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 117.화려한 휴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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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큐와 여신님의 아이큐를 합하면 200+@! 도합 200이상의 아이큐로 해결책을 짜내야만 해!
[그대는 내 머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냐?]
지금 그게 중요해요? 뭔가 개쩌는 해결책 같은 거 없냐고요! 지금 내 인생이 쫑나게 생겼는데 그런 거 따질 시간에 뭔가 이 상황을 타파할만한 아이디어 있으면 말 좀 해줘요! 지금 당장!
[그냥 그 흡혈귀를 불러서 최면을 걸면 되지 않겠느냐?]
생각해보니까 그러네? 근데 지금 한솔이가 없잖아? 일단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꺄아아아아악?!”
깜짝이야! 소프라노 톤의 비명에 나는 깜짝 놀라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그들도 지금 이 상황이 머리로 받아들일 수 없는 건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기에, 나는 그냥 막나가기로 결심했다. 뒷수습은 기밀관리본부에서 해주겠지!
나는 내 머리를 집어 들고 한걸음, 또 한 걸음 조심스럽게 다가가면서, 머리카락을 늘려 문을 닫아버렸다. 두 사람은 촉수마냥 움직이는 내 머리카락에 경악하며 거칠게 닫혀버린 문에 시선을 돌렸지만, 이미 굳게 닫혀버린 문은 내 허락 없이는 열리지 않는다.
꼬우면 니들도 맹약 맺던가!
“우리, 대화가 필요할거 같은데...쉿.”
아니 왜 얼굴이 창백해지는데. 위협한 것도 아니고 그냥 조용히 대화 좀 나누자고 한 것뿐인데 거품 물고 쓰러지지 말라고! 내가 나쁜 짓이라도 한 것 같잖아! 내가 그렇게 무서워? 무섭냐고! 고작 머리 떨어진 게 뭐가 대수라고 그러는데!
“다정아! 다정아?!”
“오, 오지 마십시오!”
아니, 지금 누굴 귀신 취급하는 거야? 그냥 대화 나누는 게 그렇게 싫어? 좀 진정들 하고 우리 IYAGI를 나누면 안 될까? 손전등좀 그만 비추고. 이러니까 진짜 대악마님이 친히 수집하신 살인마가 된 느낌이잖아.
이대로는 대화가 불가능할 것 같아 나는 머리를 목 위에 올려놓았다. 머리카락을 목에 묶어 고정한 후, 나는 내 행동을 빤히 쳐다보고 있던 두 사람을 꼬나보았다.
“진정들 하지?”
“이, 이게 도대체 무슨...”
“무슨 일이고 자시고, 내 머리 분리 되는걸 봤잖아? 비밀을 알게 된 이상 내가 당신들을 처리해야 되거든?”
물론 그런 짓을 하면 감옥행은 물론이고 라쿤박사한테 10시간이 넘는 설교를 듣게 될 테니 해를 끼칠 생각은 없었다. 그냥 위협 좀 해서 입을 닫게 하는 거지.
“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지배인의 물음이었다. 나는 잠시 턱을 긁으며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저승사자인데?”
저승사자라는 단어를 꺼내니 하얗게 질리는 게 볼만했다. 그들도 본 것이 있으니 내 말에 반박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사실 저승사자보다는 악령 같은 비주얼이니까 의심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정면 돌파라, 재미있도다.]
그래, 내가 키...아니 저승사자다!
“그, 그런 분이 왜 저희 호텔에...”
“쉬러 왔는데.”
호텔에 왜 왔겠어. 당연히 쉬러 왔지.
“그, 그러시군요.”
“나도 걸려서 지금 좀 골치가 아프거든? 내가 저승사자라는 사실을 들키면 처리할 수밖에 없단 말이야...”
처리라는 단어에 겨우 혈색이 돌아온 두 사람의 얼굴이 다시 하얗게 질렸다. 역시 강한 단어를 쓰니 다시 겁을 집어먹은 모양이었다. 이럴 땐 강하게 나가야지. 암.
“제, 저한테는 여우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이...”
그거 언제 적 드립이야? 아니 진심으로 무서워하니까 나도 뻘쭘하잖아. 물론 나도 저 입장이었으면 겁먹었을 것 같긴 한데. 조금 죄책감이 생겼지만 라쿤 박사님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여기서 어떻게든 무마시켜야 했다. 설마 저승사자를 고소할 정신 나간 인간이 있을 리도 없으니,
“일단 진정하고. 나도 죄 없는 사람을 잡아갈 수는 없거든? 그냥 내 정체에 대해서 말하지만 않으면 돼. 말하면...”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들이 잔뜩 긴장했다는 기색이 느껴졌다. 나는 머리카락을 늘려 조용히 두 사람의 목에 감았다가 바로 풀어냈다. 역시 이 정도 연출은 있어야 넘어가지. 원래 이럴 때는 소름끼치는 연출이 필요한 법이다.
“...알지?”
“아, 알겠습니다!”
군기 든 것 좀 봐라. 갓 전입한 이등병을 생각나게 하는 대답에, 나는 최대한 섬뜩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럼 나가봐. 그리고 이 방을 나가면 다시는 이 방안에서 있었던 일들을 입 밖에 내선 안 돼. 알았지?”
“다, 당연합죠!”
“그럼 나가 보세요 지배인님. 덕분에 제가 오랜만의 휴가를 망친 참이라...”
말꼬리를 흐린다. 그것만으로도 상대를 위협하는 효과가 있었다. 말꼬리를 흐림으로서 상대가 내가 할 말은 상상하게 할 수 있었으니까. 나는 머리카락으로 열지 못하도록 막아놓은 문을 열어주었다.
카리스마나 그런 걸 떠나서 저들은 정말로 생명의 위협을 받았으니까, 내 말에 따를 수밖에 없을 거다. 내가 초자연적인 존재라는 것을 어필했으니 경찰에 신고했다고 달라지는 건 없을 테고.
장난전화냐고 욕이나 먹지 않으면 다행이지.
“호, 혹시 원하는 것이 있으십니까?”
“다른 사람들은 제가 처리할 테니 지배인님과 거기 커플 분은 평소처럼 보내도 된답니다.”
어차피 당신네들 기억도 싸그리 날려버리면 그만이니까...
“그, 그럼 저흰 이만.”
그들이 우르르 방을 뛰쳐나가자, 나는 한숨을 쉬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진짜 힘들었어...
[꽤 박진감 넘치는 연기였도다. 역시 그대는 타고난 광대로다. 이 몸을 즐겁게 만들었노라.]
지쳤어...격렬하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세상이 밉다! 듀라한도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가!
[잘 해결되었지 않느냐?]
해결은 개뿔! 저 사람들 기억 하나하나 지우려면 얼마나 고생인데! 덕분에 한솔이한테 피 한 양동이는 더 대접해야 하게 생겼구만! 아무리 내가 혈액 디스펜서 취급이라도 한 양동이 분량만큼 토해내면 어지럽다고!
“유진아, 유진아.”
“왜 세연아...나 지금 힘들어 죽겠으니까 나중에...”
“...다른 사람이 엿들은 거 같아.”
“뭐?”
세연이의 말에 나는 침대에서 튕겨내듯이 몸을 일으켰다. 누가 뭘 엿들었다고? 나는 급하게 문을 열고 복도를 살폈다.
“...”
내 시야에 팀장을 하면 어울릴 것 같은 이름의 소유자가 보였다. 저 파오후 새끼는 이 시간에 뭐 하는 거야? 잠이나 쳐 잘 것이지. 아무래도 세연이가 말한 사람이 저 파오후인 모양이었다.
“저 사람이 폰을 들고 네 방 옆에서...”
녹음이라도 했다는 건가?
“거기 당신.”
“다, 다들었어...그, 그런 비밀이 있었구나?”
“...?”
세연아, 지옥참마도를 꺼내주렴. 내가 친히 저 주둥아리를 닥치게 만들 테니. 역겨울 정도로 끈적한 시선에 나는 기시감을 느꼈다. 요즘 집 근처를 돌아다닐 때마다 기분 나쁜 시선이 따라붙더라니, 그게 저 새끼였냐?
“비, 비밀은 지켜줄게. 나, 나는 널 사랑하니까...”
지금 내 귓구멍이 제대로 열려있는 거 맞지? 뭔가 굉장히 주옥같으면서도 살의를 들끓게 하는 단어가 들린 거 같은데. 저 파오후 스토커의 말을 들은 세연이는 내 손에 말없이 지옥참마도를 쥐여주었다.
“유진이는 내꺼야!”
내가 언제 부터 니 소유물이 됐...나는 내 등짝에 달라붙은 세연이를 무시한 채, 혼자 히히덕 거리며 웃는 스토커를 쳐다보았다. 기분 나쁜 새끼. 생긴 것 보다 하는 게 더 소름끼치네. 보아하니 휴대폰으로 녹음이라도 한 모양인거 같은데, 일단 적당히 두들겨 패고 휴대폰을 뺏어서 부셔버리든 지워버리든 해야지.
나는 초인의 영역에 다다른 신체능력으로 순식간에 스토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스토커가 눈치를 채기 전에, 머리에 꿀밤을 날렸다.
“조용히 하세욧!”
“꿰엑!”
아주 좋아. 깔끔하구만. 나는 바닥에 쓰러진 파오후를 무시한채 손에 꼭 쥐고 있던 파오후의 휴대폰을 깔끔하게 반으로 토막 냈다. 대충 이러면 데이터고 뭐고 다 날아갔겠지? 나는 휴대폰을 파오후의 몸 밑에 대충 밀어 넣고 한솔이가 있는 방의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유진씨?”
“아침에 지배인한테 말해서 사람 모아놓고 단체로 최면 걸어서 기억 조작 좀 해줘.”
“네에?”
“충분히 할 수 있잖아. 응?”
“그건 저도 좀 힘든데요...”
“피 좀 마실래?”
한솔이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요 며칠간 눈치가 보여서 피를 마실 수 없었던 탓인지 눈이 잔뜩 붉어져 있었다. 워워, 진정해. 으, 입안에 비린내가 가득하다. 이젠 조건 반사 적으로 피가 올라오네 시발.
“종이컵 없어?”
“여기요.”
나는 한솔이에게 종이컵을 받아 그 안에 조심스럽게 피를 흘렸다. 순식간에 종이컵이 가득차자, 나는 피가 흘러넘치지 않게 한솔이에게 종이컵을 건넸다. 한솔이는 종이컵을 받자마자 거침없이 피를 들이켰다.
어지간히 피가 고팠구나. 흡혈귀도 참 고충이 많네.
“이제 좀 살 것 같네요. 여기선 눈치 보여서 피 마시기가 힘들다니까요...오늘 아침에 다 모여 있을 때 최면을 걸어서 없었던 일로 만들면 된다는 거죠?”
“엉. 휴가가 3일 밖에 안 남았는데 내가 계속 방에 숨어있기는 좀 그렇잖아.”
“알았어요. 저는 좀 더 잘게요...유진씨한테 먹을 거 넘겨주려고 안자고 버티느라 피곤하네요...”
“알았어. 잘 자. 나는 내 방에 들어가서 잘테니까 유라랑 에포나한테는 이야기 전해주고.”
나는 한솔이 너머 침대에서 서로를 꼭 껴안고 자고 있는 유라와 에포나를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 잘 자네. 정다정인가 송다정인가 하는 여자가 비명까지 질렀던데 말이야.
나는 방을 빠져나와 복도로 나왔다. 은은한 조명만이 공간을 밝히는 조용한 복도는 을씨년 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내 시야 끝자락에 기절한 파오후가 보인다. 생각해보니 이 인간도 일단 처리를 해야 하나...? 하지만 저런 땀범벅 파오후 스토커에게 손도 대기 싫었으므로, 나는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아 몰랑.
나는 파오후를 지나쳐 방으로 들어가 남은 단팥빵을 먹어치웠다.
“...사고 한번 거하게 치셧군요. 혹시 사고를 안치면 죽는 병에라도 걸렸습니까?”
신랄하네.
“내가 사고를 치는게 아니야. 사고가 나를 찾아오는 거야!”
“그 말씀, 라쿤 박사님께 잘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아 그건 좀 봐주라. 나 또 설교듣긴 싫어...”
내 말에 은하는 피식 웃으며 들고 있던 태블릿을 조수석에 던져놓았다.
“그래도 대처는 괜찮았습니다. 다소 난폭하기는 했습니다만, 호텔에 투숙한 인원과 직원 전부 김한솔양의 능력으로 기억을 삭제했으니 유진씨의 정체가 들키는 일은 없겠죠.”
“뭐...그렇겠지.”
근데 이런 거면 그냥 한솔에몽 매번 불러서 기억소거만 하면 되는 거 아닐까? 옆에 편의성 치트키가 있는데 안 쓰는 것도 그렇잖아!
“하지만 이번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이 호텔에 사람이 많았다면, 그리고 한솔양이 같이 여행을 오지 않았다면, 수습은 불가능했겠죠. 그러니 다음부턴 조심해 주십시오. 일이 커지면 그건 유진씨만의 일이 아니게 됩니다. 왜 전세계 국가가 변이자를 숨기려 하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근데 그게 숨긴다고 숨겨지긴 해?”
솔직히 나만 트러블 일으키는 게 아닐 텐데 용케 안 들키네? 옛날이야 어쨌든 요즘 뭐 터지면 SNS로 미친 듯이 나르잖아. 이게 정보통제의 힘인가?
“그걸 숨기기위해서 저희 기관이 있는 겁니다. 대부분의 국가에는 저희 같은 역할을 하는 기관이 있으므로, 최대한 그 사실을 숨기고 있습니다. 변이자의 존재가 알려지면 필연적으로 혼란이 옵니다. 아시다시피, 인간은 피부색이 다르단 것 하나만으로도 편을 가르고 차별을 일삼지 않습니까?”
“근데 언제까지고 숨길 수는 없잖아.”
10년이나 숨긴 게 기적이지.
“확실히,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이죠. 당연히 언젠가 비밀을 세상에 공개해야 할 때가 올겁니다. 그때가 되면...전화가 왔군요. 그럼 좋은 귀갓길 되시길.”
은하는 전화를 받으며 나에게서 멀어져갔다. 나는 렌탈한 차로 돌아와 조수석에 앉았다.
"출발하자. 피곤하면 말해. 내가 운전할테니까."
"괜찮아요! 저 팔팔해요!"
그래그래, 나음 휴가 내내 내 피를 탈탈 털어마셧으니 당연하시겠지요.
한솔이가 콧노래를 부르며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쳐다보다,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휴가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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