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 64.너는 너무 말이 많아(5)
* * *
“아, 그냥 갈길 가요. 별게 다 지랄이야.”
“그렇겐 못하겠는데. 그 손 안떼냐?”
내 말에 일진년1은 유라의 머리채를 잡고 있던 손을 거칠게 휘두르며 떼어놓았다. 다가가서 상태를 보니 뺨을 몇 대 맞았는지 얼굴이 퉁퉁 부어 있는데다 입술에서는 피가 나고 있었다.
아, 진짜 기분 좆같게 만드네.
나는 스마트폰을 들고 상황이 한 눈에 보이게 현장을 찍었다. 플래시 라이트가 일진들과 유라를 향해 반짝이자 일진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나를 꼬라보았다. 어쩌라고 시발년들아. 꼬우면 뺏어보던가. 나는 폰을 집어넣는 대신 녹화버튼을 누르고 배쪽에 있는 주머니에 영상이 찍히도록 폰을 집어넣었다.
아무리 경찰들이 견찰 소리들으면서 일 안하려고 한데도 이 정도로 노골적인 증거 사진이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 교육청에 보내기만 해도 학교를 뒤집어지게 할 수 있고, 그러면 어찌되었든 증거가 있다는건 중요한 거다.
마음 같아서는 머리채 잡고 바닥에 박아버리고 싶지만, 성인이 미성년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니 함부로 건드릴 수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건 일단 이년들을 쫒아내는거랑, 그 이후에 이 사진을 가지고 조지는 것 뿐이었다.
진짜 촉법소년 좆같네. 그냥 인터넷에서 글로 올라오는 것만 봐도 빡치는데, 실제로 보니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선 머리 집어들고 풀스윙이라도 갈기고 싶었지만, 살인자가 될 생각은 없었다. 콘크리트를 나무판자마냥 박살내 버리는 머리를 사람한테 휘두르면 머리가 수박처럼 쪼개버려도 이상할게 없었다.
“놔두고 꺼지지?”
지금 가면 그래도 나름 좋게 좋게 끝내줄 생각이 있었다. 그냥 교육청에 다이렉트로 찔러볼 생각인데. 뜬금없이 사람 붙잡아놓고 팬것도 아닌 것 같고. 저년들 말하는 꼬라지를 보면 하루 이틀 괴롭힌게 아닌 것 같았다.
“야, 시발. 사진 안 지워?”
유라의 상태가 그렇게 좋지 않았다. 집에 구급약이 있었나? 요 몇 달간 다칠일이 없어 구급약상자를 건드린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내일 해가 뜨면 바로 병원에 가야할 것 같았다. 날이 밝으면 기밀관리본부쪽에 연락을 해야할 것 같았다. 이런거 뒤처리는 어쨌든 그쪽 전문이기도 하고, 어쨌든 유라가 다친건 내 책임이었다.
“유라야, 일어설 수 있지?”
“...네,”
나는 일진년들 사이를 파고들며 유라를 일으켜 세웠다. 바닥을 뒹굴었는지 유라의 옷과 얼굴에 먼지가 잔뜩 묻어있었다. 자세히 보니 이마쪽에선 피도 나는걸 보니, 어지간히 심하게 때린 모양이었다.
“이 시발년이? 지금 무시해?”
일진년들은 내가 자기들을 무시하고 유라의 상태를 살피는게 아니꼬왔는지, 일진년 중 하나가 내 어깨를 밀치며 욕을 내뱉었다. 그리고 내 폰을 뺏으려는지 내 쪽으로 손을 뻗었지만, 나는 내 폰을 뺏으려는 뻗은 일진년의 손목을 잡고 세게 쥐었다. 마스크 위로 보이는 얼굴이 일그러지는게 내 눈에 들어왔다.
나에게 손목을 잡힌 년은 내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내 몸은 겉으로 보기엔 금방 부러질 것 같이 연약해 보여도 내가 남자였을 시절보다도 30%정도는 힘이 더 강헀다. 진짜 판타지영화에 나오는 몬스터들 수준으로 강력한 것은 아니었지만, 현실에서는 이것만 해도 충분히 위협적인 힘이다.
중고딩 수준에서 이정도 차이는 쉽게 매꿀 수 없는 간극이 있었다. 일진년은 낑낑대며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내 손아귀를 벗어날 수는 없다. 나한테 손을 휘두른게 일진들 중에서 부하쪽에 속하는 모양인지, 뒤에서 나한테 욕을 내뱉던 년이 내 얼굴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나는 목에 묶은 머리카락을 더 강하게 동여맸다. 그리고 오히려 때리기 쉽도록 몸을 앞으로 들이밀었다. 나는 순순히 맞아줄 생각이었다. 내가 일반인이었다면 아파서라도 피했겠지만, 나는 듀라한이었다. 조온나게 머리가 단단한.
“꺄아악!”
짝!...소리는 나지 않았다. 생각해보자. 강철보다 더 단단한 물체에 있는 힘껏 팔을 휘두르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아무 생각 없이 팔을 휘두른 쪽이 다친다. 그것도 내 얼굴을 할퀴기라도 할 모양이었는지 손을 오므렸던 탓에 일진년1은 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며 질질 짜고 있었다. 하긴 손톱이 다 부러졌으니 존나 아프겠지.
잘 안보이긴 해도 일진1이 먼저 다가와서 나한테 팔을 휘두른 것 까지는 대충 찍혔을테니 또 다른 증거가 하나가 추가되었다. 니들이 암만 내 얼굴 때려봐라. 니들 손만 다치지. 벽돌로 뒤통수를 두들겨 맞는다 해도 벽돌이 부서졌으면 부서졌지 내 머리가 부서질 일은 없었다.
...이렇게 말하니까 내가 자해공갈단이라도 된 것 같은데. 어쨌든 맞는게 그렇게 유쾌한 일도 아니어서, 나는 상황을 빠르게 마무리 짓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경비원아저씨가 민원을 들었는지 멀리서 헐레벌떡 달려오는게 보였다.
“이 녀석들! 시끄럽게 오밤중에 뭐혀!”
“경비원 아저씨, 이쪽 애들이 애를 패고 있어서요. 제가 말리는 중이었어요.”
“지랄마! 저 년이 내 손톱 다 부러트렸다고요!”
덤터기라도 씌워보려고 하는 꼴이 퍽 우스웠다. 니들이 그렇게 주장해도, 내 폰에 녹화된 영상이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해 줄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잡고 있던 손목을 놔주며 뒤로 물러섰다.
이 이상 해봐야 나도 좋은 소리 듣기 힘드니까 빠져줘야지. 마음 같아선 아주 나락으로 보내버리고 싶었지만, 유라의 상태가 좋지 않았으니 일단 유라부터 챙겨야 해. 그게 내가 할 일이었다. 어찌되었든 난 지금 유라의 보호자니까.
“경비 아저씨, 저는 일단 애 상태가 심각하니까 먼저 데리고 갈게요. 여기 세명은 알아서 해주 실 수 있나요?”
“경비가 뭔 힘이 있다고...”
“경찰에 신고하시면 되죠. 증거도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구요.”
나는 눈웃음을 지으며 일진들 쪽으로 폰을 살살 흔들었다. 이럴땐 티배깅만큼 좋은게 없지. 나는 유라의 손을 잡고 난장판에서 빠져나왔다. 3명의 일진은 나를 잡으려고 했지만 경비아저씨의 방해로 나를 잡을 수 없었다.
“야, 야 잡아!”
“언니!”
내 뒤통수에 꽤 묵직한 충격이 달렸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신경쓰일 정도의 흔들림을 주기엔 충분했다. 머리카락 세게 안조였으면 머리 떨어질 뻔했잖아.
“아이고 학생! 괜찮어! 이런 미친년들! 사람 머리에 돌팔매질을 해?”
“언니! 괜찮아요?!”
“나야 괜찮은데. 아픈척이라도 해야 되나...”
내 머리에 그럴싸한 상처라도 내고 싶으면 총이라도 가져와 보던가. 하지만 경비 아저씨나 유라나 내 뒤통수에 돌맹이를 맞은걸 보고 경악한 모양이었다. 확실히 저게 정상적인 반응이긴 했지만 이미 나는 내 더럽게 튼튼한 대가리에 너무나도 익숙해진 상태였다.
일단 증인 하나 더 확보. 내가 다쳤건 안다쳤건 사람 머리에 돌을 던졌으니 쉽게는 못 넘어가지. 내가 듀라한이라 다행이지 일반이었으면 충분히 살인미수로 취급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미성년자가 아니라 성인이었으면 정말 경찰 불러서 잡아가서 구치소에 집어넣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이미 충분히 잡아갈만 한가?
“안다쳤으니까 걱정 마세요.”
폰으로 경찰서에 신고를 하며, 나와 유라는 자리를 벗어났다.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생각해보니 경찰서가 근처에 있었지? 뒤에서 악에 받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어디서 개가 짖나.
짖는건 소년원가서 해라. 기밀관리본부에 전달해서 아주 제대로 조져줄테니.
인생은 실전이란다 일진들아.
“일단 까진 부분에는 연고 발라놨으니까 이제 멍든 부분은...음...달걀이라도 들고 문질러볼래?”
옛날 예능 프로에서 정말 효과가 있었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뭐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언제나 아예 안하는 것보다 뭐라도 해보는게 나은 법이니까. 옆에서 걱정스레 유라를 쳐다보던 세연이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냉장고에서 계란을 꺼내왔다.
유라는 날달걀을 받아들고는 시퍼렇게 멍든 얼굴에 조심스럽게 문지르기 시작했다.
“으, 아파...”
“내일은 병원에 가자. 검사도 하고, 약도 받아야 하니까...”
“그. 죄송해요...”
“뭐가?”
“...귀찮게 한거요...미워하지 말아주세요.”
유라가 힘없는 목소리로 울먹거리며 대답했다. 정말로 죄책감이 느껴지는 목소리여서, 나는 유라의 앞에 앉아 머리를 쓰다듬었다.
“귀찮다고 생각한건 아니야. 그냥 좀 당황스럽달까...내가 너 만한 나이의 애랑 살게 된게 처음이거든.”
나는 외동이었고, 친척들과도 그렇게 친하지 않은데다 1년에 몇 번 보지도 않아서 나보다 어린애랑 같이 지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가, 어린애를 대하는게 좀 어렵다. 게다가 나는 전직 남자라서, 여자애랑 지내는게 더 어색할 수 밖에 없었다.
아직 여성만의 감성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해야하나, 일단 겉모습이야 여자지만 알맹이는 아직 남자에 가까우니까. 게다가 유라의 이야기는 분위기는 밝아도 너무 무겁다. 내가 제대로 된 사정을 들은 것은 아니지만, 당장 들은 이야기로 추측만 해도 화목한 가정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혹시 들어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지.”
유라 하고 싶은 말 다해. 눈치 보지 말고.
“...저는 엄마랑 둘이서 살았는데, 엄마가 직장에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다 엄마가 오면 열심히 말을 했어요. 엄마는 늦게까지 일하셔서 피곤했지만, 저는 그걸 몰랐어요. 그래도 엄마한테 오늘 뭘 했는지, 무얼 먹었는지 이야기를 할 때마다 웃으시곤 했으니까, 점점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친구의 이야기라던지, 읽은 책이라던지, 인터넷에서 본 잡 지식 이라던지... 적어도 제가 이야기를 할때는 엄마는 저를 보고 계셧으니까.”
“...평소엔 관심을 잘 주지 않으셧나 보구나.”
밤 늦게 까지 일하는게 얼마나 힘든지는 나도 잘 아니까 왜 그랬는지는 알 것 같다. 너무 피곤한 거겠지. 매일 야근이 반복되면 수면과 일만 반복하게 되니까. 다른 걸 생각할 여유는 없어진다.
“일찍 나가서 늦게 들어오셧으니까요. 제가 일부러 늦게까지 깨어있기 전엔 얼굴 보기도 힘들었어요. 그렇게 몇 년 동안 매일 밤에 엄마와 이야기하다가, 어느날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너무 말이 많다’고.”
엄마가 처음으로 짜증을 낸 순간이었어요.
“그 때 느꼈죠. 엄마도 아차 싶었겠지만, 저는 엄마가 나를 귀찮게 여기고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어요. 자연스럽게 나와 엄마의 사이는 서먹해졌어요...생각해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는데.”
“그럴 수 있지...”
“자연스럽게 집은 조용해졌어요. 저도 엄마와 마주치기 어색해서 일찍 자고, 일어나고...그러다가 세달 전에 갑자기 지금의 모습으로 변했어요. 키가 작아지고 얼굴이 조금 변했죠. 다행히도 원래부터 키가 작아서 깔창을 넣고 밑창이 두꺼운 신발을 신으면 어떻게든 얼버무릴 수 있는 수준이었어요. 얼굴이 조금 변한건 화장으로 얼버무렸고요. 하지만 변한건 변한거라, 엄마를 납득시키는데만 몇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아무리 미미한 변화라도 변한건 변한거니까. 갑작스레 변한 자식을 보고 당황스러워 하지 않을 부모는 없을거다.
“그래도, 어떻게든 납득해주셧어요. 사실 납득하실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같은 방에서 잠을 잤으니까 모를 리가 없었죠. 그렇게 잘 숨기며 살다가...엄마가 돌아가셧어요. 과로사였죠. 너무 갑작스러웠어요. 그게 2주 전이었어요.”
최근 일이다. 들어보니 편모가정인 것 같고, 맡아줄 사람이 없어서 기밀관리본부에서 데리고 있던 건가? 이 애는 변이자니까, 아무나한테 맡길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그나마 내가 사는 빌라와 내가 변이자가 살기 적합한 환경에 가까워서 맡긴 거겠지. 한적하고, 마침 빈 방도 있고, 나랑 한솔이도 있고.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은 없었다.
보호자 문제야 라쿤박사던 누구던 보호자 역할을 해주기만 하면 되니까.
“그러다가 여기 빌라에 집을 마련해줄테니 살라는 제안을 받았어요. 저도 기밀관리본부 직원분들한테 폐끼치기가 싫어서 냉큼 받아들였어요.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언니를 다시 만나고 싶어서 였어요.”
“나를? 왜?”
내가 유라와 자주 마주쳤던것도 아니고, 만난 횟수도 고작 두 번인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저한테 친절하게 대해주셧잖아요.”
친절...이라. 그렇긴 하네. 나름 친절하게 대하긴 했지. 근데 그게 그렇게 큰 일인가? 기껏해야 지하철에서 넘어지지 않게 허리좀 빌려주고, 햄버거 한 세트를 사준 것 뿐인데. 그렇게 큰 친절은 아니었다.
“어른들은 제가 말이 많다고 싫어하고, 애들은 맨날 괴롭히기만 했어요. 엄마한테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또 짜증만 내실까봐 이야기도 못했고...”
총체적 난국이었네. 진짜 끔찍해.
“그랬구나...고생이 많았네.”
세상은 정말 요지경이다. 행복은 불어나는게 손톱의 때만큼이나 적은데, 불행은 언제나 뭉텅이로 불어난다. 애가 뭔 죄를 지었다고 저렇게 고통받아야 하나.
“...죄송해요. 제가 말이 너무 길었죠?”
그래도 아까보다는 후련한 표정이었다. 한바탕 말을 쏟아내고 나니 마음이 편해진 모양이었다.
“괜찮아.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해볼래?”
“아뇨, 괜찮아요. 이제 시간도 늦었고...언니도 내일 방송해야 되잖아요?”
그렇긴 하다. 그래도 어차피 오후 11시 퇴근 오전 7시 출근을 반복하던 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여유로우니까, 조금 늦게 자는 정도는 상관없는데. 너가 그렇다면야.
“그...대신에 같이 자면 안되나요?”
얼굴 붉히면서 그런 말은 하지마.
분위기가 이상해지잖아.
“그래 그러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