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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99화 (99/352)

〈 99화 〉 92.누구에게나 계획은 있다. 지옥참마도에 찔리기 전까지는(1)

* * *

이 세상엔, 귀신이 더~럽게 많다.

대부분은 잡귀지만, 그 중에서는 원한이 특출 나게 강해 지박령이 된 녀석도 있고, 아예 자리를 잡고 사람들을 잡아먹는 악귀도 있다. 그런 녀석들 밖에 없는 거다.

왜 그러냐면, 당연하게도 귀신이 지상에 남아있는 것 자체가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초에 멀쩡한 영혼이라면 이미 옛날 옛적에 성불해서 저승에 있을 테고, 현세에 남아있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생전의 일이 해결되지 않아 큰 미련을 가지고 있다던가, 아니면 그냥 좆같은 놈이라 지가 죽은 게 억울해서 원령이 됐다던가.

생각보다 많더라. 그냥 죽은 거 자체가 억울해서 이렇겐 못가! 테에엥! 하는 같은 영혼만 남은 징징이 같은 놈들.

며칠 전에도 길가다 도로한복판에서 마주친 귀신은 지가 무단횡단하다 죽었으면서 “날 죽인 그놈을 용서 못해!”라고 하는 귀신을 만났지. 근데 왜 날 보니까 딴청 피우다가 내가 가니까 또 그 지랄하면서 만지지도 못할 사람들한테 생지랄 을 하는 건데.

무단 횡단인건 어떻게 알았냐고? 그 귀신이 서 있는 곳에 횡단보도가 없으니까 빼도 박도 못하게 무단횡단 아니겠어? 그 자리가 딱 애들이 무단 횡단 자주하는 곳이기도 하고. 유동인구 많은 곳인데 그렇게 무단횡단 하다 누구 하나 죽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이미 죽은 년이 있었던 거지.

결국 놔두면 물귀신 짓거리 할 것 같기에 밤에 다시 가서 배때기에 칼빵을 꽂아줬다. 저승 가서 제삿밥이나 처먹어라. 여기서 엄한 사람 동무로 만들지 말고.

그리고 무단횡단하다 차에 치이면 그건 자연사야 이 망할 귀신아.

네가 문제고 너를 쳐버린 사람이 좆된 거라고!

내가 지금 이 이야기를 왜 하고 있냐고?

“그, 무차별 적으로 성불시키는 건 자제 해주셨으면 하는데 말임다...”

그거야 오랜만에 저승사자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복장에 안구에 습기가 차는 피곤이 덕지덕지 묻은 얼굴로 찾아와서 내 앞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뜸을 들이고 있었다. 일이 많이 힘든가 보다.

“많이 성불 시키면 좋은 거 아냐?”

세상에 길거리를 지나가면 귀신을 네다섯 명씩 만나는데, 사람한테 해코지 하는 귀신들 두세 명 정도 배때기에 칼 꽂는 다고해서 문제될 건 없잖아? 저승에 가야하는데 안가고 뻐팅기고 있는 게 문제 아니야? 개내들이 사람들한테 들러붙어서 지랄발광을 하는데 그걸 놔둬?

“그게, 꼭 그렇지는 않슴다...”

저승사자는 명백하게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뭐가 문제일까. 문제의 근원을 따지면 니들이 일을 안 해서 내가 이러는 거잖아. 어? 맞아 아니야. 이래서 공무원들은...

“요 몇 달 동안 300명이나 성불시키셧슴다...강제 성불당한 귀신들은 명부에도 없어서 저승에 혼란이 오지 말임다.”

하지만 왠지 귀신을 볼 때마다 썰고 싶은걸? 뭔가 볼 때마다 베고 싶다고 해야 하나. 일본 사무라이들이 츠지기리를 하는 기분을 알 것 같아. 이것도 내가 변한 통수 여신의 영향인가? 생각해보니까 개 전쟁의 여신이기도 하잖아. 좀 호전적일 수도 있는 거지.

“왜 개내들이 명부에 없어?”

죽은 자들은 다 명부에 적혀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옛날에 민담보면 다 적혀있다느니 그랬던 것 같은데. 인구수가 너무 많아져서 그런가?

“악령으로 오래 남으면 명부에서 지워져 버림다. 세상에 귀신이 너무 많아서 부족한 인력으로는 그렇게 해야 겨우 돌아가지 말임다...”

“그럼 개내들은 계속 놔두는 거야? 사람들한테 해코지 하는데?”

“인간한테 해코지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악령이면 저희도 우선적으로 처리하고 있슴다. 생각보다 그런 귀신 드물지 말임다.”

그렇게 말하면 그 무단횡단 귀신도 그냥 사람들한테 달려들기만 하지 아무것도 못했던 것 같기도 하고. 먹이터에 있는 귀신들이 특이한 건가? 하긴 군체마냥 귀신이 다닥다닥 붙어있는데 그게 정상일 리가 없지.

어쨌든 나한테 자제요청을 하러 온 게 목적인 걸까? 예전에 의뢰를 맡긴다느니 뭐니 했던 것 같은데? 아직까지 의뢰를 맡기러 온 적이 없는 걸 보면 그냥 빈말이었던 걸까. 어떤 의뢰를 할지 궁금하긴 했는데, 너무 오랫동안 오질 않아서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솔직히 내가 의뢰받을만한 능력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난 평범한 듀라한이라 복잡한 일은 못한다고. 나한테 평범하게 성불 같은 걸 맡길 것 같지도 않고. 그건 그냥 저승사자들도 할 수 있잖아.

“용건은 그게 끝이야?”

“물론 아님다.”

왠지 그럴 거 같더라. 고작 그거 이야기 하려고 굳이 내 집에 방문하진 않았겠지. 아마 의뢰 이야기가 아닐까? 근데 나한테 의뢰를 맡길 만한 게 있나? 합법적인 귀신 헌팅? 무슨 내가 X치고야? 좀만 있으면 중2병 가득한 녀석들이 나타나서 나한테 지랄발광을 하는 거 맞지? 그리고 나도 이제 허세를 존나게 부린 다음에 털리는...거지?

세연이의 영압이 사라졋어...! 같은 대사를 하면서?

“오늘은 의뢰를 넣으려고 왔슴다. 저희로는 해결이 안되서 말임다.”

“의뢰?”

나한테 드디어 의뢰를? 내가 100%들어준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한번쯤 들어볼 만은 하지. 나도 저승사자가 내는 의뢰 내용은 궁금하니까...나한테 떨어지는 수고비가 많다면 더 좋고. 어려운 게 아니라면 할 생각이 있었다. 아무리 내가 머기업이라지만 부수입이 짭짤하면 좀 땡기잖아.

“그렇슴다.”

저승사자는 잠시 헛기침을 하며 뜸을 들였다. 뭐 얼마나 대단한 의뢰 길래 분위기까지 잡는 걸까. 기껏해야 악령 사냥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종류는 아닌 건가?

“흠흠...혹시 괴력난신이라고 아심까?”

“들어본 적은 있는 것 같은데.”

뭔가 또 판타지스러운 이야기가 시작되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이미 충분히 판타지인데 이젠 동양판타지까지 끼어들 모양이었다. 아니 이미 처녀귀신에 저승사자가 나온 시점에서 동양 판타지는 진작에 내 인생장르가 되어버린 건가?

“그럼 괴력난신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겠슴다. 괴력난신이란 간단하게 초자연적인 존재를 뜻하는 것임다. 저기 뒤에 있는 배후령이나, 저 같은 저승사자를 뜻하기도 하지만, 요괴나 악령을 부르는 말이기도 함다.”

그런 건 옛날 옛적에 화포로 다 쏴 죽인 거 아니야? 원딜의 민족인 우리 민족이 그런 거 남겨놓았을 것 같지가 않은데. 뭐만하면 괴력난신이다! 화포를 쏘거라! 하던 게 우리 조상님들 아니었어? 그래서 조선에 호랑이가 씨가 말랐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던 것 같은데.

“그래서 그게 뭐? 혹시 나보고 잡아달라고? 그건 너희 선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니야?”

나는 연약한 하와와 여중생이라 칼 같은 거 휘두를 줄 모른단 말이야. 지금까지 양민학살을 하긴 했지만, 그건 내가 일방적으로 우위에 있어서 그런 것뿐이었고.

“그게, 저희는 아예 못 건들지 말임다. 일단은 살아있는 생명체 취급이라 저희가 건드릴 수가 없슴다. 원래라면 퇴마사나 구마사한테 맡기는 게 맞지만...불귀의 객만 늘어날 것 같아서 말임다.”

그거 웬만한 애들로는 해결은커녕 저승행 티켓 끊어주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나한테 온 거라는 거지? 근데 나도 그게 그거 아니야? 듀라한인거 빼곤 평범한데? 내가 무슨 엑소시스트 마냥 악마 쫒는 법을 배운 사람도 아니고. 난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평범한 20대 청년이라고.

마치 내가 이걸 해결 할 수 있다는 것 마냥 말하는 저승사자의 발언이 껄끄러웠다. 아니 나 진짜 평범하다니까?

“유진양 밖에 해결할 사람이 없어서 말임다...”

“많이 위험해 보이는데, 내가 꼭 해야 할 이유가 있어?”

난 위험한 거 싫다고. 저번에 몸통 탈주 사건 때 깨달았단 말이야. 안전한 게 최고야! 좀 재미없으면 어때! 인생은 안전빵이어야 한다고! 일단 따뜻하고 배불러야 다음 일을 생각할 수 있는거야!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건 줄 알아?

“...이 땅에 큰 혼란이 올 수 있지 말임다.”

돌아온 답은 쓸데없이 스케일이 컷다. 뭐요? 이 땅? 이 반도에 혼란? 장난해? 그건 거의 국가 재난급 사태잖아! 무슨 좀비 아포칼립스라도 터져? 난 판타지 소설 주인공이 아니야! 그런건 저기 옆 동네 아카데미 같은데서 찾아보시던가! 나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평범한 방송인이라 나대다 죽든지 아니면 구석에서 벌벌 떨면서 ‘섬바디 헬프 미!’를 외치는 역할이란 말이야!

“혼란?”

“그렇슴다...심하면 이 나라가 망할 수도 있지 말임다.”

아니, 도대체 언제부터 그런 게 이 지옥불반도에 있었던 건데? 그리고 진짜 그걸 나한테 의뢰하는 이유가 뭔데? 내가 무슨 ‘악마도 울 때가 있다’ 간판 달고 영업하는 피자성애자 악마사냥꾼이라도 되는 줄 아나.

“유진양 말고는 저희가 방법이 없지 말임다...수고비는 잘 챙겨 드리겠슴다.”

“구체적으로는?”

“1억 원을 수고비로 드릴 예정임다...”

“1억 원? 지금 장난해?”

누굴 돈에 미친년으로 보고! 내가 돈에 흔들릴 사람으로 보여?

“진짜 맞슴다.”

“...까짓거 한번 해보죠!”

1억원이 문제가 아니야! 우리나라가 위험에 쳐했는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어떻게 이 일을 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대한민국이 박살나면 내 건물주의 꿈도 사라진다고!

내 1억원은 덤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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