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 외전.OFF the Record
* * *
“오랜만임다.”
“...내가 있는 곳은 어떻게 알았어?”
“우리도 보는 눈이 있지 말임다.”
71년차 저승사자인 김차사는 어둠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황갈색 눈을 쳐다보았다. 그녀를 찾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언젠가 듀라한과 접촉하리라는 것을 아는 이상 그녀에게 감시를 붙이면 될 뿐이었고, 실제로 그녀는 적당한 타이밍에 이유진과의 만남을 성사시켰으니까.
“그래서, 용건은?”
“...듀라한에 대한 건입니다만, 어떻게 된 것임까?”
좀 더 여유를 부리며 천천히 추궁할 수도 있었지만, 김차사는 조금 무례하게 느껴질지라도 곧바로 물어보기로 생각했다. 눈앞에 있는 자를 여유를 부리며 상대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으니까. 어쨌든 지금은 동지에 가까운 만큼, 그에게 해를 가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그에게는 존재했다.
“...글쎄. 나도 몰라. 언니가 역으로 먹혀버렸을 거란 생각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언제나 앞장서서 계략을 짜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실행시켜왔던 전쟁의 여신이 일개 인간 하나를 이기지 못하고 먹혀버렸다는 것을.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 강마리아의 몸을 빌리고 있는 여신 바이브 카흐는 모리안이 무언가 안배를 해 놓았으리라고 생각했다. 아마 무언가 목적이 있어서,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유진의 의식 밑에 잠들어 있는게 아닐까.
“이대로라면 위험하지 않슴까?”
“위험하지. 하지만 아직은 괜찮아. 일단 틈새가 더 벌어지지는 않을 거야.”
“어떻게 확신하심까?”
“저쪽도 눈치를 보고 있거든. 보통 방법으론 뚫리지 않는다는 걸 눈치 챈 거야.”
“그렇슴까.”
저승사자는 그녀의 말뜻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점점 요 근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긴 했다. 다른 종족으로 변이하는 인간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으니까. 틈이 벌어진 것에 대한 부작용이 줄어든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안 그래도 틈새를 막느라 빠듯한 상황에, 인간들 사이에서까지 혼란이 일어나면 그 틈새를 통해 그들이 이 땅에 도착할 테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 연을 맺은 국가 수뇌부들에게 변이자에 대한 사실을 철저히 숨기도록 부탁하지 않았는가.
수뇌부가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리도 없었다. 한 나라의 정상에 오른 자들인 만큼 이게 얼마나 심각한 사안인지 알고 있고, 터져 나올 경우 생겨날 혼란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할 테니까. 당장 피부색이 다르다는 것만으로 편을 가르고 서로를 죽이려 드는 인간들이 새로운 종족의 등장을 환영할까?
그렇기에 관계자들은 철저하게, 그리고 비밀리에 변이자의 존재를 필사적으로 지워냈다.
하지만 한계가 다가오고 있음을 그들도 모르지 않았다. 예전이랑 다르게 점점 발달해가는 인터넷망은 끝을 모르고 발전하고 있었고, 그만큼 정보의 노출이 쉬워진 시대가 되어버렸으니까.
결국 언젠가는 변이자에 대한 존재를 밝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아니다. 일이 마무리 되고, 비로소 이 행성이 안전해 졌을 때, 그때야 비로소 변이자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유진 양에 대한 건 말임다...괜찮은 검까?”
“괜찮아. 그 정도로 계획이 틀어지진 않아.”
“그렇슴까.”
“계획이 틀어진다 해도 어떻게든 성사시키면 되니까. 우리가 지금 수단을 가릴 여유는 없잖아?”
“그럼 너무 많은 인류가 희생되지 않슴까?”
“...어쩔 수 없어.”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수단이 아무리 비정하고 잔혹할지라도,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걸 위한 계획이었고, 차근차근 진행되는 중이었다. 현대에 깨어난 일부 신들과, 저승과, 현대에 아직 남아있는 관계자들은 목숨을 건 도박에서 이기기 위해, 그리고 이 행성을 차지한 그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인간들을 위해 물밑에서 치열하게 전쟁을 벌였다.
간신히 어린아이 하나가 비집고 들어갈 만한 틈새였지만, 그 틈새를 지나가기 위해, 한쪽은 막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데 괜찮슴까? 이유진양은 그저 평범한 인간일 뿐임다.”
“정말 평범하다 생각해?”
“...제가 보기엔 그렇슴다.”
적어도 김차사가 보기엔, 이유진은 평범한 민간인에 불과했다. 도대체 모리안과 바이브는 무얼 보고 그녀에게 희망을 건 것인가. 김차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보아도, 이 사태를 해결하는데 이유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납득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 애는, 빠르게 여신의 몸에 적응하고 있어. 생각보다 너무 빨리 습득해서 내가 놀랄 정도였다니까?”
“머리카락 말슴이심까.”
“피를 토하는 것도 있지.”
여신의 감성은 좀 이상함다. 김차사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스쳐지나갔지만 경솔하게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굳이 분란을 만들 필요는 없었으니까.
“게다가, 생각보다 그 망아지무려 에포나라고 이름을 붙였던데, 잘 다루더라고.”
갑작스레 찾아온 불청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유진은 에포나를 잘 받아들여 주었다. 아무리 주인의 말을 잘 따르도록 철저하게 교육했다지만, 이정도로 쉽게 에포나를 받아들인 것은 기쁜 오산이었다. 이유진은 전직 남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모성애가 강했다.
당장 핏줄 하나 이어지지 않은 어린아이를 맡아서 돌보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부탁을 받았다지만, 진심으로 대하는 것과 대하지 않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그냥 최소한의 일만 하면 될 텐데도, 그녀는 그 아이를 친동생처럼 돌보았다.
실제 능력은 어떻던, 바이브는 이유진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적어도 뭘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음침한 모리안 보다는 적당히 착하고, 잘 돌보는 성격의 이유진이 더 낫다. 아주 인간적인 인간. 그것만큼 더 훌륭한 칭찬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래서 호의적으로 그녀에게 접근했고, 이 몸의 원주인의 도움을 받아 일감을 처리하는 수고를 들이기까지 했다. 이유진의 방송이 그녀 취향에 맞기도 했고. 방송을 위해서 망가지는 모습은 그녀가 애용하는 컴퓨터 드라이브에 차곡차곡 저장되어 있었다.
아주 마음에 드는 유쾌한 인간. 그게 이유진에 대한 그녀의 평가였다.
“...저승도, 이유진양의 안위에 신경을 기울이고 있슴다.”
“그런 것 치고 이번 의뢰는 좀 위험하지 않나?”
“그걸 위한 지옥참마도임다.”
“그 틀딱 같은 이름을 가진 검?”
“틀딱 같지만 아주 좋은 검임다. 이유진양에게 잘 어울리지 말임다.”
“...그렇네.”
“아주 재밌는 기능도 있슴다.”
“그래? 그게 뭔데?”
“그건 말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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