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듀라한이 되어버렸다-162화 (162/352)

〈 162화 〉 144.저는 님 친구가 아닙니다(3)

* * *

나는 마리아의 부모님을 따라 마리아와 함께 식탁에 앉았다. 내가 자리에 앉아 조심스레 마스를 벗자, 마리아의 부모님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입으로 말하기는 뭐하지만, 내 얼굴이 어지간히 아름다워야지.

이건 자의식 과잉 같은 게 아니다. 그냥 팩트다. 10명 중에 10명이 돌아볼법한 얼굴을 가졌으니까, 사람들이 내 맨얼굴을 보고 놀라는 것을 본게 한 두 번이 아니다. 적어도 날 본 사람 중에 내 얼굴에 관심이 없는 사람을 본적이 없었으니까.

첫인상 하나는 끝내주게 잘 잡는 얼굴이다. 굉장히 튀는 머리카락 색깔도 외모로 어찌어찌 커버도 되고. 흰머리라도 탈색한 흰머리 느낌이 아니라 정말 자연스러운 색깔의, 윤기 넘치는 머리카락이라 천연이라고 해도 대부분 납득 하고.

듀라한이라는 걸 빼면 말이야.

나는 의자에 앉아 세상 청순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인상을 좋게 보이기 위한 밑작업이었다. 이래저래 일단 친구 부모님이니까 좋은 이미지를 남기는 게 좋지.

“나는 애가 또 거짓말 하는 줄 알았는데 정말 친구를 데려왔네요~”

“우리 마리아가 거짓말 하는 애는 아니지. 좀 허풍은 떨지만...”

“아하하...좀 엉뚱하긴 해요.”

“제, 제가 언제 그랬다고요.”

살려줘! 난 이 무간지옥에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아! 나 같은 아싸에게 초장부터 부모님 소개는 허들이 너무 높단 말이야! 나는 포크를 집어 아주머니께서 잘라 오신 사과를 입에 집어넣으며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았다.

맞은편에 앉아계신 두 분은 분명히 웃고 있었지만, 정말로 웃고 있다고 확신할 수가 없었다. 사회생활을 할 때 자주 보게 되는 가짜미소에 가까운 느낌이라, 나는 이 집안이 심상치 않은 내력이 있다고 짐작했다.

아니면 진작에 들켰거나.

그게 아니면 이런 분위기가 나올 리가 없지.

아무리 봐도 친구를 대하는 부모의 분위기가 아닌데? 나도 초등학생 이후로 친구를 집에 데려온 적은 거의 없지만 이렇게 불편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건 처음이었다. 호환이랑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일 때도 이정도로 긴장되진 않았는데.

나는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사과를 씹어 삼키며 이 불편한 자리를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지 가늠했다. 적당히 30분정도 있다가 일 있다고 빠져나가면...그건 너무 노골적인가?

“어릴 때 이후로 처음이네. 그때는 친구들도 곧 잘 데려왔는데...기억하니? 그때 네가 아끼던 인형이 찢겨서 엉엉 울었던 게 기억이 나는 구나.”

“그, 그랬었나요?”

아니 그걸 되물으면 어떻게 해! 마리아의 반응은 명백하게 NG였다. 누가 봐도 수상하잖아. 대답도 한 박자 늦고. 보통 이러면 그때 이야기 왜 하냐면서 성질을 부리던가, 옛날이야기는 왜 꺼내냐고 반응하는 게 보통이잖아!

...아닌가?

나도 오랜만에 친구 집 방문하는 거라 잘 모르겠네.

“하긴 그때가 어렸을 때긴 했단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던가...”

“아아! 그랬었죠!”

“그 날 이후로 친구들은 데려온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다 커서 친구를 데리고 올 줄은 몰랐구나.”

“아무래도 이 나이쯤 되면 전부 바빠지니까요­”

그렇게 말하면 내가 바쁘지 않은 백조처럼 보이잖아 이년아. 어느 쪽이든 이 대화가 평범한 쪽으로 흐르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했다. 의심하기 시작하는 부모님에, 누가 봐도 의심스럽게 대답하는 마리아. 그리고 그 사이에 새우처럼 등짝이 터지기 직전의 나.

그래 내 인생에 이런 고난이 닥치지 않을 리가 없지. 오늘 하루도 나는 고난에 빠질 예정인 것이다.

쭈구리처럼 과일을 삼키며 숨 막히는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아주머니의 시선이 마리아에게서 나로 옮겨지자 막 생활관에 들어선 이등병처럼 허리를 곧추세웠다.

“마리아 친구는 이름이 어떻게 되니?”

“저는 이유진이라고 해요. XX에서 살고 있고요, 방송 일을 하고 있어요.”

이정도면 무난한 자기소개겠지. 일부러 인터넷 방송 부분은 제외했다. 잘 모르시는 분들도 많은데다가, 아무래도 인터넷 방송+여성이라는 요소가 합쳐지면 오해하실 수도 있으니까. 오해할만한 거리는 사전에 차단하는 게 편하다. 분위기를 보니 캐물으실 것 같지도 않고.

“어머어머, 그럼 PD님?”

“아하하, 그렇죠...”

좀 찔리긴 하지만 나는 아주머니의 말에 수긍했다. 여기서 버튜버 라고 말해도 버튜버가 뭔지 잘 모르실테고, 굳이 말할 필요도 없고. 무난하게 대답하면서 넘겨야지. 이 미묘한 분위기에서 괜한 말을 꺼낼 필요는 없었다.

“PD면 연예인도 많이 봤겠다! 혹시 X영웅도 본적 있니?”

“저는 방송국이 아니라 개인 방송 쪽에서 일하고 있어서요. 연예인은 실제로 본 적이 없네요.”

“요즘은 방송국보다 개인 방송이 돈도 엄청 많이 번다는구먼. 방송국들이 개인 방송에 밀려서 죽 쑤고 있다고 하더라고.”

오랫동안 조용히 대화에 참가하지 않으시던 마리아의 아버지가 대화에 참가하셨다. 아무래도 자기가 아는 화제가 나와서 입을 여신 것 같았다.

“요즘은 그렇긴 해요. 아무래도 제 나이대는 이제 TV를 거의 안보다보니까...바쁘기도 하고, TV프로도 폰으로 재방송을 보는 게 더 편하고요.”

“확실히 그 뭐? 네, 네, 네...네로 시작하는 거였는데.”

“아, X플릭스요?”

“아, 그래 그거. 그게 참 편 하드만. 드라마들도 재밌는 건 다 거기 올라오니까 옛날처럼 본방이나 재방송 기다릴 필요도 없고...세상이 아주 좋아졌어.”

편하긴 하지. 요즘 히트작들은 넷플릭스에도 올라오는 편이라 요즘은 다들 TV사놓고 그걸로 보더라. 본방사수도 이제 옛말이야 옛말. 나도 집에 TV없고. 정확히는 비싼데 볼 일도 없어서 아예 장만도 안한 거지만.

“요즘은 그런 서비스가 많이 늘어서 그것만으로도 돈이 꽤 빠져 나가더라고요.”

“허허, 다들 돈 되는 거 아니까 너도나도 시작하는 거지. 나도 그쪽으로 한번 뛰어들어 볼까?”

“참 당신도, 또 그 소리 한다. 그쪽 일은 하나도 모르시는 분이 헛바람만 들어서...”

대화의 물꼬를 트니까 아까보다는 한결 부드러운 분위기라 다행이기는 한데, 마리아는 여전히 대화 주제를 따라가지 못하는 듯 말이 없었다. 나도 아싸 찐따 기질 충만한 인간이라 걱정하긴 했는데, 잉여신아, 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걸 하면 안 되겠니?

방금 작게 “X플릭스가 뭐지...?”라고 말한 거 나한텐 다 들렸거든? 진짜 게임이랑 X수질만 하고 살았나? 어떻게 모르는 거야? 요즘은 나이 지긋하신 분들도 다 아는 걸...? 세연이도 이 여신의 행태가 어처구니가 없는지 마리아의 머리에 턱을 괸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이, 요즘은 백세시대라 지금부터라도 배워가면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영국의 배우 X리스토퍼 리는 83세에 가수로 첫 데뷔를 했으니까요.”

어디까지나 립서비스지만, 마리아의 아버님은 내가 한 아부가 마음에 들으셨는지 입가의 미소가 한층 더 짙어지셨다.

“역시 방송 일을 해선지 똑똑하네.”

“딸이 반이라도 닮았으면...”

“저, 저도 어디 가서 멍청하단 소리는 안 들어요.”

아 이럴 땐 적당히 흘려 넘기는 게 좋은데. 안 그래도 분위기 묘한데, 거기서 어그로를 끌면...

“아이고, 어딜 나가야 그런 소릴 듣지!”

“맨날 방구석에서 컴퓨터만 만지고 있으면서 그런 소리가 나오니?”

아버님이 답답하다는 듯이 말을 꺼내고, 어머님이 이어서 추가타를 날린다. 두분 케미 좋으시네. 좀 짜고 치는 것 같은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요즘은 일도 하고 있잖아요.”

얼핏 듣기엔 부모자식끼리 평범하게 티격태격하는 것 같지만, 마리아의 부모님의 눈빛에는 명백한 의혹이 남아있었다.

“그래도 사람이 밖에 나가서 일해야지. 방구석에 맨날 박혀 있으면 몸에도 안 좋아.”

“흡, 내가 알아서 할게요.”

“뭐 마리아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으니까 알아서 하지 않을까요?”

인간생활 반년차인 응애지만, 어쨌든 신체 연령은 그런 소리 들어도 할 말 없는 나이니까. 24살이면 여자는 군대도 안가니 학교 졸업하고 직장 다니거나 대학교 졸업반 다닐 정도의 나이지.

“하긴 이젠 제 스스로 앞가림 할 나이지...”

“그렇죠...”

그렇게 말하고선 두 분은 나와 마리아를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쩐지 기시감이 느껴지는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굳이 마리아한테 친구를 데려오라고 한 목적이 평범하게 친구가 정말 있는지 확인하는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 당연하죠. 제가 어린애도 아니고요...”

“리아야, 기억하니?”

“네?”

...공기가 바뀌었어. 눈동자를 굴려 마리아의 부모님을 번갈아 쳐다보니, 무언가 결심한 듯 한 얼굴이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닥치고 있기로 했다. 이건 내가 해결할 일이 아니고 마리아가 알아서 해야지.

“반년 전에 나가면서 했던 말 기억하니?”

“반년 전에? 어, 기억이 안 나는데요...”

마리아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더듬더듬 대답했다. 반년 전이면 마리아가 빙의하기 전의 일일까.

“그날, 너는 다시는 이 집구석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했단다.”

어...음...저 나가면 안 될까요?

“그리고 나는 그날 새벽에 네가 차에 치였다는 말을 들었어.”

아주머님은 목이 메인 듯 앞에 놓인 커피를 잠시 들이키시더니, 내려놓고는 말을 이었다.

“목격자였던 네 친구가 말하기를, 네 몸 이곳저곳이 있을 수 없는 방향으로 꺾이고, 피를 엄청나게 흘려다고 하더구나. 그리고 친구가 경찰을 부르려고 전화를 건 순간, 사라졌다고 들었단다.”

갈수록 울음을 억지로 삼키는 듯한, 목소리에 나는 애써 어색하게 웃으며 마리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마리아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 부모님에게는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바로 옆에 앉은 내게는 보였다.

명백하게 귀찮아 하는 얼굴. 무미건조한 반응에 나는 속으로 탄식했다. 이거 글러먹었구만. 아직 인간패치가 덜 된 모양이다.

“그 소식에 놀라서 너를 찾아다녔는데, 그날 아침에 멀쩡한 모습으로 집에 들어오더구나.”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거구나.

“리아야, 아니 너는 누구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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