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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76화 (76/352)

〈 76화 〉 70. 피는 영어로 BLOOD(3)

* * *

[흠! 신체능력은! 운동선수랑! 비교해도! 꿇리지! 않겠군!]

50미터 달리기 6.6초, 팔굽혀 펴기 87개, 윗몸일으키기 113개, 멀리 뛰기 3M...

내 신체능력이 변하기 전에 비해서 큰 폭으로 높아졌다는 건 진작 알고 있던 사실이라 별로 감흥이 없었다. 알고 있던 사실을 재확인 하는 것뿐이었으니까.

어차피 만화나 게임처럼 말도 안 되는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이정도만해도 인생 사는데 아무런 지장도 없다. 그래도 소소하게 이득일 순 있겠지. 평생 써먹을 일 없는 게 가장 좋지만, 마가 끼었는지 듀라한이 된 이후로 여러 트러블에 휘말렸으니까...

그래도 오랜만에 몸을 격렬하게 움직이니까 조금 피로가 쌓인 느낌이었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변이 이래로 가장 몸을 많이 움직였으니까. 지금까지 한 게 50미터 달리기, 팔굽혀펴기, 멀리 뛰기, 윗몸 일으키기, 이었으니까...

근데 군대도 아니고 이런 걸로 측정이 되긴 하는 거야? 확실히 여중생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기록이 나오기는 했는데...군대 시절에 이정도 기록이 나왔다면 특급전사는 여유롭게 딸 수 있지 않았을까. 그거 따서 뭐하겠냐마는. 내가 있던 대대는 그걸로 휴가를 더 주지도 않았고.

[몸은! 괜찮나!]

“그렇게 힘들지는 않네요. 조금 힘들다는 느낌?”

[변이자 중에서도 뛰어난 편에 속하는 군요.]

테스트 참관인으로 온 곰 닥터도 라쿤 박사님의 평가를 거들었다. 그렇게 말하니까 뭔가 쑥스러운데...목소리가 너무 스윗해서 녹아내리겠네. 라쿤 박사는 악을 써 대서 귀가 아픈데 왜 같은 동물인 곰 닥터는 목소리가 왜 이렇게 스윗하시죠? 중후하면서도 부드러운, 벌꿀 같은 목소리가 아주 매력적이시다. 이건 남자였어도 반할만한 목소리인데.

진짜 곰 인 것만 빼면 완벽한 사람인데... 곰인 게 문제였다. 적당히 잘생기기만 했어도 여자가 저절로 꼬일 상인데 진짜. 하렘물 남자 주인공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저런 느낌이 아닐까. 나는 내가 보는 웹소설에 5700자짜리 쪽지를 보낼 생각이 없으니 실제로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어차피 가도 TS당해서 히로인 신세가...어?

잠깐, 이 상태에서 TS당하면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가는 건가? 아니면 이 외모에 고추만 달리나? 듀라한 그대로 가는 건가? 보통 이럴 때는 한 줄만 나올까 말까한 엑스트라로 빙의하잖아?

결국 내 몸뚱이는 여기 있고 다른 여자 몸에 들어가는 거니까 TS가 아니라 그냥 빙의겠지?

[이제부터는! 자네의! 종족특성을! 시험해! 보겠네!]

아, 아직 테스트 중이었지. 이제부터는 평범한 신체능력 검사가 아닌 모양이었다. 이제 머리를 붙여놓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나는 머리를 집어 들곤 품에 안았다. 역시 이 자세가 제일 편해,

보통 사람들은 보면 기겁하겠지만. 봐봐, 저기 처음 본 사람들이 헛숨을 들이키잖아. 다들 설명은 들었을 텐데 너무 놀라는 거 아냐? 하긴, 듀라한이라는 존재가 그만큼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들기는 했다. 머리를 떼놓고 다니는데 이해할 수 있는 놈이 있다면 그건 미치광이나 지나치게 긍정적인 인간이거나 둘 중에 하나겠지.

[우선! 머리카락을! 늘릴 수 있는 만큼! 늘려보게!]

머리카락 늘리기야 쉽지. 내가 밥 먹듯이 하는 게 머리카락을 움직이는 거니까 그렇게 어려운 요구도 아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자라나라 머리를 외치며 머리카락 길이를 늘이기 시작했다. 입으로 왜 말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쪽팔려서다. 갑자기 자라나라 머리를 외치면 이미지고 뭐고 전부 다 박살이 나버릴 테니까.

2미터, 3미터, 5미터, 10미터, 20미터...작정하고 늘리기 시작하자 내 머리카락은 이게 사람의 머리카락이 맞나 싶을 정도로 늘어났다. 30미터 쯤 도착했을 때에도, 내 머리카락이 늘어나는 속도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만! 그만!]

내 머리카락은 테스트실 반대쪽 벽에 닿고도 멈추지 않고 늘어났다. 머리카락이 과하게 길어지니 내 머리가 너무 무거워져 나는 중간에 땅바닥으로 내려놓았다. 여기 깨끗해 보였으니까 괜찮겠지.

[못해도! 100미터! 이상! 늘어났군! 혹시! 움직일 수! 있나!]

“한번 해볼게요.”

머리카락 끝에 감각을 집중한다.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뭔가 거대한 젓가락으로 작은 콩을 집는 느낌이었다.

너무 머리카락이 길어진 나머지 힘이 잘 전달이 되지 않는다고 할까. 내 시야가 머리카락에 막혀버린 탓에 내가 머리카락을 움직이고 있는지 없는 지를 오로지 감각만으로 파악해야 했다.

[끄트머리가! 살짝! 움직인! 것! 같네만!]

아, 그래요? 그렇게 말해도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평소에 늘리는 2~3미터 때와는 다르게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평소에 주던 힘이 100kg짜리 물건도 힘겹게 나마 들 수 있는 수준이라면, 지금은 10kg남짓? 뭐 평소에 100미터나 늘릴 일은 없을 테니 아무래도 좋은 기록이긴 했다.

“움직이긴 하는데, 힘은 거의 안 들어가요! 대충 10kg 물건을 겨우 드는 정도?”

[알겠네! 그럼! 다시! 줄이게!]

아 넵. 나는 머리카락을 다시 평소대로 되돌렸다. 늘릴 때는 못해도 5분정도는 걸렸던 것 같은데, 줄이는 것은 금방이었다. 번거롭지 않아서 좋네.

[104미터! 사람! 머리카락! 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길이로군!]

“그렇긴 하죠?”

104미터라니, 기네스북에 기록된 최고 길이가 5미터 남짓이라고 인터넷에서 본 것 같은데. 무려 20배나 더 길다는 건가. 순수하게 길이로 따지면 라푼젤도 울고 갈 길이겠네. 잘 땋아서 건물 옥상에서 늘어트리면 진짜 머리카락을 타고 오를 수 있지 않을까.

머리카락이 70cm정도로 줄어든 것을 확인하자 나는 머리를 다시 집어 들어 품에 안았다. 다음엔 뭘 하지?

[이번에는! 머리카락으로! 물건을! 들어보겠네!]

물건? 어떤걸 들라는 걸까.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갑작스레 바닥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진동이 울리는 곳을 찾아 시선을 움직이니, 열 걸음 정도 앞의 바닥이 열리는 게 보였다. 게임 튜토리얼에서나 보던 초­하이테크 시스템이네!

역시 최신 기술을 활용하는 기관이라 그런지 등장 씬도 참 화려했다. 고작 근력측정용 기구 몇 개 꺼낸다고 바닥을 열고 밑에서 부터 올려 보낼 줄이야. 바닥을 열고 등장한 물건은 좀 커다란 아령이었다. 딱 10개네. 크기가 전부 다른 것을 보니 무게 별로 하나씩 있는 모양이었다. 10, 20. 30, 40...100kg까지. 50kg을 넘어가니까 아령이라기 보단 그냥 벤치프레스 할 때 쓰는 기구나 다름없는데.

[머리카락으로! 하나씩! 들어보게!]

그거야 쉽지. 나는 아까처럼 머리를 땅바닥에 내려놓고, 머리카락으로 아령을 순서대로 하나씩 들어 올리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무거운 아령을 들수록 나는 자연스럽게 더 많은 머리카락을 뭉쳤고, 50kg이 넘기 시작할 때는 머리카락의 절반정도를 뭉쳐서 들어야 했다. 80kg 부터는 머리카락을 한데 모아 근섬유마냥 꼬아놓은 상태로 들어 올려서야 들 수 있었다.

[머리카락 개수와 힘은 비례하는 건가...기묘하군.]

[머리카락이! 근섬유! 역할을! 하고 있다는! 가설이! 맞는 것! 같다네!]

근섬유? 근육을 이루고 있는 세포 다발이었나 그랬던 것 같다. 나는 문과라 그것 밖에 몰라. 예에에에에전에 헬스장에서 대충 설명을 들었던 것 같기도 한데...기억이 잘 나질 않았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확실한건 몸뚱이의 근력보다 머리카락 힘이 더 세다는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머리가 본체가 맞다니 까?

[아주! 흥미롭네! 그럼 이번에는! 머리 강도 테스트를 하겠네!]

제 두개골 강도는 잴 필요가 있습니까? 굳이 그걸 재야 돼? 내 머리에 무슨 짓을 하려고! 전기톱 같은 거 갖다 박는 거 아니지?

이번에는 오른쪽에 회색 시멘트벽이 튀어나왔다. 이거 어디선가 본거 같아. 닌자 만화 말이야!

땅이 있는 곳에서 이 정도의 토둔을...!!!

[머리를! 던지던! 아니면 휘두르던! 해서! 부셔보게!]

“네? 정말로요?”

[저번! 기록에! 따르면! 자네 머리는! 수십 미터! 상공에서! 떨어져도! 멀쩡했지! 않나! 괜찮을! 걸세!]

에라 모르겠다! 나는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붙잡고 온몸으로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어지럽게 돌아가는 시야를 눈을 감아 차단하고, 기세 좋게 시멘트벽을 향해 던진다!

바람을 가로지르는 느낌과 함께, 내 머리가 시멘트벽을 향해 날아갔다. 감으로 던진 거지만 5미터 남짓한 거리에서 던진 덕인지 목표를 향해 정확하게 날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눈을 살짝 떠보니 시멘트벽은 이미 내 코앞에 있었다.

귀 아파! 시벤트벽이 부서지는 소리가 귀청을 울린다. 아무리 데미지가 없다지만, 큰 충격이 머리에 가해지면 내 귀에도 큰 소리가 들리는 것은 당연하다. 흩날리는 가루에 콜록거리며 눈을 떠보니, 내 머리가 부딫힌 곳을 기점으로 시멘트벽이 부러져 있었다.

와...누가 보면 포탄이라도 날아온 줄 알겠네. 시멘트벽에 선명하게 새겨진 머리모양 구멍이 마치 개그만화에서 자주 나오는 벽에 사람 모양의 구멍을 낸 것을 보는 느낌이었다.

이게...내 머리?

[최소한! 강철 만큼의! 강도는! 가지고! 있겠군!]

[이유진 양, 머리는 괜찮나?]

콜록,

“아프진 않아요. 근데 가루가 흩날려서 좀...”

나는 눈을 살짝 뜨고 머리카락을 늘려 내 오른팔에 휘감아 다시 머리카락을 줄였다. 듀라한으로 살아가려면 꼭 할 줄 알아야 하는 필수 테크닉이다. 팔로 머리카락이랑 얼굴에 묻은 시멘트 가루를 털어내며, 나는 다음 테스트를 기다렸다.

생각보다 빠른 페이스로 진행되고 있어서, 이왕이면 한 번에 다 끝내고 느긋하게 쉬어야지. 테스트를 하러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는 건 사양이었다. 귀찮잖아.

[괜찮나!]

“예예. 그러니까 다음 테스트 시작해 주세요!”

[알겠네! 그럼! 마지막일세! 이번에는! 피를! 토해! 보겠네!]

“네,...피를 토해...뭐요?”

[피를! 토한! 것이! 몸의! 이상인지! 아니면! 듀라한의! 특성! 탓인지! 확실히! 해야! 하네! 후자라면! 자네도! 컨트롤! 할 수! 있어야! 하니까! 말일세!]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집에서는 그렇다 쳐도, 밖에 갑자기 피를 토하면 난리 나겠지? 심지어 내 피는 일반적인 피하고는 다를 수 도 있으니, 재수 없으면 내가 새로운 판데믹의 주범이 될 수도 있었다.

강제로 사회적 거리두기(물리)를 당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거다. 감금은 싫어...

[자네! 괴롭겠지만! 피를! 토할 때의! 상황을! 떠올려! 보게!]

어려운 주문은 아니었다. 그냥 생각하기만 하면 될 뿐이니까. 나는 차근차근 그날의 일을 떠올렸다. 시청자와 세연이의 합작으로 공포게임을 했고...너무 무섭...아니 길을 못 찾아서 짜증냈고, 어느 순간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해서 참지 못하고 화장실에 가서 피를 토해내곤 기절.

어디에 포인트를 잡아야 하는 거야?

[생각해보게! 자네는! 지금! 수 명의! 직원! 앞에서! 테스트를! 하고! 있네!]

그렇게 말해도, 잘 모르겠는 뎁쇼. 피를 토하려면 내가 일하는 모습을 누가 지켜봐야 한다는 조건이 필요한데, 이걸 일이라고 할 수...있나?

[테스트를! 끝내면! 수고비로! 300만원을! 지급! 하겠네!]

일 맞네!

그 날, 나는 테스트 실을 피로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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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토해낸! 피의! 성분은!”

성분은?

“혈구45%! 혈장55%! 백혈구도! 적혈구도! 모두 정상수치였네!”

“그러니까, 피 자체로는 일반인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말씀이시죠?”

“그렇다네!”

그럼 3일씩이나 걸려서 피의 성분을 조사하는 의미가 있긴 한 건가? 일반인 피랑 차이가 없다면, 나는 그냥 피를 토한 것 뿐 인데? 피를 토해냈다기 보단 피를 쏟아냈다고 보는 게 맞겠지만, 장장 테스트 실에서 내가 쏟아낸 피가 내 몸무게 만큼이었으니까. 내 몸 어디에 그렇게 많은 피가 존재하는 건지 도저히 짐작이 가질 않았다.

변하기 전보다 밥을 많이 먹어도 어째 살이 찌는 기미가 없더라니, 전부다 피로 만들어지고 있었던 건가?

“하지만! 자네의 피를! 건강한! 실험쥐에게! 부으니! 시름시름 앓더군! 경과를!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자네의 피가! 생명체에게! 어느 정도! 해로운 것은! 확실하네! 하지만! 지금까지의! 실험은! 명확한 적의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적의를! 가진! 대상이! 피에! 접촉하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네! 그러니! 조심하게!”

“그럼 집에 가도 되요?”

“가게! 가는 길은! 직원들이! 데려다! 줄 걸세!”

만세! 돈 굳었다!

그렇게 나는 일주일간의 병실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은... 깨끗했다. 세연이가 내 눈치를 봐서라도 일주일 내내 청소를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세연아,”

“...유, 유진아 왜?”

“맛소금이 좋을까, 아니면 천일염이 좋을까, 아니면 허브 솔트가 좋을까?”

선택권은 너에게 줄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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