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IF:평범한 세상의 듀라한(2)
* * *
“철수야, 우리 라쿤 박사님이 나보고 인터넷 방송을 하랜다.”
“인터넷 방송...말입니까?”
“엉.”
내가 TV방송에 나갈 리가 없잖아. 그건 라쿤 박사님의 몫이야. 다큐나 뉴스나 예능 같은 거에 나가라고 했으면 돈을 더 준대도 거절했을 거다. 다른 건 몰라도 나는 듀라한이라는 전 세계의 유일한 종족의 변이자라, 한번 틈을 보이면 기자들이 물밀 듯이 몰려올 가능성이 컸다.
내가 맨날 욕하면서도 여기에 붙어 있는 이유가 뭔데. 듀라한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거부감을 보여서 그렇다. 아무래도 같이 일하기엔 많이 섬뜩하다는 모양이란다. 그래서 내가 일치감치 마음 접고 공시생 생활한거지.
변이자대책관리부로 발령된 건 예상 못했지만!
“...라쿤 박사님이 꽤 괜찮은 프로젝트를 만드신 것 같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냐. 생판 일반인을 갑자기 얼굴마담으로 내세워서 인터넷 방송을 하라는데?”
“그...유진 선배님이라면 잘하실거라고 생각합니다.”
머뭇거리면서 위로하지 마라. 돈 10%는 가져가도 된다고 해서 덥석 물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까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골치 아픈 일거리가 하나 더 추가된 거라서 후회중이거든? 부러우면 너가 할래? 철수는 내 제안에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거부했다.
쯧. 소심하기는.
“그래도 업무는 좀 줄여주지 않을까요? 그, 그리고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
남아일언 중천금이라고, 너가 입 밖에 꺼냈으니 그 말 꼭 지키렴.
“그래? 그럼 너는 지금부터 방송 장비 알아보고, 한 300 이내로 괜찮은 것들로 추려봐. 장소랑 카메라맨은...은하는 출장갔었지? 언제 복귀하더라?”
“...오늘 저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연락해서 일 좀 도와달라고 말 좀 해줘.”
“네. 알겠습니다.”
그럼 나는 일단 밀린 업무부터 처리할까. 온갖 곳에서 날아온 민원과 새롭게 나타난 변이자들에 대한 선별작업이 내 키만큼이나 쌓여 있으니 빨리 처리해야 했다. 일단 이것만 받고 프로젝트 핑계로 일감을 다른 사람들에게 떠넘길 생각이었다.
합법적 월급루팡만큼 기분 전환에 최고인 게 없지. 공무원이 일 대충한다고 하지 마라. 공무원도 사람이야 사람! 나도 지옥 같은 업무에서 벗어나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면서 일할 권리가 있다고! 나도 월급루팡 할끄니까!
근데 뭘 방송하라는 거지?
생각해 보니 라쿤박사님께 들은 게 없었다. 으, 개털 냄새 나서 다시 들어가긴 싫은데. 그건 나중에 물어보고, 일단 내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변이자대책관리부 직원들에게 알리도록 하자. 그리고 내가 일거리를 짬때릴 거란 소식도.
“유진아,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이네?”
“아, 세연아. 뭐, 함법적으로 월급루팡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겼거든.”
세연이는 햄버거가 든 종이봉투한손에 든채로 서 있었다.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햄버거로 떼우는 모양이었다. 내 동기이자 친구인 세연이는 햄버거를 광적으로 사랑해서, 아침은 언제나 햄버거를 먹고, 점심은 어쩔 수 없이 구내식당에서 식사, 저녁은 별일 없으면 또 햄버거. 쉬는 날엔 수제 버거집 가서 식사해결하고, 밑도 끝도 없는 햄버거 사랑 덕에 본부내에서 햄버거 성애자로 유명한 동기였다.
“너 빠지면 우리 너무 힘든데...”
“괜찮아, 괜찮아. 지금 넘어온 일감은 다 끝내고 갈 테니까.”
“아니 그거 거의 다 끝내서 얼마 안 남았잖아...”
“하지만 라쿤 박사님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라 하셧으니까 그쪽에 집중해야 돼.”
“프로젝트?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하시는 걸까...”
세연이가 벌써 피로가 몰려오는지 끈덕진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나도 내 일이 아니었다면 같은 반응을 보였을 거다. 동기가 짬을 때린다는데 좋아할 사람이 어딨나. 나도 어.쩔.수.없.이 넘기는 거라구~
“인터넷 방송을 하라던데.”
“인터넷 방송? x위치나 x튜브에서 하는 그거?”
엉. 내 말에 세연이는 어처구니 없단 표정을 지었다.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프로젝트이긴 했다. 아마 저번처럼 이미지 관리 목적이겠지만, 그런다고 여기 인상이 그렇게 극적으로 바뀔 것 같지는 않은데. 정부 기관 기피대상 1위에 빛나는 곳이 변이자대책관리부 아니던가. 몸집은 나름 큰데 예산은 모자라고, 그 와중에 실적이 미묘한데 국제 공조로 생겨난 기관이라 막 건들기도 뭐 해서 묘하게 따돌림당하는데다 사람도 적다.
“영상 수익의 10%는 가져도 된다고 해서 무심코 수락하긴 했는데, 잘 할 수 있을까...”
카메라 앞에 서본 게 대학교 학사모 썼을 때 이후로 없던 것 같은데. 카메라 울렁증 같은 건 없지만, 생방송을 나 같은 초짜에게 맡겨도 되는 건가? 차라리 그 변이자 스트리머로 잘 나간다는 포르피린 같은 애 불러서 시키는 게 맞지 않나?
“다른 건 몰라도 인선은 잘 고른 것 같네...넌 방송하면 잘할 것 같아.”
“너도 그 소리야?”
“널 아는 사람이면 다 똑같이 말할 걸?”
내가 왜 방송을 잘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그냥 평범한 공무원일 뿐인데, 평범한...은 아닌가. 듀라한이 된 시점에서 평범함이라는 단어와 영영 작별해버렸으니까 평범하다고는 말 못 하겠다. 기껏해야 이 소름 돋게 아름다운 와꾸말곤 아무것도 없는데요.
아, 알았다. 외모지상주의니까 얼굴 빨로 밀어붙일 수 있다는 거지?
“아니, 그것도 있지만...그냥 한번 해 봐.”
“뭐, 그래야지.”
“그럼 나는 먼저 일하러 가 볼게, 있다봐!”
“그래, 있다 점심이나 같이 먹자.”
세연이를 떠나 보내고, 나는 내 책상이 있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내가 가장 늦게 온 모양인지 내 자리를 빼면 전부 직원들이 앉아 있었다.
“어때, 라쿤 박사님이 또 무슨 일 시키셨어?”
내 옆자리에 앉아서 서류를 처리하던 혜미선배가 물었다. 내 2년 선배인 차혜미 선배는 내 사수였다. 그리고 이제 결혼한지 1년이 지난 신부이기도 했다. 남편분이 보기 드문 미남이라 여성 직원들 사이에서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았던 게 생각나네. 가끔 남편분이 데리러 오시는데, 행동하나하나가 젠틀해서 몇몇 여성 직원들이 자지러지더라.
확실히 얼굴은 잘나고 봐야 해. 얼굴 못난 놈이 하면 ‘그래도 매너는 있네’소리를 듣는 게 꽃미남이 하면 ‘정말 젠틀하신 분이네요!’소리가 나온다니까? 나도 얼굴 바뀌고 나서 이득 본 게 많아서 잘 안다. 그래도 대시는 에바야. 대학교 시절에 고백만 몇 번 받았는지 기억도 안난다.
아직도 내 인생의 3분의 2정도는 남자로 살았거든? 암컷타락 같은 개소리를 찌껄이면 내가 치과진료를 봐주마! 옥수수 딱 대! 내가 평생 죽만 먹고 살게 해 줄게!
“후, 인터넷 방송을 하라네요.”
“어머, 이번엔 인터넷 방송이야?”
“그러니까요. 도대체 무슨 생각이신지...”
“적임자를 잘 찾은 것 같네.”
“혜미 선배도 같은 소릴 하시네요. 철수랑 세연이도 그렇게 말하던데.”
도대체 나의 뭘 보고 그런 말하는겨. 얼굴 말곤 평범하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자리에 앉아 내 책상 위에 정리된 서류를 스윽 훎어보고,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아, 오기전에 커피 사올걸. 일단 인스턴트 커피라도 타서 마실까? 아침 업무는 원래 커피 한잔과 함께 시작해야 잘 풀리는 법이라고.
“선배, 커피 한잔 마실래요?”
“나는 괜찮아. 출근 하기 전에 카페에서 사 왔거든.”
혜미 선배가 반쯤 비워진 투명한 플라스틱 컵을 들고 흔들었다. 확실히 이렇게 더운 날씨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최고지. 내가 지금부터 마실건 인스턴트 커피지만. 적당히 인스턴트 커피 봉지를 2개 집어서 내 전용 머그컵에 털어놓고, 정수기로 뜨거운물을 붓는다.
가끔은 인스턴트 커피도 나쁘지 않지. 아메리카노와는 다른 달콤한 맛이 잠을 좀 깨워준달까.
커피를 탄 머그잔을 기울이며 자리에 앉은 나는 밀린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정말 더럽게 많네.
“방송은! 사흘! 뒤에! 시작하게!”
퇴근하려는데 대뜸 불러서 하는 말이 그거입니까. 나는 내 앞에 내밀어진 서류를 받아들었다. 대충 계획에 대한 개요를 적은 서류인데, 엉망진창이다.
다시 말한다. 엉망진창이야!
오타가 더럽게 많아서 이게 오타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수준이야!
“아 예. 그래서 뭘 하면 되는데요?”
서류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래도 구두로 전달 받는 게 편하지. 나는 글자와는 별로 친하지 못해서, 책보다는 X튜브를 선호하는 사람이라고.
“그건 자네 마음대로 하게!”
“그럼 게임 방송 해도 돼요?”
“하게! 방송에 필요한 게임은 사고 나서 영수증을 제출하면 되네!”
농담으로 한 말인데 흔쾌히 승낙하는 모습에, 나는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도대체 뭐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아니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하는 프로젝트 인데요?”
“자네도! 알다시피! 이미지! 쇄신이네! 아시다시피! 우리 변이자!대책!관리부가! 만성! 인력! 부족이네!”
그거야 잘 알죠. 오려는 사람은 없고 사고를 자주치니 요상한 이미지가 씌워져서 강제로 발령시키지 않으면 거의 사람이 오질 않으니까...거기다 이곳에서 10년 이상 근속한 직원이 손에 꼽을 정도로 이직률이 높기도 하고.
“변이자들이! 오해를! 많이! 받지! 않나! 그런 오해를! 불식! 시키기 위한! 기획일세!”
확실히 언제 어디서 변할지 모르는, 인간과는 다른 신체적 특징과 스펙을 가진 변이자의 존재는 10년 전에 공표되었고 혼란끝에 받아들여지긴 했지만, 그게 모두가 좋아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이래저래 소수자의 포지션이라고 할까. 한국의 변이자를 다 합쳐도 5천 명을 겨우 넘는다. 근데 그을 위한 제도나 법 같은 게 일사천리로 통과되니 불만이 생긴 거다.
다른 건 지지부진하면서 변이자 관련된 법은 왜 나오는 족족 통과하느냐? 왜 저들은 특혜를 받는가? 그런 이미지가 생긴 거지. 이게 다 높으신 분들이 일을 제대로 안해서다. 윗사람 중에 변이자가 다수 있는 건지 그런 건 팍팍 올라가고 팍팍 통과되면서 다른 건은 몇 년씩 걸리니까 그런 오해할 수밖에 없지.
내막을 들여다보면 안 그러면 나라가 좆될 각이 보여서다. 대부분은 그냥 신체 능력이 좋아지는 정도지만, 변이자중에서도 정말 위험한 부류가 있으니까. 그런 부류를 어떻게든 찾아내고 선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에서는 한 변이자에 의해서 마을 하나가 통째로 몰살당하는 참극이 일어나었으니까, 전 세계 정부가 경각심을 가지는 건 당연한데 말이야.
뭐, 그런 상황이니 변이자에 대한 인식이 미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변이자을 직접 관리하는 우리 변이자대책관리부 이미지도 덩달아 나빠졌고. 정작 우리는 변이자들의 고충을 덜어주고 사람들과의 충돌을 막기 위해서 불철주야 일하는데도!
...실제로 사고가 많이 일어나긴 했다.
저번에는 악어인간이 된 변이자가 날뛰는 바람에 부상자가 여럿 발생했고, 공공기물을 파괴되었으며, 노르웨이 숲으로 추정되는 종으로 변이한 고양이 수인이 창문이랑 창문은 다 긁고 다니면서 난리가 낫었지.
해결 과정에서 다소 트러블이 있기는 했지만, 우리는 오히려 감사받을 입장이었다. 그 창문을 다 갈아 끼우는 데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이 깨졌는지 들으면 깜짝 놀랄걸. 진짜 그 수많은 창문을 다 긁어놓고도 ‘저도 모르게 그랬어요’라고 둘러대던 그 고양이 수인 발톱을 죄다 뽑아버렸어야 했는데!
변이자를 제압하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닌데 사람들은 쉽게 생각한단 말이야. 맨날 인터넷에서 언제나 뒷북치는 무능한 기관이라고 욕먹는 게 얼마나 억울한데! 그럼 일이 터진다음에 오지 어디 예지능력이라도 있어서 터지기 전에 오냐?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이 일 때려치우고 어디 부자한테 찾아가서 돈 주면 미래를 가르쳐준다고 하는 게 더 낫겠다!
“그래서 인터넷 방송해서 뭐,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꾸겠다?”
“그렇네!”
“근데 왜 저에요?”
“자네가! 적임이기! 때문일세!”
도대체 적임이란 게 뭔데! 그게 뭔데 이 너구리맨 짝퉁아! 저쪽가서 승리의 주문이나 외워! 이상한 헛소리로 일거리 늘리지 말고!
“그러니까 뭘 보고요?”
난 말빨이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고, 가진 거라곤 분리되는 뚝배기랑 연예인 뺨싸다구를 후려치는 얼굴 밖에 없는 데요. 아, 시공은 잘 합디다.
“자네를! 발탁한! 내 눈을! 믿게!”
“...라쿤박사님의 똘망똘망한 눈을 믿으라는 거죠?”
“그렇네!”
“저 나가 봐도 될까요?”
“자네를! 선택한 건! 듀라한이기! 때문일세!”
듀라한이라서? 내가 정말 희귀한 생명체긴 하지. 근데 그게 지금 일이랑 무슨 상관일까.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제가 듀라한인 게 왜요?”
“자네는! 유일한! 듀라한일세! 그리고! 아주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있지! 그건! 아주! 유용한! 장점이라네! 자네는! 가장 이질적이지만! 가장 받아들여지기 쉽다네!”
“그러니까, 뭐 얼굴마담이라도 해서 변이자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를 불식시켜라, 뭐 그런 거에요?”
“그렇네!”
“그게 말이야 방구야 이 너구리야!”
“나는 라쿤일세! 그리고 이건! 빅데이터를 분석해서! 도출해낸! 결론일세!”
빅데이터를 그 딴데 쓰지 마!
“하아...일단 하기로 했으니까 하기는 할 건데, 망해도 제 책임 아니에요?”
“그건! 보장해! 주겠네! 자네에게! 불이익은! 없을 걸세!스튜디오는! 4층에! 빈방을! 쓰게! 내일부터! 준비하게!”
“네에...”
대충 누구 하나 붙잡아두고 노가리라도 까면 되겠지.
이때의 나는 그저 이 프로젝트를 헛짓거리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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