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듀라한이 되어버렸다-134화 (134/352)

〈 134화 〉 120.어쩐지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저녁(1)

* * *

“장기백! 장기백 시발! x맨틱 웨폰도 틀었는데!”

내 처참한 재련결과와는 반대로 경쾌한 노랫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노래가 좋아서 더 빡치네?

­ㅈㄱㅂ ㅈㄱㅂ신나는 노래~너도 함께 불러보자~

­어떻게 1340가는데 장기백이 연속으로 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날 이후로 2주가 지났다. 나는 하겠노라 대답을 하긴 했지만, 별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마리아도 그냥 때가 되면 부를 테니 기다려 달라 하기도 했고.

나는 언제나처럼 똑같이 방송을 하고, 똑같이 밥을 먹고, 똑같이 잔다.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하긴 이야기 하나 했다고 세상이 극적으로 바뀌면 그게 판타지지.

판타지 맞기는 하지만.

아무튼 나는 요즘 스트리머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는 x스트아크를 열심히 플레이 하는 중이었다. 요즘 다 x위치에서 이것만 하는데 나도 안할 수는 없고, 시청자들도 왜 안하냐고 성화니까 등쌀에 못 이겨서 어제부터 시작했다. 근데 이거 재련 좀 빡치네? 남들 다 안 걸린다는 저스펙 구간 장기백을 3번이나 보네?

가챠에서도 줄곧 천장 찍더니 이젠 RPG에서 마저 강화 천장을 찍어야 한단 말인가! 으아아! 왜 K­RPG들은 죄다 강화시스템을 넣는 건데! 그냥 해외 게임처럼 좀 파밍하는 식으로 놔두면 안 되나?

어릴 적 터트려버렸던 x파 13강 콜트의 트라우마가 다시 터질 것 같아!

빛이라매! 빛이라매! 이건 그냥 DOOM이잖아!

[고통을 받으려고 게임을 하는 건지, 고통에서 재미를 느끼기 위해 게임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느니라.]

둘 다에요. 보는 입장에선 스트리머가 고통 받는 게 즐거울 수밖에 없고, 하는 입장에선 고통에서 재미를 느끼게끔 하는 거죠. 일이 잘 풀려도 좋고, 안 풀려도 좋고. 그래서 대기업 반열에 오른 방송인이 돈을 복사한다는 소리를 들어요.

일단 선을 씨게 넘지만 않으면 적절한 리액션 만으로 돈이 왠만한 직장인 이상으로 벌리니까...그래서 머기업 스트리머가 되려는 사람도 많죠. 이미 레드오션이라 성공하긴 어렵지만, 어떻게든 성공하고 나면 문자 그대로 돈 복사가 가능한 직업이고. 요즘은 이미지도 그렇게 까지 나쁘지는 않고. 일단 이시국에 회사원이나 자영업자는 정말 힘들어서. 미래가 없어 미래가. 세상이 갈수록 ㅈ같아져서 평생직장은 개뿔, 3년도 버틸랑 말랑한데 누가 회사원이 되고 싶겠어. 들어가도 사람 취급 받기도 힘든 시대인데.

시대가 직장인들한테 너무 가혹해.

“1340까지는 잘 붙는다며! 표기 확률이 50%를 넘어가는데 왜 안 붙는데! 이 겜도 혹시 확률 조작 있어? 이거 나 고통 받게 하려고 일부러 조작하는 거지?”

­그게 보통인데 어떻게 저렇게 안 붙냐 ㅋㅋㅋ

­ㄹㅇㅋㅋ

그러니까! 도대체 나는 왜 이런 게임만 하면 운이 나락으로 가는 거야! 그냥 좀 평범하게 찍먹 해보려고 해도 이래서 내가 RPG게임을 못해! 언제나 강화에서 미끄러지고 엔드컨텐츠 맛 좀 보려고 하면 입구 컷 당하고!

왜 rpg겜은 등산장비를 산꼭대기에 올려놓고 ‘파밍을 즐겨보세요!’이러는 건데? 놀리는 거야? 능욕하는 거냐고!

“후...그래도 어찌어찌 찍었으니 오레오인지 오레하인지 한번 가보죠.”

­이왕이면 좀 더 재련하고 가는 게 편함.

“그럭저럭 세팅 됐으니까 그냥 트라이팟 같은데 가서 해보면 되지 않나?”

그렇게 고통의 시간을 끝내고 파티 컨텐츠에 도전해보려는 순간이었다.

띵동~

경쾌한 소리가 내 귀에 희미하게 들려왔다. 초인종이었다. 지금 시간이 저녁 7시인데 이 시간에 누가 왔지? 한솔이도 나도 방송할 시간이라 이 시간에 우리 집을 방문할 사람이 많지는 않을 텐데...

“잠시 만요.”

나는 헤드셋을 벗고 머리를 목 위에 얹었다. 한솔이면 상관없지만 다른 사람이면 좆 되는 건 나니까 당연히 보통 사람인 척 해야지. 나는 급하게 달려가 현관문을 열었다.

왜 이렇게 어두...워? 기이하리만큼 어두운 복도에, 나는 문을 열고 주변을 확인했다. 내 현관문 앞에 정체불명의 검은 벽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옷자락 같기도 했고, 커튼 같기도 했다. 어느 쪽이던 이런 게 왜 현관 앞에 있어?

“뭐지...?”

“안녕하신가! 힘쎄고 강한 저녁. 만일 내게 물어보면 나는 @(#!&y#!”

“깜짝이야! 뭐라고요?”

목소리한번 우렁차네! 호랑이기운이 솟아나나 보네!

[아해야. 이쪽 세계 사람이 아니도다...]

이세계인? 저기 가지세계 쪽이야? 근데 나한테 그런 놈이 왜 와? 나는 경계하며 거실에서 다 말린 옷가지들을 정리하는 중인 세연이를 조용히 손짓으로 불렀다. 세연이도 초인종이 울린 탓에 이쪽을 쳐다보고 있던 것을 얼핏 보았으니 아마 눈치껏 이쪽으로 와주겠지.

“나 제안 한다. 너 와라 우리 쪽에. 많은 돈 준다. 명예도 준다. 인간 반짝이는 것 좋아한다.”

[...저쪽 세계의 이름은 이 세계에서 통용되지 않느니라. 네가 저 치에게 이름을 알려줘도 저쪽도 알아듣지 못할 것이니라.]

그런 설정이 있었어? 어쨌든 이 놈이 저 쪽 세계에서 나를 스카우트하려고 온 놈이라는 건 알겠는데...마리아가 말했지 않나?

내 두 번째인가 세 번째 전임자가 저들의 꾐에 넘어가서 이 세계를 배신했다가 끔살당했다고. 그걸 뻔히 알고 있는 내가 저 놈들 편을 들 리가 없었다. 나는 현관문 높이로는 가슴께 밖에 오지 않는 거구의 존재를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걸친 옷은 그냥 검은 천을 두른 것 같기도 하고, 가죽 옷 같기도 했다. 어쨌든 신석기 원시인한테나 볼 법한 비주얼인데. 키가 너무 커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못해도 2미터는 넘는 것 같았다.

내가 미쳤다고 저쪽 편을 들겠나. 근데 내 집은 어떻게 알아낸 거야?

[...아무래도, 가지세계에서 그대를 목표로 삼은 듯 하느니라.]

“나 제안하다. 너 동료가 되라 우리.”

말투는 한없이 진지한데, 말하는 꼴을 보니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어! 요즘 X파고 번역기도 저따위로 번역하진 않겠다! 그리고 마지막 대사는 왜 고무인간이 생각나는 대사를 치는 건데?

혹시 너네 세계에도 해적만화 나오니? 거긴 완결 났어? 거긴 X노쿠니 없제? 아니 그전에 헌X헌 연재하고 있어?

“나, 거절한다. 나, 아무것도 모른다.”

“너 말 이상하다.”

니가 그 말하면 안 되지! 너희들 식으로 말해준 것뿐인데!

[아해야...상대는 제대로 말하고 있지만 번역마법의 문제로 저렇게 들릴 뿐이니라.]

한심한 듯이 말하지 말아주실래요 여신님? 제가 이렇게 타 문화교류를 위해 힘을 쓰고 있는데 한심하게 보는 건 좀 선 넘는 거 아니에요?

[진지한 상황이니라.]

어...그렇긴 한데... 저 말투 때문에 진지해지고 싶어도 진지해지기 힘들거든요? 처음 들었을 때 장난이라도 치는 건줄 알았단 말이야. 세상에 어떤 사람이 저런 식으로 말을 하는데?

“이곳 말 이상하다. 엉망진창이다.”

“네 말도 이상해.”

지금이 2021년인데 거의 10년 전에나 볼 법한 왈도체를 구사하는 건 도대체 뭔데! 틀딱소리라도 듣고 싶어? 뭐 어디 고전게임에서 튀어나오기라도 했어? 동인지는...아니지? 극태쥬지로 깐프들 따먹는 그런 곳에서 온 건...아니지?

가지세계는 도대체 뭐하는 곳이야... 저런 말을 쓰는 사람이 있는 거지?

[이곳 말로는 오크니라.]

아 오크! x로쉬님이랑 같은 종족이야? 뭔가 존나게 크더라니, 인간이 아니었구나? 근데 왜 x단마냥 입고 계세요? 흑법이야? 생기흡수 같은 거 쓰는 건 아니지? 패션이 아무리 봐도 나 나쁜 놈이요 하는 패션이라 좀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는데.

요즘은 오크도 정장입고 다니는 시대 아니었어? 선글라스 끼고 막 MAKE ORC GREAT AGAIN!외치고 말이야. 내가 보던 소설에선 그렇던데.

“나, 제안한다. 대답. 기다린다. 나 온다 해가 두 번 지면.”

쿵쿵 울리는 발소리를 내며, 검은 옷을 걸친 거인은 계단을 내려갔다. 오크가 완전히 모습을 감추자, 나는 현관문을 닫고 거실 의자에 앉아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도대체 뭐야?”

[오크들은 이런 협상에 그리 능하지 않지. 저들은 용맹하지만 지혜롭지는 않느니라. 그전에 어떻게 이 세계에 나타났는지 모르겠지만...아무래도 다른 곳에 게이트를 설치했거나, 틈새를 몰래 넘어온 것 같느니라.]

아니 신들이 지키고 있다 매요?

[신들도 완벽한 존재는 아니니라. 그저 우리는 인간보다 조금 더 뛰어난 능력을 가졌을 뿐인 그런 존재에 불과하느니라.]

그래서 저 오크가 몰래 이세계로 와서 나한테 스카우트를 시도했다 이 말이죠?

[그런 듯 하느니라.]

살다살다 이세계인...? 이세계 오크한테 스카우트 당하다니. 내 인생도 파란만장 하다못해 이세계물 뺨치는 수준이네. 도대체 내 인생은 어찌 되려고.

“말하는 거 보니까 대충 이틀 뒤쯤에 온다는 것 같은데. 마리아한테 연락 해야 되나...?”

[연락하거라. 그 라쿤에게도 연락하도록.]

라쿤박사님은 왜요?

[저런 오크가 길거리를 버젓이 돌아다니면 난리가 날 것이 뻔하잖느냐?]

아.

그르네.

나는 곧장 스마트폰을 들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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