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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163화 (163/352)

〈 163화 〉 145.저는 님 친구가 아닙니다(4)

* * *

갑작스레 식탁 위에 떨어진 핵폭탄에 조금이나마 활기를 되찾은 분위기가 초토화 되고 말았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아주머니와 마리아를 번갈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마리아는 생각보다는 침착한 표정이었지만, 동공이 떨리는 것만큼은 막을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에요?”

마리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설마 아직도 안 들켰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겠지?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숨을 죽이고 상황을 살폈다. 완전히 굳어버린 마리아와 마리아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마리아의 부모님.

으 숨 막혀. 일촉즉발의 상황에 모두가 마리아를 쳐다보며 조용히 대답을 기다릴 때, 아주머니는 입을 열어 추가타를 날리셨다.

“우리 리아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외향적인 아이였지. 나는 리아를 키우면서 그 애가 집구석에 박혀있는 걸 본적이 없었단다.”

“사, 사람이 마음이 변하는 건 흔한 일이잖아요?”

씨알도 안 먹힐 변명이었지만, 마리아는 아직 들키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지 떨리는 동공을 숨기지 못 한 채로 그렇게 대답했다.

“그래도 사람 본성은 변하지 않는 법이란다. 아무리 사람이 변했다고 한들 행동방식부터 취향, 좋아하는 음식까지 한 번에 바뀌진 않는 법이란다.”

...원래 마리아랑 마리아(IN 여신)은 공통점이 적었던 모양이다. 하긴 공통점이 없어도 이상하지 않은 게, 수천 년전 찐따 여신이랑 아마도 인싸(?) 여자랑 여성이라는 거 말고 공통점이 있으면 그게 더 신기하겠다.

“개과천선이라는 마, 말도 있잖아요?”

그냥 포기하고 편해지는 게 어떨까?

용캐 그 사자성어는 알고 있네. 나는 이 숨 막히는 분위기에서 나가길 포기하고 그냥 막장드라마를 보는 기분으로 감상하기로 했다. 남의 가정사에 내가 끼어들 명분도 이유도 없고, 이건 마리아와 이 가족 간의 일이니 지원사격을 쏴줄지언정 알아서 해결 해야지.

“개과천선은 이럴 때 쓰는 건 아니란다...더 이상 빨뺌하지 말고 말해주렴. 너는 누구니? 우리 마리아는...어떻게 된 거니?”

아주머니는 필사적으로 터질 것 같은 눈물을 참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나라도 그렇지 않을까. 자기가 낳은 딸의 몸에 이상한 년이 들러붙어서 딸 행세를 하고 있는데 부모가 그걸 눈치재지 못했을 리도 없고.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어찌어찌 반년동안 지켜보고만 있었으니 얼마나 감정이 북받쳤을까.

“...”

마리아는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닫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르고 있는 걸까. 나야 이야기 하는 쪽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이야기 하지 않는 쪽이 나을 수도 있다.

아주머니가 말한 게 전부 맞다면 마리아는 아마...

“...역시 요즘 사람들을 흉내 내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더 이상 발뺌하기엔 글렀다 싶었는지, 마리아는 순순히 자신이 진짜 마리아가 아님을 인정했다. 하긴 이 상황에 계속 부정해봐야 의미도 없지. 나는 마리아가 커밍아웃을 한 순간을 지켜보며, 내 앞에 놓인 커피를 홀짝였다.

뭔가 드라마 직관하는 느낌이라 재밌는데.

“네. 저는 마리아가 아니에요. 하지만 이 육체는 마리아의 육체가 맞아요.”

“그게 무슨 소리요? 말만 들으면 우리 딸의 몸에 빙의라도 했다는 소리인데...”

아저씨 예리하시네. 거기서 그런 비상식적인 결론을 도출해내셨을 줄이야. 뭐 이것도 알아서 여신님이 설명하겠지. 나는 아무 말도 안하련다.

“맞아요. 교통사고를 당한 직후의 이 몸에...제가 들어왔어요. 원래 이 몸의 주인은...”

“역시...죽은 거니?”

“...그래요. 그 날, 뺑소니를 당한 마리아는 죽었어요.”

마리아는 담담하게 그 사실을 고했다. 결국 아주머니는 지금까지 참아왔던 울음을 터트리곤 손에 얼굴을 묻은 채 울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그런 아주머니의 등을 토닥이며, 복잡한 얼굴로 마리아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당신은 누구요? 왜 우리 딸의 몸에 들어왔지?”

“딸의 몸에 들어온 건 우연이에요. 저도 제 할 일을 위해 빙의할 몸을 찾고 있던 것은 맞지만, 이 몸에 들어오게 될 줄은 몰랐네요.”

아저씨의 물음에, 마리아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감정을 배제한 듯 한 사무적인 말투에, 나는 소름이 돋았다. 이 상황에서 잘도 저렇게 말하네. 아저씨는 그 말에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앓는 소리를 내며 복잡한 눈으로 마리아를 쳐다보았다.

몸은 딸이지만 영혼은 딸이 아니다. 이걸 부모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복잡한 문제였다. 생물학적으로는 여전히 딸이 맞겠지만, 속 알맹이는 딸이 아니었으니까. 어느 쪽이 본질에 우선할 것인가, 그런 문제였다.

타협해서 기억상실 정도로 취급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조차 굉장히 고통스러운 선택이니까 선택하긴 어려울 거다. 나는 가시방석에 앉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절절하게 체감하며 두 사람의 대화를 조용히 들었다.

내가 나서야 할 수도 있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그럼, 우리는 딸아이를 다시 볼 수는 없는 건가?”

“그래요. 두 분의 딸은 이미 저승에 있을 거예요.”

환생...이란 개념이 있기는 했구나.

“...환생인가...솔직히 믿기지 않는 다네. 반년 전 부터 자네가 우리 딸이 아니라고 의심하고는 있었지만, 우리는 확인하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정말 알고 싶기도 했네. 자네가 우리 딸이 아니라면 도대체 우리 딸은 어디에 있는 건지. 내 눈앞에 있는 자네는 왜 우리들 앞에 나타나 딸 행세를 하는 건지.”

아저씨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커피잔을 들어 커피를 들이켰다. 계속되는 대화에 목이 말랐던 모양이었다.

“그날 마리아는 우리와 한바탕 싸우고 집을 나갔다네. 생각해보면 정말 사소한 이유였지. 대학교 공부도 포기하고, 그저 밖을 돌아다니며 놀러 다니던 그 아이가 사귄 친구들과 다니는 게 못 마땅했다는 이유였네. 부모라는 게 그렇지 않나. 공부 잘하고, 착하고, 좋은 친구들만 사귀길 바라는 게...다 부질없는 짓이었지.”

아저씨는 본인도 눈물을 참을 수 없었는지,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아 나도 눈물 날 것 같아. 나 이런 이야기에 좀 약한데...마리아를 슬쩍 쳐다보니 여전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마치 ‘그래서 뭐?’ 같은 표정.

신과 인간의 감성은 이렇게 다른 건가.

“그 날 우리는, 마리아가 뺑소니를 당했다는 그 아이의 친구에게서 소식을 들었지. 하지만 우리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마리아는 사라진 뒤였어. 도로에 남아있던 것은 피로 범벅이된 끔찍한 사고 현장과 피로 범벅이 된 지갑, 그 안에 들어있던 우리 딸의 주민등록번호였지. 우리는 미친 사람처럼 마리아를 찾아 나섰지...”

회한으로 가득 찬 목소리였다. 너무 무거운 이야기라,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한 나는 포크를 만지작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나는 이 건에서 완전한 부외자라 말을 꺼낼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것뿐이었다.

“우리는 밤새 마리아를 찾아 나섰네. 하지만 마리아는 보이지 않았어. 도로에 흘린 피의 양으로 보아 무사하지는 못할 거라는 것을 알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네. 하지만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우리는 마리아를...찾지 못했네. 그런데 실신한 아내를 쉬게 하기 위해 집에 돌아와보니, 아무렇지 않게 마리아가 멀쩡한 모습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더군.”

뺑소니사고를 당한 것 같지 않은 모습으로 집에 돌아와 있으니 놀라셨겠네..

“처음엔 기뻤네. 그 다음엔 위화감을 느꼈지. 마리아는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아이는 아니었네. 나를 보면 사나운 표정을 짓기 일수였지. 그런데 그 날, 마리아가 우릴 보며 어색하게 웃더군. 거기서 난 직감했지. 저 마리아는 우리가 아는 그 마리아가 아니라고.”

“...그러면 어째서 지금까지 놔두셨나요? 그냥 쫒아내도 되셨을 텐데.”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마리아는 여전히 제대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고, 내가 그나마 중간에서 중재를 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 온 판단이었다.

“마리아는 누가 봐도 우리가 아는 마리아의 모습을 하고 있었네. 심지어 도로위의 피와 저 아이의 피도 사고를 당한 사람이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지. 모든 증거가 그 아이가 마리아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었어. 하지만 우리는 알 수 있었네.”

...역시 부모는 못 속인다는 거구나.

“마리아는 입맛도 까다로웠고, 매사에 까칠한 아이였지. 하지만 저 아이는 입맛이 까다롭지도, 까칠하지도 않았어. 말투도 존댓말이라고는 모르던 애가 존댓말을 하고 있더군. 부모가 아니라도 마리아를 아는 사람이라면 위화감을 느꼈을 걸세. 하지만.”

“...인정하기 싫었다는 건가요.”

아저씨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기억상실이라고 생각하기로 하고 애써 넘어갔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의심만 늘어가더군. 기억상실은 추억만 사라지는 것이지, 사람 자체를 바꾸지는 않는 법이네. 의사인 내가 잘 알고 있지. 하지만 그 뺑소니 이후의 마리아는...다른 사람이야. 모든 게 달랐어. 행동방식도, 성격도, 취향도 전부. 달라도 너무 달랐어.”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기억상실은 실제와는 좀 다르다고 했던 것 같다. 실제로 기억이 돌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던가.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출처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 X튜브 같은데서 본 게 아니었을까.

“그럼 그대로 넘어가실 수도 있었을 텐데...지금 와서 그 이야기를 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나는 조심스레 마리아의 아버지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설픈 가족놀이는 그만하고 싶었네...그, 유진양에겐 미안하지만, 유진양과 마리아가 찍은 사진을 보고 나서 이 아이는 우리의 딸이 아니라는 확신이 생겨버렸기 때문일세. 괴로운 선택이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알고 싶었지. 그것뿐이네.”

“...그럼 나를 어떡할 생각인가요?”

“...모르겠네.”

딜레마인가. 나는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동정 섞인 시선으로 두 분을 바라보았다. 아주머니도 이제 진정이 되셨는지, 퉁퉁 부어오른 눈으로 마리아를 쳐다보았다.

“마리아는, 우리가 아는 마리아는 죽은 건가요?”

“...그 날 차에 치인 마리아는 죽었어요. 저는 이 몸을 잠시 빌렸을 뿐이랍니다.”

마리아는 여전히 담담하게 그 사실을 고했다. 혼자서 다른 공간에 있기라도 한 듯 차분한 목소리에, 나는 소름끼치는 위화감을 느꼈다. 차라리 찐따미 물씬 풍기는 모습으로 돌아와줘! 왜 쓸데없이 여신 모드야!

확인사살도 하지 말라고...지금 거의 실신직전인가 안 보여? 마음 같아선 등짝이라도 후려치고 싶긴 한데, 눈치가 보여서 그건 못하겠다.

“...아아...”

아주머니는 그 대답에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자식 잃은 부모의 심정을 내가 감이 헤아릴 순 있냐마는, 나는 조용히 눈을 내리깔고 이 순간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으니까.

“잠시, 나가주지 않겠나? 내 아내가 진정될 때 까지만 이라도...잠시 뒤에 돌아와줬으면 좋겠네. 우리도 결정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아, 네...”

나는 마리아의 팔을 붙잡고 일단 거실을 떠났다. 목적지는 마리아의 방이었다. 마리아의 방은 깨끗했다. 침대에, 참고서가 끼어져 있는 책장에 컴퓨터... 좋은 집답게 좋은 것들로 가득차 있네.

“어떡하지? 이렇게 되면 저 쫒겨 나는 거 아닐까요?”

“지금 그게 문제야?”

나는 상황파악 못하고 헛소리를 지껄이는 여신의 정수리를 쥐어박았다.

“아파요! 왜 때려요?!”

“진짜 몰라서 묻는 거야?”

“도대체 뭐가 문제에요?”

“뭐가? 문제냐고? 네일건으로 저분들 가슴에 못을 콤보로 박고 있는데 뭐가 문제냐고?”

아니 신이면 뭐해! 눈치 더럽게 없네! 나는 이 망할 여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아 한숨을 쉬었다.

“사람이 죽는 건 당연한 일인데, 그걸로 슬퍼할 일이 있나요?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산사람일 뿐인데요...”

“부모가 자식이 죽었는데 슬퍼 안하면 그건 사이코패스지. 신들은 어떨지 몰라도, 인간은 가족을 소중히 여기거든. 인간 몸 빌려서 살 거라면, 그 정도는 이해하고 있어줘...”

“아...알겠어요.”

나는 간신히 수긍하는 마리아를 보며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그냥 부모한테 친구를 소개하는 정도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뭐가 이렇게 꼬인 거야...당사자는 상황도 제대로 파악 못한 것 같고.

“인간은 참 어렵네요...”

속 편한 소리하고 있네. 나는 마리아를 한 번 더 쥐어박을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내 손만 아프지.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는 문을 열었다. 문을 연 사람은 아저씨였다. 뒤에는 아주머니가 보였다. 다행히도 진정되셧나 보네.

“...딸아이는 이 방을 마음에 들어 했지. 정작 이방에 있는 시간은 얼마 없었지만...”

나는 이번에도 조용히 짜져 있기로 했다. 이건 마리아가 해결 해야지. 아저씨는 딸의 방에 오자 감정이 북받쳤는지 말을 잇지 못하고 멍하니 방안을 쳐다보다, 결심한 듯 결연한 표정으로 마리아를 쳐다보았다.

“...이름을 말해 주게. 내 딸의 이름이 아닌, 자네의 이름 말일세.”

“...바이브 카흐에요.”

“바이브 카흐...외국인이었군.”

아저씨는 잠시 말을 멈추고 시선을 내리 깔았다가, 다시 마리아와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우리는 딸의 몸을 가지고 있는 자네가 우리 집에 계속 남아있길 바라네. 어리석다는 걸 알지만, 때로는 그런 선택이 필요할 때가 있으니까. 언젠가는 작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한동안은 있어주면 안되겠니?”

“...저 싫어하는 것 아니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어느 정도 미워하는 마음은 있네. 누군지도 모를 놈이 우리 딸 행세를 하고 있는 셈이니까. 하지만 결국 우리 딸의 몸이 아니지 않나. 다른 곳에 가는 것만은 참을 수 없네. 적어도 그 몸의 쓸모가 끝나고 장례를 치룰 때까지는 있어주면 안 되겠니?”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어요. 한 두 달이면 제가 이 몸에 빙의하고 있을 이유도 사라지니까...영혼이 사라진 이 몸은 곧 죽음을 맞이하겠죠. 그 때까진 이 가족놀이를 계속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고맙네.”

잘 해결...된건가? 나는 묘한 방향으로 봉합된 사건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어설픈 봉합이지만, 최소한 찢어지는 것보다는 낫겠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이별보단 예정된 이별이 조금이라도 덜 아픈 법이니까.

나는 조용히 집을 빠져나왔다.

...오랜만에 부모님한테 전화 드려야지. 나는 휴대폰을 꺼내들어 전화를 걸었다.

"어 엄마, 나인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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