고 진심으로 신들과 대립하려는 자는 미치광이거나 사기꾼, 혹은 이상론자 밖에 없다고 했던가. 포모르는 그 말을 떠올리며 혼자서 침을 튀기며 일장연설을 하던 중년의 남성에게 걸어갔다.
“이봐. 잠깐 할 이야기가 있는데.”
“호오! 자네는 처음 보는 사람이로군! 어때, 내 연설을 들으니 눈이 뜨였나?”
남성은 기쁜 얼굴로 코를 훌쩍이며 포모르에게 대답했다. 그에게 말을 건 사람이 정말 오랜만이라, 남성은 오랜만에 감격스러운 듯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그의 어깨를 잡았다. 여관에서 식사를 하던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얼굴로 포모르를 쳐다보았다.
남성의 주장은 누가 들어도 정신 나간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기에, 포모르의 행동이 헛짓거리라고 여관의 손님들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를 말려줄 마음씨 좋은 사람은 없었다. 이곳은 자기 몸 챙기기도 바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으니까.
“눈이 뜨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연설의 내용에 흥미가 있다.”
“오, 그래그래! 내 처음부터 끝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줌세!”
포모르는 그를 데리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대놓고 어이없어하는 테테와, 그를 묘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여관주인이 포모르를 쳐다보았지만 포모르는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그를 자리에 합석시켰다.
“와...진짜 데려왔네.”
포모르가 남성을 데려오는 동안 그릇을 깨끗하게 비운 테테는 턱을 괴곤 포모르를 쳐다보았다. 잘생기고 똑똑해 보였는데, 저런 아저씨가 하는 헛소리에 호기심을 가질 줄은 몰랐는데. 그냥 아는 사이라면 핀잔이라도 줬겠지만, 테테는 그냥 조용히 쪽잠이라도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런 헛소리 들어봐야 딱히 쓸데도 없었으니까.
“이야기 다 끝나면 깨워줘...”
“알았다.”
테테는 점시를 옆에 밀어두고 테이블에 엎드려 잠에 빠졌다. 조금 소란스럽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포모르는 남성과 마주 앉아 그를 쳐다보았다. 남성은 코를 훌쩍이며, 여관주인을 불러 술을 시켰다.
“내 이름은 베네딕틴이라네! 자네의 이름이 알고 싶군!”
“포모르다. 듣자하니 꽤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더군. 사회...주의였나?”
“아주 흥미롭지! 내 한평생 사서 일을 해오면서 그것보다 훌륭한 사상은 보지 못했네! 내가 사회주의에 대해서 하나하나 차근차근히 설명해줌세!”
베네딕틴은 사회주의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포모르는 그 이야기를 전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평등이라...신이 버젓이 존재하는데 그런 게 가능하리라 보나?”
“안될게 있나! 누가 수십 년 만에 풍요로웠던 대륙이 이 모양 이 꼴이 될 거라고 생각했겠나? 세상일은 아무도 모르는 법이네! 대부분의 신들은 자기네들의 편의를 위해서 계급을 만들고 재산을 긁어모으고 있네. 이런 혼란스러운 시대에는 그에 걸맞은 혁명이 필요한 법이야. 나를 가르치신 여신님께서도 그리 말씀하셨지!”
혁명이라...포모르에게는 생소한 이야기였다. 애초에 그런 개념 자체를 알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적절히 잘 이용할 수만 있다면, 쓸만할지도 모른다고 포모르는 생각했다. 그의 앞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베네딕틴이나 그나 둘 다 결국 신들을 끌어내려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했으니까.
그리고 그 여신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반신론을 펼치는 여신이라, 그로서는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금 더 천천히 공부해보고 싶군. 혹시 나를 그 여신...님과 만나게 해줄 수 있나?”
포모르는 뒤늦게 존칭을 붙이며 물었다. 평소에 신들을 신놈들이라 낮잡아 부르던 파르사드의 말을 듣고 자란 탓에 신들을 부를 때 존칭을 잘 붙이지 않는 버릇 때문이었다.
“물론이지! 메티스님은 언제나 가르침을 청하는 자에게 관대하시다네! 지금 바로 가도록 합세!”
“지금 바로?”
“그렇네! 배움은 빠를수록 좋은 법! 주인장! 여기 계산하겠네!”
“알겠수! 식사 값이랑 술 값해서 7드라크마요. 형씨는 어떻게 하겠소? 보아하니 외지인 같은데, 길게 묵을 생각이면 좀 깎아주겠소.”
“한 달 치 숙박비를 낼 테니 좋은 방으로 잡아 주시오. 그리고 저쪽 꼬마 식비까지 내도록 하지.”
“통이 크구만. 내 좋은 방으로 잡아 드리리다! 식사까지 포함해서 400드라크마요! 덤으로 목욕도 할 수 있게 목욕물도 원하면 올려드리겠네.”
포모르는 주머니에서 100드라크마짜리 은화 4개를 꺼내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주인장은 동전을 들어 쓱 살펴보고는, 만족스러운 듯이 주머니에 은화를 집어넣었다.
“열쇠는 돌아온 뒤에 주도록 하겠네. 뒷골목이 험한 곳이라 열쇠를 도둑질 당할 수도 있거든. 그 돈주머니도 잘 간수하게.”
“...고맙소.”
“뭐 손님에게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수.”
여관주인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자신만만한 미소에 포모르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베네딕틴을 따라 여관을 빠져나왔다.
“이곳 주인장은 외지인들에게도 바가지를 씌우지 않아서 평판이 아주 좋지. 형씨는 정말 잘 찾아온 거요.”
“그런가...메티스 여신...님이 계시는 곳은 어디지?”
“뒷골목 사이에 숨겨진 길이 있소. 그곳을 통해서 메티스 님의 도서관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 잘 따라오시오.”
포모르는 베니딕틴의 뒤를 따라 뒷골목으로 다시 들어섰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골목길은 을씨년스러웠지만 바깥세상에 비하면 이곳은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포모르는 베네딕틴의 등을 따라가며 생각했다.
아군인가, 적인가. 편파적이고 모자란 정보로는 그것을 판단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따라가는 것 또한 위험한 일이었지만,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다소의 위협도 감내해야 하는 법. 포모르는 일단 메티스라는 여신과 만나볼 생각이었다.
10분쯤 골목 사이를 누볐을까, 베네딕틴은 돌연 골목길 중간에 멈춰서곤 벽을 만지작거렸다. 그가 벽의 특정 지점을 여러 번 누르자, 벽사이를 비집고 문이 나타났다. 어둡고 음침한 골목에 어울리지 않는, 부드럽고 고풍스러운 느낌의 갈색 문이었다.
“자, 이곳이네.”
포모르는 문을 열고 먼저 안으로 들어가는 그의 뒤를 따라 문 안으로 들어섰다.
두 사람의 발소리가 울려퍼지던 골목길에는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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