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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75화 (75/352)

〈 75화 〉 69.피는 영어로 BLOOD(2)

* * *

“자네! 혹시! 듀라한에 관해! 아나!”

찾아오자마자 대뜸 무슨 소리십니까, 라쿤 박사님.

듀라한에 아냐고 물어도,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이 세상에 듀라한은 나밖에 없다며.

그럼 이 몸을 직접 쓰고 있는 내가 가장 잘 아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닐까? 아니라고? 그럼 너도 듀라한 되던가.

“저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자네가! 아니라! ‘듀라한’에! 대해서! 말일세!”

“음...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아, 내가 아니라 ‘듀라한’이라는 존재에 관해선가. 그건 확실히 잘 모르긴 했다.

전에 한번 트리위키에서 한번 찾아본 게 전부였지. 나머지는 일상에서 전부 몸으로 체득했으니까. 대충 저승사자 비스무리한 존재였구나~정도의 인식밖에 없었다. 피를 토한 것도 듀라한이라는 종족이랑 관련이 있는 건가?

“듀라한의! 전승에! 따르면! 일하는! 모습을! 훔쳐본! 자에게! 피를! 토해!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한다고! 하네!”

“어, 그러니까 내가 피를 토한 건 아마 전승 때문이라는 거죠?”

거 끔찍한 전승일세. 일하는 모습 훔쳐봤다고 즉사도 아니고 시간차로 죽여 버린다니, 이거 완전 호러 영화에 나오는 원귀랑 다를 게 없잖아. 듀라한이라는 종족은 원래 부끄러움이 많은 종족인가?

나 밖에 없으니 알 수는 없지만,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조금! 다르다네! 나는! 거기서! 한가지를! 더! 떠올렸지! 스트레스! 때문이! 아닌가! 하고!”

“스트레스요?”

“잘 생각해 보게! 공포라는! 것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를! 준다네! 특히! 자네는! 그런류의! 게임을! 무서워! 하는 것! 같더군!”

그러니까, 지금 내가 스트레스를 과하게 받아서 피를 토했다는 뜻? 그건 너무 격렬한 반응 아닙니까? 그럼 나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피를 토해야 한다는 건데, 여태까지 그런 적이 없었는데?

“그건! 아마! 최근에서야! 발현된! 것일! 거라네! 자네가! 머리카락을! 조종할 수! 있게 된! 것도! 한 달 정도! 시간이! 걸렸다고! 하지! 않았나!”

듣고 보니 그러네? 하긴 머리카락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된 것도 꽤 시간이 지나서였지? 그렇게 생각하면 대충 아귀가 들어맞는 것 같았다. 역시 박사는 박사인가 보다. 솔직히 저 쪼끄만 머리로 박사학위를 어떻게 땄나 의심하긴 했는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주변의! 시선을! 더! 의식하게! 된다네!”

“제가 의식할 만한 시선이란 게 있나요?”

창문은 커튼을 쳐놔서 내부가 보이지도 않을 거고, 세연이랑 유라야 내 방송을 보기야 하지만 그건 언제나 그런 일이라 신경도 안 쓰고. 나를 보려면 창문 커튼을 뚫고 투시를 하던가, 아니면 귀신...귀신?

이쪽은 그나마 가능성이 있네. 근데 나를 관음하는 귀신이 있으면 세연이가 알려 줬을 텐데. 이쪽도 일단은 기각인가.

“시청자도! 시선이라고! 할 수 있네! 물론! 어디까지나! 가설에! 불과하다네! 우리도! 혹시 몰라! 주변을! 뒤져 봤지만! 자네를! 몰래! 훔쳐보는! 것! 같은! 사람도! 흔적도! 없었네!”

시청자라...일 리가 있었다. 방송인들이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이 악질 시청자들이 채팅을 칠 떼라고도 하니까, 나를 놀려대는 채팅창과 도네에 평소보다 많은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직 확신할 수는 없다는 건가. 당연한 일이긴 했다. 어쨌든 나는 세계에서 유일한 듀라한이고, 대조를 해 볼 만한 비교대상 조차 존재하지 않으니까. 나는 인간 아닌 인간인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던 듀라한이라는 종족의 특성인지 아니면 몸의 이상인지 알기 힘들다는 소리겠지.

내 몸의 기능에 관해서 파악할 방법은 얼마 되지도 않는 신화상의 전승 뿐이니까. 자연스럽게 내 몸에 대한 건 내가 직접 체험해서 알아낼 수밖에 없다. 귀찮긴 하지만 어쩌겠어. 그래도 이 몸으로 변하고 나서 얻은 이득도 손실만큼 많았으니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탈모가 진행되는 28살 인남캐 아조씨보다 하와와 백발 미소녀 여중생이 인생 살기 난이도가 더 쉬운 게 당연하니까!

이 정도면 머리만 어떻게 해결하면 캠방으로 얼굴만 보여 줘도 직장인들 한 달 월급 정도는 나오겠다! 듀라한만 아니었다면 말이야!

“그래서! 입원해! 있는! 동안! 자네의 몸을! 테스트! 해 보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테스트요?”

피 뽑고 약물 주입하고 그런 걸 하는 건가? 몸에는 문제 없겠지? 라쿤 박사님과 나름 알고 지낸 사이인 만큼 나를 모르모트로 써먹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여긴 변이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발족된 기관이었고, 난 벌써 여러 번 도움을 받았으니까.

기밀관리본부의 존재를 몰랐다면 나는 이미 오래전에 까발려지고도 남았을 테니, 내가 누워 있는 곳은 병상이 아니라 실험대 일 수도 있었다. 내가 의심할 만한 입장은 아니란 거지.

“그럼! 준비하게!”

“지금요?”

“어차피! 몸이! 근질근질! 하던! 참이! 아닌가!”

3일 동안 침대에서 못 벗어나게 했으니까 그렇죠. 내가 병실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유라랑 세연이가 붙들고 놔주질 않더만. 화장실 가려고 나왔더니 곰 닥터가 병실 앞에서 대기타고 있고. 인생 처음으로 길바닥에서 실례를 할 뻔했다니까?

착한 사람이라는 건 아는데 문 열고 고개를 내미는데 바로 옆에 불곰이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차라리 사골라스트가 덜 무섭겠다!

그나저나 곰 닥터는 여기서 살다시피 하는 건가. 밤에 화장실 갈 때도 봤고, 낮에도 나를 진찰하러 오고, 저녁에도 진찰하러 오는 걸 보면 아마 이 안에 숙소라도 있는 건가. 하긴 라쿤 박사랑 다르게 곰 인간이라 밖에서 생활하기는 힘들겠지.

곰 닥터...대충 그렇게 부르고 있지만, 본명은 강하얀이라는 묘하게 귀여운 이름을 가진 의사 선생님은 생긴 것과는 반대로 신사적이고 부드러운 성격이라 이것저것 잘 챙겨 주는 편이었다. 보니까 성격 덕분에 기밀관리본부에서 인기 많은 것 같던데. 저게 소위 말하는 스윗한 남자라는 걸까.

내가 진짜 여자였다면 호감도가 꽤 많이 쌓이지 않았을까. 지금도 없다고는 말 못 하지만. 물론 환자와 의사의 관계다. 나는 암컷타락 따위 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영원히! 나는 헤으응... 시우는 어쩔 수 없지 하면서 타락하지 않을 거야!

...근데 시우가 누구더라? 왠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왠지 기분이 나쁜 데?

“여기! 이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게! 테스트실에! 갈 걸세!”

라쿤 박사가 낑낑대며 내 무릎위에 비닐 포장된 옷가지를 올려놓았다. 거 작은 키로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곰 닥터가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요?”

“당연히! 허락! 맡았네! 3일 동안의! 진찰! 결과!를 보아하니! 괜찮을! 것! 같다고! 하더군!”

하긴 내 주치의 허락도 안 받고 일을 벌일 리가 없지. 라쿤 박사가 그 짦은 팔다리로 내 무릎위에 올려 둔 옷을 보니, 꽤 본격적인 느낌의 트레이닝 복이었다. 상하의 한 벌에 내의랑 운동화도 포함인가. 아예 풀세트로군. 만져 보니 신축성이 좋은 소재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꽤 비싸 보이는데, 이런걸 공짜로 주는 걸까?

“변이자들을! 위한! 트레이닝복이네! 웬만한! 일론! 찢어지지도! 않을걸세!”

“구체적으로는요?”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옷! 중에선! 이! 옷보다! 질긴! 섬유를! 쓰는! 복장은! 없네! 권총탄 정도라면! 뚫리지 않네!”

아니 그건 그냥 방탄복 아니예요? 군대에서 쓰던 방탄모보다 튼튼할 것 같은 소재네. 뭔가 하이­테크한 물건인건 알겠다. 라쿤 박사님은 그 말을 남기곤 병실을 나갔다. 그럼 갈아입어 볼까.

환자복을 벗고 옷을 갈아입는다. 내 사이즈는 또 어떻게 알았지? 내가 뻗어 있는 사이에 누군가 잰걸까?

트레이닝 복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내 몸에 딱 맞았다. 몸에 딱 달라붙다보니 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는 모습이었지만, 부끄럽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부끄러워하기엔 벌써 이 몸이 된 지 4개월이 넘었다. 고작 내 몸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수치심을 느끼기엔 오랜 시간이 지난 것이다.

TS물에서 자기 몸을 보고 부끄러워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내 몸이라고 생각하면 굳이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잖아. 어차피 내 몸인데.

“다 입었어요~”

“그럼! 따라! 오게!”

문 너머에서 라쿤 박사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병실을 나와 라쿤 박사님을 따라 테스트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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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소리! 잘! 들리나!]

“잘 들려요!”

영화 세트장이라고 해도 믿겠네. 나는 학교 운동장 정도 크기는 되어 보이는 테스트실 내부를 둘러보며 감탄했다. 곰 닥터 같은 케이스가 있어서 크게 지은 건가. 그나저나 수많은 사람들 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참 묘하네.

대부분이 이곳에서 일하는 학자들지 각종 차트와 자료를 띄워 놓고 체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진짜 만화 속에 들어오기라도 한 것 같아서, 살짝 흥분했다. 현실에서 이런 상황을 겪을 일은 거의 없을 테니까.

남자는...아니 이제 여자긴 하지만 어쨌든 어른이 되어도 어린이라고 하잖아. 이런 로망 넘치는 상황을 어떻게 넘겨! 사람은 로망이 없으면 죽어 버린다고!

[지금부터! 자네의! 전반적인! 신체 능력을! 테스트! 해! 볼걸세!]

라쿤 박사님은 하는 김에 할 수 있는 테스트는 전부 해 보자고 제안 하셨고, 나는 그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일단 나도 궁금하기도 했고,내 돈 내고 하는 테스트도 아닌데 내가 마다 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낸 세금이 극소량 포함 되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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