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 88.들었지?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4)
* * *
지상파운드좌 입갤 ㅋㅋㅋㅋ
아젠 편집자 자리까지 넘보네 ㅋㅋㅋ
[GROUNDPOUND님이 1000원 후원하셧습니다!]
시작하죠
“그럼 그라운드파운드 님과 개리님의 대결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우리 방송 큰손 그라운드파운드님부터!”
말이 끝나자마자 동시에 영상을 켰다. 영상의 길이는 4분으로 짧은 편이었다.
[에이, 내가 호러게임 무서워 할 사람으로 보여?]
아니, 잠깐. 이건...
나는 반사적으로 양동이를 머리카락으로 끌어와 머리를 양동이 틀에 걸쳤다. 영상을 더 보지 않아도 뒷내용을 알 것만 같았다. 이거 처음으로 피 토한 날에 했던 방송이잖아! 이걸 가지고 영상을 만들다니, 너무하잖아!
[뭐? 내가 무서워한다고? 그럴 리가 없잖아!]
인트로는 내가 그 날 게임을 켜기 전에 한 허세 넘치는 말로 이루어져 있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문장의 나열에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임팩트 있는 부분만 빠르게 짜집기해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건 좋은데...
왜 하필 이날 영상인데! 이 날 방송은 반쯤 트라우마라고!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피를 토한 날이란 말이야! 당장이라도 스페이스바를 눌러서 멈춰버리고 싶은데 그러면 대회를 조질 수도 있으니까 그럴 수도 없어!
평가를 해야 되니까 안 볼 수도 없다. 이건 너무 하잖아...
[와, 안이 생각보다 더러운데?]
그날 방송이네...ㄷ
이때 난리 제대로 났었지ㄷㄷ
사골라스트하다 병원 실려 갈 줄은 꿈에도 몰랐음...
생각해보니 그날 방송을 보았던 시청자들도 PTSD가 온 모양이었다. 나만 그로기 상태에 빠진 게 아니구나. 확실히 자기가 보던 스트리머가 갑자기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가면 충격받을만 하지.
나도 남 일처럼 말하고 있지만 지금 양동이에 피를 1리터 정도 쏟아내고 있습니다.
살려줘...
[혹시 여긴 대머리만 오는 탈,탈,탈모인 수용소야?]
탈모 부분만 반복재생 하는 이유가 뭔데? 임팩트가 있긴 한데 이건 너무하잖아?
탈모인 혐오 발언 ㄷㄷ
듀라/사건사고 및 논란/탈모인 비하발언
[돼지에 대머리면 성격이라도 착하든가! 오지마아아아아아아아!]
하지마아아아아아아아!
지상파운드좌 이 인간아!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있어? 왜 계속 나를 괴롭히는 건데! 결국 영상이 끝날 때 까지 나는 정신적으로 흠뻑 두들겨 맞은 채 양동이를 가득 채울 수밖에 없었다.
아니, 분명 화면전환도 매끄럽고, 밈 활용도 잘하고, 재밌는 부분을 캐치도 잘하고, 연출도 세련됐는데 왜 하필이면 그 영상이야! 나는 햄보칼 수가 없어! 나는 피로 가득찬 양동이를 옆으로 밀어내고 새로운 양동이를 품에 안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눈물 난다 진짴ㅋㅋㅋㅋ
진짜 액기스만 잘 뽑아먹네 ㅋㅋㅋㅋ
“정.말. 재.밌.는 편.집.이.네.요.”
국어책 읽기 무엇
트라우마 재발한 듯 ㅋㅋㅋㅋ
그만해...내 라이프는 이미 제로야! 하지만 대회는 이제 시작이었다. 그러니까 아직 29번만큼 더 고통 받아야 한다는 소리였다. 나는 핏물을 머금고 대회를 계속 진행하기 위해 마이크를 내 입 근처에 갖다 대었다.
“그럼 다음은 개리님 차례입니다...!”
“드디어 결승전! 첫 번째 선수는! 임팩트 있느은...하이라이트 영상으로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온 그라운드파운드, 통칭 지상파운드님! 그리고 그 상대는! 제 방송을 X간극장처럼 만들어버리신 불닭댄서님 입니다!”
대회 시작 6시간째, 드디어 마지막 결승전만이 남아 있었다. 64명이나 되는 경쟁자들 중에서 남은 건 단 둘. 둘의 영상은 한쪽은 짦고 굵게, 하나는 길고 얆게 가는 쪽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짦고 굵게 가는 스타일을 선호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한쪽이 못 만든 것도 아니니 아마 꽤 박빙이지 않을까.
실제로 두 사람 모두 매번 60~70%정도의 표를 받아 올라왔으니까.
“일단 두 분 영상은 벌써 4번씩이나 봤으니, 바로 투표로 넘어가죠! 투표 가즈아! 투표시간은 결승전이니 10분으로 하겠습니다! !닉네임 아시죠?”
요즘 X튜브 트렌드 보면 지상파운드좌가 유리하긴 할 듯.
어느 쪽이든 긴 영상 짦은 영상 못 만드는 게 아니라서 영상 편집 스타일로 판단해야 됨
그냥 둘 다 데려가는 것도 방법인데
확실히 그렇긴 하지. 근데 두 명이나 고용하면 돈이 너무 많이 나가서...요 근래 많이 벌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두 명이나 월급을 줘가면서 굴릴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래저래 아직 안정적으로 수입을 버는 것도 아니고, MCN이랑 계약해서 캐릭터 상품 같은 부가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오, 박빙이네.”
투표현황을 화면에 띄워놓고 쳐다보니, 둘의 표수가 비슷한 속도로 올라가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엎치락뒤치락하며 네자릿수를 넘어섰다. 지금 시청자 수가 4400명이고 아까부터 4000명 안팎이 투표에 참여했으니까 실질적으로 누가 2000을 넘냐가 승패를 가르는 분기점이 되지 않을까.
어느 쪽이든 충분히 실력 있는 편집자라는 게 다행이었다. 좆밥대전이 되버리거나 했으면 방송도 편집도 둘 다 조져지는 수가 있으니까...실제로 참가자들 중에 포트폴리오로 구라를 쳤다 걸린 사람도 있었고.
피맛으로 가득한 입안을 시원한 얼음물로 헹구면서 투표 창을 보니 어느덧 1951대 1945의 표수에서 표가 거의 멈춰 있었다. 이제는 시청자들도 거의 다 투표를 한 모양인지 올라가는 속도가 매우 느려지기 시작해서, 끝날 때쯤에는 한 자릿수 정도의 차이가 나지 않을까.
지상파운드 좌가 이길 듯
ㄴㄴ 아모른직다
1960...1970...투표가 끝나기 전까지 이제 1분. 이제 1973VS 1969로 아슬아슬한 싸움이 이어지고 있었다. 4표 차이면 충분히 뒤집힐 만한데? 아, 불닭님 쪽에 2표 더 추가됐네.
“이제 2표차이네요, 이정도면 아직 역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 지상파운드좌 쪽에 하나 더 추가! 이제 3표차!”
10초! 불닭님께 표 하나 추가!
9초! 한 표 더!
8초! 승리는 내 줄 수 없다! 지상파운드좌 1표 추가! 아직 3표차!
7초! 변동없음!
6초! 불닭님 한표 추가!
5초! 4초! 3초! 2초! 1초!
“투표가 끝났습니다! 우승자는! 지상파운드좌 입니다!”
ㅊㅊ
근데 지상파운드좌가 편집하면, 월급 받고 그거 그대로 다시 방송에 꼬라박는 거 아님...? 큰 손이자너ㅋㅋㅋㅋㅋ
자진반납 ㄷ
ㄹㅇㅋㅋ
생각해보니 진짜 그러네? 그러면 나야 좋지만, 이제 지상파운드좌의 도네 세례가 없어도 충분히 많은 돈을 버는 나였다. 좀 아쉽긴 해도 지상파운드좌가 X튜브 영상 편집 및 업로드로 더 많은 돈을 가져다 줄 테니 괜찮을 거다...아마도.
“우승자인 지상파운드님은 X코 음성채팅방에 들어와 소감을 말해주세요!”
[제, 제가 이길 줄은, 몰랐네요...]
모임 여자였음?
눈나가 하나 더 늘었네 헤으응
목소리 고우시다
“우승 소감 한번 말해주시죠.”
[우. 우선 평소 재밌는 방송을 해주시는 듀라님께 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구요, 아, 앞으로 좋은 여, 영상을 만들겠습니다.]
아무래도 수많은 시청자들 앞에서 말하기엔 떨리는 모양인지, 말을 더듬어가며 우승 소감을 말한 지상파운드좌는, 음성채팅방을 나가버렸다.
“아무래도 많이 부담스러우신가봐요.”
하꼬 방도 아니고 4400명 있으면 킹반인은 그럴 만 하지
이 방송을 하꼬시절부터 본 시점에서 킹반인은 아니지 않음?
아 코런갑다 하라고 ㅋㅋㅋ
“벌써 대회 시작한지 7시간이나 지났네요! 대회는 재밌었는지 모르겠네요. 저는 보는 내내 좀 빡세네요.”
ㄹㅇ 그럴 만했음. 오늘 발굴된 흑역사만 몇 개야 ㅋㅋㅋㅋ
그냥 영상 편집자 대회가 아니고 흑역사 발굴 대회였자너 ㅋㅋㅋㅋ
ㄹㅇ 오늘 방송 클립 엄청 퍼 나른 듯 ㅋㅋㅋㅋ
헤헤. 헤헤. 흑역사고 뭐고 이젠 난 몰라. 나는 가득 차버린 두 양동이를 슬쩍 보곤 다시 채팅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은 이쯤 해서 일찍 끝내는 게 좋아보였다. 나도 좀 쉬고, 지상파운드좌, 본명 강마리아씨한테 연락도 해야 하니까.
“일단 참가자 분들에게 치킨 1마리씩 기프티콘으로 보내드렸으니까 가족이랑 맛있게 드셔주시구, 저는 오늘 여기까지 방송 할게요. 시간도 애매하고, 좀 많이 피곤해서...모두 지금까지 서로 죽여라 대회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 모레 봐요~”
ㄷㅂ
들어가세요
안 돼 가지마 내일 휴방이잖아
“아 그런다고 제가 안끌 사람 아닌 거 아시면서. 그럼 모두 듀바~”
후. 일단 지상파운드좌랑 계약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눠야지. 나는 강마리아씨의 이력서를 꺼내 전화번호를 확인하곤 까톡을 보냈다.
[혹시 지금 연락 가능하세요?]
[네]
다행히도 내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10초도 안되서 답장이 왔다.
[혹시 내일 뵐 수 있을까요?]
[네 가능할 것 같아요.]
[그럼 내일 OO동 OO카페에서 3시에 만나 뵐 수 있을까요?]
[네!]
[그럼 내일 뵙도록 해요.]
그럼 이제 내일이면 내 충성팬 겸 편집자와 대면을 하게 되는 건가...뭔가 신기하네. 나는 폰을 만지작 거리며 몸을 침대에 뉘였다. 씻어야 하는데 귀찮아...좀만 누워있다가 씻자...
그런데, 지상파운드좌가 변이자는 아니겠지? 문득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의심이었다.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변이자인 경우가 많아서 이제는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이라고 본다.
뭐...내일 만나보면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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