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듀라한이 되어버렸다-61화 (61/352)

〈 61화 〉 59.FUN, COOL, SEXY(5)

* * *

침착하자. 호랑이굴에 끌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어.

이대로 은퇴할 수는 없어! 아직 건물주가 되지도 못했다고! 나는 손바닥으로 캠을 감싼채로,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진짜 어떻게 해야 돼? 이대로 방종을 해도 문제고, 안해도 문제였다. 캠에는 어떻게 찍혔지? 머리가 떨어 지자마자 캠부터 손으로 막은 거라, 얼마나 보였는지가 중요했다. 잘하면 얼버무릴 수 있겠지만, 얼버무리지 못할 정도로 명확하게 찍혔다면 답이 없었다.

클립까지 따였으면 그냥 확인사살인데.

그냥 목매달고 세연이랑 같이 손잡고 저승가야지. 생각해 보니 그것도 안 되네. 진짜 환장하겠다. 헬멧 때문에 머리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라, 나는 주변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입을 열면 마이크 때문에 다 들릴 텐데. 시발.

그냥 시치미 뚝 떼고 진행해 볼까? 이게 답일 수도 있었다. 상식적으로 사람 머리가 통째로 분리되리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을까. 최대한 잘못본거라고 잡아떼야지.

캠을 손으로 가리고 있으니 일단 머리부터 돌려놔야겠다. 나는 헬멧 구멍에 목을 들이밀고 머리카락으로 목 주변을 단단히 동여맸다.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수습이 먼저였다. 땀 때문에 들러붙었다고 대충 둘러대면 돼! 지금은 사는 게 먼저야!

무거운 머리를 조심스레 들어올린 나는 곧바로 채팅창을 확인했다.

­방금 뭐임;;

­X위치 서버 터짐? 왜 화면 아무것도 안나옴?

­방금 큰 소리 나던데 넘어진 거 아니에요?

­아니 그것보다 방금 뭐였냐고;; 나만 봤음?

아 시발. 시발, 시발 시발! 진짜 좆됐어!

어떡하지. 캠은 바로 꺼버리고, 나는 세연이를 쳐다 보았다. 세연이는 갑작스런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는지 당황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서로의 시선이 얽히며 자연스럽게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했다.

망했네. 망했어.

“아야, 캠끄려다 넘어져서 책상에 박았네...”

통할지는 모르지만 일단둘러대면서 반응을 확인하자. 나는 채팅창의 반응을 확인하며 손을 꽉 쥐었다. 얼마나 봤지? 클립이 따였을 가능성은? 저 많은 사람들 중에 내가 인간이 아니란 걸 눈치챈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전체적인 분위기는 나를 걱정하는 쪽으로 기울어진 것 같지만, 그래도 산발적으로 올라오는 조금 전 상황에 대한 의혹을 담은 채팅이 계속해서 내 눈에 들어왔다. 얼버무릴 수 있을까?

­괜찮아요?

­헬멧 쓰고 있으니까 다치지는 않았을 듯.

­근데 방금 소리는 부딪힌 소리가 아니고 떨어지는 소리였던 거 같은데?

­아니 방금 진짜 못 봤음?

도대체 뭘 본건데? 그냥 차라리 말을 해! 아주 보내버리게! 이걸 그냥 쫓아낼 수도 없고...이건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시청자들에게 화장실에서 잠시 씻고 온다며 양해를 구하곤 거실로 나와 전화를 걸었다.

“도와줘요 라쿤맨!”

[진짜! 미치겠군! 자네는 생각이 있는 건가! 없는 건가!]

내 방송 보고 있었어? 하긴 나라도 보고 있었겠다. 기밀관리본부측에 내 방송을 보고 있는 시청자가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건 차라리 다행인건가? 최소한 상황 파악은 빠르게 이루어졌으니 이제는 전력으로 수습해야 할 차례였다.

[일단 자네는! 최대한 화제를 돌리게! 우리 쪽 요원을! 방송에 투입했으니! 말만 잘하면 얼버무릴 수 있네!]

“알았어요.”

[일단 끊게! 나는 지휘를 해야 하니!]

화끈하시구만. 나는 전화기를 대충 주머니에 쑤셔놓고 화장실로 향했다. 방으로 돌아갔다. 근데 내가 캠을 끄긴 했나? 의자에 앉은 나는 채팅창을 멍하니 쳐다보며 숨을 골랐다. 아직 방송을 시작한지 1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급격하게 피로가 몰려왔다.

진짜로 정신이 어질어질해서, 차라리 쓰러지는 편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건 내가 벌인 일인 만큼 내가 수습해야 했다. 라쿤맨이 저번에도 말하지 않았던가. 변이자의 존재가 세상에 아직 알려져서는 안 된다고. 알려지면 끔찍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아마 이번에는 정말로 죽기 직전까지 설교를 당할지도 모르지만, 일단 수습하자. 아직까지는 희망이 있었다. 시청자들한테는 정말 미안하지만, 이제부터 내 머리에 대한 언급을 꺼내는 시청자를 조리 돌림해서 발언을 믿지 못하게 해야 했다. 아마 채팅창에 상주하고 있는 요원들이 내 말에 호응을 해줄 테니,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몰아세우면 된다.

뒤처리는 아마 기밀관리본부측에서 해주겠지. 전에도 그랬듯이.

나는 평소보다 2배는 더 많은 시청자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머기업이고 뭐고 다 쳐내게 생겼네. 재수 없으면 안하니만 못한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딱 보니 못해도 수십 명은 조금 전 상황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차라리 까놓고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 정부에서는 이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하니 나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당장은 출혈을 감수해야 했다. 어휴, 내 인생...

“춤추는 거 너무 힘들어. 이걸 2시간 넘게 춘 사람은 대단하네...”

­춤추는 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님

­클립 따서 나르고 있음. 우리 듀라 머기업 가즈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클립? 춤추는 거 말하는 거 맞지? 그건 얼마든지 퍼트려도 되는데 머리 떨어지는 거만 아니면 돼! 내가 춤췄다는 사실만 부각시켜야 한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조치였다.

­근데 캠 다시 켜주면 안됨? ㄹㅇ 그냥 캠 키면 바로 머기업각인데 ㅋㅋㅋㅋㅋㅋ

­ㄹㅇㅋㅋ

­팩트)다

­아까 그건 뭐였음...? 넘어졌다기엔 부자연스럽지 않았나?

저놈의 입을 막아라! 나는 의도적으로 채팅을 무시했다. 아예 반응 안하는 게 좋다 이거야.

“캠방송은 안할 거야. 캠방은 너무 귀찮아. 나는 노캠방송이 좋아.”

­ㄲㅂ

­근데 아까부터 이상한 소리 하는 놈들은 뭐임?

­ㄹㅇ 떨어졌다느니 하면서 분위기 조지는 놈들 있네

“뭐가 떨어져?”

­사람 머리가 어떻게 떨어짐? 헬멧 떨어진 거 잘못본거 아니냐?

­X수들이 아무리 능지딸리는 흑우라지만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ㅋㅋㅋㅋㅋ

­ㅂㅅ임?

­분탕쳐내!

채팅창 곱창나기 시작하네. 평소라면 바로 진압해야 했지만, 나는 일부러 못 본 척 뜸을 들였다. 미안해 시청자들아. 니들이 본 게 맞지만 어른의 사정이라는 게 있어서 말이야. 니들은 ‘잘못 본거야’. 알았지?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채팅창을 얼린다.

“싸우지 말고 방송이나 봐, 아니면 나가던가. 일단 욕한 X수들 전부 밴이야. 이제 게임 할 거임. 자자, 나가고 싶은 사람은 나가셔도 됩니다.”

아 이제 똥겜으로 분위기 쇄신해야 한다고! 마 똥겜좀 무바라! 내 머리같은 거 신경 쓰지 마! 나도 충분히 주옥 같으니까!

채팅창을 다시 풀어주자, 채팅창은 여느 때처럼 얌전해졌다. 아직 시청자가 500명 가량 있어서 평소보다 스크롤 올라가는 속도가 빠르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 남은 거 보면 충분히 성과는 있는 거 같은데. 내 몸매보고 남은 것 같긴 하지만.

“그럼 오늘의 게임을 시작...”

[성찬님이 1000원 후원!]

­해.명.해

아니 잠깐, 영상 도네? 영상 도네 안 꺼놨나? 나는 화면을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거기엔 빼도박도 못하게 내 머리가 떨어질 때의 상황이 담긴 클립이 재생되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거진 3초짜리 클립이었지만 그 정도면 묻혀가던 논란에 다시 불을 지피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건 진짜 어떻게 해야돼? 진짜...진짜루 망했음...

­???

­에반데;;

­아니 진짜 뭐임? 되게 부자연스럽지 않나;; 저건 떨어지는 거 같은데?

아니 좀...선생님들,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닥치고 게임이나 하는 거 구경이나 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뭔가 그럴듯한 변명이라도 해야 되는데,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어느 정도 재빠르게 막아서 내 머리가 떨어지는 장면은 1초도 안 되는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덕분에 어떻게든 잡아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하늘이...아니 라쿤이 나를 아직 버리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미안하지만 이제부터 니들은 분탕이야. 전부 엎드려! 일어나면 쏜다! 엎드려도 쏜다! 앉아 있어도 쏠거야! 내 일신의 안녕을 위해서 죽어줘!

“뜬금없는 이상한 영상도네 날리지 마세요. 캠 각도 때문에 저렇게 보이는 거니까 이상한 트집잡지 마시고. 어떻게 사람 머리가 떨어져요?”

불쾌한 티를 노골적으로 낸다. 보통 저런 의미불명의 트집이 잡히면 화내는 게 보통 이니까, 좀 노골적으로 낸다고 해도 의심할 사람은 없었다. 목소리로 불쾌한 티를 내면서, 영상 도네를 끈다. 영상도네를 보내준 사람은 미안하지만 오늘부터 1일이다.

블랙리스트 말야! 잘 가! 기억할게!

“영상도네는 꺼놓을게요. 살다 살다 이상한 트집도 잡히네요. 사람 머리가 어떻게 떨어져?”

­ㄹㅇㅋㅋ

­이젠 하다하다 별 이상한걸로 분탕을 치려고 하네 ㅋㅋㅋㅋ 능지 수준 보이죠?

장하다 X수들아! 전부 묻어버리렴!

채팅창이 다시 한번 곱창이 날 뻔했지만, 계속해서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분탕으로 지목하고 한바탕 청소를 하자 채팅창은 곧 조용해졌다. 그만큼 인원이 빠져서 400명이 됐지만 뭐 어때. 이 정도만 해도 이득이었다.

확실히 국가비밀기관에서 일하는 엘리트 들이라 바람잡이 성능 확실하네.

고마워요 라쿤맨!

­­­­­­­­­­­­­­­­­­­­­­­­­­­­­­­­­­­­­­­­­­­­­

“혹시! 인터넷에 영상클립이! 올라오는지! 계속! 감시하게!”

망할 듀라한 녀석, 덕분에 오늘도 전부 야근이겠군! 집에서 소시지나 물에 씻어 먹을 예정이었던 라쿤 박사는 분노했다. 만약에 처음부터 방송을 모니터링 하지 않았다면, 직원들을 방송에 여럿 심어놓지 않았다면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도 있었다.

‘정말로 운이 좋았군...’

정말, 정말로 운이 좋았다.

이유진의 아주빠른 반응으로 캠을 손으로 가린 탓에 머리가 떨어지는 장면은 1초도 안 되는 아주 짦은 시간 동안 찍혔고, 그 덕에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을 ‘남의 방송에 와서 분탕치는 종자’로 몰아세워 그저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는 걸로 여겨지게 만들 수 있었다.

“이거, 불안, 하군.”

저 아가씨는 도대체 얼마나 트러블을 일으켜야 직성이 풀리는 건가. 변이자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이렇게 다채롭고 많은 문제를 일으킨 변이자는 이유진이 처음이었다. 정말 좋지 않다. 변이자들은 적어도 올해 까지는 대중들에게 그 존재를 들켜서는 안 된다.

전 세계 정부 수반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비교적 거부감 없이 사람들에게 변이자들을 받아들이게 할 방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다.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이니까. 아직까지는 정말 운 좋게 길거리 한복판에서 변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과연 숨길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라쿤맨의 두뇌가 번뜩였다. 어쩌면 비교적 쉬운 방법으로 대중이 변이자들을 받아들일 방법이 있을수도 있었다.

라쿤맨은 지친 몸을 의자등받이에 맡긴 채로 이유진의 방송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인터넷 방송이라, 나름대로 쓸 만할지도 모르겠구먼.

라쿤 박사는 소시지를 하나 집어먹으며 입가를 실룩였다.

오늘도 라쿤 박사를 보좌하던 비서의 뇌에 컬렉션이 하나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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