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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100화 (100/352)

〈 100화 〉 외전.난쟁이와 망아지는 즐겁다!

* * *

“그러니까, 내가 그때 어떻게 했냐면...”

에포나는 힘차게 귀를 펄럭이며 유라의 밑도 끝도 없는 수다를 귀담아 들었다. 세상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에포나에게는 유라와의 대화가 얼마 안 되는 세상을 알아가는 방법 중 하나였다.

아무래도 그녀의 주인은 방송인지 뭔지 하는 걸로 바쁘다 보니, 에포나는 하루의 반 가까이를 유라와 지냈다.

유라도 다시 험악해진 시국에 나가는 것보다 집에 있는 것을 선호했기에, 자연스럽게 에포나와 붙어서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외로움을 타는 소녀와 외로움을 타는 망아지는 그렇게 순식간에 치내질 수 있었다.

“치한이야!를 외치면서 그 아저씨 손을...”

“유라야! 그거 저번에 했던 이야기 아니야?”

“아냐 아냐, 들어봐! 그러니까...”

“아저씨 손을!”

“아 맞아! 내가 멋지게 휙 낚아채면서 외쳤는데! 내 키가 너무 작아서 아저씨 팔이 펼쳐져 있더라! 내 키로는 팔을 들어 올릴 수 없었어!”

유라는 그때의 상황을 재현하듯 팔을 쭉 뻗어 잡아서 들어 올리는 시늉을 했다. 실감나는 재현에 에포나는 여느 때처럼 추임새를 넣어가며 다음 장면을 요구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내팽개쳐졌어. 나는 작은 만큼 가벼워서 아저씨가 팔을 한번 떨쳐낸 것만으로도 넘어져 버리더라. 그래도 괜찮아! 오히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아저씨를 쳐다봤거든! 친절한 언니가 날 일으켜 세워 주기도 했고!”

“그러면 그 아저씨는 경...찰? 아저씨가 잡아간 거야?”

“몰라! 나는 그 다음 역에 바로 빠져나왔거든! 아마 잡혀가지 않았을까?”

“...그렇구나!”

갑작스레 꼬는 그녀의 이야기에 에포나는 어색하게나마 맞장구치며 머리를 유라의 무릎위에 올렸다. 유라는 무릎위에 올라온 에포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몇 시간 지났더라? 에포나는 유라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눈을 돌려 벽걸이 시계를 보니 점심을 먹고 난 이후 3시간이나 지나있었다. 오늘도 유라의 수다는 끝날 줄 모르네! 이유진이라면 중간에 끊거나 자리를 피했겠지만, 에포나는 유라가 마냥 좋았다.

처음 생긴 친구니까.

태어난 이후로, 에포나는 줄곧 혼자였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가 주인을 만나기 전까지 돌보아준 누군가가 있었지만, 에포나는 기억하지 못했다. 언제나 어둠속에서 그녀의 주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을 뿐이니까.

가령, 그녀의 주인은 겉모습은 차가워 보여도 속은 따뜻하고

가령, 아닌 척 하면서도 돌봐주기를 좋아한다고.

에포나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그녀의 주인님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만은 이해할 수 있었다.

좋은 사람. 그게 에포나의 이유진에 대한 막연한 평가였다.

그리고 첫 만남 이 후 무서운 사람이라는 평가를 슬그머니 추가했다.

물론 그 평가는 에포나의 자업자득 이었다. 삼대 지랄견 마냥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날뛰다 깨먹은 접시가 몇 개인지 에포나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화를 참는 듯 한 주인님의 얼굴만을 기억했을 뿐이다.

에포나는 그 과정에서 ‘집에서 함부로 날뛰어서는 안 된다’라는 사실을 배웠다. 그 사실을 배우는 데만 근 2주 가까이 걸렸지만.

“으...피곤해라.”

“주인님! 일 끝났어?”

“아니, 잠깐 화장실 가려고 나온 거야.”

이유진은 강아지마냥 다리에 몸을 부비는 에포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능숙한 쓰다듬기에 에포나는 눈을 감고 그 감촉을 느꼈다. 그녀의 주인님은 머리를 쓰다듬는 솜씨가 능숙했다. 시골집에서 개를 키웠다는 소리를 얼핏 들은 것만 같다. 물론 개보단 내가 더 주인님한테 어울리지만!

“주인님! 내일은 산책가도 돼?”

“내일? 내일이 무슨 요일이더라...”

“토요일이야!”

“마침 쉬는 날이네. 근처 공원까지 갔다 올까?”

“헤으응!”

“...그럴 땐 와! 가 맞지 않을까?”

에포나는 주인의 떨떠름한 얼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렇게 하는 거라고 배웠는데...? 아닌 거야? 에포나는 가끔, 아니 꽤 자주 보는 주인의 썩은 당근을 먹은 것 같은 표정이 의아하기만 했다. 왜 저런 표정을 짓지?

에포나는 그녀를 돌보아준 누군가가 장난을 친 것이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따라해봐. WA!”

“WA!”

“다시 한 번, WA!”

“WA!”

“이제 감탄사는 그렇게 하는 거야. 알았지?”

“알았어!”

“옳지. 상으로 당근이다.”

에포나는 주인이 머리카락으로 냉장고를 열고 꺼내온 당근을 입으로 받아들었다. 에포나 전용으로 씻어둔 당근이었다.

“그럼 나는 다시 들어 갈 테니까 잘 놀고 있어. 알았지?”

“응!”

그녀의 주인님이 화장실로 사라지자, 에포나는 다시 유라의 옆에 앉아 당근을 씹어 삼켰다.

당근 맛있어!

“유진 언니는 대단한 것 같아...”

유라는 복잡한 시선으로 유진이 들어간 화잘실 문을 쳐다보았다.

유라에게 있어선 정말 고마운 사람이었다. 바쁜 와중에도 밥을 해주기도 하고, 공부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보호자 필요한 일엔 보호자를 자처해주기도 해서, 유라는 고마움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너무 폐를 끼치는 게 아닐까 하는. 유라는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웬만한 일은 스스로 하게끔 연습했다.

“주인님은 대단해! 앉아서 돈을 벌어!”

그것도 대단하기 해. 유라도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인터넷 방송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유라도 인터넷 방송이라는 게 보기보다 힘들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 유진은 어떻게 보면 우상에 가까웠다.

가끔은 깨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머리카락으로 온갖 일을 하는 모습은 신기하면서도, 동시에 만화의 한 장면이 생각나 우스운 것이다.

가끔 머리를 던져서 일을 처리하는 모습도 황당하기는 하지만...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유라는 슬슬 유진이 머리나 몸만 따로 돌아다닐 때도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유라야! 우리 주인님 방송 보자!”

“안 돼!”

“왜?”

“에포나는 그런걸 보기엔 아직 어려!”

유라는 유진의 방송이 에포나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당장 방금도 헤으응이라는 이상한 감탄사를 내뱉은걸 들은 참이었다. 묘하게 인터넷 유행어 같은 걸 휴지마냥 잘 흡수하는 에포나 였기에, 유라는 함부로 유행어를 남발하거나 보여주지 않도록 하곤 했다.

“나 다 컸어!”

“그럼 9 곱하기 4는?”

“어...27? 맞췄지? 그러니까 보자!”

“틀렸어!”

“안 틀렸어!”

“틀렸거든?”

“아니야!”

오늘도 조용히 작은 소란을 만들며, 망아지와 소녀는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

소녀와 망아지가 가진 가장 귀중한 시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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