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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123화 (123/352)

〈 123화 〉 111.어둠속에서 눈을 마주치다(6)

* * *

[조심하거라.]

이성이 없는 건가, 아니면 뭐 컨슘이라도 쓰는 건가. 동료 둘의 머리를 두 손으로 손수 으깬 괴물딱지는 살기가 가득 담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당장이라도 날 반으로 찢어버릴 것 같은 시선에 나는 무심코 몸을 움츠렸다.

이러면 안 되는데. 싸움에서 기선제압을 당한다는 건 싸울 줄 모르는 나도 위험한 일이라는 걸 알았다. 저 좆같은 개새끼, 개새끼...씹새끼...나는 바닥의 핏물 웅덩이를 보며 빠루를 고쳐잡았다.

괴물의 몸집은 전보다 두 배는 커져 있었다. 내가 잘못 본게 아니었어. 제대로 된 광원이 없어서, 괴물은 마치 검은색 벽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정말 동료를 희생해서 자기를 강화시키는 능력 같은 게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거대화한 개인간은 천장에 닿을락 말락한 몸을 웅크리곤, 나를 노려보았다. 맹수가 당장이라도 도약할 것처럼 웅크리는 자세에,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단 하나 뿐이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주차장 기둥 쪽으로 몸을 날렸다.

“시발...”

내가 서 있던 장소가 마치 포탄에라도 맞은 것처럼 구멍이 뚫려 있었다. 불합리한 괴력이었다. 나보다 몸집도 크고 재빠른 녀석을 내가 무슨 수로 잡아야 하나. 빠루를 든 손이 떨렸다.

[침착하거라.]

...알고 있어요.

[고간을 노려야 하느니라.]

그렇겠죠. 제가 노릴 수 있는 급소라곤 그곳뿐이니까. 나는 옷 따위는 하나도 입지 않은 괴물의 고간을 슬쩍 쳐다보았다. 묘사는 하지 않겠다. 나는 남자의 물건을 감상하는 취미 따위는 없었으니까.

괴물은 나를 곧바로 내가 몸을 피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시 한 번 나와 맹수의 눈이 마주쳤다. 나는 곧바로 차들 사이로 몸을 숨겼다. 저런 몸집이라면 차들 사이로는 못 들어오겠지. 차를 던질 정도의 근력이 없다면.

...설마 그 정도로 힘이 강하지는 않겠지?

저 괴물 놈을 죽이려면, 이쪽도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그것 하나만은 확실했다. 정면 대결은 승산이 없었다. 나는 영웅이 아니고 민간인이다. 괴물을 사냥하는 것은 영웅 뿐. 나는 철저하게 한번 밖에 없을지도 모를 기회를 노려야 했다.

“@&!^$*!@$(&!!”

주차장에 개인간의 울부짖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온 몸을 떨리게 하는 소리에 나는 왼손으로 들고 있던 머리를 더욱 세게 붙잡았다. 겁먹으면 안 돼. 저 좆같은 새끼들한테 겁먹으면 나 혼자 끝나는 게 아니야.

떨리는 몸을 겨우 진정시킨 나는 차들 사이로 숨어든 나를 찾기 위해 다가오는 개인간을 훔쳐보며 빠루를 꽉 쥐었다.

“!@#!($^(!@!”

[완전히 맹수로다. 그저 울부짖고 있을 뿐이로구나.]

냄새인지 소리인지, 아니면 어둠을 꿰뚫어보기라도 하는 건지 개인간은 정확히 내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왔다. 당장이라도 나를 찢어버리겠다는 듯이 팔을 차들 사이로 밀어 넣으며 나를 노렸다.

나는 그 팔에 대응하는 대신 뒷걸음질 쳤다. 목표를 잃은 팔은 나대신 애꿎은 유리창을 깨며 방범벨을 울렸다. 멀리서 들어도 시끄러운 방범벨이, 바로 앞에서 울리자 개인간이 귀를 틀어막으며 뒤로 물러나는 모습이 내 눈에 보였다.

“@!*$*&!”

지금, 달려야 하나?

[아니, 이미 늦었느니라. 그대의 위치가 발각된 상태에선 아무런 의미가 없느니라.]

그렇겠죠. 나는 여신님의 말에 따라 다시 몸을 숨겼다. 손이 미끄럽다. 심장의 고동소리가 손을 타고 머리에 전해진다. 맥박이 뛴다.

이길 수 있나?

아니 이겨야만 한다. 살고 싶다면.

“!@*$^*&@!^!!!”

다시 한 번 나를 발견한 개인간이 도약했다. 몸집 치고는 날렵한 움직임으로 도약한 개인간은 무식하게 차를 밀쳐내며 내가 서 있던 곳에 손톱을 내려찍었다.

뭐 저런 무식한게 다 있어!

나는 차 사이에서 뛰쳐나왔다. 과하게 발에 힘을 준 탓에 발목이 뻐근하다. 진심으로 어디 누워서 쉬고 싶었다. 승산이 조금이라도 보였으면 좋겠는데. 길이가 70cm남짓한 빠루로는 뭘 할 수가 없었다.

뭔가, 다른 무기가 필요해.

다른 무기...

[...한번 창을 써보겠느냐?]

창? 내가 창을 다룰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은데. 이 상황에서 익숙하지 않은 무기로 바꾸라고요?

[...그대라면 할 수 있느니라.]

어차피 어떻게든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창을 떠올렸다.

창...창... 이왕이면 다루기 쉬운...무겁지 않고 가벼운, 나라도 다루기 쉬운 창...하지만 그럴듯한 이미지가 떠오르질 않았다.

내가 아는 창이라곤 사극에 나오는 삼지창이나 모 달겜에 나오는 창들 정도인걸.

[...잘 떠올려 보거라. 그대라면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

빠루가 창이 되기 전에 내가 죽을 뻔했네. 나는 나를 향해 달려드는 개인간을 가까스로 피해내고, 최대한 거리를 벌렸다. 일단 거리를 벌려야 돼. 무기를 바꾸든 아니면 기습을 하든 일단 거리를 벌려야 했다.

하지만 그게 될까? 내가 무기를 바꾸는 데는 강한 집중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저 놈이 내가 무기를 바꾸게 만드는 것을 그대로 놔둘 리가 없었다.

내가 잠시 빠루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개인간이 다시 한 번 나에게 달려들었다. 무시무시한 속도에 나는 아까처럼 몸을 옆으로 날려 피하려고 했지만, 저 괴물이 순순히 같은 방법에 당해줄 리가.

이번에는 일부러 그런 건지, 내가 옆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곧바로 모을 비튼 개인간이 나를 향해 아가리르

나는 본능적으로 빠루를 들어 올려 나를 덮치는 개인간의 팔을 막아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살행위나 다름 없었다.

으아아아악! 팔이, 팔이!

나는 시야가 어지럽게 회전하는 것을 느끼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팔이 부러졌어! 오른팔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통증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눈물이 흐른다. 지나친 고통에 정신을 잃어버릴 것 같았다.

시야가 정신없이 회전한다. 왼팔로 잡고 잇던 머리가 충격에 의해 허공을 날았다.

머리가 뜨겁다. 뼛조각이 근육에 박히기라도 했는지, 무시무시한 통증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했다. 이대로라면...나는 필사적으로 개인간을 떨쳐내려 했지만 나보다 몸집이 두배는 커다란 괴물을 내가 떨쳐낼 수 있을리가 없었다.

개의 날카로운 이빨이 내 가슴께를 물어뜯으려 했지만, 나는 그나마 멀쩡한 왼팔로 빠루를 입안에 박아 이빨에 몸이 찢기는 것만은 막아냈다. 하지만 한 손으로 저 괴물을 막는건 아주 잠깐 뿐이었다. 10초도 되지 않아 내 저항은 무의미한 것이 되겠지.

이대로 죽는 거야?

“유진아! 안돼에에에!”

침음성이 들린다. 그리고 비명이 들렸다.

이대로 끝인가? 시발, 여기서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아.

[...아해야. 맺고 싶지 않았건만...맹약을 맺어야 하느니라.]

맹약?

[그래. 그대와 내가 맹약을 맺을지어다. 내가 그대에게 힘을 줄 터이니, 그대는 한 가지만 약속하거라. 이 힘을 죄 없는 자에게 휘두르지 않을 것을!]

맹약?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에게 맹약에 대한 정보가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있는지, 이해했는지는 도저히 짐작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마치 내 입은 그 말을 기다렸던 것처럼, 여신의 말에 대답했다,

맹약을 맺을게요. 어기면 안 될 조건은 죄 없는 사람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것.

부러진 팔의 통증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처음부터 다치지 않은 것처럼. 동시에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진 느낌이 몸 전체에 감돌았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힘이 아까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지금이라면 나는 내 위에서 나를 물어 뜯으려 하는 개인간의 고간을 걷어찼다. 축축한 느낌과 함께, 개인간이 깨갱 소리를 내며 내 위에서 물러났다.

“시...발...새끼.”

방금 전까지 이미지의 파편이 마구 뒤섞여 혼란스럽던 머릿속에 하나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빠루가 급속도로 모습을 바꾼다.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였다. 그것은 창이라고 하기엔 짦았다. 도대체 어떤 동물의 뼈인지 모를 하얀 창날과, 던지기 좋은 길이.

멋이라곤 없는 작살같은 모양이었지만, 지금 내게 멋은 필요 없었다.

나를 향해 다시 한 번 도약하려는 괴물에게, 나는 내 창을 자연스럽게 역수로 쥐고 자세를 잡았다. 나는 창을 개인간의 배를 향해 집어던졌다. 소름끼칠 정도로 자연스럽게. 마치 수백, 수천번을 그랬던 것처럼.

거칠게 공기를 찢으며 창이 날아간다. 고간을 강타한 고통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괴물은 내 창을 피할 수 없었다. 살을 거칠게 찢는 파육음과 함께 창이 개인간의 배에 박혔다. 그리고 몇초뒤에 수많은 가시가 개인간의 몸에서 고슴도치처럼 튀어나왔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온몸이 가시에 관통당한 개인간이 살아있을 수는 없었다.

개인간은 짦은 단말마 조차 지르지 못하고 움직임을 멈췄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거야?

저 창은 뭐고, 저걸 어떻게 난 머릿속에서 떠올린거지? 도대체 어떻게?

나는 어떻게 저 창을 떠올리고, 어떻게 창을 능숙하게 집어던질 수 있었을까.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아니, 아무것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내 자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아서, 나는 머리를 주워들고 끌어안으며 공포를 견뎠다. 본능적인 공포가 스멀스멀 올라와 내 심장을 조였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게이트를 부셔야 해.

무서워. 어떻게 된거야? 도대체 뭐냐고. 맹약은 뭐고, 저 창은 뭐고, 나는 뭐야?

[진정하거라. 그대는 여전히 이유진일 지어니, 그것만은 내가 보장하노라. 나를 믿거라.]

하지만­

[갈! 정신차리거라! 그대는 이유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니라!]

그, 그래, 나는 이유진이야. 대한민국에 사는 28세 스트리머야. 고향은 OO에 있고...

[이제 게이트를 막고 있는 놈만 처리하면 끝이로다.]

아.

나는 여신님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이제 조용해진 작은 방의 문에 다가가 걷어찼다. 아까전의 나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괴력을 문을 걷어차니 마치 게임이나 만화에서처럼, 문이 찌그러지며 떨어졌다.

철제 문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안쪽에서 붉은 빛이 흘러나왔다. 안에는 지팡이를 든 왜소한 체구의 개인간이 나를 보며 으르렁대고 있었다.

꺼져. 나는 지팡이를 나에게 겨눈 개인간을 향해 달려들었다. 창을 휘두를 필요는 없었다. 창을 쓰지 않아도 저 개인간을 죽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지팡이를 든 개인간은 내 발길질에 머리가 터져나가며 죽음을 맞이했다.

[...잘했느니라. 이제 게이트를 파괴하면 끝이니라.]

“...인류와 저 괴물들은 절대 양립할 수 없는 관계군요.”

나는 붉은 빛을 뿜으며 삐꺽거리는 게이트를 쳐다보았다. 정확히는 게이트를 이루는 재료였다.

인간의 뼈, 살, 내장. 그로테스크한 광경이었지만, 구역질 보다는 분노가 더 강했다. 나는 지팡이로 게이트를 때려부수기 시작했다.

뼈가 튀고, 피가 튄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땐, 붉은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그 자리를 대신 채우고 있었다.

[수고했도다 아해야. 그대는 세상을 잠시나마 위기에서 구해냈느니라. 잠시 돌아가서 쉬려무나. 그대는 쉴 자격이 있도다.]

...네.

농담을 할 기운은 없었다. 나는 그 자리를 뒤로하고 다시 지하 1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핏물로 가득한 주차장이 아닌 지하1층에서 쉬고 싶었다.

“유진아...”

“...왜?”

“그, 괜찮아?”

괜찮냐고? 지금 내 꼴을 봐...

“...피곤해. 한숨 잘 거야.”

조금 퉁명스럽게 대답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미안함보다 피곤함이 앞섰다. 세연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말없이 멈춰버린 에스컬레이터를 거슬러 올라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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