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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101화 (101/352)

〈 101화 〉 93.누구에게나 계획은 있다. 지옥참마도에 찔리기 전까지는(2)

* * *

[이걸 두르고 가시면 사람 눈에는 안보이게 됨다.]

처음 입어본 두루마기는 묘한 느낌이었다. 삼베 천? 살짝 까끌까끌한 느낌이 있는 천으로 이루어진 도포는 사극에서나 볼 법했고, 검은색 일 색의 옷은 불길한 느낌을 풍겼다. 불길한 느낌은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저승사자가 입는 복장이니까!

나는 투레질을 하는 에포나의 머리에 갓을 씌워주곤 배낭 속 내용물을 체크했다. 에포나 줄 당근이랑, 수통이랑, 중간에 먹을 도시락으로 싸온 샌드위치 4개. 이정도면 충분하지. 여기서 더 챙겨봐야 쓸데없이 배낭만 무거워질 뿐이다. 나는 배낭을 안장걸이에 걸어놓았다. 떨어지진 않겠지?

“주인님! 언제 출발해?”

“잠깐만 기다려봐.”

에포나는 처음으로 나가는 장거리 외출에 잔뜩 흥분했는지 콧김을 잔뜩 뿜어내고 있었다. 허허, 이녀석. 이러다가 내가 떨어지건 말건 그냥 달릴 기세잖아. 실제로 전적도 있었는 지라 나는 에포나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진정시켰다.

“일단 진정하고, 알았지? 사람을 태울땐 흥분하면 안돼. 주인이 떨어지면 어떡할거야?”

“음...멈춘다! 그리고 다시 돌아간다!”

“아니지! 처음부터 떨어트리지 않게 조심해야지!”

“알았어!”

진짜로 안거 맞지? 나는 살짝 불안감을 느끼며, 배낭 외의 물품을 체크했다. 작은 손전등이랑, 물티슈도 준비했고. 지옥참마도? 나는 슬쩍 뒤로 시선을 돌려 세연이를 쳐다보았다.

오케이. 준비 완료.

잊어버린건 없는 것 같네. 이제 출발해야지.

저승사자 말에 따르면 지리산 산골짜기에 최근 깨어난 괴력난신이 존재한다고 하니 배때기에 칼빵을 꽃아 주던지, 아니면 설득해서 얌전히 살게 하던지 해결만 해달라고 했다.

나 그렇게 폭력적인 듀라한 아니라니까? 초면인 괴이 배에 다짜고짜 칼빵 안 놓는다고...그렇게 말하니까 저승사자가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더라. ‘이 년은 무슨 헛소리를 하는거야’같은 눈빛?

뭐, 왜, 뭐. 꼬우면 니가 듀라한 하시던가~

그 괴력난신인가 하는 뭔가는 지리산 산기슭 어딘가에 있다고 했다. 정확한 위치는 에포나가 알 거라고 하는 걸 보니 에포나한텐 내비게이션 기능이라도 붙어 있는 건가. 근데 지리산이 어디였더라? 전라남도? 엄청 큰 걸로 기억하는데...

“마, 말...처음 타보는데... 떨어지는 거 아니겠지?”

“넌 떨어져도 어차피 이제 배후령이라 나한테서 멀리 못가잖아.”

“아...”

내 머리가 떨어지는 게 문제지 네가 떨어지는 게 문제냐. 어차피 죽었으면서 별걸 다 걱정하네. 나는 보통 말 수준으로 거대해진 에포나 등에 올라 자세를 고쳐 앉고, 머리를 붙잡고 잠시 고민했다.

머리는 품에 안고 가는 게 낫겠지? 관성의 법칙에 따라서 내 머리가 날아갈 것 같은데...나는 고민 끝에 머리를 한손으로 끌어안고, 머리카락을 길게 늘려 내 몸통에 칭칭 감았다. 이정도면 안 떨어지겠지 뭐.

“에포나, 너 사람 눈에 안보이는 거 맞지?”

“응! 이 업무 모드면 귀신 보는 사람 아니면 못봐!”

업무모드냐. 하긴 딱 타기 좋게 커지긴 했지. 원래 그 요크셔테리어 사이즈라면 타지도 못하니까 커지는 게 당연하긴 했다. 트럭으로도 변하는 애가 거대화 한다고 놀랄 일도 아니고. 근데 무생물로 변할 수 있을 정도면 인간형으로 변할 수 있지 않을까...?

말딸?

“주인님! 이제 달려도 돼?”

힘차게 투레질을 하는게 달리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 거리긴 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산책으로는 달리는 걸 좋아하는 망아지가 욕구를 해소 시킬 수 있을 리가 없지. 나는 에포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갈기를 쓰다듬어 주다가, 세연이가 내 등짝에 달라붙자 에포나에게 말했다.

“자 이제부터 달­”

“알았어 주인님!”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 주변 풍경이 급격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도대체 얼마나 빨리 달리는 거야? 대충 고속도로 속도 위반에 걸릴 만큼 빠르게 달리는 것 같아 보였다. 너무 빨라! 그나마 유령마 보정이라도 있는 건지 바람 영향을 안 받아서 다행이지!

그나마 제대로 보이는 정면을 통해 확인하니, 내가 사전에 알려준 대로 지리산을 향해 직선으로 달리는 것 같았다. 거침없이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옆에 차가 스쳐지나가는 게 살벌했다. 이거 부딪히면 그날로 저승사자랑 어색한 재회를 하게 되겠네!

아니 망아지 주제에 뭐가 이렇게 빨라! 체감상 시속 100KM는 되는 것 같아!

빠르게 넘어가는 시야를 머리 위쪽에 있는 안내판에 고정시킨 채, 위치를 파악한다. 벌써 경기도 끝자락이야? 생각이상으로 너무 빠른 속도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이 세상 속도가 아니야! 이게 유령마의 성능인가?

“즐겁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대사인데. 에포나는 오랜만에 마음껏 질주하는 상황에 기분이 좋았는지, 이제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달리는 도중에 노래를 부르다니, 대단한 심폐지구력일세. 유령마니까 그런 건 상관없는 건가?

“DO You hear the people sing~ singing a song of angry man~”

이 집 선곡 왜이래! 노래가 오래된 건 둘째 치고, 그 노래를 부르는 이유가 뭐야? 언젠가 석시딩 유 아루지사마를 실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야?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밥도 삼시 세끼 잘 챙겨주고, 산책도 자주 나가고, 씻겨주기도 하고, 재워주기도 하는데 내 뒤통수를 노릴 생각을 하다니!

나보다 좋은 주인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에포나야, 그 노래는 어디서 배웠니?”

“유라랑 같이 본 움직이는 사진이 나오는 네모난 상자에서 나왔어!”

레미제라블을 봤구먼. 분명 좋은 영화인데...그 노래를 부르면 내가 왠지 오싹하잖니. 뭔가 좀 정신 연령에 맞는 걸로 불러주면 안될까?

동요 같은 거 말이야. 개울가에~ 올챙이 한 마리~ 꼬물꼬물 헤엄치다~ 뒷다리가 쑤욱! 앞다리가 쑤욱! 하는 것도 있는데 왜 하필...

“재밌었어! 막 아저씨들이 모여서 깃발 휘두르고! 노래 부르고! 신나 보였어!”

레미제라블의 배경을 모르는 에포나는 마냥 신나게 노는 걸로 보인 모양이었다. 확실히 마지막 부분만 보면 노래가 신나서 그런지 신나긴 하지.

“그래...네가 좋다면 된 거야...”

에포나는 순수하니까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부르고 있는 거겠지. 쓸데없이 발음이 네이티브해서 다 알아듣는 거 아닌가 싶긴 하지만 아무튼 그럴 거야. 설마 에포나가 나를 석시딩 유 마스터를 하려고 하겠어? 천둥치면 무서워서 내 이불속에 숨어드는 이 꼬맹이가?

“주인님! 거의 다 도착한 것 같아!”

“아직 한 시간 밖에 안 지났는데?”

“나 힘냈어!”

“그래그래.”

나는 칭찬의 의미로 에포나의 갈기를 쓰다듬어 주었다. 점점 에포나의 속도가 느려지고 있었다. 이제 고속도로가 아니라 산을 직선으로 주파할 차례가 온 것 같았다. 보통이라면 그런 미친 짓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에포나는 명색이 듀라한의 파트너였다.

전승대로 듀라한이 가는 길은 그 어떤 것도 막지 못하는 법이다. 에포나가 풀숲으로 뛰어들자, 마치 길을 터주듯이 안쪽이 전혀 보이지 않는 울창한 산림이 옆으로 갈라졌다. 모세의 기적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느낌이었다.

근데 왜 저 나무는 반으로 갈라졌냐. 나는 ‘반으로 갈라져서 죽어’를 시전 한 적이 없었다. 나무도 생명이야! 생명이라고! 내가 그런 게 아니야! 하지만 이미 반 토막 난 것을 내가 어찌할 순 없었기에, 우리는 그 나무를 가볍게 넘어갔다.

머리를 들고 뒤를 보니 길을 비켜주었던 나무와 풀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게 보였다. 반갈죽 당한 나무만 빼고.

“저건 이미 죽은 나무일거야...”

“주인님! 도착했어! 여기야!”

에포나는 커다란 동굴 앞에 멈춰섰다. 나는 에포나의 등에서 내려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이제 두루마기를 벗을까? 안에는 가벼운 등산복 복장이라 좀 많이 더웠다. 일부러 등산복을 입고 오긴 했는데, 굳이 입고 올 필요가 있었을까? 이 쪄죽을 것 같은 날씨에?

이 몸이 벌레에 물린다고 열병같은게 걸릴 것 같지도 않고. 요즘은 에포나를 데리고 다녀서인지 동물들도 나를 피하더라. 아깽이들이 겁먹고 삐약삐약 거리는 건 좀 마음이 아팠어...

“와...나 동굴 처음봐.”

“사실 나도 이런 동굴은 처음인데.

무슨 던전 같은 분위긴데. 주변에 나무나 풀이나 이런 게 하나도 없어서 더 그런 느낌이었다. 산림청에서 발견한 동굴은 아닌지, 위험 표시도 없고 사람이 지나간 흔적도 없었다. 대신에 커다란 짐승 발자국이 있었을 뿐.

이거 곰?

나는 스마트폰을 눌러 검색을 해보려 했지만, 와이파이는 커녕 데이터도 잡히질 않았다. 얼마나 깊은 곳이 길래 전화도 안 터지는 거야? 아니면 여기가 오컬트 스팟이라도 돼서 그런 걸까. 괴력난신이 살고 있다는 곳이니 후자 쪽이 맞겠지.

“뭔가 으스스해...”

세연이가 내 등에 들러붙은 채로 중얼거렸다.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들어가면 되나? 뭐 문이 있는 것도 아니니 초인종을 누를 수도 없고. 나는 고민 끝에 상투적인 수단을 쓰기로 했다.

“이리 오너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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