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 IF. 평범한 세상의 듀라한(4)
* * *
인터넷 커뮤니티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혜성 같은 신인의 출현에 뜨겁게 달아올랐다.
[사진 미쳤냐고 ㅜㅑ]
[말도 안 되네 진짜...저게 어떻게 사람 얼굴임?]
[듀라 그녀는 신인가!듀라 그녀는 신인가!듀라 그녀는 신인가!듀라 그녀는 신인가!듀라 그녀는 신인가!듀라 그녀는 신인가!듀라 그녀는 신인가!듀라 그녀는 신인가!듀라 그녀는 신인가!듀라 그녀는 신인가!듀라 그녀는 신인가!듀라 그녀는 신인가!듀라 그녀는 신인가!듀라 그녀는 신인가!듀라 그녀는 신인가!듀라 그녀는 신인가!듀라 그녀는 신인가!듀라 그녀는 신인가!듀라 그녀는 신인가!듀라 그녀는 신인가!듀라 그녀는 신인가!듀라 그녀는 신인가!듀라 그녀는 신인가!]
[딱보니까 성형이네, 저게 어떻게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얼굴임?]
[ㅈㄹㄴ. 저렇게 성형 가능했으면 수술한번에 억 단위로 들어가도 줄을 서겠다 ㅋㅋㅋㅋ]
[아니 그것보다 머리랑 몸이 분리되는 게 실화냐고 ㅋㅋㅋ 여신님 존안이 너무 컬쳐쇼크라 그렇지 이쪽도 존나 충격적인데 ㅋㅋㅋㅋ]
[방송 틀어줘 방송 틀어줘 방송 틀어줘 방송 틀어줘 방송 틀어줘 방송 틀어줘 방송 틀어줘 방송 틀어줘 방송 틀어줘 방송 틀어줘 방송 틀어줘 방송 틀어줘 방송 틀어줘 방송 틀어줘]
[저게 그 몇 년 전에 뉴스에 나왔던 듀라한 변이자 아님? 그땐 얼굴 가리고 다녀서 몰랐는데 ㄹㅇ 외모 미쳤는데;;]
[듀라한인데 여신? 이건 치트키지ㅋㅋㅋㅋ 지구 새끼 밸런스 좆같이 맞추네ㅋㅋㅋㅋ 핵유저 밴 안하냐고ㅋㅋㅋㅋ]
“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나한테 그 끔찍한 글을 보여주지 마...”
내가 너랑 같이 주말에 햄버거 가게 안 갔다고 이러는 거야? 네가 하루 만에 얼굴 다팔려서 모든 커뮤니티에 떠돌아다니는 기분을 알아? 덕분에 마스크 위에 선글라스까지 써야 겨우 출근할 수 있었다고.
마스크라도 쓰고 있을걸.
“귀찮아.”
“그래도 시작부터 떡상한 거니까 좋은 일이 아닐까? 10%는 네 주머니에 들어간다며?”
그건 맞는데. 내가 원하는건 적당히 큰 방송에서 여유롭게 진행하면서 용돈을 타 가는 정도였다. 나는 신분이 너무 쉽게 노출될 수 밖에 없는 위치였기 때문에, 나는 최소한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고 방송할 생각이었다.
윤기가 흐르는 백발, 황금빛 눈동자, 이 세상 것으로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외모,
듀라한.
나를 지칭하는 키워드들은 하나하나가 공통점을 가진 사람을 찾는 게 불가능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허리까지 오는 긴 백발을 자랑하는 여성이 누구? 나!
보석같이 빛나는 아름다운 황금빛 눈동자를 가진 게 누구? 나!
듀라한 누구? 나!
...이쯤 되면 나를 못 찾는 쪽이 멍청이가 아닌가 의심해야 할 지경이었다.
그 적은 변이자들 중에서도 유일한 듀라한인 내가 지금까지 화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내가 집 밖으로 나가기 싫어하는 집순이에 듀라한이라는 걸 티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니까.
그런데 방송에서 실수로 듀라한 인 것을 들켜버렸다? 이젠 조용한 생활은 안녕이지. 공무원이라 직장까지 밀고 들어오는 미친놈들은 없겠지만, 어쨌든 귀찮아 질게 눈에 보였다. 한동안은 정말 연예인들이 변장하듯이 변장을 해야 되나? 머리도 짧게 만들어서 가발도 쓰고...이 더운 여름날에 가발 쓰면 쪄죽을 것 같은데.
“유진씨, 박사님이 부르셔~”
“아 네, 갈게요!”
아 잔소리 듣기 싫은데. 나는 휴게실을 나와 라쿤 박사님의 사무실로 향했다. 휴게실과는 꽤 먼 곳에 떨어져 있어서 5분은 걸어야 했다.
이제 2시간 뒤면 방송해야 하는데 잔소리는 일찍 끝나겠지? 본인이 시킨 거니까 이번에는 잔소리할 명분도 거의 없었다. 아 뭐라 하면 박사님이 시켜서 생긴 일인데 으쯔라구요~한번 해주면 되지 않을까.
이런저런 잡생각을 한 사이에 라쿤 박사님의 사무실에 도착한 나는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박사님, 저 유진인데 부르셔서 왔습니다~”
“들어오게!”
문을 열고 들어오니, 책상위에 서서 오른쪽 앞다리를 위쪽으로 쭉 뻗은 라쿤 박사님이 있었다.
...뭐야?
“...뭐하세요?”
“음! 스트레칭 중이었네!”
아무리 봐도 포즈가 너굴맨 포즈인데요. 혹시 동족을 배신하고 너구리가 되려고 하시는 겁니까? 그래봐야 같은 개과면서!
“자네! 어제! 일은! 잘! 들었네! 훌륭해!”
“네?”
“역시! 자네야! 난 믿고 있었네!”
뭘 믿어요? 이 라쿤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나는 라쿤 박사의 흡족해 하는 분위기를 따라가지 못하고 멍하니 묘하게 킹받는 라쿤 박사의 면상을 쳐다보았다.
“실수를! 가장하고!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서! 화제가! 될! 줄이야! 이번에는! 성공하겠군!”
“성공은 무슨 성공이요?”
“프로젝트! 말일세!”
알아듣게 설명을 좀 해 줘! 지 혼자 아는 이야기 하지 말고! 진짜 능지가 라쿤이 되버렸나!
“아니 좀 설명을 해주세요! 대화를 따라갈 수가 없거든요?”
“따라갈게! 뭐 있나! 자네 방송이! 흥하면! 그게 곧! 프로젝트! 성공일세!”
“그게 도대체 뭔데요!”
“그거야! 자네도! 알다시피! 관심을! 끄는 걸세! 자네가 끈! 관심이! 우리의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될 걸세! 자네는! 방송에서! 사람을! 끌어 모으게! 그리고! 변이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타파하는 걸세! 변이자! 대책관리부의! 안 좋은! 누명도! 없애버리는! 걸세!”
아, 나는 그런 깊은 뜻이 있는 줄도 모르고...는 개뿔, 도대체 무슨 개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이 개과동물아. 아 쌍욕 마렵다. 저게 내 상사만 아니었으면 진짜 라쿤 고기를 맛보는 건데. 나는 마음속에 참을 인자를 새기며, 혼자 희희낙락하는 라쿤 박사에게 내 머리통을 던졌다.
내 머리는 라쿤 박사의 옆을 지나 벽에 파인 자국을 만들고 나서야 중력의 법칙을 따라 선반위에 떨어졌다. 후, 빗나갔네.
“박사님! 혹시 듀라한 머리에 부딪히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계십니까?”
“모, 모르네!”
“알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하십쇼.”
“알았네!”
나는 흡족한 마음으로 머리카락을 뻗어 몸통에 들러붙었다. 어? 처신 잘하라고. 어? 라쿤 박사님은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조용히 올려다보았다. 아 제가 진짜대로 때리겠어요? 저는 비.폭.력.주.의.자에요. BE말고 비!
“그래서, 정리하면 제가 방송을 해서 변이자들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는 콘텐츠를 진행하라는 거 맞죠?”
“그렇다네!”
처음부터 그렇게 말을 하시던가. 그제는 까먹더니, 오늘은 횡설수설하고. 이러니까 프로젝트가 제대로 성공한 적이 없는 거다. 내가 아는 박사들은 다 논리정연하게 말을 잘 하는 줄 알았는데 라쿤 박사님은 맨날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고 있으니 자괴감이 느껴질 정도라고. 라쿤한테 명령당하는 인간들이 얼마나 슬프겠어...
정말 개 같은 상사랑 같이 일해야 한다는 게 이렇게 고달픈 일이다.
“그럼 저는 방송 준비하러 가볼게요.”
“알겠네! 잘 하고 오게!”
“철수야, 이제 이거 버튼만 누르면 방송 시작하는 거 맞지?”
“네. 그런데 유진 선배님.”
“왜?”
“그, 괜찮으십니까?”
“뭐가?”
“어제 일 말입니다...”
내가 안 괜찮으면 어쩔 건데. 대신 해주게? 어제 일은 어제 일이고, 오늘은 오늘일이나 해야지. 어차피 벌어진 일이었고, 수습만 잘하면 악재가 아닌 호재가 될 수 있는 일이었다. 폰으로 시간을 확인해보니 5분 남았다. 일단 방송준비는 끝내놓았으니 이제 방송을 키기만 하면 된다.
나는 마우스 커서를 방송시작 버튼에 갖다 대었다가 다시 떨어트렸다. 4년 전에 공무원 시험을 봤을 때 보다 더 떨린다. 이제 곧 얼마나 될지 모르는 인간들 앞에서 재롱을 떨어야 된다 이거지?
첫 멘트는 뭐로 하지? 공무원 스타일로 깔끔하게 가? 근데 내가 공무원인거 드러내도 되는 건가? 겸직을 허락받았다곤 하지만, 공무원이라고 하면 왠지 이상한 걸로 클레임 거는 사람 많을 것 같은데.
“철수야, 채팅창 확인 잘하고. 채팅창 더럽히는 놈 있으면 쳐내.”
“기준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욕하는 놈들은 일단 전부 걸러내.”
하나, 둘, 셋. 나는 마우스를 눌렀다.
“...조용한데?”
“조금 더 기다리면 되지 않을까요?”
문 열렸다! 애들아 와라!
뚝배기 분리쇼 가즈아! 뚝배기 분리쇼 가즈아! 뚝배기 분리쇼 가즈아! 뚝배기 분리쇼 가즈아! 뚝배기 분리쇼 가즈아! 뚝배기 분리쇼 가즈아! 뚝배기 분리쇼 가즈아!
아 왜 마스크 쓰고 있냐고 ㅋㅋㅋ 벗으라고 ㅋㅋㅋ
왜 정장입고 있음? 이거 사죄방송임?
첫 방송을 사죄로 시작하는 방송 ㅋㅋㅋㅋ
듀라한 눈나 얼굴 보여조 헤으응
왜긴, 일하는 중이니까 그러지 이 할 일 없는 인간들아. 지금 오후 5시인데 지금 일하는 시간 아니야?
헤으응은 또 뭐야?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역겨움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놈 쳐내. 철수는 재빠르게 헤으응을 외친 시청자를 쫒아냈다.
“...안녕하세요.”
눈살 찌푸리는 모습 왤케왤케임
듀하! 듀라 하이라는 뜻
얼굴 보여줘 미칠 것 같애
목소리 ㄷㄷ
여기가 여신님이 방송한다는 곳인가요?
인사 한 번에 채팅이 폭발한다. 이거 어제랑 똑같이 방송 폭파당하는 게 아닐까.
“자 다들 진정하시고요, 오늘은 방송에 앞서 자기소개를 하러 왔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운을 뗀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자기소개만 하고 바로 꺼버릴까. 사실 이래저래 딱히 생각나는 콘텐츠 같은 것도 없어서...
여신님은 여신님 아님?
근데 저 목에 걸린 거 공무원 ID카드 아님?
ㄹㅇ이네. 공무원이 방송해도 됨?
시작부터 논란생김? ㅋㅋㅋㅋ
“...방송해도 됩니다. 애초에 제 상관이 시킨거라서요.”
뿌슝빠슝, 위에서 시켜서 방송을 하는 공무원이 있다?
아 근데 저 정도 외모면 공무원이 아니라 스트리머를 했어야 하는 게 맞는거 아니냐?
ㄹㅇㅋㅋ 스트리머였으면 지금쯤 아파트 짓고도 남았음 ㅋㅋㅋ
ㄹㅇ 코 위밖에 안 보이는데도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외모는 처음이다...
“사람 엄청 많네요. 어디서 좌표 찍고 오셨어요?”
지금 좌표 안 찍힌 사이트가 더 적을 듯. 지금 한국에 있는 사이트들 대부분에 다 링크 돌렸을 거임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시청자 숫자가 4000명이나 되는 건가. 이번에는 철수가 무슨 세팅이라도 해놓은 건지, 방송이 멀쩡하게 돌아갔다.
“이렇게 많이 와도 딱히 할 게 없는데...”
그냥 얼굴만 보여줘도 행복사 ㄱ다
근데 진짜 머리 분리되나여? 보여주면 안 돼요?
어차피 들킨 거 보여주는 것 정도는 상관이 없겠지. 나는 양손으로 머리를 붙잡고 책상위에 내려놓았다. 캠을 내 머리 쪽으로 조정한 뒤, 마스크를 벗기고 몸은 다소곳이 앉는다. 오랜 공무원 생활로 다져진 자세였다.
와 진짜네 ㅋㅋㅋ
직접 잡아서 내려놓는 거 못 봤으면 CG인줄 알았겠네. ㄷ
근데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ㄹㅇ...아까 보니까 목 단면도 깨끗하던데,..
“저도 몰라요. 과학자들도 못 밝혀내서...그냥 무슨무슨 법칙으로 삼키기만 하면 워프해서 위장에 안착한다는 모양이던데요...”
물리법칙 ㅇㄷ?
무슨무슨 법칙 뭔데 ㅋㅋㅋㅋㅋ
변이자들이 특이한 능력 가진 애들 있는 건 알지만 이건 ㄹㅇ 과학을 부정하는 수준인데;;
포르피린도 눈으로 최면 거니까 듀라한도 있을 법 하지 않음?
지금까지 나온 변이자들 중에 아예 생물학적 구조를 무시한 경우는 없었자너
머리 분리되면 좋은 점 있나요?
내 몸에 관심이 많구만. 하긴 나도 듀라한이 나타나면 호기심에 이것저것 물어볼 것 같다. 정말 보기 힘든, 희귀한 존재니까.
“씻을 때 편하네요.”
ㅜㅑ...
야한 생각 멈춰!
개판이군. 슬로우 모드인지 뭔지를 누르고 채팅창을 보니 혼돈의 도가니라는 말이 이렇게 어울릴 수가 없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채팅을 치는 건지 모르겠네. 이 시간에 할 짓 없는 사람들이 4000명...이 나라의 미래가 어둡다!
“사실 이번에는 인사만 하려고 켰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놀랐네요.”
사람 존나 많음 ㅋㅋㅋㅋ 이게 방송 2일차 스트리머? 가슴이 웅장해진다...
ㄹㅇ 이정도면 공무원 그만두고 스트리머로 먹고 살아도 될 수준인데
아무리 노잼이라도 시청자들이 먹여 살려 줄 거임 ㅋㅋㅋㅋㅋ
“전 공무원이 좋은데요...안정적이지, 연금도 나오지, 이것저것 혜택도 많지. 방송인은 사고하나 치면 나락가던데.”
고건 맞지
근데 정말 인사만 하고 갈 거임?
“네. 이거 테스트 방송이라 그냥 갈거에요. 저도 퇴근해야죠.”
시청자에게 휘둘리느니 내가 방을 터트리겠다! 이런 건 기선제압이 중요하다고 배웠다고! 그러니까 일단 기강부터 잡아야지!
아 퇴근은 킹쩔 수 없지
가지마가지마가지마가지마가지마가지마가지마가지마가지마가지마가지마가지마가지마가지마가지마가지마가지마가지마
“그럼 내일 봅시다. 듀바~”
나는 망설임 없이 방송을 꺼버렸다. 시계를 보니 30분이 지나 있었다.
“너무 일찍 끝낸 거 아닙니까?”
“아니야, 잘 생각해봐. 내가 이렇게 빨리 끝내고 다음에 방송을 켜면 붙잡으려고 뭐든 하지 않겠어? 그리고 시청자들이 할 수 있는건 뭐다?”
도네 빳다죠 쉬바!
그리고 나 퇴근 할 거야. 진짜루. 딴건 참아도 퇴근 시간 늦어지는 건 못 참는다. 칼퇴하지 못하는 공무원만큼 서러운 건 없으니까.
나는 집에 갈 끄니까~
“너도 집에 갈 준비나 해.”
나는 망설임 없이 짐을 챙기고 컴퓨터를 꺼버렸다.
오늘은 치맥이나 먹으면서 영화라도 볼까...별로 한건 없는데 정신이 피폐해졌다. 이런 날엔 치킨 뜯으면서 몸도 마음도 힐링해야지...
이때의 나는 몰랐던 것이다. 내 방종이 가져올 여파를.
그리고 내 다사다난한 방송 라이프가 시작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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