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 98.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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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한 현장이다.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휴일을 보냈을 동물원은 마치 호러영화에 나오는 장소마냥 피로 물들어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동물원을 둘러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나는 내 말에 어이없어 하는 형사 아저씨를 무시하고, 덤프트럭에 치여 날아간 호환을 향해 지옥참마도를 들이대며 입을 열었다.
“...은거한다고 하시던 분이 여기서 뭐하시는 거예요?”
“아해야...”
덤프트럭(에포나)로 가한 충격에 호환이 사납게 눈을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헬멧 속 가려진 눈동자와 호환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분명히 일주일 전에 만났던 호환의 총기 있던 눈동자와는 다르게, 지금의 호환은 눈동자가 흐려져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조용히 검을 겨눈 채, 호환과 시선을 교환했다.
“전에 만났을 때는 조용히 은거한다면서요?”
“...자네는 이해하지 못 하네.”
“뭐가요?”
당연히 나는 호환이 어떤 심정인지 모른다. 나는 저런 일을 겪어 본적이 없으니까. 자기 종족이 멸종당하고, 남아있는 생존자마저 동물원에서 구경거리가 되어본 적이 없으니까. 분명 비통한 일일 테지만...나는 호랑이가 아니고, 호환은 인간이 아니다.
서로 간에 좁힐 수 없는 입장차이가 엄연히 존재했다. 어쩌면 저승사자는 이런 상황이 일어날 것이라는 걸 예상했지 않았을까. 어쩌면 나도 내심 깨닫고 있었던 것을 모른 척 하고 있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넒고 가보지 못한 곳도 많으니, 다른 지역의 동족들이 살아 있을 수 있다고는 생각했다네.”
호환은 비통함과 분노가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도 그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겠지. 하지만 이런 비참한 상태가 되었을 줄은 몰랐을 뿐. 으르렁 대는 소리가 구슬프다. 하지만 나도 그 말에 공감은 하되,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는 이미 피를 손에 묻혔으니까.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이제는 어떤 식으로든 그는 사냥당할 운명이었다. 그게 내 손이건, 아니면 다른 인간의 손이건 간에. 아무리 그가 수백 년을 살아온 요괴호랑이라고 할지라도 현대화기가 아주 통하지 않는 것은 아닐 테니. 게다가 그는 덤프트럭에 옆구리를 치이면서 큰 부상을 입은 상황이었다. 보통 호랑이 였다면 지금쯤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겠지만, 그는 집채만 한 대호였기에 중상을 입는 정도로 끝난 것 같다.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네.”
“...”
“그런데 산을 올라온 인간들이 이야기하더군. 저기 저 밑에 호랑이들이 모여 살고 있다고. 다 같이 보러 가자고.”
그게 동물원 이야기 였던 건가? 누군지는 몰라도, 정말 재수가 없었구나. 호환도, 그 사람들도. 본의 아니게 이 참극에 일조하게 된 꼴이라니, 세상일이란 알다가도 모르겠다. 호환은 거칠게 숨을 들이쉬었다. 트럭과 정통으로 부딪힌 부위에 핏물이 조금씩 새어나오고 있었다. 아무리 그라도 시속 150KM로 달리는 덤프트럭에 부딪히고선 무사할 수는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인간들의 발자취를 따라 이곳까지 들어왔네. 남아있는 동족의 얼굴이라도 한번 볼 생각이었지. 그리고...”
호환의 시선이 다시 철창 너머로 향했다. 그곳에는 어이없게도 구석에 박혀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는 호랑이들이 보였다. 그 모습은 마치 겁먹은 강아지들 같아, 산군이라 불리던 호랑이들의 별명이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저들은 산이라는 게 무엇인지 조차 모르더군.”
태어나기를 동물원 안에서 태어났으니, 바깥세상을 몰랐다는 건가? 동물원에서 태어나고 동물원에서 살아왔을 호랑이들이 산을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일까. 그들이 철창 밖의 세상을 알 이유는 없을 테니.
우물 안 개구리마냥 철창 안에서 태어나 철창 안에서 살아왔으니, 이제 와서 그들이 철창 밖으로 나오려 할까? 철창 밖은 철저한 미지의 세계다. 호기심은 가질지언정 그들에게 철창 밖을 뛰쳐나올 용기가 있을까?
“자신의 본질조차 잊어버리고, 구경거리로 전락한 모습이라니! 차라리 멸종했다면 좋았을 것을! 이래서야 살아있다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죽은 것만 못한 것을!”
호환의 눈에 피눈물이 흐른다. 상처 때문이 아닌,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남아있는 자긍심마저 더렵혀진 산군의 눈물이었다. 그의 외침에서 우러나오는 슬픔에 칼끝이 흔들렸다. 당장이라도 칼을 내리고 싶지만, 상황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난동을 피운거에요?”
“인간이 증오스럽도다. 나를 봉인한 그 인간도! 우리 호족을 멸종시킨 것도 모자라 구경거리로 만들어버린 인간들도! 나는 왜 잊고 있었는가...우리 호족과 인간은 서로 사냥하고 사냥당하는 관계였음을!”
인간과 맹수, 절대 좁혀질 수 없는 입장의 차이. 나는 사냥꾼이 되어야 했고, 호환은 사냥감이 되어야 했다. 어쩌면 반대일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싸우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나는 더 큰 피해가 생기기 전에 그를 막아야 했고, 호환은 자기를 막아서는 나를 물리쳐야 할 테니까.
나한테 승산이 있을까? 오랜 세월동안 사냥과 싸움으로 다져진 호랑이들의 우두머리와, 제대로 싸울 줄도 모르는 듀라한인 내가?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차라리 저기 멀리서 상처를 치료하며 관망하고 있는 경찰 쪽이 더 승산이 높을지도 모른다.
“...아해야. 검 끝이 흔들리는 구나.”
무섭다. 두렵다. 공포스럽다.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내 심장을 쥐고 흔들었다. 당장이라도 나를 한 입에 꿀꺽 삼켜버릴 듯한 호환의 살벌한 눈빛에 검을 든 손이 떨려왔다. 도망치고 싶다. 여길 오는 게 아니었는데.
“...검을 들고 싸울 줄도 모르는 아해가, 나를 막을 수 있을 성 싶으냐? 나에게 이런 큰 상처를 준 것은 자랑해도 될 만한 일이나, 네 힘은 너무 나약하구나. 가거라. 못 본 척 해 줄 터이니.”
호환이 옆으로 고갯짓을 하며 말했다. 노골적인 축객령에, 얼굴에 열이 뻗치는 게 느껴졌다. 나를 적으로 조차 생각하지 않는 건가. 그런가. 호환에게 나는 그저 어린 인간으로만 보이는 거다. 시발.
“지랄하지 마! 결국 화풀이 대상이 필요해서 난동을 피웠다는 거잖아!”
뭘 싸우기 전부터 겁먹는 거야 병신아! 나는 팔에 힘을 주고 지옥참마도를 고쳐 잡았다. 나도 모르게 가쁘게 들이쉬던 숨을 다시 고르게 다듬는다. 싸우는 법 같은 건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지만, 다큐나 영화 같은데서 주워들은 동냥은 꽤 있었다.
자세를 잡는다. 어설프지만 내가 그나마 알고 있는 자세인, 검을 쥐고 앞으로 내미는 자세를 취했다. 검도에서는 중단자세라고 했던가?
“...화풀이라, 맞네. 이건 화풀이에 불과하지.”
호환은 내 말을 순순히 인정했다. 그도 이곳에서 날뛰는 게 그저 화풀이에 지나지 않았음을 스스로도 깨닫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허나, 산군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뿐 일세. 이 땅의 마지막 호족으로서, 인간에게 호족의 모습을 각인 시키는 것! 포악한 맹수로서 범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만천하에 알리는 것! 결과가 내 죽음일지라도!”
그런가, 이미 죽음을 각오한 건가. 하지만 그런 그의 모습이 별개로 안타까웠다. 그 어떤 충격적인 사건도 유희거리로 전락하는 세상에서, 그의 발버둥이 제대로 된 발자국을 남길 수 있을까?
“...싸울 거면 닥치고 발톱이나 꺼내!”
“...내가 너무 말이 많았군. 호족의 우두머리라면 발톱과 송곳니로 대화를 해야 하는 법이거늘... 후회하진 말게. 자네가 선택한 일이니.”
말이 끝나자마자 호환은 몸을 일으켰다. 그는 입에서 핏물 섞인 침을 흘리며 발톱을 꺼냈다. 닿기만 해도 몸이 두 갈래로 찢어질 것 같은 날카로움이 그의 발톱에서 느껴졌다. 나는 호환의 형형한 시선을 정면에서 맞받아치며 검을 꽉 쥐었다.
잠시 시선이 에포나로 향했지만, 호환가 부딪힌 충격이 큰 건지, 움직임이 없었다. 에포나의 도움은 바랄 수 없다 이거냐.
할 수 있을까? 아니 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곳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게 아니었어? 자리에서 일어나 피에 절은 몸을 일으켜 세워 나를 내려다보는 호환의 모습을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올려다보았다.
아주 잠깐의 대치, 내가 눈을 깜빡이자마자 호환은 그 거대한 덩치로 한 일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나에게 뛰어올랐다. 재빠른 도약. 내가 그 사실을 인식 했을 때는 이미 나와 호환사이의 거리는 반쯤 줄어든 상태였다.
나는 필사적으로 몸을 옆으로 굴렸다. 바닥의 흙먼지와 돌가루가 슈트와 헬멧에 묻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내가 서 있던 자리에 착지한 호환을 향해 있는 힘껏 검을 휘두른다.
목표는 옆구리. 덤프트럭에 치여 피를 흘리고 있는 부위였다. 하지만 힘이 부족했던 걸까. 아니면 자세의 문제일까. 내 검은 가죽을 뚫지 못하고 털을 몇 가닥 잘라냈을 뿐이었다. 나는 호환과 시선이 마주치자 곧바로 뒤로 물러나 경계했다.
한번이라도 맞으면 죽는다. 이쪽은 몇 번을 베어야 이길지 알 수 없었다. 입에서 피를 흘리는 것을 보면 절대 상태가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상대는 보통 호랑이도 아닌 요괴호랑이였다. 보통의 맹수들보다도 터프함이 지나쳤다.
“검 끝이 고정되질 못하고 흔들리는 구나 아해야. 그런 상태로는 세계최고의 명검을 가져와도 나를 벨 수 없도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인 격이지. 나는 대답대신 다시 한 번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도록 자세를 잡았다. 히트 앤 런. 내 싸움방식은 그것뿐이다. 정면에서 1톤에 육박할지도 모르는 저 거구를 받아칠 수는 없다.
거구가 바닥을 박차며 뛰어드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시선을 위로 올린다. 재차 도약한 호환이 나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옆으로 몸을 날려 피하려 했다.
[몸을 숙이고 앞으로 구르거라. 베려고 하지 말고 찌르기를 노리거라. 너 같은 초짜에게 베기는 너무 어렵느니라.]
뭐? 갑작스럽게 들린 목소리에 당황했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그 말을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거의 엎드리는 수준으로 몸을 낮춘 다음 앞으로 굴렀다. 호환이 내 머리 위를 지나쳐 내가 있던 자리를 향해 안착하는 게 보였다. 나는 호환의 몸 아래로 빠져나와 옆구리를 향해 다시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찌르기였다.
푹. 아까와는 다른 확실한 진동이 전해졌다. 지옥참마도의 검신을 타고 진득한 피가 흐른다. 나는 지옥참마도를 뽑아내고 멀찍이 떨어져 나를 떨쳐내려는 호환의 앞발을 피해냈다. 앞발이 일순간 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사라졌다. 조금만 늦었으면 머리가 날아갔겠네.
“예상치 못한 공격이로군. 제법이로구나 아해야.”
나는 옆구리에 낸 상처를 바라보며, 잠시 소강상태가 된 사이에 내 마음속으로 전음 비스무리한 걸 날리는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다.
“넌 누구야?”
[내가 누군지는 너도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 지금 중요한건 눈앞의 괴물을 사냥하는 것. 그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니라.]
이젠 고스트 사냥왕이라도 찍으라는 거냐.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사냥을 도와준다는 의미라면 맞느니라. 이 몸이 즐거이 협력하겠느니라.]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의사소통이 되는 모양이다. 그건 다행이네. 혼자 중얼중얼 거리는 건 좀 모양새가 빠졌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는데? 지금은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필요했다. 뭔가 이상한게 들러붙은 것 같지만, 그건 이 싸움이 끝나고 물어보면 그만이다. 어쨌든 지금은 적이던 아니던 나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것 같으니, 최대한 이용할 수밖에.
[저 맹수는 심상치 않은 상처를 입었느니라. 시간을 끌어도 이길 수 있는 싸움이니라.]
그거 말고, 알려 줄 거면 이기는 방법을 알려줘.
[...성질 급한 아이로구나. 자네가 이기는 방법은 시간을 끄는 것 말곤 없느니라. 못해도 15분 안에 쓰러질 것이니라.]
정말?
[그렇느니라. 쓰러트리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필요하니, 시간을 끄는 쪽을 추천하느니라.]
정체불명의 조력자와 대화하는 동안에도, 눈은 나를 향해 앞발의 휘둘러 바닥의 콘크리트 파편을 쏘아내는 모습을 포착하고 몸을 옆으로 굴려 피해냈다. 방금 전처럼 뛰어들지 않는 것을 보니 다친 옆구리에 부상이 더 생기면서 뛰지 못할 정도로 상처가 악화 되었거나, 아니면 방금 전과 같은 실책을 범하지 않겠다는 거겠지.
호환이 나를 직접적으로 덮치는 대신 콘크리트 파편을 날리는 쪽으로 노선을 변경하자, 나는 내 몸 만한 콘크리트 덩어리를 필사적으로 피하며 달릴 수밖에 없었다. 접근할 수가 없어! 차라리 총이라도 있었으면 나았을 텐데!
“촐싹촐싹 도망치는 것도 한계가 있을 터, 아해야, 언제까지 도망칠 생각이더냐?”
상황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건지, 호환이 나를 도발했다. 나는 도발을 무시한 채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에 몸을 숨기며 콘크리트 덩어리를 피해냈다. 아마 이 자리라면 잠시 동안은 호환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
[이대로는 답이 없느니라.]
그건 나도 아니까 해결책 같은 거 없어?
[있느니라.]
뭔데?
[그건...]
정체불명의 조력자가 하는 설명을 들으며, 나는 계속해서 눈치를 보면서 콘크리트 파편을 피하거나 엄폐물에 숨어 회피했다. 이제는 슬슬 한계였는지 호환은 파편을 날리는 대신 내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었다.
거리를 좁혀 압박하겠단 생각일까. 아니면 호환도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일까. 승부를 보려는 것 같았다. 나는 긴장을 풀기위해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뱉었다. 실수하면 안 돼. 실수하면 죽어. 나는 엄폐물이 돼 주었던 콘크리트 더미에서 빠져나와 호환과 시선을 마주쳤다. 성공할 수 있을까?
[망설이지 말거라. 망설임은 틈을 낳고, 틈은 실패를 낳느니라.]
조력자가 하는 계획을 실행하려면 공격하는 것은 내 쪽이 되어야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손에 꽉 쥐었다.
[지금이다! 달리거라!]
호환과 내 사이의 거리가 40m정도로 줄어들었을 때, 나는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호환도 울부짖으며 속도를 높였다. 둘 사이에 40m란 2초도 안되서 줄어들 거리였다.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호환의 모습에 나는 계획을 실행 할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될까? 되겠지? 아니 해야만 해!
나는 호환이 뛰어오른 순간, 스마트폰 연속촬영 기능을 켜고 호환의 얼굴을 향해 들이밀었다. 연속촬영기능
찰칵. 찰칵. 찰칵찰칵찰칵찰칵찰칵찰칵찰칵!
경쾌한 찰칵대는 소리와 함께 플래시가 연속으로 터져 나왔다. 연속촬영기능이었다. 호환이 당황스러운 듯 낮게 울부짖었다. 나는 아예 얼굴에 플래시 라이트가 팡팡 터지는 폰을 집어던지고, 동시에 무릎을 굽히며 지옥참마도를 양손으로 꽉 쥐고 위로 내질렀다.
목표는 호환의 턱밑.
지옥참마도가 호환의 턱을 관통해 코등이까지 푹 들어갔다.
시발, 존나 아프네!
그 무거운 호랑이의 무게를 일부분이나마 받아들인 탓일까, 온몸에 무시무시한 통증이 달렸다. 나는 곧바로 검에서 손을 떼고 옆으로 굴러 상황을 살폈다. 손을 보니, 시퍼렇게 부어올라 있었다.
부러진 건가? 한동안 방송은 물 건너 같군.
[...잘했느니라.]
턱을 관통한 지옥참마도의 칼끝이 미간을 뚫고 튀어나온 모습이 내 눈에 잡혔다. 이긴...건가? 호환은 찔린 모습 그대로, 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내 쪽으로 향했다. 머리가 관통 당하고도 움직일 수 있다니, 호환이라는 이름은 것멑이 아니었다는 걸까.
“...이정도면, 만족스러운...죽음이군. 아해야...”
“...”
“...이 세상에...호족의 우두머리...호환이 있었...다는...사실을...기억해줄...수...있겠느냐...?”
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피곤해. 자고 싶다. 이대로 자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꺼풀이 자꾸만 내려갔다.
“다...행....이로다...”
호환이 눈을 감았다. 절명한 모양이었다.
“유진아? 유진아?!”
세연아, 시끄러워. 좀 쉬게 해줘.
나는 더 이상 내려오는 눈꺼풀을 막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뒷일은 누군가 알아서 해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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