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듀라한이 되어버렸다-90화 (90/352)

〈 90화 〉 84.뭐? 메스가키? 그게 뭔데?(3)

* * *

“메스가키? 그게 뭔데?”

딴건 몰라도 씹덕 용어인건 알겠다. 이름부터가 일본어잖아. 근데 뉘앙스보니까 씹덕스러운 대사를 해달라는 것 같은데, 이런 건 트리위키에 치면 바로 나온다. 씹덕스러운 거 한정으로는 정확도가 높으니까. 나는 트리위키를 키고 메스가키를 검색했다.

‘암컷을 뜻하는 '메스(メス)'에 애새끼를 뜻하는 '가키(ガキ)'를 합친 일본식 조어로, 미성년 여성을 속되게 부르는 멸칭’

­우욱

­에반데;;

밑에 설명글을 읽어보니까 더 가관이네. 한마디로 어른들한테 버릇없이 X같이 구는 꼬마라는 거잖아.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류인데.

참교육은 둘째치고 실제로 만나면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잼민이를 연기하라는 거로구만. 누군지 몰라도 신청한 놈 얼굴에 피 토해버리고 싶다. 어떤 씹덕새끼가 이런 걸 해달라고 하는 거야.

“아니, 도대체 나한테 뭘 시키려는 건데...”

­이건 좀 역한데

­씹덕쉑 눈치없죠?

아, 실수로 본심을 내뱉어버렸다. 급하게 채팅창을 보니 채팅창은 이미 곱창이 나고 있었다. 이러다 이 글 신청한 놈 색출해서 조리돌림하고 끝나겠네. 그렇게 놔두기엔 좀 그랬다. 어쨌든 내 방송 보는 시청자고,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면 시청자들이 빠져나갈 수도 있었다.

씹덕이던 뭐던 다 내 돈줄이라고! 난 내 돈 못 잃어! 그러니까 씹덕 죽이기 멈춰! 죽이려면 저기 갤에서 죽여! 거긴 상관 안할 테니까!

“자 일단 전부 주목! 채팅창 좀 그만 곱창내고, 뭐 일단 내가 하기로 한 거니까 간단하게 하고 넘어가자. 오케이?”

­ㅇㅋㅇㅋ

­와 이걸 해주네 ㅋㅋㅋ

[듀라눈나헤으응님이 300000원 후원하셧습니다!]

­메스가키 ‘해 줘’

아 30만원이면 어쩔 수 없지. 30만원이라면 1시간이라도...아니 30분이라도 메스가키인지 메가스키인지 하는 걸 해줄 수 있었다. 30만원이면 X텐도 X위치 라이트를 살 수 있는 돈이라고. 5만원 정도만 더 얹으면 아예 X위치를 사도 되고!

“듀라눈나헤..으응님 30만원 후원 감사합니다! 뭐 원하시는 대사 있으세요?”

닉네임 상태봐라. 이건 씹덕이 아니라 날 지능적으로 엿먹이기 위한 고도의 어그로가 아닐까. 아무리 씹덕새끼라도 저런 닉네임을 달고 다닐 리가 없잖아. 저게 찐이라면 나는 얼굴을 도저히 들고 다닐 수가 없다. 물론 내 얼굴이 세간에 드러난 적은 없으니 피해는 없겠지만...

­급 공손해지는거 봐라 ㅋㅋㅋㅋ

­그 와중에 닉네임 읽을 때 버벅이는 거 커엽누 ㅋㅋㅋㅋ

­누가 내 주머니에 30만원 넣어주면 나도 그럴 자신 있음 ㄹㅇ

­역사 자낳괴 ㄷㄷ

다 닥쳐! 꼬우면 니들이 더 많이 꽃아 주던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주란 신이야! 내가 이제 머기업 반열에 들어섰다 쳐도 30만원이 절대 작은 돈이 아니라고!

[듀라눈나헤으응님이 1000원 후원하셧습니다!]

­5분 동안 욕해줘

“아...예...”

혹시 마조히스트야? 욕먹는 걸 즐긴다고? 내가 무슨 욕쟁이 할머니도 아니고 뜬금없이 5분동안 욕을 하라고? 나는 듀라눈나헤으응이라는 미친 닉네임의 소유자가 채팅창에 올린 링크에 마우스 커서를 올려놓고 잠시 망설이다가, 눈을 딱 감고 클릭했다.

­여기 나온 대로만 해주세요

“아 네.”

나는 방송 화면에 보이지 않게 설정한 뒤에 링크를 열었다. 링크의 내용은 대본 비스 무리한 글이었다. 내가 할 대사가 적힌. 분량은 대충 대사 5개? 정도 같은데 어쨌든 이대로만 하면 되는 건가? 나는 빠르게 빌어먹을 메스가키의 대사를 읽어 내리며 숨을 골랐다.

환장하겠네. 대사 하나하나가 내 항마력을 시험하는 것 같은 정신 나간 대사들뿐이었기에, 아무리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인 나라도 망설임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02댄스를 한번 더 추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이건 나라도 좀 그래.

말끝에 ♥를 붙이는 이유가 도대체 뭐야. 무슨 15년 전 인터넷 소설도 아니고 대사에 꼭 저런걸 붙여야 해? 심지어 말하는 것도 하나같이 씹덕내가 심하게 나서 속이 울렁거린다. 나는 대량으로 피를 토할 것을 대비해서 사둔 양동이에 피를 한바탕 쏟아내었다.

아 피비린내. 환기 좀 시켜야지. 머리카락을 늘려 창문 손잡이를 붙잡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바깥에서 피비린내가 난다고 뭐라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내 방 가득한 피냄새를 빼고 싶었다.

양동이의 6분의1을 채우다시피 한 핏물을 보며, 나는 내 피로 선짓국을 끓여먹으면 어떤 맛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짓국이랑 맛이 비슷하겠지?

“대사가 너무...음...”

­목소리부터 역해 보이는데 ㅋㅋㅋㅋ

­두려운가?

하는 것도 두렵고, 한 뒤의 후폭풍도 두렵다. 하지만 이미 30만원을 먹었는데 그만 둘 수는 없었다. 눈 딱 감고 몇 번만 하면 된다. 목소리는 요망하게...요망한 게 뭐지. 대충 색기있게 말하면 되는 건가?

“이, 이런 거에나 돈쓰는 변태 새끼♥ 벼, 병신♥ 호구새끼♥”

­ ㅜㅑ...

­생각이 바꼇다 ㅅㅂ 더해주세요 눈나

­아 왤케 요망하냐 ㅋㅋㅋㅋ

­그 와중에 말 더듬는 거 커엽네 ㅋㅋㅋㅋ

한 문장을 말하고 채팅창을 슬쩍 보니 다행히도 시청자들의 반응은 호의적인 편이었다. 기껏 해놓고도 곱창 내면 오늘 방송은 망하는 거였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은 편이었다. 우리 시청자 수준이 좀...그래. 편하게 돈 벌 생각하면 안 되지. 이게 한 집안의 기둥인 가장의 책임감이라는 거구나.

당장은 부끄러워도 지금만 넘어가면 떡상은 예정된 수순이니 나는 좀 더 힘내기로 했다. 나는 최대한 실감나게, 그리고 없는 색기를 끌어 모아서 고혹적인 목소리로 대사를 읽었다.

“맨날 방안에서 방송이나 쳐보면서 딸치는 육수새끼들♥ 주거♥”

[GROUNDPOUND님이 100000원 후원하셧습니다!]

­이 집 맛있게 맵네

“아이고, 그라운드파운드님 10만원 후원 감사합니다!”

­매도 컨셉 무쳤네 ㅋㅋㅋㅋ

­씹덕체로 볼 땐 역겨웠는데 현실에서 들으니까 좀 이해가 되네 ㅜㅑ

­녹화 ON

하지마 시발! 하지 말라고! 이것까지 돌아다니면 난 그냥 방송 접고 비구니가 되련다! 속세의 연을 끊고 절로 가버릴거라고!

하지만 나에게 거부권은 없었다. 나는 덜덜 떨리는 머리카락을 필사적으로 움직여 마우스 스크롤을 내리며 다음 문장을 읽었다.

“여친 한번 사귀어 보지도 못한 동정 새끼♥”

도대체 신청한 인간은 이런 대사를 5개씩이나 하라고 준거야. 진짜 미친놈인가? 이걸 스트리머한테 시킨다고? 나는 실시간으로 피가 목에 차오르는 걸 느꼈다. 오늘은 3양동이는 거뜬하게 채우겠군. 누군지는 몰라도 이거 해달란 새끼 밧줄로 묶어서 에포나 위에 태워놓고 전국 일주 시켜주고 싶다.

에포나는 내가 멈추라고 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고! 마치 소방차처럼 말이야!

“당장 나가서 죽어버려♥ 허접♥”

­혹시 님 서큐버스임?

­ ㅜㅑ...

­묘하게 진심이 담긴 거 같은데 ㅋㅋㅋㅋ

­아 너 같으면 안 담기겠냐고 ㅋㅋㅋㅋ

내 마음을 잘 아는구나. 진심이 안 담길 수가 없어!

“자, 이제 끝! 다음 걸로 넘어갑시다!”

­헤으응 눈나 더 ‘해 줘’

­한번만 더 해줘 한번만 더 해 줘한 번만 더 해줘 한번만 더 해줘 한번만 더 해줘 한번만 더 해줘 한번만 더 해줘 한번만 더 해줘 한번만 더 해줘 한번만 더 해줘 한번만 더 해줘 한번만 더 해줘 한번만 더 해줘 한번만 더 해줘 한번만 더 해줘

더 하라고 해도 안 해! 아니 못 해! 내 멘탈은 이미 바사삭 부서져버려서 복구도 안 된다고! 나는 당장 양동이를 가져와서 피를 쏟아냈다. 시발 한 번에 몇 리터를 뱉은 거야. 적십자 가면 VVIP대접 받겠고만. 이 정도면 나 혼자서 수십 명 분량의 헌혈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왜. 뭐. 왜.

세연아 너 표정이 왜 그래? 하긴 상상이상으로 대사가 역하긴 했다. 진짜 내가 인생의 회의감을 느낄 정도였어. 이건 진짜...쫌...사람의 존엄성을 짓밟힌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아니 그냥 현자타임이 씨게 왔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이겠지.

딸딸이도 안 쳤는데 현자타임이라니, 이건 좀 심했다. 그러고 보니 변하고 나서 자위를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래저래 눈치가 보이는 것도 있고, 이 몸이 된 후로 성욕을 거의 느끼지 못해서...아직 한 번도 안 해봤으니 한번 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현실이 너무 참담해서 현실도피를 하다 보니 정신 나간 생각을 하게 된 모양이다. 아직 방송중이니까 정신 차려! 뇌절 멈춰!

­오늘 ㄹㅇ 레전드네 ㅋㅋㅋㅋ

­라인업이 ㄹㅇ 하나하나가 미쳤다 ㅋㅋㅋㅋㅋ

내가 이러려고 방송한 게 아닌데...적당히 하하 호호하면서 수금각이나 재는 평화로운 방송을 원했는데...왜 저런 놈이 시청자로 와가지고...돈 많이 번건 좋지만...평생 놀림감이 될 흑역사가 인터넷에 박제 되어버린다고...

잠시 현실도피와 자기합리화를 위해 시청자수를 향해 눈을 돌리니.

“...어?”

내 방송이 마하의 속도로 번영하고 있었다.

4000명...?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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