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 57.FUN, COOL, SEXY(3)
* * *
“유진씨, 이런 밈을 이용해서 떡상각을 재는데 필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요?”
“음...타이밍?”
“그것도 중요하죠. 하지만 저는 그것보다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분위기?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는 내 앞에 차려친 닭 다리를 세연이의 입에 물려 주며 곰곰이 생각 했다. 분위기, 분위기라...내가 춤을 춰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그런건가?
그런 것도 짜야하는 걸까? 그냥 적당히 추면 되는 거 아니었어? 뭔가 점점 스케일이 커지는 것 같은 데.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요즘 02댄스로 떡상한 사람들이 많다지만, 이렇게 떡상하는 것도 전략이 필요하다는 모양이었다. 무작정 올려봐야 그 때 조회 수 한 번 뽑고 끝이라나.
“까놓고 말해서, 유진씨는 이제 막 하꼬티를 벗어난 중소기업 스트리머죠?”
“...그렇지.”
“일일 시청자가 300명을 못넘으시는 걸로 아는데요. 아마 그냥 춰도 어느 정도 성장하기는 할 테지만, 이왕이면 밈에 편승하는 김에 수익도 땡기려면 밑밥을 깔고 하는 게 좋아요. 가령 부계로 접속해서 미션을 건다던지, 지인들 한테 부탁해서 바람잡이를 부탁한다던지...가장 중요한 건 마지못해 하는 티를 내는 것!”
미션이 걸려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처럼 보이라 이건가? 근데 정말 이렇게 까지 하는게 효과가 있을까? 솔직히 02댄스 추는 여자 스트리머가 한두 명도 아니고, 그중에서 나는 몸매만 따지면 빈약한 편 아닌가?
볼게 없다고는 못 하지만, 그렇다고 많냐고 하면 미묘하다. 게다가 나는 얼굴을 공개할 생각이 없었다. 듀라한이라는걸 빼고서라도 외모가 너무 눈에 띄었다. 이 좁디 좁은 한반도에 백발 금안 미소녀가 나 말고 또 있을 확률은? 그리고 내 신상이 들키지 않을 확률은?
당장 10년이 넘는 과거의 기록도 집요하게 찾아내는 게 네티즌 수사대가 맨날 하던 짓거리 아니었나? 그 대상에 내가 들어 가는 건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괜히 피곤해질 일을 늘려서 바깥 외출이 더 번거로워지는 것은 싫었다.
머리카락을 줄여서 모자로 숨기고 컬러렌즈라도 끼면 아마 돌아다닐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번거롭게 변장까지 하면서 돌아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나도 모 스트리머처럼 헬멧 쓰고 춰야지. 좀 무겁고 불편히긴 하겠지만 얼굴이 공개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한솔이야 최면을 걸어서든 넘어갈 수 있다지만, 나는 그게 안 되잖아. 내가 가진 능력은 하나 같이 사람들 앞에서는 쓰기 곤란한 것들뿐이었다.
머리카락 조종이랑 머리 분리되는걸 밖에서 쓸 수도 없고, 딱히 쓸데도 없다. 이렇게 보니 한솔이가 눈으로 최면을 걸 수 있는 게 부럽기도 했다. 집안으로 한정한다면 내 능력이 더 쓸모 있기는 하지만...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낼 때도 대충 머리카락을 늘려서 가져 오면 그만이니까.
“마지 못해 하는 티내는 건 왜 그래야 하는 데?”
“그냥 막 하면 엄한 욕 들어 먹기 딱 좋거든요. 그리고 X수들은 변태들이 많아서, 돈에 미쳐서 하는 것보다 하기 싫지만 마지못해서 하는 거에 더 흥분한다구요.”
“아, 그래...”
아, 그렇습니까. 결국 X수들의 이상성욕 때문이었습니까. 생각해 보면 한솔이의 말도 충분히 일 리가 있었다. 방송중에 뜬금없이 ‘요즘 02댄스가 유행이네요! 한 번 춰보겠습니다!’하고 춰봐야 ㅜㅑ몇 번치고 자낳괴 소리만 줄창 들을 화귤이 높겠지. 그리고 그다음엔 얼굴 까라는 채팅으로 도배가 될 게 뻔했다.
다른 듀라한 스트리머 방송은 잘 안 그러던 데 내 방송은 유독 얼굴 공개해달라는 놈들이 자주 나오더라. 아직 규모가 작아서 압박하면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하긴 내 목소리가 쩔긴 하지. 듣기만 해도 귀르가즘이 오는 목소리란 게 절대 흔한 게 아니니까. 오죽하면 방송이 취향은 아닌데 목소리 들으러 온다는 X수도 있었다.
확실히 스트리머는 다른 스트리머와 차별화 되는 무언가가 있기는 해야 하구나. ts전에는 정말 잠깐 구경하고 가는 하꼬중의 하꼬였는데, 여기까지 온 것도 여러모로 감개무량한 느낌이었다.
중소기업 구간에 정체돼버린 건 좀 아쉽지만. 확실히 이 구간 부터는 누가 밀어주던 아니면 내가 스스로 살길을 찾던 해야 하는 데, 내가 아는 지인이라곤 한솔이 뿐이고, 한솔이는 나와 성향이 다른 데다 내가 노캠방송을 고집하고 있으니 밀어주기도 힘들었다.
인터넷 방송계에서 조차 아싸라니, 정말 눈물나네. 듀라한 스트리머들끼리는 원래 막 교류하면서 크던 데, 내 쪽에는 그런거 한 번도 온적이 없어...나도 합방제의 받아보고 싶다. 듀라한 스트리머들 중에 머기업들을 보면 이래저래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면서 큰 스트리머들이 많더라.
결국 서로 얼굴을 마주치지 않는 인방계라도 인맥이 중요하단 소리다. 당장 듀라한 스트리머들 중에 유명한 듀라한 스트리머도 그 인맥빨로 머기업이 된 걸로 유명했으니까. 물론 나처럼 목소리가 정말 개성 있는 스트리머라 그런것도 있지만.
“어차피 미션 띄워줄 사람이 필요한 거니까 한 명만 있어도 상관없어요. 도와줄 사람...아니 귀신 옆에 있잖아요? 세연이 채팅도 칠 수 있는 것 같던 데요.”
생각해 보니 그러네. 세연이도 인방 보니까 바람잡이 정도 는 할 수 있겠네? 귀신이 인방에서 바람잡이를 해준다는 괴상한 그림이 나오지만, 이미 비상식적인 상황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나는 별생각이 없었다. 세상에 듀라한이랑 흡혈귀도 인방을 하는 데 처녀귀신이 X수질 하는 건 평범한 축에 드는 거 아닐까.
갑작스레 자기 이름이 거론된 것에 놀랐는지, 닭고기를 꼭꼭 씹어 삼키던 세연이가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나와 한솔이를 번갈아 보았다. 그래 너 말이야 너. 치킨 안뺏어가니까 허겁지겁 먹지마. 체할라. 귀신이 체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연아, 할 수 있지?”
‘네? 제가요?’같은 표정으로 우물거리지 좀 말고. 세연이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조심스럽게 화면 액정을 가리켰다. 자세히 보니 엄마 손길 주문 앱이었는데, 새로 나온 메뉴를 광고하는 배너를 세연이의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었다.
저게 먹고 싶었던 건가...맛있어 보이긴 했다. 그리고 맛있어 보이는 만큼 가격도 비쌌다. 세트 하나에 거의 만 원이라니, 요즘 햄버거 세트는 많이 비싸구나? 맨날 X이버거만 먹어서 몰랐다.
“하나면 돼?”
세연이가 검지와 중지를 치켜들었다. 2개? 내 눈치를 보듯 조심스럽게 세연이가 엄지를 펼쳤다. 3개? 이러다가 그냥 손바닥을 다 펼치겠구먼. 그래도 상관은 없다. 어차피 이번 댄스가 성공하면, 햄버거 세트 10개를 사줄 수 있을 정도의 수익이 있을 테니까. 세연이의 손가락은 더 이상 펴지지 않았다.
근데 그걸 한 번에 다 먹으려고?
애, 너 그렇게 먹으면 살찐단다. 돼지가 되고 싶니? 근데 귀신도 살이 찔까? 품이 넒은 하얀 원피스 비스무리한걸 입고 있어서 살이 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얼굴에 살이 하나도 붙질 않았으니 찌지 않는 것 같았다.
근데 애는 좀 안쓰럽네. 애는 살이 좀 쪘으면 좋겠다. 다큐나 유니세프 광고에서 나온 것처럼 살가죽이 뼈에 달라붙을 정도로 마른 것은 아니지만 이쪽도 좀 심하게 말라보였다. 얼굴은 어쨌든 몸만 보면 정말 뼈가 보일지도 몰라.
하긴 죽어서까지 살 찌면 얼마나 서럽겠어. 먹고 싶은 것도 못 먹는데 말이야. 귀신이 살이 찐다면 다이어트하는 처녀귀신이라는 웃지못할 광경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고...아 끔찍하다.
“오케이. 3개는 내일 사주면 되지?”
세연이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세연이의 손을 맞잡고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흔히 말 하는 악수였다. 협상은 아주 쉽게 타결되었다. 근데 이거 손에 기름이 묻...지는 않네.
“매번 공중에서 음식이 사라지는 걸 보고 있기는 하지만, 볼 때마다 신기하네요.”
하긴 허공에 닭 다리가 둥둥 떠서 사라지고 있는 광경을 보면 당연히 신기하겠지. 이것만 찍어도 꽤 조회 수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까 이거 콘텐츠로 써먹어 볼 만하지 않나? 나야 세연이가 보이지만 다른 사람은 세연이를 볼 수 없으니까, 시청자들을 놀려 먹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게 심령방송(진)각이라는 거다...세연이가 일하는 걸 찍으면 볼 만하겠는데. 허공에 세탁물이 떠다니고 알아서 정리되는 신박한 장면이 나오니까...정말 콘텐츠로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꽤 재밌을 것 같은 데. 다른 사람은 내가 머리가 아픈 불쌍한 스트리머로 취급할 수도 있겠지만, 재미있을 것 같았다.
“?”
내가 계속 뚫어져라 쳐다 보니 세연이도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 보았다.
뭐, 그건 다음에 생각할 일이다.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인 것 같기는 하지만, 지금은 이 02댄스인가 뭔가 하는 걸 이용해서 머기업각을 재야 하는 게 먼저였다.
엄마! 나는 머기업이 될래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략부터 빨리 말해 봐. 계속 빙빙 돌려봐야 감질나기밖에 더 해?
“일단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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