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화 〉 137.용서받지 못한자(5)
* * *
“이거 정말 괜찮은 거 맞나?”
나는 온갖 곳에서 끌어온 LPG가스통과 힘껏 끌고 온 자동차들을 모아 놓으니 어쩐지 불안했다. 작전대로 안 되면 이거 나만 좆되는 거 아냐? 딱히 뾰족한 수가 없어서 따르기는 했지만 이거 진짜 미친짓 같은데요.
[...아까의 마차와 비슷한 폭발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느니라.]
그렇겠...지?
나는 승용차 보닛 위에 쭈그려 앉아 골목 너머를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더 오래 걸리는데? 이쯤 되면 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너무 먼 곳으로 이동한 건지 용은 실루엣은커녕 그 특유의 질질 끄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유진아, 이대로 안 오면 어떡해?”
“뭘 어떻게 해. 닭 쫒던 개 되는 거지.”
이대로 안 오면 에반데. 나는 적당히 몸에 기대어 놓은 작살을 만지작 거리며, 숨을 들이켰다. 세연이 말대로 안 오면 헛짓거리 한 게 되는데.
“올 생각이 없나본데...”
그러면 오게 만들어야지.
“도!마!뱀! 새! 끼! 야! 이! 좆! 같! 은! 새! 끼! 숨! 지! 말! 고! 튀! 어! 나! 와! 라!”
강화된 성대에서 나온 샤우팅은 확성기를 대고 말한 것 마냥 소란스러웠다. 이 골목 주민들 전원에게 민원 폭탄을 받을 수 있는 강렬한 샤우팅이 안개를 뚫고 퍼져나갔다. 나는 차 보닛위에서 내려와 먼지투성이가 된 옷을 털었다.
이정도면 오겠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이정도면 어그로는 충분히 끌었다고 생각해. 설마 이랬는데도 안 오지는 않겠지. 사람이었다면 모를까, 저건 일종의 NPC에 가까운 존재 아닌가. 고의 적인 어그로를 간파해낼 수 있을 정도의 지능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지능적인 놈이었으면 나를 외딴 곳으로 몰아세우든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아냈든 했을 거다. 애초에 여긴 저쪽의 영역이고, 난 덫에 걸린 가여운 아기 새에 불과하니까. 삐약 삐약.
“유진아, 오, 오고 있는 것 같아!”
아 그러네. 나는 내 시야에 잡힌 희미한 실루엣을 보며 작살을 쥐었다. 나는 작살을 투척하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이런 거 배운 기억이 없는데 몸이 알아서 자세를 취하는 걸 보면 좀 오싹하기도 하네.
하나, 둘, 셋!
나는 작살을 전력으로 용의 몸통을 향해 던졌다. 어림짐작으로 핵이 있을 것 같은 위치였다. 핵에 꽂히면 다행이지만, 아니어도 딱히 상관은 없었다.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용의 관심을 끄는 것이었으니까.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작살은 안개 너머로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땅을 울리는 포효가 울려퍼졌다. 명중한 모양이었다.
“세연아! 회수해 와!”
“뭐?”
“빨리! 햄버거 하나 추가!”
나는 햄버거에 환장한 세연이가 안개 너머로 사라지는 걸 보자마자 전력으로 모아놓은 차를 밟고 반대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뒤를 흘끗 보니, 고통에 울부짖던 용이 다시 한 번 브레스를 뿜어내려 하고 있었다!
“이! 쪽! 이! 야! 도! 마! 뱀! 새! 끼! 야!”
나는 더욱 더 속도를 내며 차 뚜껑을 밞고 달렸다. 남의 주책에 주거침입해서 긁어모은 LPG가스통과 기름, 골목에 있던 자동차를 죄다 끌어와 바닥이 보이지 않는 골목길은 이제 곧 이 결계를 깨트리는 도화선이 될 거다.
X이클 베이 아조씨가 보면 엄청 좋아하시겠네.
“예! 술! 은! 폭! 발! 이! 다!”
나는 다시 한 번 머리카락으로 몸을 둘둘 말고, 바닥에 머리카락을 박아 넣었다. 내가 바닥과 벽에 있는 힘껏 머리카락을 박은 순간, 귀를 먹먹하게 하는 폭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브레스가 차들 사이에 착탄한 모양이었다.
나는 고치 속에서 귀를 틀어막았다. 계속 듣고 있으면 고막이 터져버릴 것 같아! 이걸 직관으로 보지 못한다는 게 아쉽네! 차 수 십대와 가스통과 기름을 부어서 만든 화려한 폭죽쇼인데! 아무리 튼튼하게 만든 결계라도 현대 문명의 대폭발을 견딜 수 있을까?
하늘을 날며 나는 생각했다. 역시 땅바닥에 머리카락 박는 정도로는 무지막지한 충격량을 버틸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하긴 사람이 수십 미터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연쇄 폭발일 텐데 바닥이고 뭐고 다 부서졌겠지.
다행히도 이 주변은 주택이 많아서, 나는 어느 빌라의 옥탑방에 불시착 하는 것으로 멈출 수 있었다. 나는 착지하자마자 고치를 풀고 부서져 개판이 된 옥탑방에서 빠져나와 밑을 내려다 보았다.
“...와.”
안개가 옅어져 있었다. 그리고 마치 전쟁터라도 된 것 같은 분위기의 골목, 아니 ‘골목길이었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골목을 이루던 벽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아직도 활활 불타고 있는 차들, 검게 물든 건물들, 무너진 주택.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진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이게 현실이 아니라서 다행이야.”
[이정도면 결계에 심각한 손상이 갔을 것이느니라.]
“유진아, 나 왔어!”
“울어라! 지옥참마도!”
“우욱...너무해에에에엑!”
나는 다시 지옥참마도를 작살로 변신시키고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투신 자살이 아닙니다. 그냥 3층짜리 건물에서 뛰어내렸을 뿐이에요! 바닥에 사뿐히 착지한 나는 용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재빨리 달려 나갔다.
한 호흡이라도 늦어지면 내가 불리해진다. 옅어진 안개 사이로 보이는 용은 큰 충격에 형상을 제대로 유지하기도 힘든 건지, 금간 유리처럼 몸 곳곳에 균열이 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향해 브레스를 쏘려고 했지만, 아까와는 다르게 확연하게 불덩이가 모이는 속도가 느려졌다.
이정도면 충분해!
[창대의 정 가운데를 잡고, 오른 발에 힘을 주고! 전력으로 던지 거라!]
“이제 집에 좀 가자!!!”
나의 손에서 다시 한 번 작살이 던져졌다. 내 손을 떠난 작살이 균열 사이를 파고들어 용의 몸통에 꽂혔다. 나는 혹시 모를 공격을 대비해 멀찍이 물러서서 용의 상태를 확인했다.
“...해치운거야?”
“하지마 이 햄버거 성애자야!”
너 저 놈들 편이지? 햄버거 사주기로 한 거 싹다 취소해 버릴까 보다! 어디서 마법의 주문을 외치는 거야?
다행히도 살아있는 놈이 아니라 통하지 않은 건지 몰라도, 용의 몸을 달리는 균열이 점점 더 벌어지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마치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조각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윽고 수백개의 조각으로 무너져 내린 용이었던 것에게 다가가니, 검게 물든 보석 같ㅇ느 것이 보였다.
[핵의 수명이 다했느니라. 이제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느니라...]
그럼 일단락 된 건가. 이제 이 결계를 만든 놈이랑 마법진만 찾으면...
“일단 돌아가서 안전한지 확인 좀 해볼까.”
솔직히 너무 크게 날려버려서 두 사람이 안전한지 확인을 하고 싶었다. 그 복잡한 골목길이 죄다 날아가서 평지가 되어버린 만큼 다시 돌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테니까 돌아가는 것은 큰 문제가 없을 거다.
이정도면 마법진을 찾는 것도 큰 문제가 안 되겠지?
“세연아, 가...”
“...놀라워. 내 생에 이런 참상은 카타흐가 내뱉은 숨결이후로 처음이군.”
걸걸하면서도 묘하게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한국에서는 정말 보기 드문, 아니 이 세계에서도 정말 보기 드문 판타지 풍의 로브를 입은 노인이 한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유라야?! 깐프씨?!”
두 사람은 의식이 없는 건지, 마치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노인의 양 옆에 서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마법을 사용해서 최면이라도 걸어버린 걸까. 최악의 상황에 처했음에도 거세게 뛰는 심장과 다르게 머리는 차가웠다.
아니, 강제로 차갑게 만드는 느낌에 가까웠다.
[진정하거라.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침착하는 것이니라.]
“저 아이들에게 위해를 끼칠 생각은 없네.”
“...시발,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믿지 못한다 해도 어쩔 수 없네. 그 것만 넘겨준다면, 조용히 물러나도록 하마.”
어떻게 해야 되지? 마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 섣불리 행동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것이 뭐야? 여신님은 아는 거 없어요?
[...]
왜 대답이 없으시지. 나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평소라면 조잘거려야 할 여신은 조용하고, 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해 있었다. 사고가 자꾸 꼬인다.
어떻게 해야하지?
“그게 도대체 뭔데?”
“...모르는가. 하기야, 아주 약간의 진실로 인간을 장난감마냥 가지고 노는 것이 신들의 취미이니 이상할 것은 없군...”
[...현혹되지 말거라. 그대를 꾀어내기 위한 감언이설에 불과하느니라.]
“그대의 몸에는 여신이 깃들어 있겠지. 틀린가?”
“...맞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이 아슬아슬한 대화를 좀 더 이어가기로 했다. 나는 모르는 것이 많았고, 저 노인은 아는 것이 많았다. 그것만으로도 대화를 이어나갈 이유는 충분했다.
“그 여신이 가장 중요한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나 보군. 그대는 우리 세계가 멸망할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헛웃음을 흘렸다.
“왜 우리 세계가 멸망한다고 생각하나?”
“...모르겠는데.”
난 멸망할 세계라는 것 말곤 아는 게 없다. 노인은 잠시 기침을 하곤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가 멸망하는 원인은...신들 때문일세.”
노인이 담담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