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 90.우효~초 럭키~SSR급 편집자 겟또다제!(2)
* * *
“네, 네에? 방송이요?”
내 뜬금없는 소리에 많이 놀란 모양인지 마리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하긴 나라도 갑자기 방송하자고 하면 놀라겠다. 내가 너무 급발진을 한 것 같네. 이런건 보통 뜸을 들여서 천천히 작업해야 하는 건데.
“아, 그냥 인터넷 방송하시면딱 좋으실 것 같아서...마리아양 같은 스타일이면 충분히 방송으로 먹고 살 수 있을걸요?”
“저, 저는 편집자 일하러 왔는데요...방송은 좀...”
아쉽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악덕 사장도 아니고 편집자 일하러 온 사람한테 인터넷 방송을 시키는 것은 계약 사기나 다름없는 일이니까. 본인도 별로 내켜하지 않는 듯 하고.
하긴, 소심한 성격이라면 인터넷 방송을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꺼려질 수 밖에 없을 거다. 인터넷 방송 시청자와 다르게 인터넷 방송인은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에 노출되는 자리이니까. 있는 욕 없는 욕 다 들어먹기도 하는게 인터넷 방송이라 솔직히 추천할만한 직종은 아니다.
여성 스트리머면 더 그렇다. 관련 커뮤니티 반응 보려고 들어가면 섹드립이면 다행이고 성희롱으로 고소해도 바로 잡혀갈 것 같은 글들이 많았으니까...나처럼 별로 신경 안쓰는 성격이면 모를까, 소심한 사람 입장에선 정말 고통스럽지 않을까.
당장 그런 사람들 때문에 은퇴한 스트리머들도 심심치 않게 나오니까...희망찬 업계는 아니다.
내 앞에 있는 진성 X수라면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테니 더 그렇다. 좀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야.
“죄송해요. 너무 생각 없이 말했네요.”
“괘, 괜찮아요.”
어쩌지, 나 눈물 날 것 같아.
이렇게 순둥순둥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너무 오랜만이야...맨날 내 피에 환장하는 흡혈귀와 투 머치 토커와 잼민이 망아지와 햄버거 성애자 처녀귀신만 보다가 저런 반응을 보여주는 사람을 만나니 내 멘탈이 치유되는 것 같아.
금태양 코인이 옳았어...누가 알았겠는가, 금태양이 구원인 것을!
금태양 처녀빗치 만세!
“여기 계약서구요, 읽어보시고 싸인만 해주시면 되요.”
1년 동안 일하는 거니까 월급...아니 연봉은 2640만원이고, 월급으로 치면 220만원이다. 복리후생은 자택근무 하나로 퉁쳐도 되지 않을까? 회사도 아니고, 애초에 개인 대 개인의 계약이라 복리후생이라고 해봤자 자택근무 정도 밖에 없었다. 4대 보험은 내가 개인 사업자도 아니고 회사소속도 아니라서 해줄 수 가 없더라.
이참에 회사 하나 만들어 봐? 대충 한솔이랑 나랑 넣고 굴리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둘다 규모는 작은 편이긴 해도 어쨌든 머기업 라인이고, 4대 보험 같은 혜택을 위해 만드는 거니 직원을 더 들이거나 할 필요는 없었다, 대충 나(사장)직원(강마리아양)이런 구조라는 거지.
요컨대, 가족같은 회사를 만든다는 거다.
가좆같은 거 말고.
나중에 요구할 게 있으면 추후 상담하면 될 문제니까, 계약서에는 심플하게 강마리아양이 받게 될 돈과, 일주일에 올릴 영상의 양이나, 그 외 자잘한 것들이 적혀있어서 A4용지 두장 정도로 작성했다. 내가 회사를 차린 것도 아니고, 개인 사이의 계약이면 굳이 복잡하고 길게 만들 필요가 없었다.
당연히 내가 직접 만든 거다. X글링해서 계약서 견본보고 만드니까 쉽더라.
“어, 어...2640마, 만원? 월급으로 하면...”
“220이요. X튜브 성과에 따라 더 올려드릴 의향도 있어요.”
X튜브 성과가 좋으면 당연히 보너스도 줄 생각이 있었다. 대충 1할정도지만, X튜브가 성장한다면 그 1할이 꽤 큰 액수가 될 수도 있었다. 당장 달에 100만원만 번다치면 10만원은 버는거잖아,
그 말에 강마리야양은 잠시 놀란 듯 눈을 크게 떳다가, 당혹스러움이 비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겉모습은 금태양이 나를 쏘아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성격을 알고 나니 저것도 순둥순둥해 보인다.
이게...처녀빗치?
나는 전율했다.
이건 그냥 치트키야! 치트키라고! 내가 지금 여자여서 망정이지 남자였으면 지금 쯤 아주 곤란해졌을 거라고! 아니 사실 지금도 위기야! 뭐냐고 이 말도 안 되는 생명체는!
“너, 너무 후, 후한 거 아닌가요? 저, 저는 사회생활도 해본 적 없고...아직 능력이 검증된 건 아닌데...”
“그렇긴 해요. 좀 후하게 책정하긴 했어요. 하지만 직접 만난건 오늘이 처음이지만, 제가 방송을 막 시작할 무렵부터 계속 제 방송에 찾아와 주셧잖아요?”
사실 후려치려면 얼마든지 후려칠 수 있었다. 직장생활을 해본적이 없는 소위 ‘경력없는 신입’인데다 소심한 성격이면 내가 후려친다고 해서 반항도 잘 하지 못할테니까...내가 하도 많이 당해봐서 이 부분은 빠삭하다. 물론 내가 그런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나는 그저 하꼬시절부터 따라와준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꼇기 때문에 책정한 연봉이었다. 이 이상은 나도 좀 빠듯해서...
“그, 그렇죠...”
“그래서 후하게 쳐드리는 거예요.”
“가, 감사합니다!”
생긴 건 와일드한 늑대 같은데, 하는 행동은 순한 강아지를 보는 것 같아 눈이 아주 호강하는 느낌이었다. 그래 이게 모에지!
“자, 그럼 계약서에 싸인 해주시면 됩니다.”
나는 가방에서 볼펜을 꺼내 마리아에게 건네주었다. 마리아는 조심스럽게 볼펜을 받아들고는, 사인 란에 자기 이름을 또박또박 적었다. 사인은 보통 휘갈겨 쓰는 맛인데. 특이하네.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매력적인 거지만.
“저, 적었어요.”
“그럼 이제부터 잘 해봐요 우리.”
나와 마리아는 악수를 하곤, 조용히 서로의 손을 다시 무릎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어색한 침묵이 우리 둘 사이에 자리 잡았다. 이 어색한 공기, 정말 오랜만이야. 맨날 집구석에 쳐박혀 있으니 이 처음만난 아싸들 특유의 어색한 기류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당장 내 주변엔 인싸 기질 넘치는 사람들 밖에 없고. 기껏해야 세연이가 좀 덜하긴 한데...
“저, 저기요.”
“네?”
“그, 혹시 사진 한번만 같이 찍어주시면 안될까요? 부모님이 제가 취직한다는 걸 못 믿으셔서...”
슬픈 이유로다. 취준생 들이 오래되면 한두 번 쯤 겪는 일이기도 하지. 맨날 집구석에 박혀서 컴퓨터나 만지고 있으니까 내가 취직했단 걸 못 믿으시더라. 아 나 취직했다고! 근데 취직해서 상경했는데 취업한 곳이 좆소였다. 시발...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빡치네.
“그 정도야 뭐 괜찮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리아의 옆에 앉았다. 마리아에게서 기분 좋은 향기가 솔솔 피어나와 내 후각을 자극했다. 이게...페로몬? 마리아는 잠시 머뭇대다 카메라를 어색하게 들어올렸다. 딱 보니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는 모양이다.
“하, 하나, 둘, 셋, 치, 치즈~”
엄청 오랜만에 들어보네. 나는 손으로 V자를 만들곤 옅은 미소를 입가에 만들었다. 아아, 이것은 비즈니스 미소라는 것이다.
“가. 감사해요.”
“아뇨 이정도야. 아, 혹시 모르니 인터넷에 올리지는 마세요.”
“네, 넵! 소중히 간직할게요!”
말 하나하나가 귀여운 건 노린 걸까, 아니면 본성인걸까. 저런 사람이 이 세상에 진짜 있을 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오늘 눈호강을 하는구만.
“그럼 앞으로는 자주 연락하게 되겠네요. 전화번호는 어제 연락한 번호 보시면 될 것 같구요, 방송영상은 계속 보내 드릴 테니 계약서에 쓰여 있는 것처럼 주 3~5회만 올려주시면 되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먼저 가볼게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 잠시 만요.”
마리아양은 나에게 볼일이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다시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는 마리아를 쳐다보았다.
“혹시 아직 하실 말씀이 남아계신가요?”
“그, 그게...”
왜 이렇게 우물쭈물 하실까. 뭔가 곤란한 이야기라도 되는 걸까.
나는 우물쭈물 대며 고민하는 듯 한 마리아의 모습을 감상하며 그녀가 다시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혹시 월급 가불해 달라는 건 아니겠지?
그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현실적인 곤란한건 금전문제가 끝인데. 갑자기 고백을 하거나 그러진 않을 거 아니야. 고백해도 곤란한데.
“그, 혹시...”
다시 한 번 침묵이 우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무슨 이야기 길래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걸까. 초면에 이렇게 긴장하면서까지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궁금했다.
...진짜 고백은 아니지?
“...모리안이라는 이름에 짚이는 점이 있으신가요?”
게임에서 들어본 적은 있는 것 같은데. 그 배신자 썅...년 맞지? 그거 밖에는 모른다. 근데 그 이름이 여기서 왜 나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이라 당혹스럽다. 도대체 무슨 의도로 그런 걸 물어보는 거지?
“아니요...”
“그럼 크롬 크루어히는요?”
“모르겠어요. 그, 어째서 그런 걸 물어보는지 알 수 있을까요?”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묘하게 그리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근데 여전히 뭔지 모르겠는데. 그냥 무슨 신화 이야기 같기도 하고.
“그게...죄송해요. 제가 헛소리를 했나봐요.”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를 하는 모습에 나는 더 물어볼 수가 없었다. 더 따지고 들어봐야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나는 영 찜찜한 기분으로 카페를 나왔다.
도대체 그런 걸 물어본 이유는 뭘까?
어쨋든,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사실 하나는 알 것 같았다.
평범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역시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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