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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107화 (107/352)

〈 107화 〉 97.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2)

* * *

“시발! 특공대는 언제 오는데?”

“3, 30분은 더 걸린다고 합니다!”

무전기를 들고 있던 박시후 경사가 그의 상사인 오형진 경사에게 보고했다. 30분? 지랄, 1시간이겠지. 오형진 경사는 그게 최소치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챘다. 못해도 30분은 훌쩍 넘겨서 오겠지. 여기까지 오는 길이 얼마나 꼬여 있는데.

“그전에 우리가 다 뒤지겠다 시발!”

요플레 뚜껑이나 다 핢아 먹고 올걸. 우습게도 순식간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혼란 속에서, 10년 동안 경찰 일을 해온 베테랑인 오형준 경사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우스꽝스럽게도, 그런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이미 지급된 실탄은 전부 소모한지 오래였다. 그마저도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건지 알 수 없는 두꺼운 가죽에 전부다 막혀 생채기 하나 제대로 내지 못한 상태였다. 호랑이 가죽이 이렇게 질겼던가? 아니, 그전에 호랑이가 저렇게 클 수가 있나?

온갖 의문이 머릿속에서 솟아나지만, 그 의문을 해결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미 그의 동료였던 경찰관 두 명은 호랑이 앞발에 맞고 멀리 날아가 숨이 끊어진지 오래였다. 호랑이를 제압하겠다고 마취 총을 들고 온 사육사들은 이미 도망친 지 오래.

이제 저 호랑이를 막는 건 얼마 남지 않은 경찰관 몇 명과 소방대원들 뿐 이었다. 그나마도 엄폐물에 숨어서 눈치를 보고 있으니 막고 있다기 보다는 저 호랑이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이겠지. 적어도 오형진 경사는 그렇게 생각했다.

적어도, 저 거대한 호랑이가 호랑이들이 살고 있는 철창 앞에서 움직이지 않는 다는 점은 행운이라고 오형진 경사는 생각했다. 앞뒤 안 가리고 동물원을 누볐다면 지금쯤 동물원안 쪽은 동물의 왕국이 되었을 테니까.

동물들이 저 호랑이에게 겁을 먹어 철창이 부셔졌음에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어떻게 보면 호환을 막으려는 사람들에게 있어 행운이었다. 동물원에는 일반적으로 보기 힘든, 위험한 맹수들이나 거대한 초식동물들이 많았으니까.

시발, 빨리 지원이 와야 하는데...하지만 이 동물원이 대전 외곽에 위치한 것도 있고, 갑작스러운 사태라 본격적인 인력 투입이 시작되려면 못해도 30분에서 1시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야, 총알 몇 발 남았냐?”

“그, 3발 남았습니다...”

“너 사격 자신 있냐?”

“권총 사격은 매번 만점이었습니다.”

“그럼 저 놈 눈 좀 노려봐라.”

“네?”

“권총 정도로 저놈 가죽이 뚫릴 것 같지는 않으니까 눈을 노려야지.”

오형진 경사의 말에 경찰이 된지 얼마 안 된 햇병아리 순경 박시후에게 명령했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 쏘고 싶었지만, 호랑이가 무차별적으로 주변을 부수며 날뛸 때 날아온 파편에 어깨를 맞고 팔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상태였다.

아무래도 어깨뼈에 금이 갔나보군. 나름 잔뼈 굵은 경찰답게 오형진 경사는 자신의 상태를 짐작했다. 박시후 순경은 잠시 겁에 질린 표정을 짓다가, 이내 마음을 먹고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주의를 끌 테니까, 넌 저놈 눈을 쏴라.”

“네? 그러면 오형진 경사님이...”

“잔말 말고 해. 빨리 안하면 기회도 없어. 그나마 소강상태인 지금이 마지막 기회야.”

허술한 계획이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 어차피 경찰로서 도망칠 수는 없다. 이미 도망친 망할 놈들도 있지만, 우리가 도망치면 그 다음은? 저런 괴물을 동물원 바깥에 풀어놓자고?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평소에 FM을 외치며 열심히 일하는 경찰은 아니었지만, 오형진 경사에게도 최소한의 정의감은 있었다. 저 망할 호랑이를 이 동물원 밖으로 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 만약 도심에 저 호랑이가 나타난다면, 그건 문자 그대로 재앙이다.

“시, 실패하면...”

“좆같은 생각 하지마 새끼야. 무조건 성공해야 돼.”

실패하면 모두 죽는다. 그래도 20여 분 간의 대치를 할 동안 민간인은 전부 대피시켰기에 민간인 피해가 나오지 않았다는 게 그나마 경찰 입장에선 다행이었다. 그 민간인들이 상황 파악 못하고 스마트폰을 꺼내는 것을 보고 오형진 형사 입에서 쌍욕이 튀어나올 뻔 하기는 했지만.

“준비 됐지?”

“네!”

박시후 순경이 힘차게 대답했다. 아직 햇병아리인 박시후 순경에게 있는 것은 젊은 날의 패기 뿐이었으니까. 오형진 경사는 그 모습을 보며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는, 다시 얼굴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그럼 내가 시선을 끌 테니까, 그 틈에 쏴라. 망설이면 안 돼.”

꿀꺽. 박시후 순경은 침을 삼키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엄폐물로 삼고 있던 콘크리트 기둥에서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어 호랑이들이 갇혀있던 철창 너머를 노려보고 있는 호환의 모습을 확인했다. 다행히도 두 사람쪽에는 관심이 없는 모양이라, 박시후 순경은 대략적인 거리와 탄도를 적당히 계산할 수 있었다.

거리는 30미터 가량. 이정도면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다.

오형진 경사는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숨을 크게 들이켰다.

“야 이 괭이 새끼야!! 이쪽이다!”

철창 안을 이글이글거리는 눈으로 뚫어져라 보고 있던 호환의 시선이 건방진 인간에게로 돌아갔다. 분노와 증오를 담은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한 끼 식사조차도 안 될 인간 하나에게로 쏠리자, 오형진 경사는 자기도 모르게 죽음을 떠올렸다.

죽는다.

에라이 시팔, 죽어도 할 일은 하고 죽어야지. 오형진 경사의 눈에 이미 죽어버린 동료들이 아른거렸다. 동료들이 살해당한 복수심 때문에라도 오형진 경사는 만신창이인 몸을 일으켜 더욱 크게 소리 질렀다.

“야! 이! 괭이 새끼야! 이쪽이다!”

호환의 고개가 완전히 오형진 경사 쪽으로 돌아갔을 때, 격발음이 동물원을 뒤흔들었다.

첫발. 호환의 오른 눈 옆을 스쳐지나가 관자놀이 부근에서 튕겨나갔다.

두발. 호한의 이마에 맞았지만 여전히 도탄.

세발.

박시후 순경은 떨리는 몸을 필사적으로 가라앉히며, 이제 자신에게로 향한 호환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눈을 향해 마지막 방아쇠를 당겼다. 최후의 한발이었다. 그리고 호환과 박시후의 생사를 가를 마지막 한발이기도 했다.

탕!

격발음과 함께 마지막 총탄이 호환의 눈을 향해 날아간다. 호환은 자기에게로 날아오는 총탄을 지켜보다, 머리를 살짝 기울였다.

“씨바알...”

영리하게 머리를 숙여 총알이 통하지 않는 이마에 총알을 맞은 호환이 다시 한 번 울부짖었다. 그리고는 앞발을 굽히며 당장이라도 덮쳐들어올 것만 같은 자세를 취했다. 박시후 순경은 겁에 질려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지만, 그런 순간에도 그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죽음이 다가온다. 아주 확실한 죽음이.

박시후 순경은 눈을 감았다. 그를 향해 다가오는 죽음을 정면에서 보고 싶지는 않았다.

“야 뭐해 이 새끼야! 빨리 튀­”

오형진 경사의 처절한 외침도 죽음을 예감한 박시후 순경에게는 닿지 않았다. 거대한 몸집으로 날렵하게 움직이는 호환을 일개 인간이 무슨 수로 피한다는 말인가. 포식자 앞에서 사냥감은 그저 사냥감에 불과했다.

그렇게 모두가 박시후 순경의 죽음을 직감한 순간, 난데없이 울린 경적소리에 건방진 방해꾼의 숨통을 끊기 위해 도약하던 호환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동시에 호환의 몸이 대질량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옆으로 날아가 매표소 건물을 부수며 쓰러졌다.

박시후 순경은 어째서인지 다가오지 않는 죽음에, 슬며시 눈을 떴다. 그리고 이내 두 눈을 크게 뜨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눈동자를 굴릴 수밖에 없었다.

...트럭? 지금 트럭으로 저 호랑이를 쳐버린 거야? 이 난장판을 뚫고?

모두가 아연해하는 모습을 뒤로, 트럭의 운전석에서 사람이 내렸다. 트럭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라이더 슈트를 입고 고양이 귀가 달린 오토바이 헬멧을 쓴 몸집이 작은 여성이 내리자, 모두가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덤프트럭의 그림자에 묻혀 이상하리만치 모습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건 확실히 사람이었다. 황당하리만큼 초현실적인 조합이었다. 마치 만화 속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시발, 도대체 뭔데...”

조용해진 폐허 속에 숨어있던 사람들은 오형진 경사의 말에 모두 공감했다. 도저히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던 탓이다. 덤프트럭은 어디서 가져왔지? 아니 그전에 차가 지나다닐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장애물이 많은 곳까지 어떻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리고 그 여성은, 이유진은, 허공에서 검을 꺼내들고는 조용히 호환을 향해 겨누었다. 두루마기를 걸치지 않은 채였다.

모습을 숨기고 싶어 하는 그녀의 의사와는 반대로, 유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다면 사람들에게 말을 걸 수 없어 도망치게 할 수 없을 테니까.

“여긴 저한테 맡기시고, 경찰아저씨들이랑 소방관 아저씨들은 일단 후퇴해 주세요.”

헬멧 때문에 목소리가 울려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오형진 경사는 너무나도 고운 소프라노톤의 목소리에 여성인 것을 알아차렸다. 아마 상황이 달랐다면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어색하게 시선을 피했으리라.

“너, 너누구야?”

오형진 경사는 경계심이 가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모두의 의문이기도 했다.

소녀, 이유진은 아주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오지랖퍼?”

고민 끝에 내놓은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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