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화 〉 109.어둠속에서 눈을 마주치다(4)
* * *
어둡다. 마치 호러게임 속에 나오는 미궁 안을 돌아다니는 느낌에, 나는 침을 삼키며 지옥빠루를 꽉 잡고 조심스럽게 지하2층 주차장 입구 옆에 숨어 주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불 키면...안되겠지?
정말로 호러게임이라면 불 키고 다녀도 날 발견하거나 하지는 못했겠지만, 여긴 현실이었다. 나는 쥐 죽은 듯이 숨어서 상황을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먼 곳에 있는 건지, 주차장 안은 조용했다.
이따금씩 알아먹지 못할 목소리가 들려오긴 했지만.
“!@*!^#!^#!^!*&@!”
[...이곳의 음식은 이상하다고 하느니라.]
시발 놈들. 이딴 짓을 저질러 놓고 지들은 음식 타령이나 하고 있다고? 머리에 피가 몰리는게 느껴졌다. 모가지를 아주 비틀어 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내가 저 새끼들 뚝배기를 빠루로 박살내버리겠어.
“유진아, 내가 먼저 가볼게.”
“...알았어.”
...귀신이니까 재내들도 세연이 못 보겠지?
세연이는 조심스럽게 주차장의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숨죽이며 세연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세연이가 다시 돌아온 것은 10분이 지난 후였다.
“어...어...”
“왜 그래?”
“그, 한 10마리? 10명?은 있는 거 같은데...그, 얼굴이...시츄였어. 어두워서 겨우 확인했는데, 무언가 만들고 있었어.”
“시츄?”
그러니까, 이 백화점을 붕괴시킨 씹새들 얼굴이 시츄처럼 생겼다는 거지? 거 참 귀엽게 생긴 침략자네 그려. 하는 짓은 개새끼 그 자체지만. 그래서, 어떻게 해야 돼? 저것들을... 다 조져버리면 되는 걸까?
“사람은 못봤어?”
“으, 응...”
어딘가 대답이 석연치 않았지만, 지금 급한건 그게 아니었으므로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물으면 안될 것 같았으니까. 세연이는 평소보다도 더 새파랗게 질린 모습이었다.
[게이트를 완성하지 못하게 해야 하느니라. 지옥참마도는 그것을 위해 만들어진 무기이니, 그 무기로 부수기만 하면 되느니라.]
부연설명 감사합니다. 그럼 저승 쪽에서도 처음부터 나를...
[...맞느니라. 저승과, 우리 신들은 처음부터 그대에게 많은 것을 걸었느니라. 그대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주는 것 같아 미안할 따름이느니라...모든 것이 해결 되는 날, 그대가 원하는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느니라.]
그럼 갑부가 되게 해달라고 빌어도 들어주나요?
[가능하느니라.]
와, 단언했어! 신정도 되면 그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건가. 그래도 김칫국 원샷 드링킹 하지는 말자. 그 날이 언제인지도 모르잖아. 어쩌면 수십년 뒤일지도 모르고. 애초에 그렇게 희망적인 상황도 아니었다. 나는 혼자, 하지만 첨병은 10명 남짓.
숙련된 기사도 2대1은 버겁다고 들었는데, 일반인인 내가 10명을? 듀라한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여신님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면 이건 그냥 자살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결국 나한테 선택지는 없었지만.
이곳에서 나가기만 한다면, 여신님과 진득한 대화를 나눠봐야 할 것 같다.
“...주차장 구석에 있는 작은 방 같은 곳에 모여 있는 것 같아. 적들이 보초를 서고 있는데...무기로 검이랑, 창이랑, 도끼 같은 걸 들고 있었어. 아, 대장처럼 보이는 개는 지팡이 들고 서 있었어...”
이족보행 시츄가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라니, 우스꽝스러운 모습이겠지만, 이딴 짓을 벌인 걸 생각하면 우습게 느껴지는 커녕 두려움이 조금씩 발끝에서 기어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내가 이길 수 있을까?
[괜찮느니라. 그대는 할 수 있느니라.]
말뿐인 격려 감사합니다.
[말뿐인 격려가 아니느니라. 그대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몸이니라. 나 모리안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노라.]
제가 뭐라고 그렇게 말하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저는 정말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한데요.
[그대가 정말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호환 앞에 서지도, 쓰러트리지도 못했을 것이니라.]
그런가...? 계속 격려를 받다보니 조금이나마 용기가 솟아 오르는 느낌이었다. 어차피 내려온 이상 다시 올라간다는 선택지는 없다. 어차피 저 새끼들을 족치지 않으면 나에게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희망은 없다.
최소한 내 웹소설 지식에 의하면 이건 딱 현판물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한 시점이니까, 저걸 어떻게든 막느냐 마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이 진짜 지옥불반도가 되냐 마냐가 결정되는 거다. 어깨가 무겁다.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게이트가 열리는 게 이 백화점 지하주차장 뿐 일까?
소설 보면 게이트가 세계 곳곳에 막 열리고 그러던데. 내가 이곳의 게이트를 부순다고 일이 해결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내가 이 게이트를 닫는 게 의미가 있긴 한 걸까?
[지금 이 세계에는 저 게이트가 유일할 것이니라. 저승과 신들이 필사적으로 틈새를 틀어막고 있으니, 아마 그들도 이렇게 몰래 들어오는 방법이 아니면 통로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을 터... 일단 이후의 일은 이 곳의 게이트를 닫은 다음에 생각해도 되느니라.]
그래. 일단 여기부터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죠?
[무턱대고 돌진하면 죽는 것은 우리 쪽이 될 터이니, 하나하나 조용히 처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이느니라. 다행히도 개개인의 능력이 인간보다 조금 뛰어난 개체이니, 하나하나는 그대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니라.]
전혀 도움 안 되는 위로 감사하구요. 네. 뭐 일단 어떻게든 해보죠. 일단 주차장에 숨어서 조용히 다가가는 것부터 해야겠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나는 총같은게 없어서, 접근전을 벌여야 하니까.
“세연아, 앞장서서 망좀 봐줘.”
“알았어.”
세연이는 잔쯤 열린 자동문을 뚫고 날아가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조용히 자동문의 열린 틈새로 빠져나와 앞의 기둥에 붙었다. 조금이나마 어둠에 적응한 시야로 주차장 안쪽을 보니, 이상하리만치 주차장은 깨끗했다. 이상하리만큼 붕괴의 흔적이 적었다. 천장에 금이 가있기는 했지만,
아마 주차장에서 깨어났다면 붕괴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조차 눈치 채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상한 일이야. 분명 주차장에도 사람이 있었을 텐데. 불길하다. 주차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뒤꿈치를 들고 조심스럽게 기둥 뒤에서 세연이가 날아간 방향 쪽을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평일 낯이라 그런지 차가 적은 편이긴 했지만, 엄폐물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는 배치되어 있어 다행이었다. 차가 아예 없었다면 숨어들어갈 방법이 없었을 테니까.
“...@*#$*@!(!”
[게이트의 재료가 부족하다는 것 같느니라...게이트의 재료...설마...]
여신님은 말을 잇지 못하고 침묵했다. 도대체 뭔데.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이상하리만큼 보이지 않는 사람들. 게이트의 재료. 최악의 가정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나는 애써 머릿속에서 그 가정을 지워냈다. 아직 직접 눈으로 본 게 아니잖아.
“...(*&%*$*!”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 졌다. 여전히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화를 내고 있다는 것 같았다.
“저쪽에서 다가오고 있어...!”
세연이가 내게 다가와 말해준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천천히 내가 있는 곳으로 개인간 하나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눈치채버린 건가? 어떻게? 여긴 자동차들이 둘러싸고 있는 곳이라 웬만해서는 보이지 않을 텐데?
설마, 개답게 코를 냄새를 맡은 건가?
[조심하거라. 눈치를 챈 것 같으니라.]
어떡하죠?
[조용히 처리하는 방법 밖에 없느니라. 저 놈이 다가오면 머리를 부셔버리거라.]
나는 빠루를 꼭 붙잡고 언제라도 내려칠 수 있게 자세를 잡았다. 털이 바닥에 쓸리는 듯 한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그 소리에 비례해서 내 심장도 격하게 뛰기 시작했다.
진정해. 기회는 한번 뿐이야.
실패한다면, 뒤는 없었다.
할 수 있을까? 머릿속에서 두려움이 다시 고개를 들고 나에게 속삭였다.
해야만 한다.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마침내 지금거리까지 괴물이 다가왔을 때, 나는 양손으로 꼭 붙잡고 있던 빠루로 괴물의 머리통을 있는 힘껏 내려쳤다. 어찌나 쎄게 내리 쳤는지 머리 부분이 마치 포탄에 맞은 것처럼 터져나가다 시피 해서, 괴물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느리게 내 쪽으로 쓰러졌다. 나는 눈을 꼭 감고 시체를 붙잡아 천천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처음으로 생명체의 머리를 부셔버린 소감은...정말 기분이 더러웠다. 그리고, 생각보다 마음이 평온했다. 분명 처음인데, 처음 같지 않았다.
나는 얼굴에 붙은 피를 닦아 냈다.
당장이라도 피를 토하고 싶을 정도로. 내 얼굴과 몸에 튄 피가 기분 나빠 욕이라도 뱉고 싶었지만, 이제 겨우 한명일 뿐이었다. 최소한 남은 인원은 9명 정도. 이번엔 기습이라 어떻게 한번에 잡았지만, 다음에도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었다.
적들의 무장은 세연이의 말에 의하면 냉병기 종류인 것 같았지만, 활이나 총을 들고 있지 않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세연이의 말에 의하면 작은 방 안에서 게이트를 만들고 있는 것 같다고 하지 않았나.
나는 머리통이 깨져 뇌수가 흐르는 개인간을 쳐다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내 비위는 저런걸 태연하게 볼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 않았다.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기분 나빠. 당장이라도 목 위로 솟구친 피를 뱉어내고 싶었지만, 나는 애써 피를 다시 삼켰다. 죄다 개새끼들인데 피를 뱉으면 위치를 들키겠지.
[곧 피냄새가 저쪽으로 흘러들어갈 것이니라...내게 좋은 생각이 있으니 한번 들어 보겠느냐?]
그게 뭔데요?
[그건...]
나는 여신님의 계획을 듣고 수긍했다. 괜찮은 작전인 것 같았다. 전쟁은 자고로 상대가 싫어하는 짓을 하는 거라고 누군가 말했던가.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저 좆같은 개새끼들이 이미 그런 짓을 저질렀으니, 나도 똑같이 저질러줘도 할 말 없겠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나는 얼마든지 악랄해질 수 있었다. 아니, 이걸 악랄하다고 할 수 있는 걸까? 선을 넘은 녀석들에게 선을 넘은 방식으로 되갚아줄 뿐인 걸. 이건 백화점에서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복수다.
나는 조용히 정수리를 왼손으로 붙잡고 머리를 몸에서 떼어냈다.
듀라한이 왜 죽음의 요정인지 몸소 알려주마.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