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 56.FUN, COOL, SEXY(2)
* * *
“이렇게 쫙 달라붙는 옷을 입을 필요가 있어?”
“몸 움직이다 보면 그 생각도 사라질 걸요?”
가벼운 기능성 티에 레깅스...몸에 쫙 달라붙는 옷을 입으니 몸의 테가 잘살아나긴 한 데, 이런 옷 입고 춤추긴 좀 그렇다. 한솔이가 빌린 연습실에는 우리 둘밖에 없으니 그나마 낫지만, 그 X수들 앞에서 이러고 추는 건 좀 에반데...
전직 X수였던 적도 있었던 만큼, 대충 보일 반응이 예상이 간다. ㅜㅑ만 치는 애들은 그나마 양반이고 ,좀만 더 가면 가슴크기 이야기하다 골반이야기로 넘어가고 아예 선을 넘는 놈들이 나오면서 채팅창이 대폭발하는 엔딩이야 이거. 섹드립이건 뭐건 그렇게 신경은 안쓰는데 기분이 이상할 것 같긴 했다.
남자일 적에는 쳐본 적은 없지만 치는 입장이었는데 여자가 돼서 섹드립을 당하는 입장이라니. 거기다 덤으로 누군가의 X감이 된다고 생각하면...나는 누군가의 x감이 되기는 싫다. 내가 뭐가 좋다고 x감이 되야겠어? 영상 찍을 때는 좀 몸테가 덜 드러나는 복장으로 입고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위에 가디건 같은 거라도 걸치고 추면 되겠지.
“확실히 움직일 땐 편히긴 한 데...”
아이돌 안무 연습 영상이나 요가 영상같은 데서 몇 번 본 적이 있긴 한 데, 직접 입으니 확실히 괜히 입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편히고, 일단 펄럭이지 않으니 움직일 때 덜 거슬리고, 몸의 형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니 춤선도 눈에 띄게 잘 보인다.
근데 한솔이랑 나란히 서 있으니 너무 사이즈 차이가 나는데. 전체적으로...말이야...아무리 봐도 나이차 꽤 나는 동생이랑 언니뻘 같다고 할까. 내가 나이에 비해 너무 어려 보이는 바람에 생기는 불상사다. 한솔이도 생각이 있으면 쫙 달라붙는 옷 입고 나가지는 않겠지만.
“세팅 끝났어요. 자, 그럼 스트레칭부터 하죠.”
“스트레칭...?”
국군도수체조라도 하면 되나? 내가 가장 최근에 한 몸풀기 운동이 국군도수체조 밖에 없는 데. 그것도 몇 년 전이지만. 내가 어색하게 한솔이가 하는 동작을 따라 하자, 한솔이는 한숨을 쉬며 나와 마주 보며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보니 확실히 따라 하기 편히네.
몸이 바뀌고 나서 처음으로 스트레칭을 하니 상쾌한 느낌이다. 너무 오랬동안 운동을 하지 않은 탓인지, 아니면 그냥 스트레칭의 효과인지 몸이 풀리는 느낌이 스트레칭을 할 때마다 느껴졌다.
“운동 좀 하고 사는 게 어때요?”
“정말 그래야 할지도 모르겠네...”
나이가 반 토막 났다고 너무 방심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야 괜찮지만 이 몸도 결국 나이먹으면 운동 안 해서 살찌고 그럴지도 몰라. 나야 편히게 사는 게 좋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몸 관리는 해야 다시 나이를 먹어도 날씬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 기껏 이런 몸 생겨놓고 뒤룩뒤룩 살쪄서 돼지가 되면 그건 좀 끔찍하다.
“하나, 둘, 셋, 넷...”
스트레칭이 끝나는데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체감상 국군도수체조랑 끝나는 시간이 비슷하다. 확실히 신체나이가 어려진게 체감이 되네. 당장 원래 몸이었으면 중간쯤에서 허리디스크로 쓰러졌을 텐데. 이 몸은 당장 발레동작을 따라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유연했다. 몸이 폴더폰처럼 접히는 시점에서 말 다했지.
폴더폰이 뭐냐고? 이런...쉬펄...라떼는 말이야...폴더폰밖에 없었다...이 마리야...요즘 젊은 것들은 쯧쯧...스마트폰 밖에 몰러...
“자, 이제부터 하나하나 배워 보죠. 저 하는 거 잘 보세요.”
한솔이는 스마트폰으로 x튜브로 02댄스의 배경음악을 틀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음...나는 홀린 듯이 한솔이의 춤사위를 볼 수밖에 없었다. 뭐 하러 숨기리오. 내 앞에서 멜론두 개가 흔들리는 데 춤에 시선이 가겠냐! 분명 한솔이네 시청자들도 저거 노리고 미션 걸었을 거야!
스포츠 브라로 잡아두었음에도 거칠게 흔들리는 가슴에서 애써 시선을 돌려 이번에는 골반을 쳐다본다. 자연스럽게 골반을 튕기며 좌우로 움직이는 모습이 시선을 잡아끌지만, 저걸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암담했다.
난 춤의 춤자도 모른는데 저걸 내가 해야 한다고...?
약 3분간의 춤이 끝나자, 나는 한솔이에게 미리챙겨온 스포츠타올을 건네주었다. 한솔이는 이마에 송골송골 맻힌 땀을 닦으며, 나에게도 한 번 해 보라고 말했다. 이걸? 내가? 할 수 있을까?
“일단 해 봐야 고칠 부분을 아니까 일단 한 번 춤춰봐요.”
잠깐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줘! 한솔이는 내가 마음의 준비를 채 하기도 전에 무자비하게 재생 버튼을 눌렀다. 브금이 단둘뿐인 연습실에 울려 퍼진다. 나는 한솔이가 춤추던 모습을 떠올 리며 어설프게나마 동작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골반을 조우로 흔드는 게 너무 어려운 데. 내 골반이 제대로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노래는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분명 3분짜리 아니었어? 왜 이렇게 길어? 한솔이는 심각한 얼굴로 나를 쳐다 보면서, 본인도 리듬을 맞추고 있었다.
그렇게 같은 동작을 계속 반복을 하던 순간 돌연 음악이 끊겼다. 한솔이가 끈 모양이었다.
“음...솔직히 말해도 돼요?”
“...솔직하게 말해도 돼.”
“...뻣뻣하시네요. 로봇이 춤을 추는 것 같았어요.”
어...음. 그래. 할 말이 없었다. 나도 이상하게 추고 있다는 건 직접 추면서 느낀 부분이었으니까. 한솔이는 그래도 귀여웠다며, 천천히 동작 하나하나 연습하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나를 위로했다. 그래 연습하면 되겠지. 연습해서 안 되는 건 TS뿐이다.
아주 잠깐 숨을 고른뒤에, 한솔이는 나와 마주서서 동작을 하나하나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02춤 특유의 골반웨이브가 어려운거지, 같은 동작을 무한 반복하는 것뿐이니까 쉬워...야 하는 데...
“상체는 움직이지 말고 골반만 움직여야 돼요. 이렇게!”
아니 그 골반만 움직인다는 게 어떻게 하는 건데! 골반이 뭔데! 사람이 어떻게 골반만 움직여! 골반도 상체에 붙어 있는 데 어떻게 안움직일 수가 있는 데! 골반만 움직이라는 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난 모르겠어! 내가 골반만 움직일 수 있을 때는 볼일 볼 때 뿐이라고!
“제가 하나하나 자세 교정해드릴 테니까 천천히 해 보죠,”
연습실을 거울을 마주본채로, 한솔이가 내 뒤에 붙어 허리를 양손으로 잡았다. 부모님도 내 허리를 잡아본 적이 없는 데! 아닌가? 어쨌든, 남에게 허리를 잡히는 느낌은 어쩐지 소름이 끼쳤다.
“긴장하지 마시구요, 자, 동작 하나하나 끊어서 해볼게요. 먼저 팔 머리 위로 올 리시고...”
한솔이는 내가 상체를 같이 움직일 때마다 허리를 꽉 쥐고 내 자세를 강제로 교정했다. 너 생각보다 힘쎄구나. 그렇게 한 시간 동안 허리를 붙잡힌 채로 골반을 움직이길 여러 번, 한솔이의 훌륭한 가르침 덕에 어느 정도 봐 줄 만 한 웨이브가 나오기 시작했다.
눈물겨운 성과였다. 골반이 움직이면 상체가 통째로 기울어지는 절망적인 통짜 웨이브에서 드디어 골반만 움직이는 느낌있는 웨이브가 나왔어! 이대로 가면 몇 시간 만에 02춤을 완벽하게 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랬으면 좋겠다. 더 이상 몸 움직이기 싫어! 머리는 튼튼하지만 몸은 연약한 여중생이라고! 요즘 여중생은 특수부대원 2인분이라는 루머가 있지만 난 기껏해야 성인 남성 평균치보다 조금 더 높을뿐이야!
그것도 높기는 하지만 그래 봐야 전문적으로 운동한 사람에겐 발끝도 미치지 못 한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까지 운동을 하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지옥참마도 들고 날뛴 것만으로도 충분히 운동이 되는데 굳이 다른 운동을 할 필요가 있을까?
일주일 내내 배달음식으로 떼워도 살 하나 안 찌는 게 이 몸의 장점이라고!
“그래도 이 정도면 좀 더 연습하면 괜찮을 것 같아요. 완벽하게 연습하는 것도 문제니까...”
“잘하는 게 더 좋은 거 아니야?”
“생각해 봐요. 원래 이런건 완벽한걸 보려는 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스트리머가 하는 걸 보고 싶은 거라구요. 그러니까 오히려 완벽한 동작을 보여주면 ‘연습을 해왔구나’하는 티가 확 나죠. 그러니까 적당히 어설프게 하는 게 더 좋아요. 연기를 할 수 있으면 상관없겠지만 유진씨는 그런거엔 쥐약인 것 같으시니까...”
그런 것까지 신경을 쓰다니, 역시 머기업은 머기업이구나. 역시 업계 선배의 조언은 확실히 달랐다. 겉치레는 빼고 액기스만 쭉 뽑아서 알려 주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게다가 유진씨는 실제 나이는 어쨌든 외모만 보면 많게 쳐줘도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니까 어설프게 추는 쪽이 오히려 어필이 더 돼요. 귀엽게 보이잖아요.”
귀엽게...라. 아예 어필포인트가 다른 사람이랑 다르네. 섹시...까지는 생각도 안 했지만 다른 사람이 보면 그렇게 보이나. 하긴 한솔이 같은애가 하는 거 보다가 몸집도 외모도 두자릿수 가까이 어려 보이는 내가 추면 그렇게 보이긴 하겠다.
“그럼 다시 시작하죠. 연습실 오늘 밖에 못쓰니 빡세계 해야 돼요!”
결국 나와 한솔이는 한밤중이 될 때까지 연습실에서 하루를 보냈다.
“내일은 전략을 짜기로 해요. 원래 이런건 밑밥을 잘 깔아둬야 시청자들이 몰려드니까...이미지 관리도 되고요.”
그래...전략? 무슨 전략?
한솔이가 집에 들어 가기 직전 한 말을 곱씹으며, 나는 집 안으로 들어섰다.
세연아 나왔다! 당장 나와서 햄버거를 받아라!
내 손에 들려있던 햄버거 포장지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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