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 96.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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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입니다. 대전의 OO동물원에 거대한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동물원의 호랑이들이 살고 있던 철창을 부수며 난동을 피우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해당 동물원 관계자에 의하면]
“유진아! 주스!”
입에 있던 주스 입을 벌린 탓에 턱을 타고 흘러내리고 말았다. 근데 그건 지금 신경 쓸 거리가 아니고,
저 호랑이...호환 맞지?
오른 눈의 흉터, 보통의 호랑이보다 더 큰 몸집. 호환이 틀림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분명 일주일 전에 인간 세상에 내려가지 않겠다고 이야기를 했을 텐데. 도대체 어떻게, 지리산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을 동물원에 가 있는 거지?
아니, 그전에 어떻게 알게 된 거지? 정말 우연히 알게 된 거라면, 정말 얄궂은 운명이다. 자기가 알던 동족들은 멸종했고, 그나마 남은 다른 지역의 동종들은 인간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신세라니. 나 같아도 이성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해당 호랑이는 현재 경찰과 소방관들의 계속되는 포획시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난동을 부리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화면 속 호랑이는 문자 그대로 미쳐 날뛰고 있었다. 마침내 터져 나온 분노를 전부 쏟아내듯이, 거대한 앞발을 휘두를 때마다 철창이 종잇장 마냥 찢어지고, 건물 벽이 마치 포탄에 맞은 것 마냥 터져나간다.
그 이름 그대로, 호환이 따로 없었다.
“이대로 잡혀버리나...?”
저승사자는 아마 이런 상황을 예견한 것이 아니었을까. 역치를 넘어선 분노에 이성을 잃은 호환이 미쳐 날뛰게 되는 상황을.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사살대신 제압을 하려는지 마취 총을 쏘고 있었지만, 보통 호랑이가 아닌 호환의 가죽을 고작 마취 총으로 뚫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냥 잡혀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헛된 희망이라는 것을 내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저런 괴력을 가진 호환이 고작 인간 몇 명으로 제압당할 리가 없었다. 아마 호환이라면 저런 포위망 따위는 순식간에 뚫고 지나갈 수 있지 않을까.
호환이 난동을 피우는 것은 그저 분노의 표출을 위한 것뿐일 것이다. 인간에 대한 증오는 덤이고.
이대로 가면 인명피해가 생기지 않을까. 더욱 골치 아픈 것은, 생중계 되는 영상에 얼핏 보이는 호랑이들이다. 4마리 남짓한 호랑이들은 겁에 질려 있는지 구석에서 호환이 난리를 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같은 호랑이지만, 마치 겁에 질려 꼬리를 만 개를 보는 기분이다. 아마 그 호랑이들 입장에서 호환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닐까. 태어나서 산을 누비며 살아온 호랑이인 호환과, 동물원에서 태어나고 길러진 호랑이들은 이미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되지 않았을까?
자세한 상황은 모르지만, 저런 행동이 호환의 분노를 터트린 게 아닐까.
“유진아...가야하지 않을까?”
“내가?”
나는 공무원도 아니고 사냥꾼도 아닌데? 내가 간다고 달라질게 있을까? 나는 협상전문가도 아니다. 저런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나는 그렇게 말주변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다. 게다가 과연 분노로 눈이 돌아간 호환이 내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오히려 지금까지 인명피해가 없었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어쩌면, 아직은 그나마 남아있는 이성이 호환의 정신줄을 붙잡고 있는 게 아닐까.
솔직히 말해서, 무서웠다. 어쩌다 보니 듀라한이 되고 여러 사건에 휘말려 들어갔지만, 나는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했다. 영웅이나 빌런, 하다못해 비범한 인간도 아니다. 나는 저런 절망적인 상황에 끼어들 수 있을만한 인간이 아니다.
그럴만한 담력도 없고, 실력도 없다. 능력 없는 용기를 흔히 오만이라고 부르지 않던가. 나는 아둔하되 오만하지는 않았다. 나는 싸움이라곤 할 줄 모르는 조금 특별한 인간에 불과하다. 내가 간다고 해서 저걸 막을 수 있을까?
[사살 허가를 받은 경찰관들이 실탄을 발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동물원에 난입한 호랑이는 곧 사살될 것으로 보이며]
화면 너머로 보이는 격발음과 함께 호환이 멈칫했다. 권총탄 정도로는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하지만 시끄러운 격발음이 그의 움직임을 잠시 멈추게 하는 데는 성공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그의 분노가 멈출까. 호환은 더욱 분노한 얼굴로 앞발을 경찰관 쪽으로 휘둘렀다.
[꺄아악!]
피가 튄다. 아주 붉은 피가.
근처에서 생중계를 하던 아나운서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고, 카메라맨은 방송으로 보여주기엔 부적절하다 싶었는지 곧바로 카메라를 바닥을 향해 내렸다. 그들이 있는 곳까지 튄 피가 화면 구석에서 또르르 굴러간다.
파공성이 들린다. 아주 끔찍한. 나는 더 이상 영상을 보지 못하고 화장실로 들어가 변기에 피를 토해냈다. 보지 않아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죽은 거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해지고 있었다. 정말, 정말로. 어쩌면, 저건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과연 인간의 무기가, 괴력난신에게 통할까? 통한다면 다행이지만, 통하지 않는다면?
통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점점 몸집을 불려가며 커지는 호환을 과연 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 저 집채만한 호랑이가 총 정도로 다치기는 할까? 바닥만을 찍은 카메라 너머로 계속해서 격발음이 들려온다. 다른 소리는 격발음에 묻혀서 들리지 않았다.
단지, 그 사이에서 공기를 뒤흔드는 파공음만은 선명하게 들렸다. 그리고 비명소리도. 누군가 또 죽은 걸까?
어쩌면, 그때 내가 말을 좀 더 잘했다면, 이런 상황이 오지 않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번져버린 상황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일을 끝냈고, 수고비로 1억 원을 받았다. 그걸로 내 일은 끝난 거야.
나에게는 더 이상의 책임도 도리도 없었다. 내가 이곳에서 계속 있는 다고해서 뭐라 할 사람은 없는 것이다. 원래라면 저승에서 처리해야 했던 일을, 내가 대신 맡은 것에 불과하니까. 저승에서 어떻게든 해결하려 하지 않을까.
나도 이게 끝없는 현실도피라는 것을 잘 알았다. 하지만 어쩌라고. 아주 실낱같은 가능성이 있는 이상 인간은 그 가능성을 쉽게 놓지 못하는 생물이다. 내가 만약 그때 ~하지 않았다면, ~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는 거다.
“유진아! 괜찮아?”
세연이가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걱정스럽게 물어보았다. 플라시보 효과인지 아니면 정말로 효과가 있는 건지, 입에서 나오는 피의 양이 줄어들었다.
진짜 지랄 맞은 몸이야.
“...괜찮아.”
그래, 나는 괜찮다. 그냥 놀라서 피를 토한 것뿐이니까.
“세연아.”
“...왜?”
“역시 가야겠지?”
아마, 멈출 수 있는 건 나뿐이다. 저승사자가 나를 콕 집어 의뢰를 맡긴 건, 그런 의미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정말 내가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나? 일개 듀라한에 지나지 않는 내가?
어떻게?
대화로? 이미 호환은 말이 통하는 상황이 아니었다. 일주일전 만났던 호환이라면 대화로 설득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의 호환은 오히려 나를 보고 더 분노할지도 모른다.
내가 막을 방법은 있나?
싸움으로? 내가 무슨 수로? 난 나한테 저항하지 못하는 귀신 정도나 칼로 썰어본 적 밖에 없는 사람이다. 싸우는 방법 같은 건 모른다. 하물며 그 상대가 보통 동물도 아닌 맹수의 왕이라 불리는 호랑이, 그것도 요괴 호랑이라니.
첫 상대 치고는 너무 어렵잖아. 나보고 죽으라는 건가. 내가 가도 개죽음 당하는 것 말곤 할 수 없지 않을까. 어느 쪽이던 끔찍하네. 답이 없다.
아니, 애초에 왜 내가 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그저 안타까운 일 정도로 여기고 넘어가도 아무도 비난을 하지 않을 텐데. 나를 아는 사람 누구도 저게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을 잘 알고 있다.
내가 만약 그날 말을 잘해서 지금의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다른 일을 계기로 같은 일이 터졌을지도 모른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면서 넘기면 되는 일인데. 가슴팍이 찌릿하다. 내가 참견할 일일까? 내가 간다고 달라질까? 같을 말이 머릿속에서 빙빙돌며 나에게 묻는다.
“세연아. 밖에 나가자.”
“유진아? 저긴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위험한 일 한두 번 겪어봤나. 가자. 에포나좀 깨워주고 저번에 받은 두루마기 좀 갖다 줘.”
정말 가려고? 세연이가 눈으로 물었다. 나는 똑같이 눈으로 대답했다. 최소한 내가 가면 설득의 여지라도 있잖아. 기밀관리본부에 미리 연락해야겠지만.
화장실에서 얼굴을 씻고 나온 나는 곧바로 기밀관리본부에 전화를 걸었다.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다.
[자네!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
“뉴스 보셧죠?”
[봤네만!]
“좀 도와줘요. 설득 좀 해볼 라니까.”
[설득!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지금 대전에 있는 동물원에 집채만한 호랑이 나타났다는 말 못 들었어요? 설득좀 해보려고요.”
[뭐! 그 호랑이가! 변이자였나!]
“그건 아니에요. 자세히 말하면 좀 복잡하다고 할까...요괴 비스무리한 거라는 것만 알고계세요.”
[알았네! 곧바로! 요원들을! 대전으로! 보내지!]
“감사합니다.”
[원래! 이린 일은! 우리가! 전문일세!]
“그럼 일단 연락 끊겠습니다. 저도 그곳으로 가야하니...”
[알았네!]
나는 전화를 끊고, 옷을 갈아입었다. 오래전에 사놓은 건지 받은 건지 모를 검은색 라이더 슈트였다. 아마 남자였던 때 샀던 걸로 기억하는데, 작아서 못 입었던 걸로 기억한다. 여자가 되니 그럭저럭 딱 맞네.
어쩌면 나한테 신기가 있어서 지금 이 순간을 예견했던 걸지도.
라이더 슈트 정도의 내구성이면 그나마 유의미한 방호력이 있지 않을까. 두루마기는 방호 능력 같은 건 쥐뿔도 없을테니. 오랜만에 꺼내둔 고양이귀 바이크 헬멧을 꺼내 머리에 착용했다. 무겁기는 하지만, 그 때 이후로 계속 머리카락을 써왔던 내게 이정도 무게는 버틸만한 무게였다.
아직 비몽사몽한 얼굴로 내 다리에 얼굴을 부비는 에포나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나는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었다.
설득만 한번 해보는 거야. 쓸데없는 오지랖이지만, 어떻게든 설득할 수 있다면 한번은 해보아도 되겠지.
나는 라이더 슈트 위에 두루마기를 걸치고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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