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 73.죽인다냥(3)
* * *
“혹시 내가 루트를 잘못 골랐냥? 우리 사요짱 어디갔냥? 왜 나는 츤데레랑 데이트를 해야 하는 거냥?”
앗...아아...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소꿉친구 코인 폐지됐죠? 폐지됐죠?
ㄹㅇㅋㅋ
분위기 왜 그래! 나 루트 정말로 잘못 탄 거야? 아니 대놓고 우리 소꿉친구가 좋아할만한 단어만 골랐는데 그게 소꿉친구 루트가 아니었다고? 나는 이 비참한 현실을 믿을 수 없었다. 미연시에서 축제 이벤트를 하는데 내가 선택한 히로인과 이벤트를 할 수 없는 게임이 있다?
선 넘네...원래 여기서 꽁냥꽁냥하면서 친해져서 호감도를 쌓아야 하는 부분인데, 4일차인 어제는 우리의 메인 히로인 소꿉친구가 아파서 조퇴해 버리더니, 오늘에 이르러서는 어쩔 수 없이 투표에 의해서 츤데레 핑크머리와 컵케이크를 만들러 가야한다. 그것도 주인공의 집에서! 이거 히로인이랑 연인이 되고나서 할법한 이벤트 아니냐?
심지어 소꿉친구 집에 들러서 같이 컵케이크를 만들러 가자는 이벤트가 있었지만, 결국 내가 같이 가면 좀 그렇지 않냐는 말과 함께 거절당했다. 세상살이 참 야박하다.
츤데레를 너무 싫어하는 거 아니냐고? 네가 현실에서 츤데레 성격인 사람 실제로 만나보면 그런 소리 못한다. 현실 츤데레는 기분 나쁠 뿐이라고. 만화나 소설이나 게임은 우리가 히로인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는데다 주인공 빼고 다 알정도로 대놓고 좋아한다는 걸 티를 내지만, 현실은 개가 좋아하는지 아닌지 알게 뭐야?
부끄럽답시고 까칠하게 구는 사람을 어떻게 좋아하겠어? 현실에서는 그저 민폐일 뿐이다. 굉장히 피곤한 관계기도 하고. 그러니까 나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츤데레를 싫어할 예정이다 이거야.
문제는 내가 츤데레를 싫어한다고 해서 X수들이 츤데레와 문학소녀를 가지고 루트 선택 투표를 하니 츤데레가 70%를 넘었다는 거지만! 역시 사람 엿맥이는거 좋아한다니까. 전직 X수였던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와! 컵케이크다냥! 못 먹은지 10년은 지난 것 같다냥...”
ㄹㅇ...굳이 사먹지 않는 이상 먹을 일이 없지
컵케이크하면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그 컵케이크 밖에 기억 안남 ㅋㅋㅋㅋ
어릴 땐 엄마한테 졸라서 자주 사먹었던 것 같은데. 계란 넣고 적당히 섞어서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리면 맛있는 컵케이크가 나왔었지...요즘도 남아있는지는 모르겠다. 성인이 되니 굳이 달달한 걸 찾아서 먹는 일이 줄어들어서...단걸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찾아서 먹을 정도는 아니니까.
“처음부터 집에 초대라니, 좀 친다냥.”
집 초대 ㅜㅑ...
ㅜㅑ ㅜㅑ
“야한 생각 멈추라냥. 이 방송은 건전한 방송이다냥.”
야한 생각 멈춰! 전연령 미연시 게임에 눈동자 씬이 나올 리가 없잖아. 눈동자 꺼라. ㅜㅑ로 채팅창 도배 그만하고 방송이나 봐. 다른 채팅이 너무 빨리 올라가서 안보이잖아.
그나저나 좀 찝찝하네. 최대한 소꿉친구 컨셉질을 하면서 루트를 타고 있었는데, 뭔가 강제로 루트가 뒤바뀐 느낌이 든다. 딴것도 아니고 갑자기 소꿉친구가 등장하지 않는 이벤트라니, 마치 루트를 잘못타서 소꿉친구가 호라 모 젠젠 당하는 것 같잖아.
아직 바로잡을 기회는 있는 거지? 내일이면 멀쩡하게 돌아와서 다시 소꿉친구 루트 진행이 가능한 거지?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게임은 여전히 돌아간다. 주인공의 집에서 츤데레가 같이 컵케이크를 만드는 장면이다.
그나마 츤데레 강도가 약해서 그런지 그냥 적당히 티키타카 하는 정도로 대화가 이어지네. 츤끼가 조금만 더 강했어도 바로 고구마 소리 나왔을걸? 요즘 시대는 츤 함유율이 5%이상 강하면 그대로 히로인 탈락이라고.
전통적인 인기 히로인 유형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메인 히로인일 때뿐이지 서브히로인에겐 해당사항이 없어! 당장 메인히로인으로 나와도 욕먹기 쉬운 게 츤데레인데!
그나마 츤데레의 상징이라는 트윈 테일이 아닌 점은 칭찬할 만 했다. 그냥 트윈 테일은 귀여운데 츤데레가 섞이면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버린단 말이야. 목소리가 없어도 모 성우의 목소리가 강제로 재생되는 느낌이랄까.
“주인공 집이 참 부자다냥.”
ㄹㅇ...나도 저런 집 살고 싶다...
주인공 기만자쉑 ㅋㅋㅋㅋ
집 너무 좋은 거 아니야? 나도 저런 2층짜리 작은 정원 딸린 단독주택에서 살고 싶다...미연시에서 나오는 주인공은 대부분 유복한 집안이더라. 맨날 평범하다면서 집이 2층짜리 단독 주택이야! 저런 집에 사는 사람이 평범할 리가 없잖아!
계속 진행하자. 집 앞에 나온 주인공과 츤데레는 묘한 기류가 만들어지더니, 츤데레 쪽에서 찰싹 달라붙어 당장이라도 고백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허어.
“뭐냥? 갑자기 고백이냥? 츤데레 그렇게 안봤는데 도둑고양이였다냥. 주인공과 소꿉친구의 애정전선을 보고도 NTR을 시도하다니, 대담하다냥...”
고백하는 거임? ㅜㅑ ㅜㅑ
호감도 올리는 행동 안했는데 고백 이벤트라고?
여기서 NTR이?
츤데레가 주인공 코앞까지 붙어서서 소매를 잡는다. 그리고...
[사요?]
“와! 삼각관계! 와! 캣파이트 시작이냐옹?”
미연시에서 캣파이트 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미연시 장르가 그냥 평범한 순애물이 아니었구나! 이 상황에 다른 히로인이랑 마주치게 할 줄은 몰랐는데! 츤데레도 놀라서 주인공에게 떨어지고, 주인공도 이 상황을 아주 난감해 하는 게 흥미롭다. 결국 츤데레는 급하게 도망가고, 주인공과 소꿉친구 단 둘이 남아 이 어색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말을 꺼낸다.
“소꿉친구 코인은 아직 떡락하지 않았다냥! 저건 그냥 츤데레가 달라붙은 거라냥! 오해의 소지가 있었던 것 뿐이다냥!”
필사적인 변명 ㄷㄷ
[GROUNDPOUND님이 1000원 후원!]
추라야 듀하다
추하다니! 내 사랑은 오직 소꿉친구뿐이라고! 나는 츤데레가 싫어! 문학소녀는 좀 끌리지만 그래도 소꿉친구가 최고야!
이제 중요한 국면이다. 이 장면에서 아마 소꿉친구 루트의 중요한 선택지가 나올게 분명했다. 딱 봐도 소꿉친구와의 관계를 바꿀 수 있는 장면이잖아. 아마 여기서 선택지를 잘 고르면 그대로 연인이 되겠지?
[난 내가 죽고 싶을 만큼 네가 좋아!]
“나도 좋다냥...결혼해달라냥...”
소꿉친구양의 돌직구가 우리들의 마음을 울렸다. 아 이걸 어떻게 고백 안하고 배겨! 좋다잖아! 다른 히로인 따위 알게 뭐냐! 지금 우리 사요짱이 울면서 말하고 있는데!
급발진 ㄷㄷ
벌칙방송 하더니 완전히 맛가버렸네 ㅋㅋㅋㅋㅋ
“이거 완전 선수다냥...”
[그만하면 됐어]라며 조용히 손을 잡고 분위기를 잡는 게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난 네가 필요한 게 뭔지 알아 사요.]
ㅅㅅ
가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ㅜㅑ ㅜㅑ ㅜㅑ ㅜㅑ ㅜㅑ ㅜㅑ ㅜㅑ ㅜㅑ ㅜㅑ
이어서 두 개의 선택지가 나온다.
[사랑해]
[넌 내 영원한 친구야]
“망설임 따윈 없다냥! 소꿉친구 코인 떡상 가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냥!”
급하게 마지막에 냥 붙인 거 보소 ㅋㅋㅋㅋㅋ
[널 사랑해.]
“오늘부터 1일이다냥...”
주인공의 절절한 사랑 고백과 함께 서로 끌어안는 컷신이 나온다. 솔로 탈출이다! 말하는 게 아주 그냥 달달해서 죽을 것 같아...이게 고등학생이냐! 20대 연인이 결혼 전에 프로포즈하는 수준의 대사를 남발하잖아! 평생을 함께하자니! 진도가 너무 빨라!
눈동자! 눈동자!
[네가 날 사랑한다고 했을 때, 마치 가시가 날 찌르는 느낌이었어.]
“독서부라 그런지 꽁냥거리는 대사도 문학적이다냥.”
ㄹㅇㅋㅋ
둘다 대사 좀 치네 ㅋㅋㅋㅋ 저게 고등학생 이라고?
그래서 커플이시겠다?
“내일부터는 꽁냥꽁냥 독서부 시작이다냥!”
ㅋㅋㅋㅋㅋㅋ
사요리가 퇴장하고, 다음날로 넘어간다.
오, 이번에는 아침부터 깨워주러 가는 건가? 아니 안 깨우러간다고? 오늘 축제날이라며! 이런 날엔 당연히 깨우러 가야하는거 아니야?
“이거 이거, 눈치 없는 놈이다냥.”
와...ㄹㅇ 미연시 남주인공답네
저런 놈도 여친이 있는데 나는...
“힘내라냥. 언젠가는 여친이 생길거다냥.”
‘언젠가는’
“내 말을 곡해하지 말라냥. 곡해하면 죽인다냥.”
그럼 여친 없는 축제를 즐겨야 하는 건가? 뭐 이런 게임이 다있어! 소꿉친구야 빨리 정신 차려! 주인공 새끼야 당장 학교 뛰쳐나와서 소꿉친구 깨우러 가라고! 여기서 눈치 없이 굴지 마! 그렇게 축제준비를 하던 주인공은, 사요짱이 쓴 시를 읽었다.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 줘. 내 머리에서 나가줘...]
“이, 이건 뭐다냥?”
같은 말의 반복. 한눈에 봐도 문제가 있음이 느껴지는 시였다. 소름끼쳐. 그럼 이제 소꿉친구의 불안한 정신상태를 케어해주는게 주요 스토리가 되는 건가?
ㄷㄷ
뭐임...무서워....
정상이 아닌데...;;
시를 다 읽곤 소꿉친구 사요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란 것을 깨달은 주인공이 학교를 뛰쳐나와 사요짱의 집을 향해 달린다. 그래 그래야지!
“가즈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래야 주인공이지
요즘 주인공이 고구마 먹이게 돼 있냐?
냥자 어딨냐고 ㅋㅋㅋㅋ
주인공은 아주 조용한 사요의 집에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언제나처럼 집 문을 열고 들어가 사요짱의 방문 앞에 선다. 평소라면 바로 들어가야 할 텐데, 주인공은 너무나도 조용한 사요의 방에 위화감을 느꼈다.
왠지 열면 안 될 것 같은.
판도라의 상자를 앞에 둔 판도라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뭐, 뭐다냥...”
음산한 배경음악이 깔리기 시작하고, 스페이스 바를 누르던 끝에 문이 열린다.
“사...사요짱? 내가 왔다냥.”
거기엔, 목을 매달아버린 사요의 모습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