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듀라한이 되어버렸다-159화 (159/352)

〈 159화 〉 141.나는 새치가 싫다(3)

* * *

후. 참자. 여기서 소란 일으켜봐야 좋을 것도 없다.

옆에 유라도 있고, 나도 일이 커지는 건 싫다. 어찌되었든 나는 몸을 사려야 할 입장이고, 이곳은 너무 보는 사람이 많았으니까.

남자였으면 이딴 일 생기지도 않았을 텐데. 안 그래도 새치 때문에 짜증나는데 뭔 이상한 새끼까지 와서 지랄일까. 평소에도 이런 식으로 추파 던지는 놈들이 있기는 했지만, 오늘 들러붙은 놈은 유독 끈질겼다.

뭐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이 지랄인건 아니시겠죠? 첫 번째부터 잘못 찍었는데 퍽이나 넘어가겠다.

...주변 사람들 시선에도 아랑곳 않는 이 미친놈은 어떻게 처리하지? 나는 주변사람들이 웅성웅성 대는 소리를 흘려들으며 일단 유라를 내 뒤로 숨겼다. 유라가 내 치마를 붙잡고 덜덜 떠는 느낌이 전해졌다.

아, 유라 이런 거 엄청 무서워하는데. 오늘도 같이 자게 생겼군.

“뭐? 너도 나 무시 하냐?”

...대낮인데 술 취했냐? 아니면 뭐 내추럴 본 미친놈? 얼굴은 멀쩡해 보였는데, 어쩌면 티가 나지 않는 타입인지도 모른다. 나는 어이가 없어 지 혼자 지랄하는 남자를 흘겨보다가, 휴대폰을 들었다.

왜냐고?

왜긴 왜야.

이럴 땐 가장 간단한 해결책이 있는 법이야.

“여보세요, 경찰이죠?”

“시발년아, 무시하지 말라고!”

미친놈이 나를 향해 팔을 번쩍 들었다. 나는 짐짓 일부러 살짝 겁먹은 철을 하여 팔로 얼굴을 가렸다. 내 얼굴이 자연스럽게 가려지고, 미친놈은 다른 사람에 의해 제지당했다. 진짜 뭐하는 놈이야.

오늘 운수가 정말 사납다. 이런 미친놈이 꼬일 줄은 몰랐는데. 아니 어떻게 보면 액땜한다고 봐도 될지도 모른다. 내 운수가 보통 사나워야지. 내 인생 심심하지 않게 해주겠다고 아주 지랄하는 걸 보면 어이가 없어 기가 찰 지경이다.

“어어?”

“거기 조심하세요!”

“무시하지 마! 시발 년아!”

미친놈이 운동이라도 좀 한 모양인지, 기어코 사람들을 떨쳐내곤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손에는 날카로운 날붙이를 든 채였다. 묻지마야? 묻지마냐고! 시발 뉴스로는 많이 봤는데 왜 이걸 실제로 보냐고!

진짜 인생 주옥같네!

나는 내 주변에 울려 퍼지는 비명소리들로 귀를 틀어막고 싶은 기분을 느끼며 몸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까먹고 있었다.

유라가 패닉 상태라는 것을. 유라를 붙잡고 이동하기엔 공간도, 시간도 부족했다.

결국 엉거주춤한 상태로 서 있게 된 난 나를 향해 휘두르는 날붙이를 막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나와 미친놈의 못해도 머리 하나는 차이는 신장차이와 팔 길이 때문에 제대로 막지 못하고... 붉은 무언가가 시야를 스치며 둔탁한 타격음이 들렸다.

...뭐야?

“어?”

“손님분 괜찮으세요?”

“아, 예. 괜찮아요.”

“경찰 분들 곧 오신다니까 잠시 저쪽에서 쉬고 계세요. 이 사람은 저희가 제압하고 있을 테니까...”

“와, 방금 봤어? 권투하시던 분이신가? 주먹이 깔끔하게 얼굴에 박힌 거 봤어?”

“나 사람 죽빵맞고 KO당하는 거 태어나서 처음 봤다 야...”

도대체 무슨 일인데? 딱히 손에 닿는 감촉 같은 게 없었는데? 나는 그냥 찌르려는 거 막으려고 팔을 내밀었을 뿐이고...뭔데?

“XX경찰서에서 왔습니다. 가해자는 어디 있습니까?”

나는 상황이 이해되질 않아 유라의 등을 토닥여 주면서, 경찰이 묻지마 폭행범한테 미란다 원칙을 읊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도대체 머선 일이고?

붉은색...붉은색...거기서 있을 법한 붉은 색은 내 새치 밖에 없는데...?

이젠 내 머리카락에 자동 요격 기능이 생긴 거야? 조금만 있으면 내 머리카락이 파란머리 아조씨가 쓰는 화살처럼 지 혼자 날아다니면서 적들을 우수수 썰어버리는 건 아니겠지...?

부정하고 싶은데 부정할 수가 없어...

나는 미친놈이 잡혀가는 것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다른 사람 눈에는 갑작스런 묻지마 범죄를 당했다는 사실에 충격 먹은 피해자처럼 보였겠지.

그런데 이거, 기밀관리본부에 말해야 되나? 내 머리카락이 지 멋대로 움직인다고? 내가 생각하기에도 미친 소리 같지만, 진짜 사실인데 뭐 어쩌겠나. 나는 유라와 함께 가게를 나섰다.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 많아서 쉬기는커녕 우리 속의 동물이 된 느낌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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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 하시네요...”

“진짜. 내가 도대체 전생에 무슨 짓을 저질렀기에 이런 주옥 같은 일만 일어나는 거야...”

“주인공은 언제나 사건에 휘말리는 법이니까요.”

“주인공? 무슨 주인공?”

“글쎄요...후후.”

누가 여신 아니랄까봐 속 시커먼 것 좀 봐. 나는 마리아가 수상쩍게 웃는 모습을 보며 몸서리를 쳤다. 결국 연락이 닿아서 만날 수 있게 된 건 좋은데, 벌써부터 피곤하다. 나는 이 새치문제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은데.

이젠 옆머리의 반 정도가 붉은색이 되어서 미치도록 강렬한 헤어스타일로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고. 내가 락커도 아니고 이런 머리로 언제까지 살아야 하는 거야! 나는 성실하게 방송으로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일 뿐인데 홍대병 말기인 사람처럼 보이는게 얼마나 주옥같은데!

맨날 가는 마트 아주머니가 묘한 눈으로 쳐다봐서 환장할 것 같아! 이미 백발만으로도 충분히 시선 끄는데 강렬한 빨간색이 섞이니까 시선강탈도 이런 강탈이 없다. 덕분에 오랜만에 모자로 머리카락 안보이게 가려놓고 다니게 돼서 귀찮아 죽겠다.

나는 관종이야! 하지만 인싸관종은 아니라고!

“그래도 무사해서 다행이네요. 그 정도로 다치지는 않겠지만 묻지마 범죄는 워낙 갑작스럽게 일어나서 대응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렇긴 하지...나 아니었으면 누구 하나 크게 다쳤을걸.”

“그렇겠죠. 인간은 몸은 연약하니까...”

나는 시켜놓은 유자차를 홀짝이며 마리아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윤기넘치는 태닝피부에 반짝반짝 빛나는 금발, 그리고 육감적인 몸매는 큰 노출이 없음에도 육감적으로 느껴졌다. 이제 가슴 크기는 비빌 수 있으려나.

에반데...큰 가슴은 달려있는 게 아니라 달려있는 걸 보는게 진리라고. 내가 달고 있으면 불편하기만 하지. 작을 땐 몰랐는데 커지니까 인대가 끊어진 다는 둥 무겁다는 둥 하는 소리가 왜 나오는지 알겠더라.

“그래서...머리카락 색이 왜 변하는지 알고 싶어서 저를 호출한 건가요?”

“응. 몸 안쪽에서 식객 노릇하던 여신님이 요즘 조용하거든...”

“...가 조용...? 도대체 무슨 일이...”

뭐라고? 마리아가 뭐라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너무 작아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마리아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커피잔을 바라보며 조용해 졌다가, 이내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혹시, 몸에 문신 같은 게 생기지 않았나요?”

“어...뒷목에 생긴 거 같아.”

나는 뒷목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신경쓰이기는 하는데 뭔지 알 수가 있어야지. 마리아는 내 뒷목에 새겨진 문신 비슷한 걸 직접 볼 생각이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그러니까, 가슴이 흔들린단 말입니다. 바스트 모핑은 현실에선 너무 파괴력이 크니까 그만둬 주십쇼...

“흠...한번 직접 확인해볼게요.”

마리아는 내 옆에 앉아 뒷머리를 걷어내고 뒷목을 만지작 거렸다. 아 간지러워. 역시 내가 만지는 거랑 남이 만지는 건 느낌이 달랐다. 마리아의 부드러운 손길이 내 문신을 훎어내리는 느낌이 느껴지자, 나는 나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금태양 아니랄까봐 손길이 묘하게 야릇했다. 30초 정도 내 뒷목을 어루만지던 마리아는 이내 결론을 내린 듯, 다시 자리로 돌아가 입을 열었다.

“흐음...봉인이네요.”

X의 봉인검? X귀봉진? X혼석?

내가 아는 봉인은 그거 밖에 없는데. 그러니까 그 노인이 뭔가 수작을 부려서 여신님을 봉인했다는 건가?

“정말 강력한 봉인이에요. 방식은 요즘은 볼 수 없는 정말 오래되고 까다로운 방식이지만, 고대의 마법만큼 그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한다면 강력한 마법이 없죠. 아마 이건 자기 목숨을 제물로 바쳐서 만든 것 같네요...”

“풀 수 없는 거야?”

“지금 저희 힘으로는 힘들어요. 옛날이라면 쉽게 풀었겠지만 요즘은 신들이 힘을 행사하는데 제약도 많고 약해지기도 해서...”

“제약이 있어?”

그럴 거 같기는 했는데. 신들이 정말 신화처럼 힘을 뻥뻥 써댔다면 지금도 숭배받았겠지. 지 심심하다고 자연재해 일으키는 인성파탄자들이 모인 게 신이잖아. 신들이 잊혀진 게 이런저런 이유가 있을 것은 서브컬쳐 경력 20년차 듀라한이라면 모두 다 아는 사실이다.

아님 말고.

“신화가 아직 살아 숨쉬던 시절에는 육체도 있었고 제약도 없었지만, 지금은 육체도 없고 제약도 있어요. 저희는 하청으로 먹고사는 중소기업 사장 같은 존재라, 일감 주는 쪽에서 태클 걸면 아무것도 못하거든요. 죽은 사람 몸 빌려서 겨우 현계 하는 게 전부에요.”

묘하게 생생한 비유일세. 근데 뭐? 죽은 사람? 그럼 내 옆에서 조곤조곤 말하는 거 좀비야?

“살아있는 사람 몸보단 죽어있는 몸이 빙의하기 쉬운데다가, 몸이 꽤 마음에 들었거든요. 마침 죽어줘서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제 귀에 대고 소름도는 소리 좀 그만 하십쇼. 화장실 가고 싶어진단 말이야.

“뭐 대충은 사정은 알겠고. 그래서 이 빨간 머리는 도대체 왜 생기는 건데요?”

“...몰라레후!”

“?”

이 여신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마리아를 쳐다보았다. 마리아는 내 반응이 시원찮았던 건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대답하면 된다고 들었는데...아니에요?”

도대체 어떤 놈이 그딴 걸 가르쳐 준건데!

“아니...그건 둘째치고, 결국 모른다는 소리?”

“정확히는 대답할 수 없다는게 맞겠네요.”

“엥? 왜요?”

“...때가 되면 알게 될 거에요. 생각보다 민감한 사안이라, 나쁜 일은 아닐 거라는 것만 아시면 될 것 같아요.”

“아...넵.”

“그리고 유진씨. 저랑 함께 어디 좀 가지 않으시겠어요?”

“네?”

“제가 해야할 일이 있는데, 도움을 좀 받고 싶어서요...”

갑자기? 왜?

“그, 자세한 건 가면서 이야기 할테니까 한번만 도와주세요.”

“아, 넵.”

나는 박력 있게 말하는 마리아의 기세에 눌려 마리아의 부탁을 수락했다.

나는 마리아와 함께 카페를 빠져나와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마리아의 집을 향해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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