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 110.어둠속에서 눈을 마주치다(5)
* * *
머리를 들고 다닌 다는 것은, 시야가 무자비하게 흔들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이 목 위에 머리가 달려 있는 것은 정말 효율적인 설계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나는 입에서 피를 질질 흘리며 조용히 주차장 안을 돌아다녔다.
주차장 바닥이 마치 시체를 끌고 다니기라도 한 것처럼 핏물로 이루어진 자국이 생겼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이게 여신님이 제안한 작전이니까. 어처구니없는 작전이긴 했지만, 그럴듯한 작전이기도 했다.
생각해봐. 개라는 생물의 가장 유명한 특징 중 하나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개는 감각의 절반 정도를 후각에 의지한다. 다소 떨어지는 시력을 후각으로 보충하는 것이다. 개에게 통용되는 특징이 개인간에게 똑같이 적용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내 근처에 다가올 때마다 킁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개답게 후각이 민감한 것 같기는 했다.
그러니까, 이 주차장 전체에 몰래 내 피를 뿌린다.
보통이라면 자살이나 다름없는 행위지만, 나는 혈액 디스펜서나 다름없는 듀라한이었다. 피를 토하려고 하면 10리터 넘게 토해낼 수 있는 걸어 다니는 혈액팩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피를 주차장에 골고루 뿌려서 후각을 둔하게 만들고, 그 사이에 한명씩 ‘처리’한다는 심플한 작전을 실행하는 중이었다.
변수가 많기는 했지만, 딱히 내세울 만한 작전도 없었으니까. 혼자인 시점에서 그럴 듯한 작전을 짜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까, 제발 성공했으면 좋겠네. 차라리 X탈슬러그 마냥 혈사포를 날려댈 수 있었으면 일이 쉽게 풀렸을 텐데.
내가 피를 토해낼 수 있는 건 기껏해야 2미터 남짓. 아쉽게도 수 십 미터씩 발사하는 혈사포 같은 고급진 기술을 못 쓴다는 거야. 아쉽네.
나름 로망인데.
[아해야, 첨병 둘이 가까워 지고 있는 듯 하도다.]
알고 있어요. 일부러 여기서 기다리는 거기도 하구요. 나는 입을 꾹 닫고 숨을 죽였다. 슬슬 어그로가 끌린 두 명을 처리할 시점이었다. 아무래도 게이트 설치 작업에 인원을 투입하느라 순찰병의 숫자가 적은 모양이었다.
하나, 둘, 셋, 넷.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나는 빠루를 쥐고, 검은 SUV차량의 뒤에서 그들이 내 쪽으로 오는 모습을 훔쳐보았다.
대략 20미터,
“@#$@*$&*#!”
[어우 피 냄새, 라고 하느니라.]
코를 틀어막고 있는 것을 보니 내 피냄새가 독하긴 한 모양이었다. 아니 뭔가 좀 그러네. 미소녀의 피면 그랜절 하고 핢아마셔야 하는 거 아니야? 가능충들 다 어디 갔어!
[바닥에 흘린 피를 핥아먹는 멍청이가 세상에 존재하기는 하느냐?]
찾아보면 있지 않을까요? 온갖 이상성욕이 판치는 게 요즘 세상인데. 말한테 박고 싶어서 목장에 숨어들어가는 놈도 있는 세상이라고요.
[...더 이상 말하지 말거라. 인간을 돕는 것을 심히 고민하게 될 것 같느니라.]
넵.
여신님과 잠깐의 잡담을 나누는 동안에, 어느새 5걸음 안쪽으로 개인간들이 들어섰다. 이번에도 시츄페이스 개인간들이었다. 다행히도 불편해서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쓰지 않은 건지 머리에 투구 같은걸 쓰고 있지는 않아서, 골통을 쪼개버리는데 애로사항이 꽃피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입안에 피를 볼이 빵빵해지도록 머금었다.
하나, 둘, 셋!
“@U*$##@!*($@#&**($&(#$*(@#(&$*(@&$@(!!$#()$*@#(*!!”
나는 기습적으로 SUV에서 튀어나와 입에 머금은 피를 개인간의 얼굴을 향해 뿜어냈다. 붉은색 선혈이 개인간의 얼굴을 강타하자, 개인간들은 눈을 가리고 뒤로 물러났지만 뒷걸음질 정도로 내 빠루가 닿는 거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빠드득!
경쾌한 소리와 함께 오른쪽에 있던 개인간의 머리에 빠루가 거침없이 두개골을 가르고 내용물을 터트렸다. 또 다른 개인간은 당황했는지 내 쪽으로 팔을 휘두르며 위협했지만, 아무리 내가 일반인이라도 눈먼 공격에 당해줄 리가 없었다.
나는 빠루를 들고 있던 오른팔에 힘을 주고 개인간의 시체를 발로 걷어차 빠루를 뽑아냈다. 윽. 뇌수가 걸려나왔네. 나는 빠루를 한번 휘둘러서 뇌수를 털어내고 아직 뒤로 슬쩍 물러나 빠루를 고쳐 잡았다. 이제 저쪽이 내 존재를 확실하게 눈치 챘을 테니 속전속결로 가야만 한다.
나는 다음 목표인 개인간을 향해 빠루를 휘둘렀다. 저쪽도 이미 내 존재를 눈치 챈 탓인지 내가 휘두른 빠루를 옆으로 걸음을 옮겨 피해내곤, 나에게 다시 팔을 휘둘러 왔다. 노란색 눈동자가 살기를 가득 담았다.
시발.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숙여 팔을 피해내고 빠루를 휘두르기 위해 자세를 잡으려 했지만 신체능력은 저쪽이 월등하다. 아직 시야가 회복되지 않은 탓인지 횡으로 휘두른 개인간의 팔을 내 목 위를 노리고 있었다.
저런, 내 머리는 거기 없는데. 개인간은 허공을 가르는 손에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 틈에 빠루를 반대로 고쳐 잡고 아래에서 위로 휘둘렀다. 목표로 휘두른 곳은 포유류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급소, 고간이었다.
아, 알 터졌네. 뭔가 미안한데.
왠지 나에게도 환상통이 느껴지는 것 같아. 나는 상상하기도 싫은 고통에 눈을 크게 뜨며 울부짖는 개인 간의 고간에서 빠루를 거칠게 뽑아내곤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이번에도 두개골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뇌수가 두개골 사이로 터져 나왔다.
윽, 메스꺼워. 연속으로 보니 비위가 상하긴 했어도 버틸 만은 했다. 속이 울렁거리긴 하지만, 그걸 다스릴 여유는 없다. 나는 귀를 곤두세우며 소리를 듣고 달려오는 개인간들을 응시했다.
이번에 오는 건 세 명. 더럽게 많네 진짜.
나는 싸움 대신 전략적 도주를 택했다. 나는 차 사이로 돌아다니며 차들을 빠루로 두들기기 시작했다.
이제는 찾아올 사람 없는 차들이 도난방지용 방범벨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귀 아파 죽겠네! 하지만 그건 저쪽도 마찬가지 일터, 돌아다니며 일곱 대 정도의 방범벨을 울리자 저들도 이 끔찍한 소리의 향연이 정말 괴로웠는지 귀를 틀어막았다. 이럴 땐 쓸데없이 튼튼한 내 머리가 좋다니까.
나는 조용히 괴로워하는 개인간 중 가장 후방에 서 있는 몸집이 작은 녀석의 뒤통수에 빠루를 때려 박았다. 묵직하면서도 강렬한 진동이 내 팔을 타고 온몸에 전해졌다.
아무리 시끄러운 소리에 묻혔어도, 바로 뒤에서 일어난 소란을 그들도 눈치 채지 못할 수는 없었나 보다. 나는 자연스럽게 뒤돌아보기 시작하는 개인간들을 향해 피를 뿜어냈다. 목표는 당연하게도 얼굴이었다.
“!@U@$*@#(&$!”
이번에는 좀 더 베테랑인 녀석인지, 개인간 하나가 눈을 가리며 순식간에 내게서 거리를 벌렸다. 젠장. 그래도 나머지 하나는 잡아야 해!
제발! 나는 있는 힘껏 시체를 밞고 빠루를 뽑아내 다시 휘두르려고 했다.
안 빠져! 너무 깊숙이 박혀서 뇌수랑 엉겨붙은 거야?! 나는 나를 향해 달려드는 개인간을 피하기 위해 빠루를 쥔 손을 뗄 수 밖에 없었다.
시발, 시발, 시발시발 시발!
[아해야, 머리를 쓰거라.]
이것만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나는 머리카락을 길게 늘려 내 손에 감아쥐었다. 자고로 뚝배기는 강철보다 단단한 법이다.
아님 말고.
나는 나를 향해 아가리를 벌리며 도약한 개인간을 올려다 보았다. 날가로운 송곳니가 보인다. 물리면 내 머리는 둘째치고 몸은 찢겨나가지 않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마구 뒤엉킨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대롱대롱 흔들리는 머리를 개인간을 향해 휘둘렀다!
“죽어 개새끼야!!”
머리에 닿는 털의 촉감과 함께, 내 고막을 끔찍한 파쇄음이 강타했다. 쓸데없이 튼튼한 고막이 찢어지지는 않았지만, 살짝 어지러웠다. 머리카락에 달라붙은 축축한 액체가 정말 좆같았다. 머리를 다시 회수하니 개인간의 시체가 내 쪽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내 쪽을 향해 쓰러지는 개인간의 시체는 머리 부분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머리와 머리가 부딪혔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끔찍한 현장이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어디 있어 시발. 아직 한 마리 더 남았다.
새끼, 쫄았네.
나는 동료가 죽자 잠시 머뭇거리는 개인간을 향해 내 머리통을 집어던졌다. 계획적인 설계가 아닌, 본능적인 판단이었다. 내 머리가 바람을 가르며 10미터 가량 떨어진 개인간을 향해 날아갔다.
거리가 부족해, 그렇다면! 나는 쫄보인지 뭔지 다시 도망치려는 개인간을 향해 머리카락을 늘려 목에 감았다. 그대로 다시 줄이...면!
“죽어어어어어어어어!”
급속도로 줄어드는 내 머리카락과, 급격하게 가까워지는 개인간과 내 얼굴. 나는 눈을 감았다. 수박 터지는 소리가 다시 한 번 내 고막을 강타했다. 내 얼굴이 뇌수와 피가 흐르는 게 느껴진다.
우웩. 더러워.
[잘했느니라. 다른 놈들이 오기 전에 머리와 무기를 회수하거라!]
아오, 진짜 쉬고 싶어! 이제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진짜! 벌써 다섯 마리 째야! 이정도면 보스새끼 등판할 때 안됐냐고!
나는 재빠르게 빠루와 머리를 회수하곤 얼굴을 옷으로 닦아냈다. 한동안 고기는 입도 대지 말아야지. 지금 고기를 보면 있던 일주일을 굶어도 식욕이 사라질 것 같았다.
[게이트 쪽으로 빨리 가야하느니라. 아마 그쪽에서 움직이지 않을 요량이니뒤를 조심하거라!]
시발?!
일단 옆으로 구른다! 나는 전력으로 몸을 옆으로 날려 개인간의 날카로운 손톱을 피해냈다.
“*#$^$!@@&!^!...!*@*#&!$ㅛ!”
[가증스러운 방해꾼...우리의 숙원을 방해하지 마라! 라고 하느니라.]
“뭐 시발? 생긴 건 시발 찐따같이 생긴 시츄새끼가 이딴 짓을 저질러 놓고 뭐? 방해꾼? 우리의 숙원? 뒤져버려!”
빠루냐! 머리냐!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망할 늑대를 향해 거칠게 빠루를 휘둘렀다. 이번에는 짬밥을 좀 먹은 새끼인지 몰라도 팔로 막네? 앞서 말했다시피 내가 개인간과 힘 싸움을 할 처지는 아니었으므로, 나는 빠루가 막힌 것을 확인하자마자 머리를 거칠게 개인간의 얼굴쪽에 들이밀곤 피를 내뿜었다.
영거리 혈사포다 시발 놈아!
“U#Y@($(!&$(!@!”
네가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안보이면 어쩔 건데! 나는 얼굴이 피범벅이 된 개인간이 반사적으로 눈을 가리려 할 때, 머리카락을 움직여 물렁물렁한 눈깔에 머리카락을 쑤셔 박았다. 기왕 더러워 진거 조져버려야 직성이 풀리지!
더 길게! 더 깊숙이!
내 시야 끝에 눈에서 정수리까지 일직선으로 구멍을 내고 튀어나온 머리카락 끝이 흔들렸다. 머리카락을 회수한 나는 쓰러지는 개인간의 몸을 걷어차 버리곤 게이트가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유진아, 너 방금 하드보일드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같았어...”
“기왕이면 하드보일드 영화보다 힐링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이 좋아...”
내가 전투광도 아니고, 이렇게 피와 내장과 뇌수로 범벅이 되며 싸우고 싶을 리가 없었다. 코를 찌르는 강렬한 냄새에 정말 돌아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게이트는 남아있었다. 그리고 아마 이 개인간들의 대장도.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게이트가 있다는 작은 방을 향해 걸었다. 대형백화점의 주차장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내가 지친 탓인지 작은 방 앞 까지 가는 길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쉬고 싶다 진짜. 이번 일 끝나면 방송이고 뭐고 푹 쉴 거야.
[기운을 보니 3명인 모양 이느니라.]
세연이가 말해준 것보다 숫자가 적네? 내가 처음에 잡은 하나, 그 다음에 잡은 넷, 그리고 나를 기습한 하나. 총 6마리를 죽였고 이제 4마리가 남아있어야 하는데...한명 정도 오차는 있을 수 있다.
[조심해야 하느니라. 지금까지는 어중이떠중이들뿐이었으나, 저들의 지도자로 보이는 자는 심상치 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니라.]
그냥 접시물에 코박고 다 죽었으면 좋겠네. 마늘이 있었으면 입안에 잔뜩 마늘을 쳐넣고 턱을 걷어찼을 거야. 시발 피냄새. 이게 내 피냄새인지 개인간들의 피 냄새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거야...?”
작은 방 쪽에 다가갈수록, 바닥이 붉은색을 띄기 시작했다.
붉은색의 정체는 내가 잘 아는 것이었다.
피였다. 갈색으로 굳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면 아마 내피도, 개인간들의 피도 아닌 것 같았다.
[...아무래도 네가 생각하는 그 가설이 맞는 듯 하느니라.]
방 앞에는 내가 본 개인간들 중에서 가장 몸집이 작은 개인간과 한 쪽 눈에 안대를 차고 있는 개인간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저 둘을 처리해야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건가.
두 개인간은 어둠속에서 나타난 나를 보고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
“뭐라는거야 시발...한국말 못하면 아가리 닥쳐.”
저 둘을 어떻게 처리한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쓰러트릴 수 있었지만, 온몸이 피투성이인 내 모습을 보고 잔뜩 경계하는 두 개인간들을 쉽게 쓰러트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저쪽은 어떻게든 지키기만 하면 되는 것에 비해 하는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르는 게이트를 부셔야 하는 불리한 싸움.
나는 다시 한번 빠루를 꽉 쥐며 언제라도 휘두를 수 있게 자세를 잡았다.
서로 아주 잠시 동안의 대치가 끝나고 움직이려 할 때, 문이 거칠게 열리며 안에서 다른 개인간의 반 정도는 더 큰 개인간이 몸을 굽혀 방안에서 빠져나왔다.
[@*#&$^!*$&%!$#$&&%*!]
[이런 피라미 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죽다니, 쓸모없는 놈들!]
피가 튄다. 나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미친 새끼.
동족의 피로 팔을 물들이곤 흉성을 가득 담은 눈길로 나를 쏘아보는 미친개를 보며, 나는 혀를 찼다.
정상적인 새끼가 없어 새끼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