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화 〉 113.화려한 휴가(1)
* * *
“저기 저 사람...그 방송에 나왔던....”
그....
아무리 기밀관리본부가 빡세게 정보 통제를 한다고 해도,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 퍼진 소문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나는 순식간에 유명인이 되어버렸다. 백화점 붕괴사태 백발녀 어쩌구저쩌구...이미 내가 이 근방에 살고 있다는 소식마저 퍼졌는지, 근처에 X튜버들이 돌아다니며 나를 찾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소문의 출처는 유라였다. 에포나랑 같이 산책 나갔다가 쑥덕거리는 걸 들었다고. 덕분에 내 외출 복장에는 선글라스에 캡모자가 추가되었다. 망할 렉카 새끼들아! 좀 꺼져! 불편해 죽겠네!
진짜 밤중에 에포나로 치고 지나갈까 보다! 니들 한 밤중에 X마스한테 치여서 지옥갈래? 엉? 진짜 뺑소니가 뭔지 보여줘?
“저기요...그...백화점 사건때 그 여성분 맞으시죠?”
“신고하기 전에 가시죠?”
“히히힝!”
에포나가 나에게 접근하는 남성의 앞을 가로막으며 위협적으로 울어댔다. 그렇게 말해도 어지간한 중형견 밖에 안 되는 크기인지라 위협이 위협 같기는커녕 귀엽기만 했지만. 어쨌든 기특하게도 나를 지키려고 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네가 하루에 당근을 10개씩 먹은 값을 하는 구나!
“그러지 마시고...한번만...”
나는 폰을 들었다. 그제서야 나와 인터뷰를 할 요량이었는지 폰을 쥐고 있던 남성은 길을 비켜주었다. 진짜 어떻게 알아 본거야. 얼굴을 거의 다 가렸는데도 이 잘생쁨 그 자체인 외모는 가리질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라 에포나를 데리고 다녀서 그런거 아닐까...?”
셧업. 세연아. 그런 건 말하지 않는 게 매너란다. 내가 모를 것 같니? 이게 다 알면서도 모른척 하는 거란다. 소설 전개에 필요한 거니까 아 그런갑다 하고 넘어가면 안 돼?
[말을 애완용으로 데리고 다니는 사람은 그대 밖에 없느니라.]
거기서 굳이 태클을 거시는 건 제가 어제 비빔밥을 먹었기 때문인가요.
[나는! 고기가 먹고 싶었느니라!]
그제도 스테이크, 어제 낮에는 삼겹살 먹었는데 가끔은 야채가 듬뿍 들어간 비빔밥으로 속을 씻어내야 한다니까요? 아니 맛있잖아요?
시장에서 사온 온갖 나물에 고소한 참기름에 서니 사이드 업 하나 딱 올려놓고 고추장 한 숟갈 넣고 비벼서 한 숟갈 듬뿍 떠서 먹으면 그거만 한 게 없는데!
여신님 씩이나 되시는 분이 편식하시는 건 좀...
[도대체 이 땅의 인간들은 풀떼기를 많이 먹고 사는 것이냐...인간은 고기를 먹어야 건강해지는 법이니라!]
응 그 풀떼기가 고기보다 더 귀해~없어서 못 먹어~오늘 저녁도 나물 무침이야~
[그대는 드루이드가 아니느니라!]
저도 제가 좋아하는 걸 먹을 권리가 있거든요? 계속 그러면 아침으로 녹즙 마십니다?
[나를 왜 고문하려 하는 것이냐? 내가 그대에게 무얼 잘못했다고?]
새벽에 제 몸 조종해서 라면 해 드신 거 다 압니다.
왜 이 여신님은 묘하게 쓸데없는 지식만 배우는 걸까. 라면 맛있게 끓이는 법이라든지, 고기 맛있게 굽는 법이라든지, 고기 소스 만드는 법이라든지 기묘한 지식만 배워서 새벽에 써먹고 계신다.
[...핫, 어떻게 알았느냐?]
입가에 라면 국물 묻힌 채로 자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덕분에 베게 피 빤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빨았거든요? 세연이가 얼마나 귀찮아했는지 알아요?
[칫...다음부터는 주의해야겠도다...]
에반데...인스턴트 많이 먹으면 몸에 안 좋거든요?
[네 몸은 내가 손수 만들어낸 최고의 작품 이느니라! 인스턴트 따위에 지지 않느니라!]
아 좀.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배가 불러서 당황스러운 내 심정을 알아요? 얼마나 먹었는지 몰라도 배가 빵빵해서 처녀 수태라도 한 줄 알았다고!
[...그건 너무 나간 것 아니더냐?]
사람이 하루 아침에 여자가 되고 머리가 분리되고 귀신을 보면서 슈퍼솔져 뺨치는 신체능력이 생겼는데 처녀수태가 이상해요?
[설득력이...있도다.]
“히힝...”
내가 너무 오랫동안 대화했나? 나는 내 허벅지에 몸을 비비며 나를 재촉하는 에포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요 귀여운 녀석. 에포나의 귀여움을 다른 사람도 아는지 가끔 학생들이나 애들이 만져 봐도 되냐고 자주 물어 보더라. 확실히 애들이 이런 쬐끄만 망아지를 볼 일은 드물지...
개도 잘 쫒아내고. 동물들은 역시 감이 좋은 건지, 내가 평소에 돌아다닐 땐 과민 반응하던 개들이 에포나한테 겁을 집어먹고 나한테 달려들지 않아서 편했다. 내 머리 처음 날렸던 개새끼, 저번에 만났는데 에포나한테 겁먹고 깨갱 하면서 주인 뒤에 숨어서 눈치만 보더라.
덕분에 에포나와의 산책은 정말 편했다. 애완용 말이 정말 희귀한 존재인 덕에 사람들의 시선이 에포나에게로 쏠렸으니까. 요즘 밖에 나갈 때마다 느껴지는 시선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에포나랑 같이 산책을 나가면서 시선이 줄어드니 좀 살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아무리 집순이라도 바깥바람이 쐬고 싶은 때가 있는 법이라고. 근데 망할 기레기 때문에 관심을 받는 게 아주 주옥같았다. 화면에 안 나오게 빼주던가 모자이크는 했어야 되는 거 아니냐고.
심지어, 최근에는 밖에 나가면 묘한 시선이 따라붙어서 짜증을 유발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저번처럼 인터뷰 기회를 노리는 렉카나 저번에 나타났던 모 유명 연예기획사 매니저 같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설마 스토커? 이젠 스토커까지 따라붙어? 역시 뭐든지 과하면 없느니만 못하다더니, 이 몸의 지나친 아름다움이 온갖 벌레들을 꼬여내는 것 같았다. 자의식 과잉이 아니라 진짜로.
나 좀 그냥 평범하게 살게 내버려둬! 내 머리카락은 염색약도 안 먹어서 염색하지도 못한다고!
“후, 그냥 돌아갈까.”
좀 이르긴 하지만 그냥 돌아가자. 기레기에 자칭 유명한 X튜버에 스토커까지, 온갖 병신들이 나에게 꼬이고 있었다. 저걸 뒤에서 몰래 쓱싹 할 수도 없고. 집 주소도 노출하지 않으려고 힘들게 따돌려서 도망쳐야 했다.
지금이 중세였으면 진짜 어디 조용한데다 묻어버리고 오는 건데.
여기가 현대인 걸 감사하게 여기십시오 휴먼.
나는 곧바로 진로를 빙빙 꼬며 귀갓길을 걷기 시작했다. 거봐, 저 새끼 따라오기 시작했어. 견찰 새끼들은 뭐하나, 신고해도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출동할 수 없다 소리만 반복하고 있고.
그냥 일 하기 싫다고 말하지?
귀찮아...
복잡해진 귀갓길만큼 내 마음도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다행히도 길을 한창 꼬아서 다니며 망할 스토커를 떼어내는데 성공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게 인기인의 삶인가...
진짜 어디서 일주일 정도 잠적하다가 올까? 진짜 이대로 가면 ㅈ같아서 스토커 새끼 어따가 집어던져버릴 것 같은데. 사람 없으면 한밤중에 납치해서 저어기 먹이터에 슬쩍 떨구고가면 조용히 사라질 테니 아무 일도 없었다 시전하면 완전범죄 아니야?
후, 진정하자. 요즘 스트레스 받을 일 많으니까 폭력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
하지만 내가 스트레스 안 받게 생겼냐고!
내 인생 장르가 갑자기 헌터물이 될 뻔하지, 쓸데없이 유명해져서 외출하는데 번거롭지, 이제는 스토커까지 붙은 것 같다. 이렇게 된 거 차라리 전부 쓸어버릴까? 그리고 해외로 튀는 거야!
내가 미쳤지. 그냥 집에 박혀서 방송이나 하자...였는데.
“어? 이거 왜 이래?”
왜 컴퓨터가 말썽이지? 부팅이 되질 않았다. 너 까지 왜 그래? 진짜 빡치네? 나는 짜증이 치민 나머지 손으로 쌍팔년도 식 치료법을 시전했다. 45도 각도로 본체 두들기기!
생각해보니까 나 지금 힘이...나는 뒤늦게 지금 내 신체능력이 터미네이터 뺨치는 수준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미 사건은 터진 후였다. 쾅!
컴퓨터가...죽었어! 나는 심상치 않은 소리를 내며 찌그러진 본체를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컴퓨터 또 사야 돼? 이러면 방송도 못하는데. 다행히도 게임용 컴이 날아간 게 차라리 다행이다. 시발. 시발. 시발!
“유라야!”
“무, 무슨 일이야?”
“짐 싸라. 이렇게 된 이상 청와...아니, 어디 한적한 곳에 일주일간 휴가를 간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다시 올라서 가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몰라! 난 갈 거야!”
어차피 듀라한이라 안 걸려! 내 피가 코로나보다 강하다고!
“세연아, 알지?”
“응!”
“나는 잠시 휴방공지 좀 하고 올 테니까 준비하고 있어. 곧바로 내려간다!”
“주인님 주인님! 휴가가 뭐야?”
“아아, 그건 일을 잠시 쉬고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거란다.”
“주인님 2주나 쉬었는데?”
“...아무튼 그런 걸로 알아. 너도 밖에서 뛰어다니고 싶지?”
“응!”
“그러니까 가는 거야. 알겠어?”
에포나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한솔이도 어떻게 끌어들여서 내일 쯤 출발하면 되나. 나는 휴대폰으로 휴방 공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KOREAN PEOPLE. 나의 이름은 DURA이다. 좋은 시청자에 나는 항상 감사합니다. 나 일주일간 holiday 다녀옵니다. 불만 있으면 california로 오십시오 korean people. 항상 감사하십시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