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듀라한이 되어버렸다-124화 (124/352)

〈 124화 〉 112.어둠속에서 눈을 마주치다(7)

* * *

[10일 만에 백화점 붕괴사건의 수습이 일단락되었습니다. 당국은 현재 확보된 피해자 리스트에 체크된 사상자들의 시신 및 구출을 전부 찾아냈다고 발표하였으며, OOO대통령은 이번 일에 하여 건축법 기준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드디어 저 지긋지긋한 백화점 이야기를 듣지 않을 수 있는 건가. 나는 X튜브를 끄고 폰을 베개 옆에 내려놓았다. TV던 X튜브든 백화점 붕괴 사고에 대한 이야기뿐이라 볼게 없었다.

X튜브 렉카들이 이번 사건을 가지고 온갖 음모론을 펼치는 꼴이 우습기는 했지만. 북한 간첩이 일으킨 테러다, OOO대통령이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 저지른 일이다, 중동 테러범의 소행이다...일반인 들은 영원히 진짜 원인을 알 수 없겠지.

알아서도 안 된다.

이 사건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기밀관리본부 소속 요원들과 나, 그리고 저기 저 높으신 분, 그러니까 대통령과 그 측근정도 뿐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이 세계에서 침략자가 찾아와서 백화점을 무너트렸어요! 라고 하면 눈치 없이 농담을 한다고 여론의 질타를 받았을 게 뻔했다.

아직 우주여행조차 힘겨운 이 시대에서 이세계의 존재는 누구도 받아들이기 힘든 만큼 당혹스럽고, 기존의 상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일이다. 심지어 그 이세계가 지구를 차지할 목적으로 넘어오려 한다는 것은 더더욱.

정부는 이 일을 그저 ‘불행한 사고’로 남기고 싶어 했다. 안 그래도 전 세계적인 전염병으로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폭탄을 않고 있는 시국에서, 이세계의 존재는 끔찍한 혼란을 야기할 테니까. 숨기는 쪽이 평화를 위해서 더 좋은 것이다.

천장을 바라보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다. 폰 만지며 시간 때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것 말고 아무것도 할 게 없으니 지루해 미칠 지경이었다. 에포나도 이곳에 있긴 하지만, 이래저래 귀여움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아니면 달리는 걸 좋아하는 망아지라 그런지 기밀 관리본부를 싸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랑 놀아달라고! 내가 3일 동안 풀로 열심히 놀아줬는데 힘들다며 도망친 건 너무 하잖아! 백화점 붕괴사건 이후로 내 체력이 밑도 끝도 없이 넘치기는 했지만! 힘이 너무 세져서 벤치프레스만 500KG이 좀 힘들긴 해도 혼자서 들어지네?

전 세계 헬창 여러분들 미안해요!

힘쎄진건 좋은데 일상생활 할 때 너무 불편해!

전에 비해 힘이 너무 강해져서 검지로 수박을 찌르면 그대로 찰흙에 구멍 내는 것 마냥 뚫려버리고, 철판을 손으로 종이마냥 구겨 버리는 수준이라 요즘 사람들이 나를 슬슬 피하더라.

나 무해한 듀라한이야! 피하지마!

고작해야 하와와 여중생에서 군필여고생이 되었을 뿐이야!

“하와와 군필여고생 듀라짱인 것이 애오...우웩.”

혼자서 심심하니까 이런 혼잣말도 하고 막 이래. 누가 나랑 놀아줘...팔씨름 같은 거 안할 테니까 제발 놀아줘...

“...유, 유진아?”

“...세, 세연아?”

봐, 봤니?

“...풉.”

이년이? 당장 머릿속에서 내 흑역사를 삭제하지 않으면 맛소금맛 펀치를 얼굴에 꽃아주마!

“당장 머릿속에서 지워!”

“괜찮아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그 능글맞은 표정은 뭐냐.

아잇 시팔, 맛소금 맛 좀 볼래?

“하하...내가 본 네 흑역사가 한두 개가 아닌데 이제 와서 그런 걸로 복수하는 건 쪼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듣고 보니까 진짜 그러네?”

내가 흑역사가 그렇게 많았나? 저번에 몰래 자위하다 눈 마주친거랑, 혼자서 섹시댄스 춰보다가 들킨거랑, 칼들고 류승룡 기모찌 외친거랑...더럽게 많네.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러운 우리 유진아, 유라가 깨어났어. 보러가자.”

드디어. 내 머리카락으로 만들어진 고치가 문제였는지, 아니면 부상이 심한 탓이었는지 10일동안 눈을 뜨지 못했던 유라가 눈을 떳다는 소식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바로 옆 병실로 향했다.

“언니...무사했네요...”

“내가 다칠 사람으로 보이니?”

“어...아뇨...”

뭔가 슬픈데. 나는 유라의 옆에 앉아 10일간의 혼수상태로 말라버린 유라의 손을 잡았다. 에구, 집에 돌아가면 유라를 확대해야 겠네. 영양 밸런스를 맞춘 확대용 식단으로 짜서 배터지게 먹이면 다시 살 붙는데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다.

애는 통통해야 예쁘지.

“언니, 한솔 언니는...”

“멀쩡해. 오히려 사람을 구하러 다녀서 이번에 용감한 시민상을 받기로 했다더라.”

“다행이에요! 많이 걱정했는데...”

“넌 네 몸이나 챙겨. 요 오지랖만 넘치는 꼬맹아.”

누가 누굴 걱정해. 나는 장난스럽게 이마에 딱밤을...아.

“간호사! 간호사아!!!!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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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가고 싶다.”

“또 기자들한테 둘러싸이고 싶은 게 아니라면 추천하지 않습니다.”

나도 알아, 안다고. 나는 은하의 대답에 퉁명스럽게 대꾸하며 깨끗하게 씻은 사과를 입안에 통째로 집어넣었다.

음, 비싼 사과라 그런지 맛있네.

“...그냥 평범하게 잘라서 드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게 더 편한데.”

꼬우면 너도 듀라한 하시던가~

“하아...”

대놓고 한숨 쉬는 건 좀 아니지 않 수?

내가 사고를 너무 쳐서 기밀관리본부 사람들이 나를 보면 무슨 사고를 치지 않았나 경계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얌전하게 지냈는데...

“기물 파손에, 혼수상태에서 겨우 회복한 환자를 뇌진탕 상태에 빠트린 게 얌전한 겁니까?”

“...죄송합니다.”

“아시면 얌전히 계셔주시죠. 안 그래도 백화점 붕괴 건으로 저희가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유진 씨까지 그러시면...누구 하나 과로사로 죽는 꼴 보고 싶으신 겁니까?”

“나를 뭘로 보고! 내가 그렇게 악독한 년으로 보여?”

“그...아닙니다.”

방금 긍정하려고 했지?

“어쨌든, 잠잠해질 때까지 소란을 피우지 말아주십시오.”

“넵.”

망할 기레기 새끼들 때문에 이게 뭐야. 덕분에 방송도 사실상 기약 없는 휴방 중이고.

다친 곳도 크게 없는 내가 기밀관리본부에서 나가지 못하는 건 기레기들 때문이었다. 망할 방송사들이 카메라를 돌리는 와중에 찍힌 내 얼굴이 너무 아름다워서 화제가 된 것이다. 나는 얼굴 팔려봐야 좋을 게 없는 직업이었으므로, 기레기들에게 곧바로 항의했지만 내 말을 들어주면 그건 기레기가 아니라 기자님이다. 지하에서 3일 가까이 버티면서 꾀죄죄한 모습이긴 했지만, 그래도 지나칠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숨길 수는 없다.ㅁ

세상에 미친놈들이 참 많다. 내 얼굴이 찍힌 방송분을 캡쳐해서 온갖 커뮤니티에 나르는 놈들부터 내 사진을 보고 성희롱 댓글을 달다가 나에게 친히 고소 당한 놈이라던가, 특종감이라 여겼는지 나를 찾아서 인터뷰 하려는 기레기들.

이 사태가 잠잠해질 때까지, 나는 사람들의 과도한 관심을 피해 기밀관리본부에 숨어살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된 김에 병실 하나 차지하고 눌러앉아 버릴까. 여기 시설도 좋고 밥도 삼시세끼 꼬박꼬박 나오고 엘리베이터만 올라가도 바로 온갖 음식점과 편의점이 넘치는데. 눈치 좀 보이긴 하겠지만.

보나마나 내 집주소도 까발려졌을 것 같은데, 이사도 고려해봄직 했다. 대출 좀 땡겨서 좀 더 큰 곳으로 이사 갈 만큼 돈이 모이기도 했고. 내 통장에는 자그마치 2억이 들어가 있었다. 서민 입장에서 2억이면 대출하지 않는 이상에야 만져보기 힘든 정말 큰돈이라고.

돈 좀 보태면 괜찮은 30평짜리 아파트를 전세로 구해봄직한 금액이다. 몇 억 더 모아서 괜찮은 곳에 사는 것도 고려해 봐야겠지. 이왕이면 유라도 데려가야지. 기밀관리본부가 손을 써준 덕에, 유라는 내 사촌동생이 되었으므로 법적으로 큰 문제도 없다.

역시 권력이 최고야!

“저는 이만 일이 밀려있어서 가보겠습니다.”

“잘 가~올 때 X로나~”

“언제 적 드립입니까...”

은하를 떠나보내고, 나는 침대위에 앉아 다른 사과를 꺼내 맛을 음미했다, 사과 마시쩡. 역시 남의 돈으로 먹는 사과가 최고라니까.

그나저나 여신님은 언제 깨어나시려나. 물어볼게 많은데.

이세계에 대한 이야기도, 맹약에 대한 이야기도 물어봐야 했다. 개인간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이후, 여신님은 할 일이 생겼다고 내 내면 속으로 잠수를 하셨다. 벌써 일주일째 말을 걸어도 반응을 하지 않으시는 걸 보니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알아야 할게 많은데, 하나도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해 죽겠네.

나를 둘러싼 상황들이 심상치 않았다. 저승 쪽이며, 여신님이며, 이세계의 침략자들이며 아주 개판 5분전이 따로 없었기에 나는 알아야만 했다. 나는 충분히 이 상황에 대해 설명 받아야 할 권리가 있었다.

나를 해결사로 내세웠으면 설명은 당연한 거다. 목숨이 걸린 일인데 맨땅 헤딩을 하라니, 뭐 나는 목숨이 두 개라도 되냐, 적어도 약점정도는 알려주는 게 도리 아니야? 아니면 뭐 지들이 알아서 해결하던가!

호환도 그렇고, 이번 개인간 건도 그렇고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데 나도 대비할 여유는 줘야지!

불만을 말하자면 끝이 없다. 나는 불만을 삼키며, 폰을 다시 만지작거렸다. 할 게 없으니 폰이라도 만지며 시간을 죽일 요량이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폰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일이 일어날까.

당연히 일어난다.

나를 이 세계를 둘러싼 불길한 기류에 의도적으로 휘말리게 했단 저승과, 나를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인도하려 하는 여신님을 보며 내린 결론이었다.

나는 지금보다 더 강해지고, 교활해질 필요가 있었다.

앞으로도 이런 트러블에 시달리게 될 테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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