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화 〉 막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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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그럼 들어가서 쉬세요! 나중에 또 합방할 생각 있으시면 연락해주시구요!”
시아, 본명 송시영은 미안함 가득한 이유진의 사과를 웃으며 받아주었다. 급작스럽게 끝나기는 했지만, 어차피 분량을 뽑을 만큼 뽑았고, 방송의 내용도 아주 만족스러웠다. 도대체 몇 개의 클립이 나왔을까.
한 편에 이정도 분량의 클립이 나오기도 쉽지 않을 텐데. 시영은 X튜브와 X위치를 뒤적이며 생각했다.
“오늘 합방은 어때?”
“정말로 유익한 방송이었어. 구독자도 평소보다 많이 늘었고. 이래서 대기업이랑 합방을 하는 거라니까. 봐바. 구독자가 한 순간에 5천명이나 늘었어.”
8만 명 남짓한 그녀의 X튜브 구독자가 5천이나 늘어난 것은 희소식이었다. 한국 버튜버 판은 워낙 작아서 당장 시영도 버튜버중에서는 꽤 잘나가는 취급받는 게 현실인데, 5천이나 늘었다는 건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말이 5천이지, 합방 영상을 편집해서 업로드하면 그걸로 유입되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 천명 정도는 더 유입되지 않을까. 시영의 예상이었다.
“솔직히 나한테 의뢰를 맡겼던 사람이 합방제의를 해서 의아했는데, X튜브 구독자 수만 35만대인 대기업이라서 깜짝 놀랐다니까? 그런 대기업이 뭐가 아쉬워서 버튜버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쪽에 좋은 인맥이 생긴 건 이득이야.”
언니이자 매니저노릇을 하고 있는 수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방송기재를 정리했다. 초창기부터 시영과 함께 버튜버 판에 뛰어들었던 그는 묵묵히 그녀의 등을 받쳐주는 역할을 자처하며 시영을 지켜보았기에, 시영이 듀라를 얼마나 고평가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채팅창을 관리하면서 같이 방송을 보던 매니저도 듀라가 왜 대기업 스트리머인지 충분히 느꼈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람을 홀리는 목소리라는 게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마성의 목소리, 그에 반해 털털한 행동과 어떤 상황에서도 스피커가 비지 않는 진행능력, 목소리에서는 예상할 수 없는 격렬하고 다채로운 리액션 까지. 그 갭이 매력이라고 시영은 생각했다.
“갑자기 끝난 건 아쉽지만...다음 기회가 있으니까.”
송시영, 버튜버 시아가 3년 동안 버튜버판에서 나름 자리를 잡으면서 이 정도 기회를 잡은 건 처음이었다. 한국 버튜버 판이 마이너의 극을 달리기도 하고, 경쟁자도 워낙 적어서 근 2년 동안 구독자 3만 명도 넘지 못하고 외주를 받으면서 버텨오지 않았던가.
외주도 받게 된지 이제 1년 남짓인데다 방송을 병행하니 받을 수 있는 양에 한계가 있어서, 벌이가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진짜, 왜 이렇게 변해가지고...”
시영은 3년 전에 생겨버린, 귀와 꼬리를 만지작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꼬리야 벨트처럼 감고 다니거나 치마 밑에 숨기면 그만이지만, 귀는 워낙 크기도 하고 숨기기도 쉬지 않아서 매번 모자를 쓰고 다녀야 하니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덕분에 시영은 그토록 원하던 취업은 꿈도 못 꾸고, 당시엔 얼마 되지도 않는 실력으로 커미션을 받아가며 근근이 먹고 살아야 했다. 그렇게 근근이 살아가다 자연스럽게 해보고 싶었던 스트리머 쪽으로 넘어가면서 이제는 나름 인지도 있는 버튜버가 되기는 했지만...
“후. 나도 대기업 되고 싶다. 대기업만 되면 이젠 좀 넒고 깨끗한 곳에서 살고 싶어...반지하 생활도 벗어나고. 듀라 정도 벌면 좋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겠지?”
“이젠 나름 저축도 하고 있으니까, 몇 년 만 더하면 되지 않을까?”
“그럼 좋겠다~”
시영은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보다 밀도 높은 방송이었기에 평소보다 더 목이 따갑고 몸이 무거웠다. 시영은 침대에 곧바로 몸을 던지려다, 낌새를 눈치 챈 수영에게 꼬리를 붙잡혀 저지당했다.
“자려면 씻고 자.”
“으피곤한데...”
“얼른.”
“알았어...”
수영은 방 밖으로 나가는 시영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확실히 지표가 높네...영상 편집해서 올리면 유입도 더 늘 것 같고...”
시영이가 이제 좀 빛을 보려나 보다. 수영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시청자들의 반응은 체크했다. 평소보다도 더 댓글이 많고 반응도 호의적이라, 이런 추세를 유지한다면 넘을 수 없을 것 같았던 10만의 벽을 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후. 이제 저녁준비나 해야지.”
오늘은 좀 더 호화로운 저녁을 준비해도 될 것 같았다.
콧노래를 부르며, 수영은 부엌으로 향했다.
“밤인데도 밝군. 아주...밝아.”
파르사드는 한 건물 옥상에서 네온사인과 전봇대 불빛이 반짝이는 광경을 보며 황홀감을 느꼈다.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화려한 야경. 이질적이었지만, 동시에 사람 사는 냄새가 느껴지기도 했다.
정체 모를 물건을 귀에 대고 다니는 사람들, 입에 군침이 도는 음식 냄새, 수많은 소리들.
그의 세상에선 사람이라곤 이미 뼈다귀가 되어 굴러다니거나, 그 뼈다귀조차 풍화되어 흔적도 남지 않은 존재들뿐이었으니, 파르사드는 이 광경을 본 것만으로도 눈물이 흐를 수밖에 없었다.
“아아...언젠가 나의 나라도 다시...”
사람은 돌아오지 않겠지만, 사람이 살아갈 터전은 다시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인간의 생명은 잡초보다 질기다. 그가 발견하지 못한 곳에서, 아직 인간들이 살아 숨쉬리라 믿었다. 그들이 다시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드는 것이야 말로 어리석은 선택으로 모든 것을 잃은 노인의 마지막 미련이자 집념이었다. 그저 망집에 불과하지만, 상실한 것을 다시 채우려는 것이야 말로 인간의 본질이었으니까.
노인은 들고 있던 지팡이 끝으로 천천히, 힘있게 바닥에 도형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법진을 그리기 위한 밑준비였다.
그가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선, 복잡한 마법이 필요했으니까.
비틀거리는 몸으로 마법진을 그려낸 그는 품에서 철저하게 밀봉해둔 손가락을 꺼내 마법진 가운데에 올려놓았다.
“!*@$^!@*!^$&!...”
적막한 건물 옥상에서, 주문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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