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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102화 (102/352)

〈 102화 〉 외전. 생일 축하해!

* * *

“...안 들켰지?”

“응.”

나는 평소보다 많은 식재료가 들어간 봉투를 꺼냈다. 솜씨 좀 뽐내볼까.

오늘은 정말 특별한 날이니까. 케이크는 한솔이에게 맡겨두었으니 나는 평소보다 화려하게 상을 차리면 된다. 오랜 자취생활로 다져진 요리솜씨를 보여줄 때다...평소에도 내가 요리하고 있긴 하지만.

유라는 의자 위에 올라서서 내 요리를 거들고 있었다. 오늘 목표는 서프라이즈 파티다. 지금쯤 세연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널어둔 옷을 걷고 있을 테니, 그 사이에 요리를 만들고, 저녁식사를 빙자한 생일 파티를 연다는 계획이었다.

“저는 야채 손질하고...에포나는...”

에포나는 눈을 반짝이며 자기에게 일이 배정되기를 원했지만, 말한테 시킬게 있나. 나는 대신에 막중한 임무를 맡기기로 했다.

“에포나, 조용히 들어. 세연이가 이쪽에 관심을 가지려 하면 붙잡아 둬. 알았지?”

“응!”

세연이 쪽에 뽈뽈뽈 걸어가는 에포나를 잠시 지켜보다, 나는 주방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식재료를 다듬기 전에 머리를 한데 모아 머리카락을 고무줄로 묶어서 포니테일로 만들어 머리카락이 식재료에 닿지 않게 하고, 나는 가져온 식재료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마트에서 사온 미역을 깨끗하게 씻은 손으로 한줌을 집어 반을 덜어내고 그릇에 따로 넣어놓았다.

미역국 끓인지 거의 1년이 다 되서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이정도가 맞겠지? 옛날에 아버지 생신이라고 미역국 끓였다가 미역을 너무 많이 넣어서 미역볶음이 되어버렸던 흑역사 밖에 기억이 안 나는데. 그 이후로 미역국 만들 때 양을 조심하게 됐지.

최근에 만든 건 내 생일 때였으니까 그때 이후로 남을 위해서 만든 건 처음이었다. 내가 다른 사람 미역국 만들어 줄 일이 또 생길 줄은 몰랐는데. 자취한 이후로 생일 때 미역국 직접 만들어 먹은 거 빼곤 만들 일이 없었으니.

전자레인지에서 해동이 끝난 소고기를 냄비에 때려박고, 다진마늘도 한 숟갈 떠서 때려박는다. 그리고 참기름을 슥 뿌리고 볶기 시작했다. 오늘은 4명+1마리가 먹을 거라 양이 좀 많았다. 에포나가 의외로 고기를 잘 먹어서...말 맞지?

그러고 보니 초식동물들도 고기를 먹긴 한다던데 그렇게 생각하면 에포나가 고기 먹는게 이상한 일은 아닌가...초식 육식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거니까.

“언니! 야채들다 썰었어!”

도마 위를 보니 당근, 시금치, 파프리카가 모두 잘게 썰려 있었다. 생각보다 솜씨가 좋은걸. 나중에도 적당히 반찬을 미끼로 부려먹어 볼까. 솔직히 손가는 요리할때는 일손이 하나라도 더 있어야 편하니까, 유라한테 도움 받아도 문제 없잖아?

세연이? 귀신은 음식 못만져.

한솔이? 개는 요리 시키면 안 돼...나는 밥을 먹고 싶은 거지 독극물을 먹고 싶은게 아니다.

에포나? 미쳤다고 말한테 요리를 시키냐?

“손 안 다쳤지?”

“당연하지! 집에서도 내가 요리 자주 해먹었는걸!”

3시간 전에 미리 물에 불려둔 당면이 담긴 그릇을 꺼내 상태를 확인하고, 미리 만들어둔 당면소스를 두른 프라이팬을 위에 기름을 둘렀다. 달짝지근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먹음직스러운 잡채 소스 냄새가 주방을 가득 메웠다.

냄새가 아주 끝내주네. 점심 먹고 벌서 5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배가 공복을 호소하고 있어서, 입안에 침이 고였다. 아 배고파.

“유라야, 이거 잠깐 볶아줘.”

“응!”

유라에게 잡채 볶기를 시키고, 나는 소고기가 들어간 냄비에서 열심히 주걱을 놀려 고기를 볶다가, 적당히 익었을 즈음에 미역과 함께 넣고 같이 볶고, 또 미역이 익은 걸 확인하고 국간장 3큰술과 함께 미리 떠둔 물을 1.3리터 정도 쏟아 넣었다.

“이정도면 됐고...”

지금쯤이면 한솔이가 케이크를 사왔겠지? 그럼 나는 잡채랑 미역국을 끝냈으니 불고기만 해서 올리면 되겠네. 나는 미리 한솔이에게서 받아온 부르스타 위에 프라이팬을 올리고 양념된 고기를 프라이팬위에 쏟아 부었다. 오우. 양념 냄새 죽여주네.

한번에 3개 요리를 하려니 정신이 없네. 나는 머리카락을 움직여 미역국을 눌어붙지 않게 저으면서, 손으로 불고기를 열심히 볶았다.

어우 더워. 요즘 날씨가 좀 선선해 졌다고는 하지만, 여름은 여름이라 뜨거운 불 앞에 서니 죽을 맛이었다. 이래서 여름에는 그냥 시켜먹고 싶다니까. 식재료도 금방 상해서 짜증나기도 하고. 오늘은 생일이니까 이렇게 땀 뻘뻘 흘려가면서 만드는 거지.

“잡채 다 됐어!”

“그럼 저기 접시에 옮겨 담고, 미역국 상태는 어때?”

“맛있어 보여!”

“그럼 간 좀 봐주고...불고기도 거의 다됐고...”

나는 어두운 갈색으로 잘 익은 불고기를 접시에 옮겨 담았다.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 남으려나. 그럼 일단 메인메뉴들은 끝났고. 밥도 다 됐고. 김치나 시금치 같은 반찬은 꺼내면 되고.나는 슬쩍 세연이 쪽을 쳐다보았다. 에포나가 세연이에게 뭔가 물어보고 있는 모양이다. 이정도면 주의는 확실히 돌렸겠네. 에포나가 하는 질문은 하나같이 곤란하기 짝이 없으니까.

“유라야 세팅 좀 해줘. 나는 그걸 꺼내올 테니까...”

나는 내 방에서 미리 사둔 그것을 꺼내왔다. 살다 살다 생일에 초 대신에 이걸 피울 줄은 몰랐는데.

나는 오랫동안 써온 도자기 밥그릇에 쌀을 3분의 2쯤 채워 넣고 그 위에 향초를 꽂았다. 병풍도 있으면 딱인데. 나는 한솔이에게 x톡을 보내서 케이크를 가져오라고 연락을 보냈다. 3분정도면 오겠지? 오늘 진수성찬을 차렸다고 했으니 메시지를 보내면 바로 올 거다.

걔 내가 밥 안한 날은 편의점 도시락이나 라면으로 식사 때운다고...한국인이 밥을 먹어야지 뭘 먹는 거야. 물론 치느님은 예외다. 대충 식탁 세팅이 끝났을 때 즈음,

나는 식탁 위에 향초를 피운 그릇을 올려두고 구석에서 에포나와 눈싸움을 하던 세연이를 불렀다.

“세연아! 여기로 와볼래?”

“세팅하는 거 도와 달라...어?”

에포나를 상대하느라 정신없었던 세연이도 그제 서야 식탁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건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누가 향을 피울 생각을 하겠어. 하지만 오늘은 향초가 필요한 날이었다. 제삿날에 향을 왜 피우는데. 향초는 현세와 저승을 이어주는 물건이라고.

그러니까, 향초를 피워두면 세연이도 현실에 확실하게 간섭할 수 있게 된다는 거다. 지금까지처럼 어중간하게 식재료나 음식에 손도 못대던 상황과는 다르게 말이다.

“유진씨~저 왔어요!”

“그것 좀 식탁 위에 세팅해줘!”

“네!”

한솔이는 재빠르게 식탁위에 케이크를 꺼내 미리 비워둔 식탁 한가운데에 내려놓았다. 생크림케이크네.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아이스크림 케이크나 고구마케이크는 나나 유라는 별로 안좋아해서. 세연이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비교적 호불호가 덜 갈리는 생크림 케이크로 사온거다.

“자, 여기 앉아.”

나는 특별히 세연이를 위해서 만든 자리에 당혹스러워 하는 세연이를 앉히고,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을 붙인 다음 생일 파티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생일 축하 합니다~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세연이의~ 생일 축하 합니다~”

“아...”

세연이는 상황을 뒤늦게 파악했는지, 당황하는 얼굴로 우리를 쳐다보다가, 눈물을 흘렸다.

다행히도, 우리의 깜짝 파티는 성공한 모양이었다.

어쩌면 속아주는 걸지도 모르지만.

“내 생일...인건 어떻게 알았어...?”

“저번에 네가 내 몸통 들고튀었을 때, 네 과거에 관한 정보를 확인한 적이 있었거든. 그때 알았지.”

“...고마워...”

고맙긴. 나는 쑥스러움을 느끼며 시선을 돌렸다.

“그럼 밥 먹자. 널 위해서 내가 진수성찬을 차려놨다고.”

“응!”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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