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듀라한이 되어버렸다-72화 (72/352)

〈 72화 〉 66.안은 생각보다 깨끗한데?(2)

* * *

“왜 이런 오밤중에 취재를 하러 가는 걸까...”

­ㄹㅇㅋㅋ

­아 참 기자정신이라고~

어두운 밤길을 헤치며 나아간 자동차가 커다란 철제 문 앞에 멈춘다. 기자는 캠코더를 들고 차에서 나와, 쪽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시작부터 불법침입이라니, 역시 동서고금 기레기끼리는 통하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저널리즘 좋아하네, 이거 불법침입이야! 법의 철퇴를 맞고 싶지않으면 빨리 차타고 집에 돌아가서 해물파전에 막걸리 한잔 붓고 X플릭스나 보라고! 아직 안 늦었으니까 빨리 다시 넘어가서 차타고 돌아가란 말이야!”

­해물파전 ㅅㅂㅋㅋㅋㅋㅋ

­취향 ㅈㄴ 구수하네 ㅋㅋㅋㅋ

니들이 해물파전 맛을 알아? 양파에 당근에 남은 야채들 다 썰어서 쓰까넣고 오징어 한 마리 시장에서 사와서 송송송 썰어서 부침개 가루 넣고 잘 섞어서 프라이팬에 해바라기유 두르고 바삭바삭하게 구우면 어? 술이 술술 넘어간다니까?

무슨 맛집이라고 가게 가면 파전 하나에 만원씩 하는 곳이랑은 다르게 말이야!

“이 멍청한 기레기놈...”

­시작부터 욕을 얼마나 먹는 거야 ㅋㅋㅋㅋ

­ㄹㅇ 정신병원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범죄 현장을 고발하기 위해 온 참기자인데 기레기 취급 받는 거 나만 불편함?

­언냐 나만 불편해?

“근데 이 정신병원 왜 이렇게 넒어? 정문으로 가면 되나?”

w키를 머리카락으로 쭉 눌러 앞으로 걷는다. 경비실로 추정되는 건물을 지나 들어서니 거대하다 못해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건물이 조명을 받아 을씨년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도대체 호러게임에서 나오는 병원은 왜 이렇게 큰걸까. 아무리 봐도 대충 커다란 건물 갖다놓고 정신병원이라고 우기는 느낌이야.

“여기 어떻게 들어가? 여보세요! 똑똑똑! 제가 밤중에 길을 잃고 헤메다 찾아왔는데 비만 좀 피하게 해주시면 안될까요?”

­똑똑똑을 입으로 말하네 ㅋㅋㅋㅋ

­커엽네 ㅋㅋㅋㅋ

문열어! 문열어! 펜은 칼보다 강하다! 펜으로 눈깔을 찌르면 아파 뒤지겠지! 다 덤벼! 아 덤벼 이 새끼들아! 내가 니들이 무서워서 그런건 아니고! 이대로 문만 두드리다 돌아가면 안 될까? 잠은 차에서도 잘 수 있잖아. 그러니까 차로 돌아가서 일단 여길 뜨고 보는게 어떨까?

­거기 아님 ㅋㅋㅋㅋㅋ

­시작부터 험난하다 ㅋㅋㅋㅋㅋ

“아니 문이 멀쩡히 있는데 왜 문으로 못 들어가?”

호러게임답게 시작부터 길을 주옥같이 꼬아놓은 모양이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게 길 꼬아놓는건데. 플레이타임 늘리려고 수작질을 부리는 것만큼 짜증나는게 없다고. 게임을 만들려면 시공처럼 명쾌하고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운영이 필요한 정교한 맵을 만들어! 물론 X누비스 사원이랑 X랙하트 항만은 빼고!

­옆에 샛길로 들어가라고~잠입취재 하러 온 기레기가 말이 많다 ㅋㅋㅋㅋㅋ 아 몰래 들어가라고 ㅋㅋㅋㅋ

샛길? 문에서 물러난 나는 주변을 수색하다가 왼쪽 철문 아래에 자그마한 틈새를 발견했다. 기어서 틈새를 지나가니 ‘여기로 올라가시오’느낌이 확 드는 외벽 철골 구조물이 눈에 들어왔다. 내 게임경력 20년의 경험에 의하면 여기로 어찌어찌 올라가서 들어가는 전개로군.

구조물을 기어올라 창문 없는 창을 넘어 건물 안에 들어섰다. 분위기가 참...어둡네. 전등이 깜빡깜빡하는게 음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기레기는 양심 뿐만 아니라 겁도 팔아먹었는지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복도를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다.

“와, 생각보다 안이 더러운데?”

­ㄹㅇㅋㅋ

오, 자판기다. 자판기에서 음료수 뽑아먹을 수 있나? 빛이 들어오니까 작동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아쉽게도 상호작용은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자판기 주변을 둘러보니, 환풍기 뚜껑이 매달려 있는게 보였다. 여기로 가라는 거지?

환풍기를 기어서 나오니 밝은 복도가 나왔다. 일단 길은 일직선에 가까운 모양인지, 왼쪽은 막혀있어서 오른쪽으로 걷다 보이는 문을 열고 슬쩍 들어갔다. 아무것도 안보이네, 캠코더 키면 되는거지?

캠코더를 키고 야간모드로 전환하니 초록색으로 화면이 빛나기 시작했다. 오, 이거 군대에서 쓴 야시경이랑 비슷한 느낌인데.

“와, 이거 야시경으로 보는 느낌이네.”

­야시경????

­눈나가 야시경을 어케 알음?

“아 야시경 알 수도 있지~영화 보면 자주 나오잖아.”

적당히 말을 주고받으면서 조심스럽게 걷는다. 너무 어두우니까 어째 오싹한데. 보통 이런데서 뭐가 튀어나오지 않나...? 어두운 방을 좀 걸었을까, 꼬챙이에 꿰뚫려 신음하는 대머리가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뭐라 씨부린다. 대충 여긴 정말 위험하니 빨리 도망치라는 내용이었다. 대머리 아저씨는 자기 할말은 내뱉고는 죽어버렸다.

“근데 변종이 뭐야? 위험하니까 나가라고? 죽기 전에 총이라도 줘!”

특수부대원 같이 입어놓고 권총도 없어? 하다못해 나이프라도 주면 안 될까? 아쉽게도 근처에 주울만한 게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길을 따라 밖으로 나오니 또 밝은 복도다. 모든 곳이 이렇게 밝으면 얼마나 좋아.

복도를 조심스럽게 지나가니 멀리서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인영이 보였다. 엄청 크네. 저게 나를 쫒아오는 괴물인가? 지금 바로 마주치는 건 아닌가 보네. 모서리를 지나 틈새가 보인다. 아까처럼 지나가면 되는 모양이다.

나는 건물에 막 들어와 복도를 지났을 때처럼 서랍과 선반의 틈새 앞에서 상호작용을 눌렀다. 아직까지는 쉽...

갑작스레 시야가 급격하기 뒤집힌다. 순식간에 아까 보았던 커다란 인영과 눈이 마주치자 나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못생겼어! 그리고 대머리야! 그리고 옷 좀 입어!

“야 이 시발! 안돼! 알몸 돼지한테 죽고 싶지 않아!”

던지지마! 그냥 내보내 달라고! 던질꺼면 문 밖으로 던져줘! 어차피 주인공이니까 높은데서 떨어지는 정도로는 죽지도 않잖아!

­아 ㅋㅋㅋㅋㅋ

­아까부터 말넘심 ㅋㅋㅋㅋ

화면이 깜빡인다. 화면이 깜빡이면서 나타난 남자는 역시 대머리였다. 이곳에 들어오려면 대머리가 되어야 하는 걸까. 어쩌면 1인칭이라 모를 뿐이지 주인공도 대머리일지도 모른다. 알아들을 수 없는 헛소리를 하고 남자가 사라지니 다시 주인공을 조작할 수 있었다. 영어는 싫어...자막도 싫어...눈보라사를 본받아서 대사를 더빙해달라 이 말이야...

“왜 머리숱이 있는 사람이 없어...? 혹시 여긴 대머리만 오는 탈모인 수용소야?”

­탈모인 수용솤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탈모인들은 이 일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듀라, 탈모인들을 비하한 것으로 밝혀져

“아니 내가 언제 비하했다고 그러세요. 그냥 죄다 머리가 맨들맨들해서 만져보고 싶게 생겼으니까 그렇지...”

­듀라한테 만져지면 탈모인들도 용서할 듯

­ㅇㅈ

“근데 이거 생각보다는 무섭지 않네요. 좀 더 진행하면 무서운 장면 나, 나오나요?”

­허세 부리는거 봐라ㅋㅋㅋ

­목소리 떨리죠? 떨리죠? 당장이라도 끄고 싶은데 미션 걸려서 못 끄겠죠?

이 나쁜 새끼들아! 나를 놀리는게 그렇게 재밌냐? 난 무서워 죽겠다고! 나는 내 머리를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응애...응애...응애 나 아기 듀라한...나가게 해조....

대머리들이 나 괴롭혀...응애...하지만 자본주의의 노예이자 사이버 광대인 나에게 게임을 끌 권리 따위는 없었다. 나는 솟구쳐오르는 공포와 역함을 참아 넘기며, 꾸역꾸역 게임을 진행했다.

그나마 어두운 공간을 헤치며 스위치를 누르고 다니는 구간이 지나고, 다시 밝은 공간으로 나와 감옥 비스무리한 공간을 올 때쯤에는 공포심이 조금이나마 희석되어 있었다. 이제는 게임에 익숙해져서 갑자기 튀어나오지만 않는다면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대머리들한테 몇 번 죽어보니까 이젠 싫어도 몸이 기억하더라. 저놈이 날 쫒아오면 캐비넷에 숨고, 침대밑에 숨고, 일단 죽어라 달리고, 이 구간은 이제 적당히 쫒아오는 대머리를 피해 다니며 진행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니 나는 캠코더로 본다 치고, 저놈은 빛도 없는데서 어떻게 날 보고 찾는거야?”

­아 눈이 안보여도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다고 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

“취재고 뭐고 나가고 싶다...”

­아 취재 아직 안끝났다고 ㅋㅋㅋㅋ

하지만 엔딩을 보기 전까지 나가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켠왕한다고 말하지 말걸...하지만 이미 한 번 말한 것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법. 나는 고추를 덜렁덜렁거리며 돌아다니는 쌍둥이를 피해 감옥 내부를 탐사하기 시작했다

감옥에 갇혀있는 환자도 대머리, 쫒아오는 추적자도 대머리, 시체도 대머리. 수많은 대머리들을 지나치며 하수구로 나오는데 성공했다. 살았어! 살았다고! 난 살아있어 닝기미시부랄 것들아!

“이거 얼마나 진행한 거에요?”

이제 3시간 지났는데, 꽤 진행한거 아닌가? 원래 호러게임은 대체로 플레이 타임이 길지 않았던걸로 기억하는데...호러게임이라곤 X이오하자드 시리즈 말곤 해본적이 없으니까 다른 게임은 잘 모르겠지만 보통 10시간 안팎이면 끝나지 않나?

­대충 20%?

­이제 초반부 끝자락임

에반데...

어떻게든 차분함을 잃지 않은 내 머리카락과는 별개로 내 몸은 머리를 으스러져라 껴안고 덜덜 떨고 있었다. 돼지새끼야 넌 왜하수구에있니제발이쪽보지말고꺼져오지마오지마오지마오지마오지말란말이다!

“돼지에 대머리면 성격이라도 착하든가! 오지마아아아아아아아!”

­찐텐으로 비명 지르는데?

­ㄹㅇ 목 나갈 듯

길 어디야? 길 어디냐고? 돼지에게 쫒겨다니며 하수도를 헤메고 다녔지만, 길이 어딘지를 모르겠다. 결국 막다른 길에 몰린 나는 돼지에게 붙잡혀 머리와 몸이 분리되고 말았다. 잠깐, 세이브는 어디부터지? 설마 하수구 전 스테이지 부터는 아니지?

다행히 하수구 시작지점부터 게임이 재개되었다. 정말 다행이야,..

이번에는 대략적으로 가는 길도 알았고, 돼지가 튀어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덜 무서워졌다. 나는 돼지를 침착하게 피해다니며 길을 찾아다녔다. 내가 하수구를 탈출하는 데에는 1시간이란 시간이 더 필요했다.

나, 이거 오늘안에 깰 수는 있을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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