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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69화 (69/352)

〈 69화 〉 IF.평범한 세상의 듀라한(3)

* * *

“본체가 두 개나 필요해? 모니터야 여러 개 필요한 거는 알겠는데.”

“그렇다고 하던데요…….녹화용이랑 방송용 두 개가 필요하다고 하네요.”

라군 박사님이 내준 방을 청소하고, 주문한 방송장비를 설치하며 나와 철수는 업무시간을 불태웠다. 그래도 이게 서류 작업보다는 백 배는 낫다. 되도 않는 어처구니없는 민원이랑 씨름하느니 이게 훨씬 생산적이지 않을까.

…….인터넷 방송이 생산적인 거와는 거리가 멀지만. 나도 인터넷 방송을 보기는 하지만 그것도 가끔 X튜브에 올라온 편집 본을 볼 뿐이고, 생방송을 보지는 않아서 분위기가 어떤지는 잘 모르겠네. 일단 인터넷에서 좀 찾아볼까.

“유진 선배님. 저기…….”

“쉿. 지금 일하는가 안 보여?”

“…….폰으로 영상 찾아보는 게 언제부터 일하는 거였습니까?”

어이없어하는 철수를 무시하고, 적당히 시청자 수 상위권에 랭크된 방송을 아무거나 켰다. 거의 국민 게임이나 다름없는 레오리하는 방송인 모양이었다. 쉴 새 없이 입을 나불대는 남자 방송인들과, 정신없이 올라가는 채팅창을 보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시청자 수 300명인데 이 정도라고.?

[아 까비, 저게 안 죽네!]

[아 행님들 기다려 보세요! 이거 내가 캐리 할 수 있다니까!]

레오리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일단 지고 있다는 건 알겠다. 내 기나긴 시공의 폭풍 경력에 의하면 이건 망한 놈이 자기가 캐리할 수 있다고 발악하는 거지?

[아 진짜 좆같은 저 도구새끼가 킬 존나 처먹네! 도구 주제에 3킬이나 먹어? 아 진짜, 이래서 도구들은 기강 한번 잡아줘야 한다니까? 어디 원딜 킬을 뻇어 먹어?]

“도구가 뭐야?”

철수는 이 게임 했던 것 같은데. 쉬는 시간에 폰으로 레오리 영상을 보고 있던 걸 본 기억이 있었다. 철수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탐탁지 않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서포터 비하용어입니다. 서포터를 욕하는 건데, 요즘 좀 심하더라구요.”

뭐? 팀게임에서 서포터를 욕하는 게임이 있다고? 누가 분식집 아니랄까 봐 분식집 티 내는 거 봐라? 어? 라떼는 말이야, 천민 딜러들이 서포터들한테 역정내면 ‘죄송하지만 딜러님 나가주세요’ 소리 듣는 게 보통이었다 이거야.

엣헴 하고 느지막이 튀어나와서 파티 구합니다! 한번 채팅으로 치면 수많은 공대장들의 러브콜을 받는 게 서포터라고... 요즘 애들은 서포터 귀한 줄 몰라요. 파티에 딜러만 있어 봐야 정신을 차리지!

나는 분식점의 수준을 알 수 있는 방송을 끄며 다시 인기 방송 리스트로 돌아가 스크롤을 하염없이 내렸다. 뭔가 괜찮은 방송이 없나? 되도록 뭔가 배울 만한게 있었으면 좋겠는데.

토끼 귀가 달린 후드를 입은, 어깨까지 오는 검은빛 단발머리의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자애였다. 작은 화면으로 보기에도 깡마른 것 같은 체구와 어쩐지 안쓰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얼굴, 그리고 이따금 화면에 나타나는 고양이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방송이었다.

뭔가 흡입력이 있다고 해야 되나.

[감사합니다! 멍멍!]

“...이 방송은 또 뭐야.”

리액션이 멍멍? 아니 저런 걸 어린애한테 시킨다고? 아니 자발적으로 하는 건가? 그건 둘째치고 재 부모님은 애가 저러는 거 알고 있을까? 인터넷 방송의 실태에 나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인터넷 방송? 윽, 역겨워...

“아, 최근에 유명해진 스트리머네요. 최근에 가족 관련으로 일이 터져서 말이 많았었죠...꽤 큰 사회적 이슈였는데 모르셨어요?”

“알잖아, 나 뉴스 잘 안보는 거.”

일하기도 바쁜데 뉴스 볼 시간이 어딨어. 변이자 관련 기사 보는 것도 피곤해 죽겠는데.

“부모가 죽고 친척집에 맡겨졌는데 친척들이 유산을 가로채고 학대했다나...친척들이 아주 쓰레기였죠.”

그건 좀 심한데. 막장드라마 여 주인공 급으로 고생 많이 한 애구나. 어쩐지 안쓰러워 보이는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그래서 그런 거였나? 사정을 들으니까 애가 너무 안쓰럽게 느껴졌다. 웬지 모를 미안함에 철수에게서 도네이션 하는 법을 배워 5만원짜리 도네를 쏴준 뒤, 다른 방송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인기 있는 방송인들 방송위주로 쓱 훎어 보니, 하나 같이 스피커가 비는 일이 없다. 끈임 없이 쏟아 내는 멘트와 리액션, X튜브각을 재기 위한 설계까지, 괜히 인터넷 방송업계에서 살아남았는지 알 수 있는 노련함이 엿보였다.

내가 하는 방송에 사람이 얼마나 올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방송 내내 스피커를 채울 자신이 없다. 내가 그렇게 수다를 잘 떠는 성격도 아니고. 나 혼자 모니터 보면서 몇 시간 동안 떠드는 건 좀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음주방송을 할 수도 없고. 나는 부가수입을 위해 방송하는 걸 승낙한 거지 감봉당하기 위해 방송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은 꺼려졌다. 실수로 사고라도 쳐버리면 미안하잖아.

“그런데 방송은 어떤 걸 하는 겁니까?”

“나도 몰라. 아무거나 하라던데?”

“이번에도 날림 기획이네요.”

“언젠 안 그랬냐.”

그래도 까라면 까야지. 저래도 우리 상관이란다.

어떤 걸 할까 고민하던 끝에 내가 고른 건 결국 게임이었다. X팀에 안하고 남겨둔 게임들이 많기도 하고, 게임하는게 비교적 컨텐츠를 날로먹기 좋아 보이기도 하고, 스피커가 다소 비어도 둘러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근데 정말 해도 되나? 게임방송 한다고 위쪽에 불러서 까대는 거 아니겠지? 그 부분에 관해서는 라쿤 박사님이 막아주리라는 부질없는 희망을 가져야 했다. 문제 생기면 라쿤 박사님한테 대충 떠넘기면 되겠지. 실제로 이 엉망진창 기획을 나한테 떠넘겼으니까.

“설치 끝난 거지?”

“네. 한번 켜보겠습니다.”

나는 벽에 기대어 서서 철수가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뭐 하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내가 컴퓨터로 할 줄 아는 건 아이콘 클릭하는 거랑, 손가락 놀려서 타자 치는 거랑, 전원 누르는 것밖에 없거든. 그거랑 오피스 프로그램만 쓸줄 알면 됐지.

“끝났습니다. 이제 방송을 켜서 테스트만 해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오, 생각보다 빠르네.”

“요즘은 좋은 무료 소프트웨어도 많고, 방송하는 사람도 많다보니 가이드영상도 많아서 쉽습니다.”

“세팅이 끝났는데 한번 테스트 해 보시겠습니까?”

철수는 컴퓨터를 이리저리 만지더니 나에게 자리를 비켜 주며 제안 했다. 어차피 내일부터 방송해야 하니까 테스트 해 볼까. 나는 자리에 앉아 왼쪽에 비치된 방송용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오, 화질 좋네.

비싼 캠을 산 덕인지 내 얼굴이 아주 깔끔하게 나왔다. 전자장비는 비싸면 비쌀수록 좋다더니, 틀린 말이 아닌 모양이었다. 잘되는 것 같은데. 철수는 폰으로 내 방송을 켜고는 마이크 테스트해보자고 이야기했다. 나는 철수의 말대로 머리를 들어 마이크 앞으로 갔다대고는 입을 열었다.

“아, 아~”

“마이크를 끌어당기는 게 더 편하지 않습니까?”

“난 듀라한이라 그게 더 불편해.”

안 그래도 목 연결부에 땀이 조금씩 차기 시작한 참이었다. 나는 아예 책상에 머리를 내려놓았다. 이제 좀 살 것 같네. 평소에도 머리를 떼놓고 다니고 싶지만 이래저래 미관상 안 좋기도 하고, 민원이 들어온 적도 있어서 일할 때는 언제나 머리를 붙이고 있어야 했다.

이 좆같은 세상! 듀라한에게 머리 분리권을 보장하라! 대한민국 제 헌법 제1조에 내 권리가 명시되어 있을 텐데, 나는 고작 미관상의 이유로 머리를 떼어 놓지 못하는가! 듀라한은 머리를 들고 다니는 게 국룰이라고!

“문제없이 잘되는 것 같습니다.”

“수백만 원을 때려 박았는데 문제가 있으면 안 되지.”

라쿤박사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면 몰라, 이게 다 남는 예산을 영혼까지 긁어모아 만든 돈이다. 도대체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한 건지 그 머리를 반으로 쪼개 머릿속을 확인해 보고 싶지만, 아쉽게도 난 동물 애호가라서 그러지 못했다.

씁. 목마르네. 마실 거라도 사올까. 하지만 나가기가 귀찮았다. 나는 내가 나가는 대신 철수를 부려 먹기로 했다. 꼬우면 선배 하던가. 나에겐 선후배 관계라는 갑질에 최적화된 위치가 있었다. 직급도 내가 더 높고. 하지만 나는 아주 양심을 팔아먹은 것은 아니어서, 철수 몫까지 내 카드로 긁게 하곤 했다. 뭐 몇천원 더 나간다고 내가 굶고 다녀야 하는 것도 아니고.

“철수야, 윗층 카페 가서 마실 것 좀 사올래? 아이스 카페라떼랑 네가 마실 걸로 하나 사와. 간

식거리도 사도 돼.”

“아, 네. ”

나는 검지와 중지 사이에 카드를 낀 채로 손을 내밀었다. 철수는 카드를 받아들더니, 조용히 방을 나갔다.

철수가 기다리는 동안 방송이나 테스트 해 볼까. 나는 의자를 캠 밖으로 옮기고 그 위에 앉아 몸을 축 늘어트렸다. 아, 이제 좀 살 것 같네. 에어컨 까지 틀어 놓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여긴 인적도 드물어서 사람도 잘 안 오고.

합법적인 월급루팡은 좋은 문명이야! 하지만 지루하기는 했다. 나는 머리를 조금씩 머리카락으로 위치를 조정하며 캠에 내 머리가 전부 들어오는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가나다라마사아자차카타하!”

목소리 좋고! 장난삼아 눈을 깜빡거리니 화면 속의 나도 똑같이 깜빡거린다. 캠에 찍힌 내 모습을 보는 게 거울과는 또 다른 느낌이라, 묘한 재미가 있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방송하는 건가.

­ ㅜㅑ...여긴 뭐 하는 방송임?

­외모 실화냐? ㅈㅈ가 웅장해진다...

한 5분간을 얼굴 표정을 움직이며 놀고 있었을까, 돌연 비어 있던 채팅창에 채팅이 올라왔다. 아니, 이거 생방송 이었어? 어...뭐라고 해야 하지? 너무 당황스러워서 아무 생각도 떠오르질 않았다.

­소문 듣고 찾아왔습니다. 여기가 여신님이 방송하는 곳이라고 들어서 왔는데요.

­외모 무쳤네 ㅋㅋㅋㅋ 근데 왜 머리만 보여줌?

­아무것도 안하는데 얼굴만 봐도 힐링되네...

­아니 저게 진짜 사람 얼굴임? 와꾸 쩐다고 소문난 여자연예인들 데려다놔도 비비지도 못하겠네 ㅋㅋㅋㅋㅋ

어, 어, 어...뭐야?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이 들어오는 거야? 60, 70, 80. 90...세자릿수를 돌파한 시청자 수에 나는 멍하니 시청자 수가 올라가는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늘어나기 시작한 시청자는 1000명을 찍고서야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나? 방송은 어떻게 끄는 거지? 전부다 닫아버리면 되나? 아니 생각해 봐, 이건 기회일 수도 있어. 엉망진창이긴 하지만 기회는 기회였다. 뭔가 그럴듯한 말로 멘트를 날려야 하는데, 생각나는 게 정말 하나도 없었다.

이, 일단 인사라도 해야 하나?

안녕하세요! 어, 이름 그대로 써도 되나? 뭔가 괜찮은 닉네임 같은 거 없나?

듀라한이니까 그냥 듀라라고 할까? 그게 좋겠다.

“어...안녕하세요. 듀라입니다.”

­ㅎㅇㅎㅇ

­목소리 ㅜㅑ

­여기가 얼굴만 봐도 힐링된다는 그 맛집입니까

­성지순례 왔습니다

­근데 왜 머리밖에 없음? 몸은 왜 안 보여줌?

­처음이라 많이 헤매는 거 같은데 좀 기다려 보셈

폭발적으로 내려가는 채팅창을 보니 머리가 아프다. 근데 나 이거 방송 프로그램 조작하는 거 하나도 모르는데. 생각해 보니 나 지금 머리만 책상에 올려놓고 있는데, 이거 괜찮은 건가? 내가 듀라한이라는 게 비밀은 아니지만, 그다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건 아닐 텐데.

나는 급히 머리를 집어 목 위에 올려놓았다.

머리를 다시 올려놓은 나의 눈이 채팅창을 향했다.

컴퓨터가 렉이 걸릴 정도로 폭발하는 채팅창이 내 눈에 들어왔다.

“...A.”

정신을 차리고 보니 화면이 멈춰 있었다.

아, 방송 터졌구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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