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듀라한이 되어버렸다-113화 (113/352)

〈 113화 〉 외전.아아, 이것은 한우라는 것이다

* * *

“한우 1++로 만든 양념갈비! 마음껏 먹어! 오늘은 먹고 죽는다!”

버스 시뮬레이터로 뽕을 뽑아버린 다음날, 나는 점심에 고기파티를 벌였다. 아침 댓바람부터 정육점가서 최고급 한우 양념갈비 세트를 거침없이 장바구니에 밀어 넣고 계산대에서 일시불로 결제하는 느낌이란!

내가 그 비싼 한우 양념갈비를 하나씩 추가할때마다 주인장의 표정이 점점 공손해지더라. 맛있게 드시라고 마늘이랑 상추도 듬뿍 얹어줘서 수고를 던 것은 덤이다. 역시 세상은 돈이야! 돈만 있으면 어떤 가게도 친절해지지!

세상에 나쁜 돈은 없다!

“와! 맛있겠다! 잘 먹겠습니다!”

“주인님 주인님! 나도 먹을래!”

말한테 고기 먹여도 돼? 초식동물이라고 고기 먹이지 말란 법은 없지만, 양념된 고기라 건강에 안 좋지 않을까?

[...보통 말도 아닌데 무슨 상관 이겠느냐.]

하긴 유령마인데 양념 갈비 먹었다고 탈나진 않겠지.

나는 집게로 노릇노릇하게 익은 고기를 들어 올리고는 숙련된 솜씨로 한땀 한땀 먹기 좋게 자르기 시작했다. 이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우아한 자태! 맡는 것만으로도 오르가즘을 느끼게 만드는 향기! 마치 종이를 자르는 것처럼 사르륵 잘리는 부드럽고 말랑한 육질!

이게 고기지! 역시 비싼 값을 하는구만! 싼 맛에 먹는 돼지 앞다리살과는 다르다고! 새롭게 장만한 전기 불판위에서 지글지글 끓는 모습만 봐도 행복도가 수직상승하는 소리가 들린다. 역시 돈은 쓰라고 있는 거지! 쓸데없이 아끼다가 똥 되라고 놔두는 게 아니라! 쓸 때는 써야 행복해지는 거야!

“잘 익은 것 같네! 먹자!”

“주인님! 젓가락 못 쓰겠어!”

“자, 아 해봐 아~”

“아~”

나는 젓가락으로 큼지막하게 자른 고기 한 점을 집어 에포나의 혀 위에 고기를 살포시 올려주었다. 에포나는 우물거리며 고기를 씹어 먹기 시작했다. 잘 먹네.

“사라졌어!”

“고기가 원래 잘 사라지긴 하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위장으로 사라져버린다고. 나는 불판 구석에 다 익은 고기를 밀어두고 새로운 고기를 올려두었다. 나도 한입 먹어볼까.

상추 위에 깻잎을 올려두고, 잔뜩 사둔 마늘을 쌈장 묻힌 고기와 함께 올려두고, 아까 만들어 두었던 파채와 양파로 장식한 쌈을 입안에 한껏 밀어 넣었다. 역시 고기 먹을 땐 상추쌈이지! 요즘은 쌈무니 월남쌈이니 이것저것 많이 생기긴 했지만, 근본은 역시 상추에 깻잎이지!

이게 야...아니 행복이지!

입안에 가득 찬 상추의 맛과 터져버린 틈새로 나오는 육즘과 쌈장의 맛, 그리고 알싸하게 입안을 감싸는 마늘의 맛과 부드러운 고기의 식감이 환상적이다 못해 감동의 물결이 밀려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나...더는 삼겹살 못 먹게 되버려...

[이것은 무엇이더냐? 이렇게 맛있는 고기가 이 세상에 존재하다니! 믿을 수가 없느니라!]

아아, 이것은 한우라는 것이다. 비싼 만큼 맛있지.

[신들에게 바치는 제물보다도 맛있는 고기라니, 믿을 수 없도다!]

요즘 시대가 먹을 거 하나는 풍족한 시대라서요. 하다못해 길거리에서 사먹는 간식도 여신님이 한창 살아계시던 시절에 먹던 음식보다 맛있을 걸요?

[부정할 수 없는 말이니라...]

“주인님! 나도!”

옛다. 나는 고기를 몇 점 집어 다시 에포나의 입안에 넣어주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제 손보다 더 큰 쌈을 만들어 먹는 유라를 쳐다보았다. 그거 입에 들어가니?

...들어가네. 애가 참 복스럽게 먹는구나. 하긴 저 나이때는 이쁜 척 깨작깨작 먹는 것보다 복스럽게 먹는 게 더 이쁘지.

이렇게 말하니까 왠지 할머니 같은데. 외견은 유라랑 친구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모습이지만. 근데 여신님 제 몸은 왜 하와와 중학생인가요?

[하...와와...? 중학생...? 그건 무슨 뜻이더냐? 그대의 몸은 내 처녀시절을 기준으로 만들었느니라.]

그러니까 어린 시절이라는 말씀이시죠? 어, 그리고 유부녀? 남편도 계신? 그러니까 제가 밀프의 어릴 적 몸으로 TS당했다 이 말입니까? 나중에 남편 분 튀어나와서 “오, 내 아내의 어릴 적 모습이랑 똑같군!”하면서 NTR 시도하는 거 아니죠?

저 그런 19금 동인지 같은 전개 싫어하는데.

[엔티알...? 그게 무엇이더냐?]

어, 불륜이요?

[그럼 내 손에 명을 재촉할 것이니라. 애초에 이미 오래전에 사별하고 말았느니라...]

아...죄송해요.

[괜찮느니라. 아해가 실수하는 것쯤이야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줄 수 잇노라. 자자, 어서 음식을 입안에 넣거라. 오랜만에 식사를 즐기고 싶으니라.]

...고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서 용서 해주시는 거 같은데. 나는 아까와 똑같이 쌈을 싸서 입안에 밀어 넣었다.

[과거에도 이런 미식을 즐길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아무래도 과거에는 힘들었나 봐요?

[이 풍요로운 시대와는 다르게 그 시대는 기술도, 도구도 없어 척박하게 살아 왔느니라. 이런 미식을 할 여유가 있질 않았지.]

여신님이라 좋은 것만 보고 먹으실 줄 알았는데, 식문화는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켈트 쪽은 암브로시아 같은 게 없었나? 그러고 보니까 켈트 신화가 어느 지역이었지?

[그대들이 지금 아일랜드라 부르는 땅이니라.]

아일랜드...여신님, 제가 오늘 입 호강 시켜드릴게요...

[뭔가 기분이 나쁘지만, 넒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느니라.]

“나...한우 먹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야...”

세연이 자리에 꽂아놓은 향초 너머로 울먹이는 세연이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아니 여기서 눈물샘 자극하지 말라고...울지마! 뚝!

“주인님! 나도 싸무? 그거 먹어보고 싶어!”

“기다려봐. 내가 아주 끝내주게 만들어 줄 테니까.”

“언니, 나도 하나만...”

유라까지? 내 손이 남아나질 않겠구만. 어쩔 수 없지. 나는 머리카락을 늘려 집게를 잡고 고기를 뒤집으면서 손으로 쌈을 만들었다. 내 머리카락은 강철보다 튼튼하고 쇠심줄 보다 질기므로 머리카락이 떨어지는 불상사 따위는 없었다. 언제나 공들여 관리하고 있어서 깨끗하기도 했다.

머리카락 관리하는 거 안하면 애들이 나를 다 갈군다고. 이런 머리카락 관리 안하는 건 범죄라면서. 유라도 귀찮은데 하지 말까? 한번 말해보니까 정색하더라. 너네 내 머리카락에 집착하는 거니?

그러니까 틈만 나면 내 머리카락 가지고 노는 거지?

[여성에게 있어 머리카락은 생명과도 같으니라.]

뭔가 굉장히 낡은 느낌의 잔소리네요.

[잔말말고 고기나 입에 넣거라. 다음엔 그 매운 것 좀 빼고 말이다.]

아 옙. 매운거는 마늘인가? 쌈에 생마늘이 없으면 좀 심심한데...

“주인님! 나도 쌈! 쌈!”

“알았어, 고기는 어디 안간니까 기다려봐. 기깔나게 만들어서 넣어줄 테니까.”

내가 쌈 하나는 자신 있지!

[사랑받고 있도다, 아해야.]

뭐, 애들이니까 저한테 의지하는 거죠. 제가 여기서 최연장자기도 하고...애들은 원래 어른한테 의지하니까.

[남의 아이를 제 핏줄처럼 신경 쓰는 어른은 드무니라. 그대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그대는 충분히 ‘좋은’ 어른이니.]

음, 칭찬 감사합니다?

소란스러운 식사가 이어진다. 아예 작정하고 먹을 요량으로 사온 7인분 분량의 양념갈비는 순식간에 뱃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꺼억. 이게 고기지.

에포나랑 유라랑 세연이도 만족스러운 얼굴로 먹은 것 같으니 마음이 뿌듯해졌다. 이래야 돈 버는 맛이 나지. 부모님한테도 사드려야 하는데.

나중에 시간 내서 한번 고향에 내려가 봐야지. 부모님 얼굴도 오랜만에 뵙고, 용돈도 두둑히 드리고...

...근데 누구 하나 까먹은 거 같은데?

나는 뒤늦게 한솔이를 부르지 않았음을 눈치챘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